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프리드리히 니이체
1. 니체와 짜라투스트라
1844년에 독일에서 태어난 니체는,
1865년 만 21세의 나이에 니체의 운명을 바꾼 한 권의 책을
오래된 책방에서 만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말을 남긴 염세주의ㆍ비관주의의 대가
쇼펜하우어가 쓴 이 책은 니체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탐닉하였지만,
동시에 그 사상은 니체가 벗어나야할 굴레였다.
결국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극복하고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초인철학'을 탄생시켜
근대 철학의 탄생자가 된다.
(비록 그 자신은 정신병으로 불우한 생을 마감하였지만)
그리고 그 초인철학이 담긴 저서가 바로
이 철학 소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철학소설로 분류가 된다. 소설적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2. 내용 개괄
1) 짜라투스트라의 서언
짜라투스트라는 30살에 동굴에 들어가서, 40살에 세상을 나온다.
숲 속에서 성자를 만나고, 숲에서 가까운 마을의 광장에 도달하여
거기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광대와 군중들을 만난다.
그런데, 줄타기 하는 인간이 떨어져 죽자,
사람들은 흩어지고, 짜라투스트라는 줄타기 인간의 시체를 메고
숲 속으로 들어와, 촛불을 든 노인의 집에서 요기를 하고,
숲 속에서 시체와 함께 밤을 세운 후,
다음날 정오에 깨어나서, 새로 태어남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 있는 친구임을,
긍지와 현명함의 조화를 갈구한다는 것을.
그리고 다음과 같이 끝맺어진다.
「이리하여 짜라투스트라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본문 중)
(태양을 보고) 그대 위대한 천재여!
만일 그대가 비추는 대상을 못 가졌다면,
그대의 행복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짜라투스트라) 그대는 바다에서 사는 것처럼 고독하게 살아왔다.
인간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 불완전한 것이다.
인간이란 극복되어야 할 어떤 존재이다.
인간이란 동물과 초인 사이에 걸쳐 놓은 밧줄이다.
(짜라투스트라가 군중의 환호를 보고 실망하여)
아아, 그들의 웃음 속에 얼음이 들어 있구나!
(짜라투스트라가 시체와 잠을 잔 다음날 깨달음을 얻고 하늘을 보자)
그 독수리에게는 한 마리의 뱀이 감겨 있었다.
그것은 먹이처럼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독수리의 목에 휘감겨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뱀은 현명함을 독수리는 긍지를 상징한다.)
2) 제1부
짜라투스트라는 '얼룩소' 마을에 도착하여 자신의 사상을 말한다.
기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1) 세 가지 변화
지식 습득과 위선적인 정신을 중압갑을 견디는 낙타로 표현하고 있고
사막의 끝에서 낙타는 의지와 용기 강인함의 화신인 약탈자 사자로
변한다. 그리고 사자는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낙천주의자 어린이로
발전한다.
(본문 중)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서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즉, 정신이 낙타가 되며, 낙타가 사자가 되었다가,
마침내 사자는 어린이가 되어 버리는 이 세 가지 변화를.
사자는 자유를 바라며 스스로 사막의 지배자가 되려고 한다.
또한 어린이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유희라고도 할 수 있다.
또 저절로 돌아가는 수레바퀴며, 최초의 운동이요 신성한 긍정이다.
창조의 유희는 신성한 긍정을 필요로 한다.
(2) 도덕의 교단에 대하여
편안히 자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는
설교를 하는 현자의 말을 듣고 짜라투스트라는 깨달음에 미소짓는다.
그의 말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문 중)
일찍기 사람들이 도덕의 교사를 찾을 때,
우선 무엇을 찾았는지를 나는 지금 똑똑히 알게 되었다.
편안한 잠과, 그리고 양귀비꽃 같은 도덕을 찾았던 것이다.
(3) 배후 세계 사람에 대하여
육체와 대지에 절망한 자아는 배후 세계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만들었다.
배후 세계에 속할 때 환상과 신앙이 만들어졌고
육체는 병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건전한 육체가 대지의 위에 보다 순수하게 설 수 있다.
(본문 중)
일찌가 나, 짜라투스트라는 모든 배후의 세계 사람처럼,
인간의 저편으로 환상을 던졌다.
그 때 나에게는 세계란 괴로운,
그리고 괴롭혀지는 신의 산물로 생각되었다.
(4) 육체를 경멸하는 자에 대하여
감각과 정신은 자아의 지배를 받으며 본연적인 자아는 육체에 있다.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은 자아를 초월해서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육체를 경멸하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육체를 존경하고 질투한다.
(5) 환희와 정열에 대하여
인간의 선은 지상의 덕이다.
그것은 현명함이 적으며 이성이 적은 것이다.
그리고, 정열은 덕을 낳는다. 비록 그것의 시작이 악일지라도.
(본문 중)
만약 그대가 행복을 가지고 있다면,
단지 한 가지 덕만을 가지고 있으리라.
