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六十七 仲尼弟子列傳第七
孔子曰「受業身通者七十有七人」,[一]皆異能之士也. 徳行:顔淵,閔子騫,冉伯牛,仲弓. 政事:冉有,季路. 言語:宰我,子貢. [二]文學:子遊,子夏. 師也辟,[三]參也魯,[四]柴也愚,[五]由也喭,[六]回也屢空. 賜不受命而貨殖焉,億則屢中. [七]
공자 왈 “학업에 힘써 육예에 통한 자가 77인이다”(*受業身通은 공자세가에 身通六藝라 설명되어 있음) 하였으니 모두 걸출한 재능이 있는 선비들이다. 덕행으로는 안연과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며, 정사를 다룸은 염유와 계로, 말을 잘 하는 이로는 재아와 자공이고 문학으로는 자유와 자하가 있다. 사(顓孫師 전손은 복성, 자는 子張)는 편벽되었으며, 삼(曾參)은 지둔遲鈍하고,시(高柴 字는 자고子羔)는 우직하며, 유(仲由, 字는 子路 혹은 季路)는 거칠다. 안회는 자주 곳간이 비었고, 사(端沐賜 단목사 자는 子貢)는 명을 받아 들였던 것은 아니지만 재화를 잘 늘리니 예상한 바가 자주 들어맞았다.
[一]索隠孔子家語亦有七十七人,唯文翁孔廟図作七十二人.
색은: 공자가어에 또한 77인으로 되어있으되 오직 문옹의 공묘도에 72인으로 되어 있다
[二]索隠論語一曰徳行,二曰言語,三曰政事,四曰文學. 今此文政事在言語上,是其記有異也.
색은: 논어에 첫째 덕행, 둘째 언어, 셋째 정사, 넷째 문학이라 하였는데 지금 여기 문장에서 정사를 언어의 위에 놓았으니 차이가 있다
[三]集解馬融曰:「子張才過人,失於邪辟文過.」正義音癖.
집해 마융 왈: 자장의 재주가 보통이 아니나 나쁜 버릇으로 문장이 어긋낫다
정의: 벽으로 읽는다
[四]集解孔安國曰:「魯,鈍也. 曾子遅鈍.」
집해 공안국 왈: 魯는 둔한 것이다 증자는 느리고 둔하다
[五]集解何晏曰:「愚直之愚.」
집해 하안 왈: 우직하단 뜻의 愚이다
[六]集解鄭玄曰:「子路之行,失於蹓喭.」索隠論語先言柴,次參,次師,次由. 今此傳序之亦與論語不同,不得輒言其誤也. 正義蹓音畔. 喭音岸.
집해 정현 왈: 자로의 행실은 거치른 정도에 머물렀다
색은: 논어에서는 먼저 시, 다음에 삼, 다음에 사, 다음에 유를 언급했다 지금 이 글의 순서는 논어와 같지 않으니 그 착오를 바로 언급할 수 없다
정의: 蹓는 류로 읽고 喭은 안으로 읽는다
[七]集解何晏曰:「言回庶幾於聖道,雖數空匱而樂在其中. 賜不受教命,唯財貨是殖,億度是非. 蓋美回所以勵賜也. 一曰屢猶毎也,空猶虛中也. 以聖人之善道,教數子之庶幾,猶不至於知道者,各內有此害也. 其於庶幾毎能虛中者唯回,懐道深遠. 不虛心不能知道. 子貢無數子之病,然亦不知道者,雖不窮理而幸中,雖非天命而偶富,亦所以不虛心也.」
집해 하안 왈: 안회가 성인의 도에 거의 이르렀음을 말함이니 곡간이 자주 비었어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가졌던 것이다. 자공은 성인의 가르친 바 천명을 부여받지 않았으되 단지 재화를 잘 증식하고 옳고 그름을 추측하여 가려내었다. 안회를 찬미하여 자공을 권면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한편으로 屢는 매번이고 空은 속이 비었음이니 성인의 선한 도를 가르쳐 몇 명의 제자가 거의 이에 다가갔거늘 결국 도를 아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던 것은 각기 안으로 이런 해악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도에 이르렀으되 매번 안을 비워낼 수 있었던 이는 오직 안회였으니 품은 도가 심원하였다.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도를 끝내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자공이 저들 몇 명의 병통을 지니지 않았지만 또한 도를 끝내 알지 못하였던 것은 이치를 궁구하지 않고도 요행히 적중하였고 천명을 받아내지 못하면서도 부를 지니기까지는 하였으되 결국 마음을 비우지 못하였기 때문이리라
孔子之所嚴事:於周則老子;於衛,蘧伯玉;[一]於斉,晏平仲;[二]於楚,老萊子;[三]於鄭,子産;於魯,孟公綽. 數稱臧文仲、柳下恵、[四]銅鞮[五]伯華、介山子然,孔子皆後之,不並世. [六]
공자가 스승으로 받든 이는 周에서는 노자, 衛에서는 거백옥, 齊에서는 안평중, 楚에서는 노래자, 鄭에서는 자산, 魯에서는 맹공도 등이었다. 자주 장문중과 유하혜, 동제의 백화, 개산자연을 칭송하였지만 공자는 그들의 후세대이며 세대를 같이 하지 않았다.
[一]集解外寛而內直,自設於隠括之中,直己而不直人,汲汲於仁,以善自終,蓋蘧伯玉之行. 索隠按:大戴禮又云「外寛而內直,自娯於隠括之中,直己而不直人,汲汲於仁,以善存亡,蓋蘧伯玉之行也」.
집해: 밖으로는 관대하고 안으로는 곧았다 스스로를 굽은 것을 바로잡는 틀안에 두어 자신을 바로잡되 다른 이를 잡고자 하지 않았다 仁을 찾음에 부지런하였고 선함에 살다 죽었다 하는 것이 거백옥의 행실이었다
[二]集解君択臣而使之,臣択君而事之,有道順命,無道衡命,蓋晏平仲之行也. 索隠大戴記曰:「君択臣而使之,臣択君而事之,有道順命,無道衡命,蓋晏平仲之行也.」
집해:군주는 신하를 선택하여 그를 부리고 신하는 군주를 선택하여 그를 섬기며 도가 있으면 천명에 순종하고 도가 없으면 천명을 가늠질하였으니 대개 안평중의 행실이었다
색은: 대대기에 이르길 ‘군주는 신하를 선택하여 그를 부리고 신하는 군주를 선택하여 그를 섬기며 도가 있으면 천명에 순종하고 도가 없으면 천명을 가늠질하였으니 대개 안평중의 행실이었다’
[三]索隠大戴記又云:「徳恭而行信,終日言不在悔尤之內,貧而樂也,蓋老萊子之行也.」
색은: 대대기에 이르길 ‘덕으로서 공경하고 믿게끔 행동하며 종일토록 말을 하여도 후회되거나 허물됨이 없으며 가난하되 즐거워하니 대개 노래자의 행실이었다’
[四]集解孝恭慈仁,允徳図義,約貨去怨,蓋柳下恵之行. 索隠大戴記又云:「孝恭慈仁,允徳図義,約貨亡怨,蓋柳下恵之行也.」
집해:효성스럽고 공경하며 자애롭고 인자하여 진실로 덕을 지니고 의로움을 모색하며 재물을 간략히 하여 원망을 없앴으니 대개 유하혜의 행실이었다
[五]索隠地理志県名,屬上黨. 正義鞮,丁奚反. 按:銅鞮,潞州県.
색은지리지에: 현의 이름이다 상당에 속한다
정의: 鞮는 제로 읽는다
살피건데 :銅鞮는 潞州현이다.
[六]集解大戴禮曰:「孔子云『國家有道,其言足以興,國家無道,其黙足以容,蓋銅鞮伯華之所行. 観於四方,不忘其親,苟思其親,不盡其樂,蓋介山子然之行也』.」説苑曰:「孔子歎曰『銅鞮伯華無死,天下有定矣』.」晉太康地記云:「銅鞮,晉大夫羊舌赤之邑,世號赤曰銅鞮伯華.」索隠按:自臧文仲已下,孔子皆後之,不並代. 其所厳事,自老子及公綽已上,皆孔子同時人也. 按:戴徳撰禮,號曰大戴禮,合八十五篇,其四十七篇亡,見今存者有三十八篇. 今裴氏所引在衛將軍篇. 孔子稱祁奚対晉平公之辭,唯挙銅鞮、介山二人行耳. 家語又云:「不克不忌,不念舊怨,蓋伯夷、叔斉之行. 思天而敬人,服義而行信,蓋趙文子之行. 事君不愛其死,謀身不遺其友,蓋隨武子之行.」
집해 대대례(예기) 왈: 공자 왈 ‘국가에 도가 있으면 말을 내어 일으킬 만 하고, 국가에 도가 없으면 침묵함이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동제 백화의 행한 바이다. 사방을 둘러보아 그 어버이를 잊지 못하고, 그 어버이를 생각함이 지극하여 그 즐거움을 다하지 않음이 개산자연의 행한 바이다.’