많은 덕을 가졌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나, 고통스러운 운명이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어떤 존재이다.
그 때문에 그대는 그대의 덕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대의 덕 때문에 그대는 파멸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6) 창백한 범죄자에 대하여
범죄자들은 피에의 광기가 살인을 저지르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이성에 억눌려 있다. 자신에 대한 경멸.
그러나 예로부터 악은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
선은 차라리 가련한 쾌적 속에 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오히려 광기가 선으로 불려져야 한다.
(7) 독서와 저작에 대하여
저작은 피, 광기로 씌여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 정신은 무거운 정신이 아니라
가벼운, 웃을 수 있는 정신이어야 한다.
높은 곳에 있는 자가 아래를 보며 웃을 수 있기에.
(본분 중)
씌어진 모든 것 가운데서도, 나는 사람의 피로 씌여진 것만을 사랑한다
피를 가지고 쓰라. 그러면 피가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은 괴롭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약해져서는 안된다.
우리들 모두는 무거운 짐에 견딜 수 있는
수당나귀이며 암당나귀인 것이다.
나는 악마를 보았을 때 악마가 엄숙하고 철저하며 심오하며
장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노여움으로서는 죽일 수 없고, 웃음으로서만 죽일 수 있다.
일어서라! 중압의 정신을 죽여야 하겠다.
(8) 산 위에 있는 나무에 대하여
얼룩소 도시를 에워싼 산을 넘어갈 때,
고귀한 경지에 오른 젊은이를 만난다.
짜라투스트라는 그 젊은이의 괴로움을 이해하고 달래며,
고귀한 자일 수록 정신을 스스로 순화하지 않는다면
정신이 높이 올라가려는 자들을 경멸하고 미워하는
타락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예리한 정신이다.
- 마치 모짜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르의 정신을 꿰뚫은 것처럼.)
(본문 중)
그대(짜라투스트라)에 대한 시기야말로 나를 파멸시켰던 것이다.
(9) 죽음의 설교자에 대하여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노래하는 자, 삶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자,
영생이냐, 죽음이냐의 논의 이전에 다만 그들이 사라지길 바란다.
(10) 전쟁과 병사에 대하여
전쟁에 나선 병사는 용기와 순종을 미덕으로 삼는다.
병사는 적에 대해 미움과 증오를 가지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병사를 사랑하지만 그들을 용서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종과 전쟁의 삶을 영위하므로.
(11)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국가란 민중을 얽매는 차디찬 괴물이다.
민중의 선악이 담겨있는 풍습과 율법과는 달리
국가의 그 모든 것이 허위다.
국가란 사람에게 많은 욕망과 위험을 불러일으킨다.
국가가 끝나는 곳에 위대한 영혼의 자유로운 생활이 존재한다.
(본문 중)
이들 쓸모없는 사람을 보라! ... 이것이 소위 신문이다.
그들은 서로 물어뜯고 삼키지만 스스로 소화시키지 못한다.
(12) 시장의 파리에 대하여
위대한 영혼은 고독 속에 있고,
시대의 지배자라 칭하는 자들은 위대한 영혼의 독파리이다.
(13) 순결에 대하여
순결이라는 것은 정욕의 억제요,
대개의 경우 그것은 타락하고 음탕하고 왜곡된 정신이 되기 쉽상이다.
차라리 순진함을 가진 관능을 지녀라.
(14) 벗에 대하여
벗은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이다
여성의 내면에는 노예와 폭군이 있어서 벗을 가질 수 없다.
(15) 천 한개의 목표에 대하여
서로 다른 민족은 각기 다른 선악관을 가지고 가치를 매긴다.
그것은 바로 권력에의 의지.
지금에 와서는 민족이 아닌 개인이 서로 다른 선악관 위에 자리한다.
그러나 진정 존재하기 위해서는
(초인이 되는) 또 하나의 목표가 필요하다.
(16) 이웃에의 사랑에 대하여
이웃을 사랑하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나쁜 사랑이다.
그것은 고독의 변형된 형식이며 멀리서 오는 자를 배제한다.
멀리 있는 자, 벗, 초인을 사랑하라.
(17) 창조자의 길에 대하여
군중에서 떨어진 고독한 자는
군중이 던지는 오물과 불공정을 견뎌야 하고,
고독한 창조자를 미워하는 선인과 공정한 자를 경계해야 한다.
고독한 자는 자신을 초극하여 창조하려하며, 그리하여 멸명한다.
(18)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
짜라투스트라는 늙은 여자를 만나, 여자에 관한 생각을 말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위안이며, 남자는 여자에게 임신의 도구임을.
그리고 여자의 마음은 얕고 잘 바뀌고 남자의 마음을 이해 못함을.
그러자 노파는 그의 말에 동감하고
여자에게는 회초리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짜라투스트라의 사고의 시대적 한계를 느낄 수 있다.