설원에 이르길: 공자가 탄식하여 왈 ‘동제백화가 죽지 않았다면 천하가 안정되었을 것이다.’ 晉태강지기에 전하되: 동제는 晉 대부 양설적의 읍이니 세상에서 이 양설적을 일러 동제백화라 하였다.
색은: 장문중 이하는 공자가 후세대 이니 세대를 같이 하지 않았다. 그가 스승으로 받든 이는 노자에서 맹공도까지 이며 모두 공자와 동시대 사람이다
살피건데: 대덕찬례 즉 대대례는 모두 85편으로 그중 47편이 망실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이 38편이다 지금 배씨가 인용한 부분은 衛장군 편에 있다 공자는 기혜가 晉평공에 한 말에서 동제와 개산 2인의 행실을 들어 칭송하고 있다
공자가어에 또한 전하길: 좋아하고 싫어함이 없이 옛적의 원한을 염두에 두지 않음은 백이와 숙제의 행실이다 하늘을 사모하고 사람을 공경하여 의에 복종하여 신의로 행동함은 조문자의 행실이요 군주를 섬김에 죽음을 아끼지 않고 자신을 위해 도모하면서도 벗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수무자의 행실이다
顔回者,魯人也,字子淵. 少孔子三十歳. [一]
안회는 노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연이다 공자보다 삼십세 어리다.
[一]正義少,戍妙反.
정의: 少는 소로 읽는다
顔淵問仁,孔子曰:「克己複禮,天下帰仁焉.」[一]
안연이 인을 묻자 공자 왈 극기복례 하면 천하가 인에 귀의하니라
[一]集解馬融曰:「克己,約身也.」孔安國曰:「複,反也. 身能反禮,則為仁矣.」
집해 마융 왈: 극기는 몸을 단속하는 것이다
공안국 왈: 復은 되돌아감이니 몸이 예로 돌아갈 수 있으면 仁을 행하는 것이다
孔子曰:「賢哉回也![一]一簞食,一瓢飲,[二]在陋巷,人不堪其憂,回也不改其樂.」[三]「回也如愚;[四]退而省其私,亦足以発,回也不愚.」[五]「用之則行,捨之則蔵,唯我與爾有是夫!」[六]
공자 왈 “어질다 안회여 도시락 밥과 표주박 물로 궁핍한 살림에 사람이 그 근심을 감당하지 못하거늘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구나.” “안회는 어리석은 듯 보이는데 물러나면 사사로움을 반성하고 또한 족이 펼쳐내니 안회는 어리석지 않도다” “쓰일 만 하면 행하고 버려지면 감춤은 나와 너 둘 만이 할수 있더라”.
[一]集解衛瓘曰:「非大賢樂道,不能若此,故以稱之.」索隠衛瓘字伯玉,晉太保,亦注論語,故裴引之.
집해 위관 왈: 도를 즐길 줄 아는 대현이 아니라면 이와 같이 할 수 없기에 이를 칭찬한 것이다
색은: 위관의 자는 백옥이며 晉 태보이다 논어를 주석했으며 이로 해서 배씨가 이를 인용하였다
[二]集解孔安國曰:「簞,笥也.」
집해 공안국 왈: 「簞은 대밥그릇을 말한다」
[三]集解孔安國曰:「顔回樂道,雖簞食在陋巷,不改其所樂也.」
집해 공안국 왈: 안회가 도를 즐겨 가난한 속에서 밥 한 그릇으로도 그 즐거움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四]集解孔安國曰:「於孔子之言,黙而識之,如愚也.」
집해 공안국 왈: 공자의 말에 묵묵히 이를 알아들으니 마치 어리석은 듯 한 것이다
[五]集解孔安國曰:「察其退還與二三子説釈道義,発明大體,知其不愚.」
집해 공안국 왈: 그가 물러났을 때 두세 명과 어울려 도의 뜻을 풀어 말하는 것을 살펴보면 큰 체를 밝게 풀어내니 그가 어리석지 않음을 알겠더라
[六]集解孔安國曰:「言可行則行,可止則止,唯我與顔回同也.」欒肇曰:「用己而後行,不仮隠以自高,不屈道以要名,時人無知其実者,唯我與爾有是行.」正義肇字永初,高平人,晉尚書郎,作論語疑釈十巻,論語駮二巻.
집해 공안국 왈: 행할 만 하면 하고, 그칠 만 하면 그침을 오직 나와 안회가 같이 함을 말한 것이다.
란조 왈: 스스로 등용이 되고 나서야 행하되 거짓으로 은거하여 스스로 높임이 없으며, 도를 굽히어 이름을 얻고자 함이 없으니 세상 사람들은 그 실질된 바를 모르되 오직 나와 더불어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도다.
정의: 란조는 자가 영초이며 고평 사람이다 晉 상서랑으로 논어의석 10권과 논어교 2권을 저술하였다
回年二十九,髪盡白,蚤死. [一]孔子哭之慟,曰:「自吾有回,門人益親.」[二]魯哀公問:「弟子孰為好學?」孔子対曰:「有顔回者好學,不遷怒,不弐過. 不幸短命死矣,今也則亡[三].」
안회는 29세에 머리가 백발이 되어 요절하였다. 공자가 통곡하며 가로되 “내게 안회가 있으면서부터 제자들과 더욱 친하여졌다” 魯 애공이 묻기를 “제자중 누가 호학합니까”. 공자가 답하여 이르되 “안회가 호학하여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됨을 두 번하지 않았는데 불행히 단명하여 죽고 지금은 없습니다.”
[一]索隠按:家語亦云「年二十九而髪白,三十二而死」. 王粛云「此久遠之書,年數錯誤,未可詳也. 校其年,則顔回死時,孔子年六十一. 然則伯魚年五十先孔子卒時,孔子且七十也. 今此為顔回先伯魚死,而論語曰顔回死,顔路請子之車,孔子曰『鯉也死,有棺而無槨』,或為設事之辭」. 按:顔回死在伯魚之前,故以論語為設詞.
색은: 공자가어에 역시 이르길 ‘29세에 백발이 되어 32세에 죽었다’
왕숙 이르길: 이 오래된 기록은 년 수에 착오가 있되 자세히 살필 수 없다 그 연도를 비교하자면 안회가 죽을 때 공자는 61세이고 그런 즉 백어가 공자보다 먼저 죽을 때 50세였으니 공자는 70이 된다 이렇게 되면 안회가 백어 보다 먼저 죽은 것이 되는데 논어에서 이르길 안회가 죽고 그의 아비 안로가 공자의 수레를 청하게 되는데 공자 왈 ‘리가 죽었을 때 관은 있었고 곽이 없었다’ 하였는데 혹시 일을 가정한 말이 아니었을까 한다
살피건데: 안회는 백어에 앞서서 죽었던 것이니 논어의 말이 가정으로 한 말이 된다
[二]集解王粛曰:「顔回為孔子胥附之友,能使門人日親孔子.」
집해 왕숙 왈: 안회는 공자의 서부의 벗이었으니 문인들로 하여금 날로 공자와 친근하게 할 수 있었다
[三]集解何晏曰:「凡人任情,喜怒違理. 顔回任道,怒不過分. 遷者移也,怒當其理,不移易也. 不弐過者,有不善未嘗複行.」
집해 하안 왈: 범상한 사람이 인정에 따르면서 즐거워함과 노함이 도리에 벗어나게 되는데 안회는 도에 임하여 노함이 지나침이 없었다 遷은 옮기는 것이다 노함이 마땅히 도리에 따르되 화를 옮김을 쉽게 하지 않는 것이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았다 함은 선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다시 반복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 제자백가중에서 유가가 국가의 지도 이념으로 받아 들여진 것은 한 무제에 이르러서라 합니다 사마천 생전에 유가는 아직 확고한 지위에 있지 못하였으니 이렇게 보편적 레포트를 적어내고 있습니다 살아생전 괴력난신을 얘기하지 않고 생전의 일도 모르는데 죽은 다음의 일을 어찌 말하랴 하면서 평범한 인간을 자처했던 공자가 신격화 된 것은 후대의 일입니다 사마천의 글에서 공자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이 오히려 신선합니다
*** 자왈 하고 나오는 문장은 대개 한 문장도 함부로 해석을 금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후대의 주자를 비롯한 교조적 유교학자들의 입김이 세었던 것입니다 여기서는 되도록 자왈의 문장을 직역에 가깝게 옮기고 주석을 통해 전통적 해석을 살펴보았습니다
*** 종교의 종자는 으뜸이라는 뜻이니 가르침의 으뜸이 종교인데 일반적인 가르침은 배워야 하나 으뜸의 가르침은 받아들이는 것으로 됩니다 받아들이도록 가꾸어 전하는 것은 신격화된 썸바디가 아니고 신격화 과정에 참여하는 썸바디즈 입니다 모든 종교가 다 그렇지요 다만 처음부터 누군가는 자신이 "사람이 아니무니다" 하였고 누군가는 "사람이무니다" 하는 차이는 있었지요
閔損字子騫. [一]少孔子十五歳.
민손의 자는 자건이다 공자보다 15세 어리다
[一]集解鄭玄曰:「孔子弟子目錄雲魯人.」索隠家語亦云「魯人. 少孔子十五歳」.
집해 정현 왈: 공자 제자 목록에 노나라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색은: 공자가어에 이르길 노나라 사람이며 공자보다 15세 어리다
孔子曰:「孝哉閔子騫!人不閒於其父母昆弟之言.」[一]不仕大夫,不食汚君之祿. [二]「如有複我者,[三]必在汶上矣.」[四]
공자 왈 “민자건은 효성스럽구나 그 부모와 형제를 헐뜯는 말을 할 수 없도다.” 대부에도 나아가지 않고, 잘못된 군주의 녹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다시 자기를 불러들이면 반드시 달아나서 문수 위에 있겠다” 하였다
[一]集解陳群曰:「言子騫上事父母,下順兄弟,動靜盡善,故人不得有非閒之言.」
집해 진군 왈: 자건이 위로 부모를 받들고 아래로 형제에 순종함에서 행동거지가 모두 선하였기에 사람들이 비난하는 말을 할 수 없음을 말한다
[二]索隠論語季氏使閔子騫為費宰,子騫曰「善為我辭焉」,是不仕大夫,不食汚君之祿也.
색은: 논어에 계씨가 민자건을 비 지역의 재로 삼으려 하였는데 자건 왈 ‘나 스스로를 지키고자 사양하겠다’ 하였으니 이는 대부에 나서지 않고 탐욕스런 군주의 녹을 받지 않은 것이다
[三]集解孔安國曰:「複我者,重來召我.」
집해 공안국 왈: 「複我者란 거듭해서 나를 불러내는 것이다」
[四]集解孔安國曰:「去之汶水上,欲北如斉.」
집해 공안국 왈: 「달아나서 문수 위에 있겠다 함은 북쪽의 斉로 가겠다는 것이다」
冉耕字伯牛. [一]孔子以為有徳行.
염경은 자가 백우이다 공자는 그가 덕행이 있다 하였다
[一]集解鄭玄曰魯人. 索隠按:家語雲魯人.
집해 정현 왈: 노나라 사람이다
색은: 공자가어에 노나라 사람이라 하였다
伯牛有悪疾,孔子往問之,自牖執其手,[一]曰:「命也夫!斯人也而有斯疾,命也夫!」[二]
백우가 나쁜 병에 걸려 공자가 가서 문병하는데 창에서 그의 손을 잡고 가로되 “운명인가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운명인가”
[一]集解包氏曰:「牛有悪疾,不欲見人,孔子従牖執其手.」
집해 포씨 왈: 염백우가 나쁜 병에 걸려 사람을 보려하지 않았기에 공자가 창에서 그의 손을 잡았다
[二]集解包氏曰:「再言之者,痛之甚也.」
집해 포씨 왈: 두 번 말 한 것은 아픔이 심하였음이다
冉雍字仲弓. [一]
염옹의 자는 중궁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索隠家語云:「伯牛之宗族,少孔子二十九歳.」
집해 정현 왈: 노나라 사람이다
색은: 공자가어에 이르길 염백우의 일족으로 공자보다 29세 어리다
仲弓問政,孔子曰:「出門如見大賓,使民如承大祭. [一]在邦無怨,在家無怨.」[二]
중궁이 정치를 물으니 공자 왈 “문을 나서면 귀한 손님을 맞은 듯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큰 제사를 맞듯이 하고 나라에 있으면서 원망이 없게 하고 집에 있으면서 원망이 없게 하는 것이니라”
[一]集解孔安國曰:「莫尚乎敬.」
집해 공안국 왈: 공경함보다 숭상되는 것은 없다
[二]集解包氏曰:「在邦為諸侯,在家為卿大夫.」
집해 공안국 왈: 나라에 있어서는 제후가 됨이요 가문에 있어서는 경 대부가 됨이다
孔子以仲弓為有徳行,曰:「雍也可使南面.」[一]
공자가 중궁이 덕행이 있다 여기어 왈 “옹야는 남면할 수 있다”
[一]集解包氏曰:「可使南面,言任諸侯之治.」
집해 포씨 왈: 남면할 수 있다 함은 제후로서 다스림을 맡음을 이른다
仲弓父,賎人. 孔子曰:「犂牛之子騂且角,雖欲勿用,山川其舎諸?」[一]
중궁의 아비가 천한 사람이었는데 공자 왈 “얼룩소의 새끼가 붉은 빛이 나고 뿔이 곧다면 안쓰려 한다 해도 산천이 내버려 두겠는가?”
[一]集解何晏曰:「犂,雑文. 騂,赤色也,角者,角周正,中犠牲,雖欲以其所生犂而不用,山川寧肯舎之乎?言父雖不善,不害於子之美.」
집해 하안 왈: 犂(얼룩소 리)는 무늬가 섞인 것이고 騂(붉은 말 성)는 적색이다 뿔은 뿔 주위가 바름을 말한 것이니 희생으로 맞음을 말한다 비록 얼룩소에서 태어나 쓰지 않으려 해도 산천이 내버려 두겠는가 함은 그 아비가 비록 선하지 않다 해도 그 자식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음을 말한다
冉求字子有,[一]少孔子二十九歳. 為季氏宰.
염구는 자가 자유이며 공자보다 29세 어리며 계씨의 재가 되었다.
[一]集解鄭玄曰魯人.
집해 정현 왈: 노나라 사람이다
季康子問孔子曰:「冉求仁乎?」曰:「千室之邑,百乗之家,[一]求也可使治其賦. 仁則吾不知也.」[二]複問:「子路仁乎?」孔子対曰:「如求.」
계강자가 공자에게 묻기를 “염구는 어질다 하겠습니까” 공자 왈 “천 가구의 읍과 백승의 가문을 염구에 맡기어 그 병부를 다스리게 할 수 있습니다 仁한지에 대하여는 내가 알지 못합니다.” 계강자가 다시 묻기를 “자로는 어질다 하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염구와 같습니다”
[一]集解孔安國曰:「千室,卿大夫之邑. 卿大夫稱家. 諸侯千乗,大夫故曰百乗.」
집해 공안국 왈: 천 가구는 경 대부의 읍이니 경 대부를 일러 家라 한다 제후는 천승이니 대부는 고로 백승이라 한다
[二]集解孔安國曰:「賦,兵賦也. 仁道至大,不可全名也.」
집해 공안국 왈: 부는 병부다. 仁의 도는 지극히 커서 온전히 다 가질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용어의 정의는 간혹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에서 말하는 家에 대한 정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천자는 천하를 제후는 국가를 경 대부는 家를 관장하며 대략 천 가구를 이르고 있습니다 그 열배의 규모를 제후國으로 봅니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단계에도 같은 정의를 사용할 것입니다
求問曰:「聞斯行諸?」[一]子曰:「行之.」子路問:「聞斯行諸?」子曰:「有父兄在,如之何其聞斯行之!」[二]子華怪之,「敢問問同而答異?」孔子曰:「求也退,故進之. 由也兼人,故退之.」[三]
염구가 여쭙기를 “도를 들으면 바로 행할까요” 공자 왈 “행하거라”
자로가 여쭙기를 “도를 들으면 바로 행할까요”
공자 왈 “부형이 계시는데 어찌 듣는다고 바로 행하겠는가”
자화가 괴이쩍게 여기어 “감히 여쭙겠습니다. 질문은 같은데 답이 다릅니다”
공자왈 “염구는 물러나려 하니 부러 나서게 하였고 자유는 남보다 곱절로 나서니 부러 물러서게 하였느니라”
[一]集解包氏曰:「賑窮救乏之事也.」
집해 포씨 왈: 궁함을 구휼하고 궁핍함을 구원하는 일이다
[二]集解孔安國曰:「當白父兄,不可自専.」
집해 공안국 왈: 마땅히 부형에게 아뢰고 혼자서 독단해서는 안된다
[三]集解鄭玄曰:「言冉有性謙退,子路務在勝尚人,各因其人之失而正之.」
집해 정현 왈: 염유의 성정이 겸손하여 물러나려 하고 자로는 힘쓰는 바가 남에게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데 있다 하였으니 각기 그 사람의 잘못된 바에 의해 바로잡고자 함이다
仲由字子路,卞人也. [一]少孔子九歳.