(본문 중)
가장 달콤한 여자는 상대적으로 쓴 맛이 있다.
여성이 미워할 때 남성은 여성을 두려워하라!
남성은 영혼의 밑바닥에서 노할 뿐이나,
여성은 영혼의 밑바닥부터 비열하기 때문이다.
(19) 독사에 물린 상처에 대하여
적의 악에 대해 나는 작은 악으로 대해야 한다.
절대적인 정의란 없으므로.
(본문 중)
그대들에게 하나의 큰 부정이 가해졌을 때는
재빨리 다섯 가지 부정을 행하는 것이 좋으리라.
그저 부정에 억눌리기만 하면 보기에도 비참하다.
자신의 부정을 인정하는 편이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보다 고귀하다.
도사는 깊은 샘물과도 같다. 돌을 던져 넣기는 쉬우나,
돌이 밑바닥에 가라앉았을 때, 누가 다시 그 돌을 건질 수 있으랴!
도사를 모욕하지 않도록 해라!
그대들이 모욕을 했다면, 차라리 죽여라.
(20) 어린이와 결혼에 대하여
결혼은 창조를 뛰어넘는 창조이어야 한다.
세속의 결혼은 동물들이 그물에 걸린 것과 같다.
(본문 중)
결혼 생활 - 나는 그것을 창조한 것보다 더 높은 것을 창조하려는
두 사람의 의지라고 부른다.
자기가 맺어주지 못했던 것을 축복하려고 절름거리며 다가오는 신도,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어다오!
가장 교활한 자도 아내를 사들일 때는
주머니에 든 것을 음미하지 않은 채 무작정 산다.
짧고도 많은 어리석음, 그것이 그대들에게는 연애라 불린다.
(21)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
후계자와 어떤 목표가 있는 죽음을 찬양한다.
죽어야 할 때 죽어야 함을 강조한다.
(본문 중)
완성하는 자는 희망을 지닌 사람들과 서약하는 자들에게 둘려싸여
승리감에 도취된 채 죽는다.
자신의 진리와 승리를 지키기 위해서 너무 오래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빨없는 입은 어떠한 진리에 대해서도 벌써 권리를 갖지 못한다.
결코 달콤하게 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여름철에 벌써 썩어버린다.
그가 아직도 가지에 매달려 있다면, 그것은 비겁하기 때문이다.
(22) 주는 덕
얼룩소 도시를 떠날 때
제자들이 태양을 감싸는 뱀 모양의 황금지팡이를 주자
짜라투스트라는 기뻐한다.
그리고 그는 주는 덕이란 황금과 같다라고 말하고,
영혼이 주는 덕을 잃는 순간 탐욕으로 타락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주는 덕은 대지 위에서의 힘이며,
대지는 초인의 깨어나는 회복의 장소가 될 것이다.
(본문 중)
어찌하여 황금은 최고의 가치가 되었는가?
그것은 황금이 진귀하고 실용적이지 아니하며 찬란하게 빛나고,
그 빛이 부드럽기 때문이다. 황금은 항상 스스로를 주는 것이다.
최고의 덕성을 닮은 모습으로서만 황금은 최고의 가치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주는 덕은 최고의 덕이다.
우람한 대낮이란, 인간이 동물과 초인 사이의 행로 한가운데 서서
저녁에 이르는 길을 최고의 희망으로써 축복할 때이다.
3) 제2부
산 속에서의 회개 후 다시 '행복의 섬'에서의 연설. 인간에 대한 비판
(1) 거울을 가진 어린이
산 속으로 들어간 짜라투스트라는 어느날 아침
어린이가 가져온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악마의 모습임을 보고
놀라서 다시 인간의 곁으로 갈 결심을 한다.
자신의 왜곡되어지는 말을 고치기 위해서.
용기를 갖고서가 아닌 영감을 갖고서
(2) 행복의 섬에서
인간은 멀리 있는 것을 바다라고 혹은 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신이라는 것은 하나의 억측일 뿐,
하나의 왜곡된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괴로움과 많은 변화가 따를지라도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3) 동정자(同情者)들에 대하여
동정은 인간의 긍지를 헤친다.
동정은 많은 괴로움을 안겨 주며 그로 인해 신도 죽었다.
(본문 중)
치욕, 치욕, 치욕, - 이것이 바로 인간의 역사이다!
내가 괴로워하는 자를 도와주었을 때,
나는 그의 긍지를 몹시 손상시켰음을 느낀다.
왜소한 악의 속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악행을 저버리게 한다.
악행은 부스럼과 같은 것이다.
근지럽고 쑤시며 드디어 터져서 고름이 나온다.
차라리 그대의 악마를 키워라.
신도 그의 지옥을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다.
신은 죽었다. 인간에 대한 동정 때문에 신은 죽었다.