중유는 자가 자로이며 변의 사람이다 공자보다 9세 어리다
[一]集解徐広曰:「屍子曰子路,卞之野人.」索隠家語一字季路,亦雲是卞人也.
집해 서광 왈: 시자 이르길 자로는 변의 촌사람이다
색은: 공자가어에 자를 계로라 한다 하였고 변의 사람이다 하였다
子路性鄙,好勇力,志伉直,冠雄雞,佩豭豚,[一]陵暴孔子. 孔子設禮稍誘子路,子路後儒服委質,[二]因門人請為弟子.
자로의 성격은 질박하여 용기와 힘쓰기를 좋아하였고 뜻이 곧고 굳세었으며 수탉으로 관을 하였고, 숫퇘지로 패를 삼아 공자에게 함부로 대하였다. 공자가 예를 베풀어 차츰 자로를 이끄니 자로는 후에 유가의 복식으로 위질하여 문인을 통해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一]集解冠以雄雞,佩以豭豚. 二物皆勇,子路好勇,故冠帯之.
집해: 수탉으로 관을 삼고 숫퇘지로 패를 삼음은 두 동물이 모두 용감하여 자로가 용기를 즐겨 부러 관을 쓰고 패로 찼던 것이다
[二]索隠按:服虔注左氏云「古者始仕,必先書其名於策,委死之質於君,然後為臣,示必死節於其君也」.
색은: 복건주좌씨에 이르길 옛적에 처음 관직에 나설 때 반드시 점대에 그 이름을 먼저 쓰고 죽음의 맹서(質)를 군주에게 委任하게 되고 이후에 신하가 됨이라 그 군주에게 절개를 지켜 죽을 것을 보이는 것이다
子路問政,孔子曰:「先之,勞之.」[一]請益. 曰:「無倦.」[二]
자로가 정치를 여쭈니 공자 왈 “백성에 앞서고 나서 백성을 부리면 된다” 더 말씀해 주십사 하니 공자 왈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
[一]集解孔安國曰:「先導之以徳,使民信之,然後勞之. 易曰『悅以使民,民忘其勞』.」
집해 공안국 왈: 백성들을 덕으로써 선도하여 백성이 믿게 하고나서 백성을 부리는 것이니 역에 이르길 ‘백성을 기쁘게 하면 백성은 그 노고를 잊는다’
[二]集解孔安國曰:「子路嫌其少,故請益. 曰『無倦』者,行此上事無倦則可.」
집해 공안국 왈: 자로는 그 말씀이 너무 적다 여겨서 더 말씀해 주십사 청한 것이고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 함은 위의 일을 행함에 게으름이 없으면 가하다 함이다
子路問:「君子尚勇乎?」孔子曰:「義之為上. 君子好勇而無義則亂,[一]小人好勇而無義則盜.」
자로가 여쭙기를 “군자도 용기를 숭상합니까” 공자 왈 “의를 위에 두느니, 군자가 용기를 좋아하면서 의가 없으면 어지러워지고, 소인이 용기를 좋아하고 의가 없으면 도적이 되니라”
[一]集解李充曰:「既稱君子,不職為亂階也. 若君親失道,國家昏亂,其於赴患致命而不知正顧義者,則亦陥乎為亂而受不義之責也.」索隠按:充字弘度,晉中書侍郎,亦作論語解.
집해 이충 왈: 이미 군자로 칭해지면 난을 일으킬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니 만약 군주가 스스로 도를 잃어 국가가 혼란하여 중한 상태가 되어 위태로워짐에 임하여 의를 올바로 볼줄 모른다면 또한 난을 저지르는 함정에 빠져 불의의 책임을 져야 할것이다
색은: 충의 자는 홍도이며 晉 중서시랑을 지냈고 논어해를 지었다
子路有聞,未之能行,唯恐有聞. [一]
자로는 배워 들었는데 아직 능히 행하지 못하면 오직 다른 것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一]集解孔安國曰:「前所聞未及行,故恐複有聞不得並行.」
집해 공안국 왈: 앞서 들은 바가 아직 능히 행함에 미치지 못하였기에 다시 다른 것을 들어서 병행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孔子曰:「片言可以折獄者,其由也與!」[一]「由也好勇過我,無所取材.」[二]「若由也,不得其死然.」[三]「衣敝縕袍[四]與衣狐貉者立而不恥者,其由也與!」「由也升堂矣,未入於室也.」[五]
공자 왈 “한쪽의 말만으로 송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은 유 일것이다”
“ 유는 용기를 좋아함이 나보다 더하지만 쓰일 데가 없구나”
“유로 말하자면 천수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낡은 솜옷을 입고서 여우 털이나 담비 가죽 옷을 입은 이와 마주하고 부끄럽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유 일것이다”
“유는 당에 올랐으되 방에 들어서진 못하였다”
[一]集解孔安國曰:「片猶偏也. 聴訟必須両辭以定是非,偏信一言折獄者,唯子路可也.」
집해 공안국 왈: 片은 치우침이니 송사에서 반드시 양측의 말을 들어 시비를 정하는데 한쪽의 말을 믿고 송사를 마치는 이는 오직 자로만이 그러할 것이다
[二]集解欒肇曰:「適用曰材,好勇過我用,故云『無所取』.」索隠按:肇字永初,晉尚書郎,作論語義也.
집해 난조 왈: 적절히 쓰임을 일러 材라 하는데 용기를 좋아함이 내가 쓰고자 함을 넘으니 그로해서 쓰일 바가 없다 한 것이다
색은: 난조의 자는 영초이고 晉 상서랑을 지냈다 논어의를 지었다
[三]集解孔安國曰:「不得以壽終也.」
집해 공안국 왈: 수명을 다하지 못함이다
[四]集解孔安國曰:「縕,枲著也.」
집해 공안국 왈: 「縕은 모시풀 옷을 입는 것이다」
[五]集解馬融曰:「升我堂矣,未入於室耳.」
집해 마융 왈: 나의 당에 올랐으되 室에 들어오지 못하엿다
季康子問:「仲由仁乎?」孔子曰:「千乗之國可使治其賦,不知其仁.」
子路喜従遊,遇長沮、桀溺、荷蓧丈人.
子路為季氏宰,季孫問曰:「子路可謂大臣與?」孔子曰:「可謂具臣矣.」[一]
계강자 묻기를 “중유는 어질다 하겠습니까”
공자 왈 “천승의 제후국에서 그 병부를 다스릴만 합니다만 그가 인한지는 알지 못합니다”
자로는 즐겨 공자를 모시고 주유하였는데 장저, 걸닉과 삼태기를 짊어진 장인등을 만나기도 하였다.
자로가 계씨의 재가 되니 계손이 묻되 “자로는 대신이라 할만 하겠습니까”
공자 왈 “가히 대신의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一]集解孔安國曰:「言備臣數而已.」
집해 공안국 왈: 신하의 수를 이미 갖추었음을 말한다
子路為蒲大夫,[一]辭孔子. 孔子曰:「蒲多壯士,又難治. 然吾語汝:恭以敬,可以執勇;[二]寛以正,可以比衆;[三]恭正以靜,可以報上.」
자로가 포의 대부가 되어 공자에게 인사를 고하니 공자 왈 “포에는 장사가 많으니 또한 다스리기 어려울 것이다 해서 너에게 내가 말하노니 삼가서 받들면 사나움을 다스릴 수 있으며, 올바름으로 관대하면 무리가 모일 것이다 고요함으로 올바름을 받들면 위로 보답할 수 있을 것이다”
[一]索隠蒲,衛邑,子路為之宰也.
색은: 포는 衛의 읍이다 자로는 그 곳의 재가 되어갔다
[二]集解言恭謹謙敬,勇猛不能害,故曰「執」也.
집해: 공손하고 근신하면서 겸손하게 공경하면 용맹한 자가 해할 수 없으니 고로 다스릴 수 있다 한 것이다
[三]集解音鼻. 言寛大清正,衆必帰近之.
집해: 비로 읽는다 관대하고 맑게 옳다면 백성이 반드시 근처에 모인다 하는 것이다
初,衛霊公有寵姫曰南子. 霊公太子蕢聵得過南子,懼誅出奔. 及霊公卒而夫人欲立公子郢. 郢不肯,曰:「亡人太子之子輒在.」於是衛立輒為君,是為出公. 出公立十二年,其父蕢聵居外,不得入. 子路為衛大夫孔悝之邑宰. [一]蕢聵乃與孔悝作亂,謀入孔悝家,遂與其徒襲攻出公. 出公奔魯,而蕢聵入立,是為荘公. 方孔悝作亂,[二]子路在外,聞之而馳往. 遇子羔出衛城門,謂子路曰:「出公去矣,而門已閉,子可還矣,毋空受其禍.」子路曰:「食其食者不避其難.」子羔卒去. 有使者入城,城門開,子路隨而入. 造蕢聵,蕢聵與孔悝登台. 子路曰:「君焉用孔悝?請得而殺之.」蕢聵弗聴. 於是子路欲燔台,蕢聵懼,乃下石乞、壷黶攻子路,撃斷子路之纓. 子路曰:「君子死而冠不免.」遂結纓而死.
애초 衛 영공의 총희 남자가 있었는데 영공의 태자 괴외가 남자에 화를 얻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달아났다. 영공이 죽고 부인이 공자 영을 보위에 올리고자 하였다. 영이 받아 들이지 않고 말하길 “도망친 태자의 아들 첩이 있습니다” 이에 衛나라는 첩을 군주로 세웠으니 이가 출공이다. 출공이 보위에 오른지 12년에 그 부친 괴외는 국외에 있었는데 들어오지 못하였다. 자로가 衛 대부 공리의 읍재가 되었다. 괴외가 공리와 더불어 난을 일으켜 공리의 집으로 몰래 들어와 그 무리들과 함께 출공을 습격하였다. 출공은 魯로 달아나고 괴외가 보위에 올랐으니 이가 장공이다. 바야흐로 공리가 난을 일으키고자 할 때 자로는 밖에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갔다. 자고가 衛의 성문을 나서면서 만나니 자로에게 일러 말하길 “출공이 이미 가고 문은 닫혔소 그대는 돌아가시어 괜한 화를 입지 마시오.” 자로 말하길 “그의 밥을 먹는 자는 그 난을 피하지 않는다오.” 자고는 마침내 떠나고 성에 들어가는 사자가 있어 성문이 열리니 자로는 따라서 들어갔다. 괴외에게 나아가니 괴외가 공리와 함께 대에 올랐다. 자로 가로되 “군께서는 어찌 용리를 등용하시오 그를 내주시면 죽이고자 합니다.” 괴외가 듣지 않으니 자로가 대를 불사르고자 하였다. 괴외가 두려워 석걸과 호염을 내려 보내 자로를 공격하게 하니 자로의 갓끈을 끊어 놓았다 자로가 “군자는 죽으면서도 관을 벗지 않는다” 하며 갓끈을 잇고 죽었다.
[一]索隠按:服虔云「為孔悝之邑宰」.
색은: 복건 이르길 ‘공리의 읍재가 되었다’
[二]索隠按:左傳蒯聵入孔悝家,悝母伯姫劫悝於廁,強與之盟而立蒯聵,非悝本心自作亂也.
색은: 좌전에 이르길 괴외가 공리의 집에 들어가니 공리의 어미 백희가 공리를 측간에서 겁박하여 강제로 그와 동맹하여 괴외를 즉위토록 하였으니 공리가 본심에서 스스로 난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孔子聞衛亂,曰:「嗟乎,由死矣!」已而果死. 故孔子曰:「自吾得由,悪言不聞於耳.」[一]是時子貢為魯使於斉. [二]
공자가 衛에서 난이 일어났다 듣고는 “아! 유가 죽겠구나” 하였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일찍이 공자가 가로되 “내가 유를 얻은 후로 나쁜 말이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때 자공이 魯의 사자가 되어 齊에 갔다
[一]集解王粛曰:「子路為孔子侍衛,故侮慢之人不敢有悪言,是以悪言不聞於孔子耳.」
집해 왕숙 왈: 자로가 공자의 시위를 맡고나서 거만한 이들이 감히 나쁜 말을 할 수 없어 이 때문에 나쁜 말이 공자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二]索隠按:左傳子貢為魯使斉在哀十五年,蓋此文誤也.
색은: 좌전에 자공이 魯의 사자로 齊에 간 것은 애공 15년이니 이 문장은 잘못된 듯 하다
*** 자로는 공자의 제자중 에서 가장 터프가이였던 모양입니다 기본적으로 무사 출신이었던 공자와 끈끈한 정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로가 죽고 나서 그 시신으로 젓을 담갔단 말을 듣고 평생 젓갈을 들지 않았다는 공자의 일화도 전해집니다
*** 공자가 자로를 평하여 당에 올랐으되 입실하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승당 하였으되 입실하지 못한다 함은 아직 반열에 오르지 못하였음을 말합니다 언제고 써먹을 수 있는 비유입니다
***석걸이란 인물이 여기서도 나옵니다 앞서서는 오자서 열전에 초 평왕의 손자인 백공 승의 부하로 나와 잡혀서 삶겨 죽임을 당하는 인물입니다 그 석걸이 여기서 나오는 석걸과 동일 인물인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석걸이란 인명이 당시 돌격행동대원의 일반적 인명이 아니었나 여겨집니다
宰予字子我. [一]利口辯辭. 既受業,問:「三年之喪不已久乎?君子三年不為禮,禮必壊;三年不為樂,樂必崩. 舊谷既沒,新谷既升,鑽燧改火,期可已矣.」[二]子曰:「於汝安乎?」曰:「安.」「汝安則為之. 君子居喪,食旨不甘,聞樂不樂,故弗為也.」[三]宰我出,子曰:「予之不仁也!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之懐. [四]夫三年之喪,天下之通義也.」[五]
재여는 자가 자아이다 말로써 논변하는데 예리하였다. 수업을 받고나서 여쭙기를 “삼년의 상은 너무 길지 않겠습니까. 군자가 삼년을 예를 행하지 않으면 예가 필히 붕괴합니다. 삼년을 음악을 하지 않으면 음악은 필히 붕괴합니다. 옛날 풍속이 이미 없어지고 새로운 풍속이 이미 올라왔거늘 나무를 바꾸어 가면서 불을 얻던 시절은 이미 지난 것 아니겠습니까”
공자 왈 “너는 그렇게 하는 것이 편안하겠느냐” 재여 답하되 “편합니다”
공자 왈 “네가 편하면 그리 하거라. 군자가 상에 임하여 먹어도 입에 달지 않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아니하여 하지 않음이니라”
재여가 나서니 공자 왈 “재여는 인하지 않도다. 자식이 태어나 삼년이 지난 후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니 저 삼년의 상은 천하의 통용되는 의리이거늘”
[一]集解鄭玄曰魯人. 索隠家語亦雲魯人.
집해 정현 왈: 노나라 사람이다
색은: 가어에 역시 노나라 사람이다 하였다
[二]集解馬融曰:「周書月令有更火之文. 春取楡柳之火,夏取棗杏之火,季夏取桑柘之火,秋取柞楢之火,冬取槐檀之火. 一年之中,鑽火各異木,故曰『改火』.」
집해 마융 왈: 周書월령에 불을 바꾸는 글이 있으니 봄에는 느릅나무나 버드나무에서 불을 얻고 여름에는 대추나무와 살구나무에서, 늦여름에는 뽕나무와 산뽕나무(柘산뽕나무 자)에서, 가을에는 조롱나무(柞조롱나무 작)와 졸참나무(楢졸참나무 유)에서, 겨울에는 회화나무(槐회화나무 괴)와 박달나무에서 불을 얻었다 일 년 동안 불을 지펴 얻어내는 나무가 각기 달랐으니 고로 『改火』라 한 것이다
[三]集解孔安國曰:「旨,美也. 責其無仁於親,故言『汝安則為之』.」
집해 공안국 왈: 旨는 美이니 어버이에게 仁함이 없음을 책한 것이다 고로 말하길 네가 편하다면 하거라 한 것이다
[四]集解馬融曰:「生未三歳,為父母所懐抱也.」
집해 마융 왈: 낳아서 삼년이 안되면 부모의 품에 있음을 말한다
[五]集解孔安國曰:「自天子達於庶人.」
집해 공안국 왈: 천자에서 서인에 이르기까지이다
宰予晝寢. 子曰:「朽木不可雕也,[一]糞土之牆不可圬也.」[二]
재여가 낮잠을 자니 공자 왈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똥 묻은 벽에는 흙손질할 수 없느니”
[一]集解包氏曰:「朽,腐也. 雕,雕琢刻畫.」
집해 포씨 왈: 「朽는 썩은 것이다 雕는 깍아서 그림을 그리는것이다」
[二]集解王粛曰:「圬,墁也 二者喩雖施功猶不成也 」
집해 왕숙 왈: 「圬(흙손 오)는 흙손이다(墁흙손 만) 두 가지는 공을 베풀어도 이룰 수 없음을 비유한다」
宰我問五帝之徳,子曰:「予非其人也.」[一]
재아가 오제의 덕을 여쭈니 공자왈 “너는 (그런 정도를 더불어 얘기할) 위인이 못되느니라”
[一]集解王粛曰:「言不足以明五帝之徳也.」
집해 왕숙 왈: 오제의 덕을 밝히기에 부족함을 말한다
宰我為臨菑大夫,[一]與田常作亂,以夷其族,孔子恥之[二].