(4) 성직자들에 대하여
성직자들은 결함을 메꾼 것을 신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들의 정신은 동정으로 가득 차 있다.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구세주보다도 초인에 의해 구제되어야 한다.
(본문 중)
이 구제자들의 정신은 결함이라는 틈바구니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틈새 하나하나에 그들의 망상을 채웠다.
그들이 채운 것을 그들은 신이라 불렀다.
(5) 도덕가에 대하여
도덕가의 덕이라는 것을 보상을 요구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덕이란, 그 자체를 일컫는 것이 아니고,
또는 폭력을 막기 위한 수단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덕은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대하는 듯하는 것이지,
어린 아이가 갖고 노는 장난감의 즐거움이 아니다.
(본문 중)
그러나 아름다운 소리는 낮은 소리로 나직이 울려온다.
아름다움은 가장 잘 잠을 깬 영혼 속에만 숨어든다.
또한 태엽을 갓 감아 놓은 시계와 같은 사람도 있다.
그들은 똑딱똑딱 소리를 내면서 이 소리가 - 덕이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6) 천민에 대하여
천민(속물적인 사람)은 짜라투스트라에게 환멸을 가져다 준다.
그들에게 있어서 짜라투스트라는 바람과 같은 존재이다.
침을 뱉을 수도 없는.
(본문 중)
인생은 쾌락의 샘이다.
(7) 독거미에 대하여
니체는 사회주의적 언론가들(Maxist Journalists)을 독거미에 비유했다.
그들의 '정의'의 실체는 똑같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이며
이것은 그들 영혼의 본질이다.
그들은 무력한 바리세인이다.
(본문 중)
벌을 주려는 충동이 강한 모든 사람들을 믿지 마라!
(8) 유명한 현인에 대하여
유명한 현인들의 정신은
자유가 아니라 군중에 익숙해져 있다.
(본문 중)
노예의 행복에서 해방되고, 신과 예배에서 벗어나며, 공포를 일으키고,
위대하고도 고독한 것, 바로 이것이 성실한 인간의 의지이다.
(정신이란) 스스로의 고뇌에 의해서
스스로의 지혜를 증대시키는 삶이다.
그대들은 아직 한 번도 그대들의 정신을 눈(雪)의 동굴 속에
던져 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할 만큼 그대들은 뜨겁게 가열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차가운 눈의 황홀함을 그대들은 모른다.
또 정신의 가장 깊은 샘물은 얼음처럼 차가와서,
뜨거운 손을 상쾌하게 하는 것이다.
(9) 밤의 노래
짜라투스트라는 밤 속에 빛나는 위대한 영혼이다.
(10) 춤의 노래
숲에서 춤을 추고 있는 소녀들에게 짜라투스트라는 계속 추라고 한다.
그는 변화무쌍한 삶과 지혜를 사랑하고 무거움이야말로 악이라 한다.
(본문 중)
악마는 무거운 정신이다.
(11) 무덤의 노래
무덤은 짜라투스트라에게 더 많은 박애와 동정심과 믿음을 요구하기에
그가 갖고 있던 순수한 것들을 파괴시켰다.
이러한 상처를 견디어 나간 것은 그의 의지라고 말하고 있다.
(본문 중)
무덤이 있는 곳에만 부활이 있다.
(12) 자기 극복에 대하여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권력에서 의지를 갖고 있다.
자기 극복을 하고 있는 현인조차도 궁극적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따라서 영구불멸한 선과 악은 없다.
(본문 중)
그대들의 위험은 권력에의 의지 바로 그 자체이며,
끊임없이 태어나는 생명의 의지이다.
최고의 선이란 창조적인 선이다.
(13) 숭고한 사람들에 대하여
숭고한 사람들이 가장 하기 힘든 제스춰,
그것은 바로 권위와 가식을 벗어버린 힘을 뺀 상태이다.
그것은 강한 자가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만이 비로소 하강할 수 있으므로.
(본문 중)
그러나 산다는 것은 취미와 감상을 위한 싸움이다.
권력이 자비로와져서 눈에 보이는 시야로 내려갈 때,
그와 같은 하강을 나는 아름다움이라 부른다.
영혼을 영웅이 버렸을 때,
비로소 꿈속에서 그대들은 초영웅에게로 접근한다.
(14) 교양의 나라에 대하여
미래 세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인이란 과거의 문화의 여러 조각들의 잡동사니이며,
그것은 짜라투스트라를 지치게 한다.
(15) 순결한 인식에 대하여
삶의 관조자(쇼펜하우어 등)는 순결한 인식 속에 뱀을 숨기고 있다.
이는 지붕 위를 걸어다니는 고양이와 같은 달의 모습이다.
짜라투스트라 자신은 창조하는 힘이 있는 태양의 모습이다.
(본문 중)
모든 것으로부터 다른 무엇을 바라지 않고, 오직 백 개의 눈을 가진
거울로서, 그들앞에 드러눕는 것을 허용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을
모든 것에 관한 순결한 인식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순진함은 어디에 있는가? - 생산에의 의지가 있는 곳에 있다.