재아가 임치의 대부가 되어 전상과 더불어 난을 일으켜 그 일족이 죽었는데 공자가 이를 수치스러워 하였다
[一]索隠按:謂仕斉. 斉都臨淄,故云「為臨淄大夫」也.
색은: 齊에서 벼슬한 것을 말한다 齊의 도읍이 임치였으며 그래서 임치의 대부를 하였다 한 것이다
[二]索隠按:左氏傳無宰我與田常作亂之文,然有闞止字子我,而因爭寵,遂為陳恆所殺. 恐字與宰予相渉,因誤雲然.
색은: 좌씨전에 재아와 전상이 난을 일으킨 글이 없으되 ‘감지의 자가 자아인데 총애를 다투다가 진항에게 죽임을 당했다‘ 하였으니 재여와 서로 글자가 연관되는 고로 잘못 언급된 듯 하다
*** 조금 불쾌한 기억이지만 고딩때 참 도덕군자 같던 선생님이 자그마한 감정의 골을 넘지 못하고 깡패 같이 돌변하던 모습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역린을 거슬렀다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저는 그릇이 고만해서 감당이 안되는 이였다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재여는 공자 문하에 있으면서 피곤하면 늘어져 잠을 자고 구질구질한 예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기존의 권위에 자유분방하게 내지르는 재여를 옹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최소한의 그러한 자세를 받아 주되 단호하게 싸가지가 안됨을 지적하는 공자의 모습이 훨씬 좋습니다 제가 보았던 고딩 선생님은 그저 흥분한 동네 깡패였을 뿐이었습니다
*** 유가의 가르침이 반드시 증자에게 보여지듯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니 어쩌구 하는 식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공자의 맥은 맹자를 통해 하나의 큰 유파를 이어가지만 한 갈래는 순자의 성악설로 냉정하게 펼쳐지고 그 수제자 한비자와 이사는 법가를 완성하여 중화의 통일제국을 이루는 지주가 됩니다 재여에 대한 다른 언급이 없어서 그에 대한 궁금증은 접습니다
端沐[一]賜,衛人,字子貢. 少孔子三十一歳.
단목사는 衛 사람이고 자는 자공이다 공자보다 31세 어리다
[一]索隠家語作「木」.
색은: 가어에 「木」으로 되어 있다
子貢利口巧辭,孔子常黜其辯. 問曰:「汝與回也孰愈?」[一]対曰:「賜也何敢望回!回也聞一以知十,賜也聞一以知二.」
자공은 말에 기교가 있고 예리하였으되 공자는 늘 그 말 잘함을 내쳤다.
공자 하문하시되 “너와 안회는 누가 낫다고 보느냐” 자공이 대답하되 “ 제가 어찌 안회만 하기를 바라겠습니까. 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입니다”
[一]集解孔安國曰:「愈猶勝也.」
집해 공안국 왈: 愈는 더 낫다는 것이다
子貢既已受業,問曰:「賜何人也?」孔子曰:「汝器也[一].」曰:「何器也?」曰:「瑚璉也.」[二]
자공이 수업을 마치고 여쭙기를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 왈 “너는 그릇이니라”
다시 여쭙기를 “무슨 그릇이옵니까”
공자 왈 “호련이니라”
[一]集解孔安國曰:「言汝器用之人.」
집해 공안국 왈: ‘너는 그릇의 쓸모가 있는 사람이다’ 하였음이다
[二]集解包氏曰:「瑚璉,黍稷器. 夏曰瑚,殷曰璉,周曰簠簋,宗廟之貴器.」
집해 포씨 왈: ‘호련은 기장과 피 등 곡식을 담는 그릇이니 夏에서는 호라 하였고 殷에서는 련이라 하였고 周에서는 보궤라 하였으니 종묘에서의 귀한 그릇을 말한다’
陳子禽問子貢曰:「仲尼焉學?」子貢曰:「文武之道未墜於地,在人,賢者識其大者,不賢者識其小者,莫不有文武之道. 夫子焉不學,[一]而亦何常師之有!」[二]又問曰:「孔子適是國必聞其政. 求之與?抑與之與?」[三]子貢曰:「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其諸異乎人之求之也.」[四]
진자금이 자공에게 묻기를 “중니는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자공 왈 “문왕과 무왕의 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에 있으니 어진 사람은 그 큰 것을 알고 있고, 어질지 못한 사람도 그의 자잘한 것을 알고 있어 문왕과 무왕의 도를 지니지 않음이 없어 부자께선 배우지 않음이 없으시되 또한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다 하겠습니까?”
다시 묻기를 “공자가 이 나라에 와서 반드시 그 정사를 듣는다 함은 구하여 듣게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주어져서 듣게 된 것입니까?” 자공 왈“부자께선 온화하고 선량하며 공손하고 검소하면서 겸양하시어 얻게 되심이니 부자께서 구하고자 하심은 다른 사람이 구하고자 하는 것과 다릅니다”
[一]集解孔安國曰:「文武之道未墜落於地,賢與不賢各有所識,夫子無所不従學.」
집해 공안국 왈: ‘문왕과 무왕의 도가 아직 땅에 떨어짐이 없어 어질고 어질지 않은 이가 각기 알고 있는 바를 부자께서 따라서 배우지 않음이 없다 함이다’
[二]集解孔安國曰:「無所不従學,故無常師.」
집해 공안국 왈: ‘따라서 배우지 않음이 없으니 고로 일정한 스승이 없음이라’
[三]集解鄭玄曰:「怪孔子所至之邦必與聞國政,求而得之邪?抑人君自願與之為治者?」
집해 정현 왈: ‘공자가 다다르는 국가에서 반드시 국정을 듣게 됨은 얻고자 해서 구해진 것인지 아니면 군주가 스스로 원하여 다스림을 위하여 공자에게 주었던 것인지 의심하였던 것이다’
[四]集解鄭玄曰:「言夫子行此五徳而得之,與人求之異,明人君自與之.」
집해 정현 왈: ‘부자가 이 다섯 가지 덕행을 행하여 얻게 된 것은 사람들이 구하고자 함과 다른 것이니 군주가 스스로 주었음을 밝힌 것이다’
***溫良恭儉讓을 온화하고 선량하며 공손하고 검소하면서 겸양한다로 옮겼습니다만 뜻 글자인 한자의 한 글자를 옮기면서 두 음절 이상의 의미를 갖는 우리말 단어로 옮기는 작업은 항상 불만족스럽습니다 온량공검양 의 다섯 가지 덕성은 유가에서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격체의 모습이려니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말로 옮겨 보니 소박한 샌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소박한 모습이 이상적인 모습이려니 싶기도 하고 좀 내 이해가 모자른가 우려스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子貢問曰:「富而無驕,貧而無諂,何如?」孔子曰:「可也;[一]不如貧而樂道,富而好禮.」[二]
자공이 여쭙되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면서 아첨하지 않으면 어떠합니까?”
공자 왈 “좋긴 하다만 가난하면서 도를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 예를 좋아함만 못하니라”
[一]集解孔安國曰:「未足多也.」
집해 공안국 왈: 충분하지 않다
[二]集解鄭玄曰:「樂謂志於道,不以貧為憂苦也.」
집해 정현 왈: 즐거워 한다는 것은 도에 뜻을 둔다는 것이고 가난함으로 해서 근심하여 고통스러워하지 않음이다
***처한 상황에서 부정적 태도는 만점을 받지 못한다는 뜻인가 봅니다 가난하되 아첨하는 태도를 부정하고, 부자이되 교만한 태도를 부정하는 그런 방어적 자세가 아니라 가난하여도 즐거움을 알고, 부자이면서 예에 얽매여 있는 정도를 뛰어넘는 모습을 취하란 말 같습니다 앞서서 자공이 저는 어떤 인물입니까 하고 여쭈니 공자께서 너는 귀한 그릇이다 하였고 여기서 자공이 슬쩍 자신을 빗대어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으면 되겟습니까 여쭈니 그런 틀에 박힌 모습이 결국 네가 그릇인 이유다 하고 못을 박습니다 군자불기라 하였으니 군자가 되려면 타고난 천성에 노력에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되는 모양입니다
田常欲作亂於斉,憚高、國、鮑、晏,故移其兵欲以伐魯. 孔子聞之,謂門弟子曰:「夫魯,墳墓所処,父母之國,國危如此,二三子何為莫出?」子路請出,孔子止之. 子張、子石[一]請行,孔子弗許. 子貢請行,孔子許之.