스스로를 넘어서 창조하려는 자, 이 사람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본다.
태양의 사랑은 순진하며 창조자의 갈망이다.
태양이 바다를 넘어 초조하게 올라오는 것을 보라! 태양의 사랑의
갈망과 뜨거운 숨결을 느끼지 못하는가?
태양은 바다에서 젖을 빨고, 바다의 심연을 자기 높이까지 끌어올리려고
한다. 그러면, 바다의 욕망이 천 개의 유방을 가지고 높아간다.
바다는 태양의 갈증으로써 입맞추고 젖이 빨리기를 바란다. 바다는
대기가 되어 드높이 솟아올라 광명의 길이 되며, 또한 광명 그 자체가
되려고 한다.
진실로 나는 태양처럼 삶과 깊은 바다를 사랑한다.
이리하여 나에게 있어서 인식이란 모든 깊이는 나의 높이에까지
올라오는 것이다.
(16) 학자에 대하여
학자는 남의 정신을 교묘한 손놀림과 잔재주로 짜는 기술을 가진
태양을 싫어하는 먼지 쌓인 양이다.
(17) 시인에 대하여
변덕과 허영심은 시인의 본질이며, 짜라투스트라와 천상의 신들도
시인의 마음을 갖고 있다.
(본문 중)
약간의 쾌락과 약간의 권태, 이것이야말로 그들(시인)의 최상의
사색이었다.
(18) 중대한 사건에 대하여
짜라투스트라가 지옥의 불개한테 잡혀간 것을 들은 선원과 어부,
제자들은 걱정을 한다. 5일 후 짜라투스트라는 다시 나타나 그들에게
그가 만난 불개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가, 조상의 붕괴를 원하는 불개(무정부주의자, anarchism)는
국가, 조상과 같이 위선과 허위이며, 진정한 불개는 대지 속에 있는
웃음과 황금을 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19) 예언자에 대하여
예언자가 영원한 허무에 대해서 말하자 짜라투스트라는 절망에 빠져
잠에 든다. 그는 꿈에서 영원회귀하는 모든 것들에 압도되어 버린다.
꿈에서 깬 그는 허무를 잠재울 바다의 역량을 내보이며
예언자와 함께 연회를 베푼다.
(20) 구제에 대하여
불구자를 구제한다는 것은 세상의 악덕을 보게 하는 일이다.
진정한 구제자란 모든 현상을 원하게 하는 의욕이다.
하지만, 과거의 것을 의욕할 수 없기 때문에
의욕은 복수의 정신이 되어버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권력에의 의지이다.
(21) 인간의 영리함에 대하여
낭떠러지에서 눈은 땅을 향하면서 손은 벽을 쥐어잡는 마음같이
짜라투스트라 또한 날개로 멀리 갈 수 있으면서도 인간들 사이에
있고 싶은 마음이 존재한다. 그의 처세술은 인간들 사이에서
그와 인간들을 비슷한 수준의 존재인 것으로 혼동시키는 것이다.
(본문 중)
상처받은 허영심이야말로 모든 비극의 어머니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긍지가 상처를 입으면 긍지보다도 훌륭한 것이 생겨난다.
(22) 가장 고요한 시간
짜라투스트라는 동굴로 들어가 고독 속에서 꿈을 꾼다.
꿈 속에서 그는 소리없는 목소리와 대화를 나눈다.
짜라투스트라는 그 목소리에게 초인의 준비는 됐지만 침묵하고 싶다고
말한다. 소리없는 목소리의 웃음에 잠이 깬 그는 자신이 진리를
공유하는데에 인색한 것인가 하고 괴로워 한다.
4) 제3부
중압의 영혼을 이겨내고 세계를 긍정하는 내면적인 성장을 그림
(1) 방랑자
높은 산 위에 오른 짜라투스트라는 아래의 깊은 바다를 보고
그 속에 잠든 인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통곡한다.
(본문 중)
많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자기를 무시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사랑이란 고독한 자의 가장 큰 위험이다.
(2) 유령과 수수께끼에 대하여
섬을 떠난 배 안에 탄 짜라투스트라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묘한 이야기를 얘기한다.
영원의 길을 가려는 그를 자꾸만 억누르는 중압의 정신인 난장이에 대해
어떤 젊은 목자를 괴롭히는 사상인 뱀이 자꾸 그의 입 속으로 들어오자,
목자는 뱀의 대가리를 깨물고 죽음도 초월한 웃음을 웃었다.
짜라투스트라는 그것을 갈망했다.
(본문 중)
그대는 스스로를 높이 던졌지만, 던져진 돌들은 모두 떨어지고 만다.
그처럼 둘이 있다는 것은 혼자 있는 것보다 훨씬 고독하다.
(3) 본의 아닌 행복에 대하여
4일을 더 여행한 후에 짜라투스트라는 고통을 극복하고 행복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고통과 심연의 사상에 둘러쌍이길 원한다.
(본문 중)
사랑에 빠진 남자, 질투가 심한 남자가 애정을 냉혹 속에 감추고,
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거절한다.
(4) 해뜨기 전
해뜨기 전의 하늘에는 투명함과 순진함과 우연이 있다.
그것은 무목적의 심오한 세계이다.
(본문 중)
'무목적' - 이것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고귀한 것이다.
이것을 나는 모든 사물에 되돌려 주었고, 모든 것을 목적에 지배되는
노예상태로부터 구해주었다.
(5) 적게 만드는 덕
육지에 도착한 짜라투스트라는 민중들을 둘러본다.
그들의 그리스도교에 입각한 작은 덕에 대해 그는 비판한다.
(본문 중)
발과 눈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6) 감람나무 산에서
겨울이 짜라투스트라에게 시련을 줄지라도,
그는 그만의 감람나무 산의 양지바른 곳에서 노닌다.
(7) 통과하는 것에 대하여
대도시 앞에서 짜라투스트라는 그를 흉내내는 원숭이를 만난다.
원숭이는 짜라투스트라에게 대도시에 들어가지 말 것을 원한다.
이에 대해 짜라투스트라는 원숭이와 그 대도시 모두 구역질을
느끼고 지나쳐 버린다.
(8) 배신자에 대하여
짜라투스트라는 그를 섬기다가 다시 그리스도교로 바꾼 배신자에
대하여 신은 죽었다고 말한다.
(본문 중)
오히려 그들(옛 신들)은 스스로 일찌기 웃다가 죽어버렸다.
가장 신을 부인하는 말이 신 자신에게서 나왔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
- 그 말은 "신은 오직 하나다. 그대는 나 이외의 다른 신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외쳤던 것이다.
(9) 귀향
고독 속에서 다시 짜라투스트라는 평화와 정신적 충만을 갖는다.
인간 세상의 가식과 허위와 숨막히는 동정을 뒤로 한 채.
(본문 중)
그대(짜라투스트라)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찌기 나와 함께
있을 때보다도 저버려진 채로 있었던 것을.
저버려진 것은 고독과 다르다.
동정은 모든 자유로운 영혼에 대해 숨막힐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늪을 휘저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산 위에 살아야 한다.
(10) 세 가지 악에 대하여
사람들이 말하는 세 가지 악, 그것은 음욕과 지배욕과 이기심이다.
하지만 음욕은 자유인에게는 희망을 상징하는 행복이고,
지배욕은 천한 것을 무찌르는 긍지이며,
이기심은 비굴하고 연약한 것을 비웃는 힘찬 영혼에서 나오는 정의이다.
(본문 중)
힘이 있는 곳, 그곳에서는 수(數)가 주인이 된다.
(11) 중압의 정신에 대하여
만인에 대한 선과 악은 대지와 삶을 누르는 중압의 정신이다.
나의 선과 악이 더 바람직하다. 어디에도 길은 없다.
(본문 중)
오오, 이 약간이라는 것에 얼마나 위대한 운명이 있는가!
인간이란 발견되기가 힘든 것이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더욱더 힘들다.
(12) 낡은 판자와 새 판자
인간은 고정된 선악관을 가지고 낡은 자부심 위에 앉아 있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하나의 존재이다.
착한 사람은 진실에 도달할 수 없는 낡은 판자이다.
허무와 폐허의 세계관을 극복하고 긍정의 대지 위에 서있는
창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 중)
진실하다는 것 -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그리고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이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을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은 선인들이다.
잘먹고, 잘 마시는 것, 이것은 결코 허무한 기술이 아니다.
파괴하라! 한 번도 즐거워하지 않는 자의 판자를.
어울리지 않는 부부가 최악의 복수자임을 나는 항상 보아왔다.
창조하는 자를 그들(선인)은 가장 미워한다.
왜냐하면 선인은 - 창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항상 종말의 시초이다.
(13) 회복해 가는 사람
짜라투스트라는 동굴에서 1주일 동안 정신을 잃은 채 누워있고,
그의 곁에서 독수리와 뱀이 걱정을 한다.
의식에서 회복한 그는 인간의 작음에 대해 구역질을 느끼고,
뱀과 독수리는 그에게 새로운 악기로 새로운 노래를 연주하여,
인간 세상에서 인내할 것을 권한다.
(본문 중)
말과 음성은 영원히 떨어진 사이를 있는 무지개가 아닐까?
존재의 나이는 영원히 달린다.
영원히 길은 굽어져 있다.
가장 위대한 사람도 너무나 작았다.
(14) 위대한 그리움에 대하여
짜라투스트라는 그의 영혼에게 인식의 바다를 선물하였고,
영혼은 그에게 노래로 보답한다.