전상이 齊에서 난을 일으키고자 하였으되 단지 고, 국, 포, 안씨 등을 꺼려서 그 병력을 옮기어 魯나라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공자가 이를 듣고 문하의 제자에게 일러 가로되 “저 魯나라는 선조의 분묘가 있는 부모의 나라이거늘 나라의 위태로움이 이와 같으니 너희들이 어찌 나서지 않겠느냐?” 자로가 출전을 청하였는데 공자가 만류하였다. 자장과 자석이 가고자 청하니 공자가 허락하지 않았다. 자공이 가고자 청하니 공자가 이를 허락하였다.
[一]索隠公孫竜也.
색은: 공손룡이다
遂行,至斉,説田常曰:「君之伐魯過矣. 夫魯,難伐之國,其城薄以卑,其地狹以泄,[一]其君愚而不仁,大臣偽而無用,其士民又悪甲兵之事,此不可與戦. 君不如伐呉. 夫呉,城高以厚,地広以深,甲堅以新,士選以飽,重器精兵盡在其中,又使明大夫守之,此易伐也.」田常忿然作色曰:「子之所難,人之所易;子之所易,人之所難:而以教常,何也?」
마침내 나서서 齊에 이르니 전상에 유세하여 이르되 “군께서 魯를 공격함은 잘못되었습니다. 저 魯는 정벌하기 어려운 국가입니다 그 성곽은 얇고 낮으며 그 진지는 협소하고도 깊지 않습니다 그 군주는 어리석어 어질지 못하며 대신들은 위선적이고 쓸모가 없으며 백성들은 전쟁을 하고 싶어하지 않으니 이들과 더불어 전쟁을 할 수 없습니다. 군께서 吳나라를 정벌하는 것만 같지 않습니다 저 吳나라는 성은 높고 두터우며 진지는 넓고 깊습니다 무기는 견고하고 새것이며 병사들은 선발되어 배불리 먹었고 중무기와 정병이 모두 그들에게 있습니다 또한 밝은 대부들이 이를 지키고 있으니 이는 정벌하기 쉽습니다.”
전상이 의아해 하며 얼굴색을 붉히고 묻되 “그대가 어렵다 함은 사람들이 쉽다 함이오 그대가 쉽다 함은 사람들이 어렵다 하는 것이니 이렇게 말해서 나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무엇이오?”
子貢曰:「臣聞之,憂在內者攻彊,憂在外者攻弱. 今君憂在內. 吾聞君三封而三不成者,大臣有不聴者也. 今君破魯以広斉,戦勝以驕主,破國以尊臣,[二]而君之功不與焉,則交日疏於主. 是君上驕主心,下恣群臣,求以成大事,難矣. 夫上驕則恣,臣驕則爭,是君上與主有卻,下與大臣交爭也. 如此,則君之立於斉危矣. 故曰不如伐呉. 伐呉不勝,民人外死,大臣內空,是君上無彊臣之敵,下無民人之過,孤主制斉者唯君也.」田常曰:「善. 雖然,吾兵業已加魯矣,去而之呉,大臣疑我,柰何?」子貢曰:「君按兵無伐,臣請往使呉王,令之救魯而伐斉,君因以兵迎之.」田常許之,使子貢南見呉王.
자공 왈 “신이 듣건데 근심이 내부에 있는 자는 강한 것을 공격하고 근심이 외부에 있는 자는 약한 것을 공격한다 합니다. 이제 군의 근심은 안에 있습니다. 제가 듣건데 군께서는 세 번 봉하여져 세 번 이루어지지 못하였음은 말을 듣지 않는 대신이 있어서라 하였습니다. 이제 군께서 노를 쳐서 齊를 넓힘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주군을 교만하게 하고 나라를 쳐부수어 신하를 존귀하게 함이니 군의 공은 더불어 짐이 없고 날로 주군과 소원해지게 됩니다 이는 군께서 위로는 주군의 마음을 교만하게 하고 아래로는 여러 신하를 방자하게 하면서 대사를 이루게 하고자 함이니 어려운 것입니다. 대저 주상이 교만해지면 방자해지고 신하가 교만해지면 다투게 되니 이는 군께서 위로는 주군과 사이가 벌어지게 되고 아래로는 대신과 서로 다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즉 齊에서의 군의 입지는 위험해집니다 그런 이유로 吳를 공격함만 못하다 하는 것입니다. 吳를 공격하여 승리하지 못하면 백성은 밖에서 죽고 대신들은 안에서 비게 되니 이는 군께서 위로는 강한 신하를 적으로 하지 않고 아래로는 백성의 화근이 없음입니다. 齊를 홀로 주관할 이는 오직 군이 되는 겁니다.”
전상 왈 “ 좋습니다 과연 그렇긴 한데 우리의 병사는 이미 魯로 향하였는데 吳나라로 돌리면 대신들이 나를 의심할 것이니 어찌하겠소?”
자공 왈 “ 군께서는 병사들을 안무하되 공격하지 않으면 신이 吳왕에게 사자로 가기를 청하여 魯를 구하고 齊나라를 정벌하도록 하여 군께서 이로 해서 병사를 맞이하게 하고자 합니다” 전상이 이를 허락하여 자공을 보내어 吳왕을 알현케 하였다
[一]索隠按:越絶書其「泄」字作「淺」.
색은: 월절서에 「泄」가 「淺」으로 쓰여있다
[二]集解王粛曰:「鮑、晏等帥師,若破國則臣尊矣.」
집해 왕숙 왈: 「포, 안 등의 장수가 적국을 쳐부수면 존귀한 신하가 되는 것이다」
説曰:「臣聞之,王者不絶世,霸者無彊敵,千鈞之重加銖両而移. 今以萬乗之斉而私千乗之魯,與呉爭彊,竊為王危之. 且夫救魯,顕名也;伐斉,大利也. 以撫泗上諸侯,誅暴斉以服彊晉,利莫大焉. 名存亡魯,実困彊斉. 智者不疑也.」呉王曰:「善. 雖然,吾嘗與越戦,棲之會稽. 越王苦身養士,有報我心. 子待我伐越而聴子.」
유세하여 이르되 “ 신이 듣건데 왕자의 업을 이룬 자는 남의 나라의 제사를 끊지 않고, 패업을 이룬 자에게 강한 적수가 없다 합니다. 천균의 무게도 조금만 얹으면 저울추가 움직입니다. 이제 만승의 齊에 천승의 魯나라를 더하여 吳와 더불어 강함을 다툰다면 아마도 왕께 위험할 것입니다. 또한 魯를 구함은 이름을 드러냄이고 齊를 정벌함은 큰 이익입니다. 사수상의 제후를 위무하여 난폭한 齊를 벌하여 강한 晉을 정복하는 것은 막대한 이득입니다. 망해가는 魯를 존속시킨다는 명분과 강한 齊를 곤경케 하는 실질을 지혜가 있는 이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吳왕 왈 “좋습니다 그러하나 나는 이미 越나라와 전쟁을 하여 회계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越 왕은 몸을 고롭게 하고 병사를 길러 나에게 원수를 갚을 마음이 있습니다. 선생은 내가 越을 정벌하기를 기다려 주시면 선생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子貢曰:「越之勁不過魯,呉之彊不過斉,王置斉而伐越,則斉已平魯矣. 且王方以存亡継絶為名,夫伐小越而畏彊斉,非勇也. 夫勇者不避難,仁者不窮約,智者不失時,王者不絶世,以立其義. 今存越示諸侯以仁,救魯伐斉,威加晉國,諸侯必相率而朝呉,霸業成矣. 且王必悪越,[一]臣請東見越王,令出兵以従,此実空越,名従諸侯以伐也.」呉王大説,乃使子貢之越.
자공 왈 “ 越나라의 힘은 魯를 넘지 않고, 吳나라의 강함은 齊나라를 넘지 못하는데 왕께서 齊를 두고 越을 공격하시면 齊는 이제 魯를 평정할 것입니다. 또한 왕께서 장차 망해가는 魯를 존속시켜 제사가 끊어짐을 잇게 한다는 명분이 있는데, 작은 越을 공격하고 강한 齊를 두려워 함은 용기가 아니올습니다. 무릇 용자는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인자는 곤란함에 궁하지 않으며, 지자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왕업을 이룬 자는 남의 나라의 제사를 끊지 않음으로 그 의리를 세웁니다. 이제 越나라를 존속시켜 제후에게 인함을 보이고 魯를 구하고 齊를 정벌하여 晉국의 위세를 더하면 제후들이 반드시 서로 솔선하여 吳에 조공할 것이고 패업을 이루게 됩니다. 또한 왕께서 越을 꺼려 하신다면 신이 동으로 가서 越왕을 만나 병력을 내어 따르게 한다면 이는 실제로 越을 비우게 함이니 명분으로 제후를 따르게 하고 정벌함입니다”
오왕이 크게 기뻐하며 자공을 越에 가게 하였다
[一]索隠悪猶畏悪也.