(15) 또 하나의 춤의 노래
삶이 선사하는 다양함, 그리고 짜라투스트라는 그것을 버리려 한다.
(본문 중)
쾌락은 - 마음의 슬픔보다 깊다.
(16) 일곱 개의 봉인(긍정과 아멘의 노래)
짜라투스트라는 예언 정신을 가진 분노할 줄 아는 창조적 숨결이기를
희망한다. 그는 모든 것을 조화시키는 소금이길 바라고
인식의 항해자이며 가벼운 덕을 지닌 새의 자유를 꿈꾼다.
그리하여 그는 영원에 대해 끝없이 갈망한다.
5) 제4부
동굴에서 '보다 높은 인간'을 만남
(1) 꽃의 공양
늙은 짜라투스트라는 산 위에 올라 세계, 깊은 바다에 잠긴 인간들을
그의 행복의 낚시로 끌어올리려고 한다.
(2) 비명(悲鳴)
저녁, 동굴 앞에서 짜라투스트라는 허무와 피곤의 예언자를 만난다.
그는 예언자의 비관주의적 세계관을 비난하면서,
행복의 섬이 존재함을 말한다.
(3) 왕들과의 대화
짜라투스트라는 고귀한 인간을 찾으러 가다가,
속세에 염증과 회의를 느낀 2명의 왕과 만난다.
짜라투스트라는 왕의 지혜를 칭찬하며 그들을 자신의 동굴로 인도하고,
그는 계속 고귀한 인간의 슬픈 울음 소리를 찾아간다.
(4) 거머리
짜라투스트라는 거머리에게 피를 빨리는 양심적인 인간을 밟는다.
양심적인 인간은 모든 애매함을 배척하고
가장 확실한 근본 위에 서고자하는 사람으로
그가 인정하는 것은 짜라투스트라와 거머리 뿐이다.
짜라투스트라는 그를 자신의 동굴로 갈 것을 권유하고
비명을 쫓아 계속 그의 길을 간다.
(5) 마술사
짜라투스트라는 바위 근처를 지나다가,
정신의 참회자인 척하는 늙은 마술사를 만난다.
짜라투스트라는 그 마술사에게 위대하지 않은 점이
그의 유일한 진실이라고 말하면서 현대는 천민의 사회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를 동굴로 보내고 그의 길을 재촉한다.
(본문 중)
너무 오래 부풀어 있던 개구리는 마침내 터지고 만다.
(6) 실직자
짜라투스트라는 그를 찾고 있는 늙은 애꾸눈의 교황과 만난다.
교황은 신이 늙고 지쳐 죽어버린 후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숲을 찾고,
이어서 짜라투스트라를 찾게 된다.
교황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와의 대화에서,
무신앙의 경건함을 느끼며, 교황 역시 그의 동굴로 인도되어진다.
(본문 중)
진실로 누가 와서, 그대를 위해 그대의 신을 다시금 눈뜨게 할 때까지,
우리들은 오래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낡은 신은 이미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완전히 죽어버렸다.
(7) 가장 추악한 인간
짜라투스트라는 뱀이 죽는 골짜기에 이르러 신을 살해한 자를 만난다.
그 추악한 인간은 그를 본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다.
그것은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이것은 또한 신이 죽은 원인이기도 하다.
짜라투스트라는 그를 위대한 경멸자인 동시에
위대한 자기애자라고 생각한다.
(본문 중)
사람들은 말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고.
아아, 이 자기애(自己愛)란 얼마나 위대해야 하는가!
그것은 얼마나 많은 자기 경멸을 품고 있는가!
(8) 자발적인 거지
짜라투스트라는 자발적으로 거지가 된 부자를 만난다.
그 거지는 심장을 부풀게 하는 무거운 사상을 버리고
암소 곁에서 반추(되씹음)와 게으름을 즐긴다.
짜라투스트라가 그 거지를 자신의 동굴로 초대하자,
그 거지는 그를 예찬하기 시작하고 이에 화가 난 짜라투스트라는
그를 내쫓고 만다.
(본문 중)
올바르게 준다는 것은 올바르게 받는 일보다도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그리고 잘 준다는 것은 하나의 기술이며,
선의의 가장 교활한 최후의 묘기임을.
위에도 천민! 아래도 천민! 오늘날 '빈곤'이니 '부자'니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런 구별을 나는 잊어버렸다.
(9) 그림자
짜라투스트라는 그의 그림자와, 그림자의 고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림자의 고뇌는 끊임없는 방랑으로 인한 것과
그가 짜라투스트라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운영자 주 :여기에서 니체는 자아분열이 진행된 것이 아닐까?)
(본문 중)
그대와 함께 나는 일찌기 내 마음이 존경하고 있던 것을 파괴했다.
나는 모든 경계석(境界石)과 우상을 내동댕이치고
가장 위험한 원망을 쫓았다. - 진실로 나는 온갖 범죄를 초월했다.
(10) 대낮
짜라투스트라는 대낮에 포도 덩굴이 얽혀있는 늙은 나무 아래서
행복에 충만하여 잠시 동안 낮잠을 잔다.
(11) 인사
잠에서 깬 짜라투스트라는 결국 동굴로 돌아오는데,
그가 찾던 비명이 동굴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는 소리임을 깨닫는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중 오른쪽의 왕이 그를 한 그루의 소나무로 비유해
찬양하지만, 짜라투스트라는 이를 두려워 한다.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 짜라투스트라 자신의 최후의 하락, 몰락을
방해하는 자들이며, 그가 동경하는 족속인 어린이들에 대해
이야기해 줄 것을 희망한다.
(12) 만찬
예언자가 술을 청하자 짜라투스트라는 모두와 함께 양고기로 만찬을
준비할 것을 제안한다.
(13) 보다 고귀한 인간에 대하여
만찬을 하면서 짜라투스트라는 자신이 시장에 간 경험을 말한다.
그곳에서의 천민들은 신 앞에서의 평등함을 믿지만,
사실은 신은 죽었고 보다 고귀한 인간인 만찬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천미의 왜소한 미덕보다는 절망을 권유한다.
그는 심연을 볼 수 있는 용기있는 독수리의 눈을 가질 것과
가장 커다란 악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번개에 의해 파멸할 수 있는 높이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위대함은 불신과 허위를 낳고
솔직해지는 것은 어려우며
학자들이 갖는 차가운 거짓 없음은 진리에서 멀다.
이기주의는 자기 창조의 단계이며,
강요된 덕은 쓸데 없는 것을 기른다.
작고 완전한 선함은 충만과 희망을 가르쳐 줄 것이며
세상은 웃을 근거가 있음을 알려줄 것이다.
웃는 자, 그는 가벼운 발을 가지고 도약할 수 있는 자이다.
(본문 중)
공포를 알면서도 공포를 굴복시키는 자가 대담한 것이다.
심연을 보고서 긍지를 잃지 않는 자가 대담한 것이다.
(14) 우수의 노래
짜라투스트라가 그의 동물, 독수리와 뱀과 함께 동굴을 빠져나가자
늙은 마술사가 하프를 들고 짜라투스트라는 신과 인간의 본성을
모독하는 광대이자 시인이라고 욕한다.
(15) 과학에 대하여
양심이 바른 자는 마술사의 말을 저지하고,
마술사가 퍼뜨린 불확실성이라는 공포의 악령이 과학을 만들어 냈다고
말한다. 때마침 동굴로 들어온 짜라투스트라는 이 말을 부정하고,
인간은 공포를 넘어선 존재하고 하였다.
다시 우수와 중압의 정신이 사라지자, 짜라투스트라는 모두와 악수를
한다. 악의와 사랑을 듬뿍 담고서.
(16) 사막의 딸들 가운데서
짜라투스트라가 다시 동굴 밖으로 나가려 하자 방랑자인 그림자가 그를
잡는다. 그림자는 마법사의 하프를 켜면서 사막의 태양과 정열과
위엄에 대해서 노래한다.
(17) 각성
그림자의 노래로 동굴 안은 다시 기쁨과 웃음으로 넘쳐난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들은 경건해지며 가장 추악한 인간이
당나귀를 향해 찬양의 기도를 올린다.
(18) 당나귀의 축제
짜라투스트라는 그들을 보고 어린이 같은 장난꾸러기라고 야유하며
그의 동굴에서 나갈 것을 부탁한다.
(19) 명정가(酩酊歌)
일동은 숲속에서 대지가 주는 충만감으로 행복과 삶의 희열을 느끼고
그것이 짜라투스트라 덕택임을 안 순간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입맞추고 울거나 웃는다.
이에 짜라투스트라는 대지와 순수한 영혼, 세상의 깊은 슬픔과
보다 더 깊은 쾌락에 대해 노래를 부른다
(본문 중)
늙고 깊은 한밤은 꿈속에서 그 슬픔을 되새긴다.
더욱 그 이상으로 그 쾌락을 되새기고 있다.
아무리 슬픔이 깊다 해도 쾌락은 괴로움보다 더욱 깊기 때문이다.
(20) 징후
아침이 밝자 짜라투스트라는 비둘기 떼와 사자에 둘러싸여
고요의 경지에 노닌다.
동굴 안에 있는 인간들이 짜라투스트라에게 다가가려 하자
짜라투스트라의 곁에 있던 사자가 그들을 쫓아버리고,
그 때 짜라투스트라는 늙은 마술사가 지난 밤에 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고귀한 인간들의 비명은 최후의 유혹이자 시험이었음을.
그것은 짜라투스트라의 동정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짜라투스트라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아침해와 같은 모습으로 그의 동굴을 떠난다.
(본문 중)
나는 내 사업을 위해 나의 태양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