색은: 惡은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越王除道郊迎,身禦至舎而問曰:「此蠻夷之國,大夫何以儼然辱而臨之?」子貢曰:「今者吾説呉王以救魯伐斉,其志欲之而畏越,曰『待我伐越乃可』. 如此,破越必矣. 且夫無報人之志而令人疑之,拙也;有報人之志,使人知之,殆也;事未発而先聞,危也. 三者挙事之大患.」句踐頓首再拝曰:「孤嘗不料力,乃與呉戦,困於會稽,痛入於骨髄,日夜焦脣乾舌,徒欲與呉王接踵而死,孤之願也.」
越왕이 길을 쓸고 교외에서 맞이하며 몸소 숙소에 안내하고 묻기를 “이 오랑캐 땅에 대부께서 어찌 욕됨을 무릅쓰고 오시었습니까?”
자공 왈 “이제 저는 吳나라 왕에게 魯를 구하고 齊를 정벌하라 유세하였으나 그 속내는 가고자 해도 越을 두려워하여 답하기를 내가 越을 정벌하고 나서 가하오 하더이다. 그러면 越을 공격함은 당연합니다. 또한 대저 남에게 복수할 생각이 없으면서 의심케 함은 치졸함이고, 남에게 복수하려는 뜻이 있되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면 위태롭고, 일이 시작도 되기 전에 먼저 알려지면 위험합니다. 이 세 가지는 거사함의 큰 우환입니다”
越왕 구천이 머리를 조아리고 재배하여 이르되 “제가 일찍이 힘을 재보지 않고 吳나라와 전쟁하여 회계에서 곤경에 처하니 아픔이 골수에 들어와 있고 밤낮으로 입이 타고 혀가 마릅니다 단지 오왕과 더불어 나란히 죽고자 함이 저의 원하는 바입니다”
遂問子貢. 子貢曰:「呉王為人猛暴,群臣不堪;國家敝以數戦,士卒弗忍;百姓怨上,大臣內変;子胥以諫死,[一]太宰嚭用事,順君之過以安其私:是殘國之治也. 今王誠発士卒佐之徼[二]其志,[三]重寶以説其心,卑辭以尊其禮,其伐斉必也. 彼戦不勝,王之福矣. 戦勝,必以兵臨晉,臣請北見晉君,令共攻之,弱呉必矣. 其鋭兵盡於斉,重甲困於晉,而王制其敝,此滅呉必矣.」越王大説,許諾. 送子貢金百鎰,剣一,良矛二. 子貢不受,遂行.
드디어 자공에 물어보니 자공 왈 “오왕의 위인됨이 사나워서 여러 신하들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국가는 피폐하도록 잦은 전쟁이 있어 사졸이 참아내지 못하고 백성은 위로 원망하고 대신은 안으로 변하고 오자서가 간하다 죽으니 태재 백비가 전권을 행사하되 군주의 잘못에 맹종하여 그 사사로움을 안정시킴은 망해가는 국가의 정치입니다. 이제 왕께서 정성되이 뜻을 보여 병사를 보내어 그를 돕게 하며 그 뜻을 살피게 하고 보화를 넉넉히 하여 그 마음을 기쁘게 하고, 겸손한 말로 그 예를 갖추어 존숭하면 그는 반드시 齊를 공격합니다. 그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왕의 복이 되고 전쟁에서 이기면 반드시 병력을 晉에 두게 됩니다 신이 북으로 晉의 군주를 알현하고 함께 吳를 공격하게 하면 약해진 吳를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강한 병사는 齊에서 다 소진하고, 다시 군사가 晉에서 곤경에 처하면서 왕이 그 피폐함을 제압한다면 이제 吳를 멸함은 당연합니다.”
越왕이 크게 기뻐하며 허락하고 자공에게 금 백일과 검 하나, 훌륭한 창 2개를 보냈으나 자공이 받지 아니하고 드디어 떠났다.
[一]索隠王劭按:家語、越絶並無此五字. 是時子胥未死.
색은 왕소: 가어와 월절에 모두 이 다섯 글자가 없으며 이때 오자서는 아직 죽지 않았다
[二]集解結尭反.
집해: 요로 읽는다
[三]集解王粛曰:「激射其志.」
집해 왕숙 왈: 그 뜻을 따라주는 것이다
報呉王曰:「臣敬以大王之言告越王,越王大恐,曰:『孤不幸,少失先人,內不自量,抵罪於呉,軍敗身辱,棲於會稽,國為虛莽,[一]頼大王之賜,使得奉俎豆而修祭祀,死不敢忘,何謀之敢慮!』」後五日,越使大夫種頓首言於呉王曰:「東海役臣孤句踐使者臣種,敢修下吏問於左右. 今竊聞大王將興大義,誅彊救弱,困暴斉而撫周室,請悉起境內士卒三千人,孤請自被堅執鋭,以先受矢石. 因越賎臣種奉先人蔵器,甲二十領,鈇屈盧之矛,[二]歩光之剣,以賀軍吏.」
呉王大説,以告子貢曰:「越王欲身従寡人伐斉,可乎?」子貢曰:「不可. 夫空人之國,悉人之衆,又従其君,不義. 君受其幣,許其師,而辭其君.」呉王許諾,乃謝越王. 於是呉王乃遂発九郡兵伐斉.
吳왕에 보고하여 이르되 “신이 삼가 대왕의 말씀을 越왕에 고하니 越왕이 크게 두려워하여 이르되 ‘제가 불행히 소년시절에 부친을 여의고 속으로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감히 吳를 범하는 죄를 저질러 군사는 패하고 몸은 욕되어 회계에 거처하니 나라는 빈껍데기가 되었는데 대왕의 하사하심을 받들어 조두 그릇을 받들어 제사를 모실 수만 있게 된다면 죽어도 은혜를 잊지 못할 터이니 감히 무슨 딴 생각을 하리오’ 하더이다”
5일이 지나서 越은 대부 종으로 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吳왕에 아뢰길 “동해에 부역하는 신하 저 구천은 신하 종으로 하여 감히 하급 관리의 직을 맡아 좌우에 여쭙게 하나이다 이제 대왕의 대의를 가만히 듣자니 강적을 주살하여 약자를 구함이니 포악한 齊를 곤경하게 하여 周의 황실를 위무함이라 청컨대 국경의 사졸 삼천명을 모두 일으켜 제가 스스로 창을 잡고 활과 돌을 앞서 맞고자 합니다. 越의 신하 종으로 하여 제 부친의 비장한 무기인 갑옷 스무벌과 도끼와 굴려의 창, 보광의 검으로 군사를 경하하고자 합니다”
오왕이 크게 기뻐하며 자공에 일러 가로되 “越왕이 몸소 과인의 齊나라 정벌에 따르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자공 왈 “ 불가합니다 남의 국가를 비우면서 백성을 모두 거두고 또한 그 군주마저 따르게 함은 불의라 하겠습니다. 군께서는 그 폐백을 받고 그 군사만을 허락하고 그 군주는 사절하십시오”
吳왕이 허락하여 越왕을 사절하였고 吳왕은 이에 드디어 아홉 군의 병사들을 거두어 齊를 공격하였다
[一]集解虛音墟. 莽,莫朗反. 索隠有本作「棘」,恐誤也.
집해: 虛는 허로 읽는다 莽은 망으로 읽는다
색은: 「棘」로 쓰인 본이 있는데 잘못인듯 하다
[二]索隠鈇音膚,斧也. 劉氏雲一本無此字. 屈盧,矛名.
색은: 鈇는 부로 읽으며 도끼이다 유씨 이르길 어떤 본에는 이 글자가 없다 굴로는 창의 이름이다
子貢因去之晉,謂晉君曰:「臣聞之,慮不先定不可以應卒[一],兵不先辨不可以勝敵. 今夫斉與呉將戦,彼戦而不勝,越亂之必矣;與斉戦而勝,必以其兵臨晉.」晉君大恐,曰:「為之柰何?」子貢曰:「修兵休卒以待之.」晉君許諾.
자공이 이에 晉에 가서 晉의 군주에 아뢰길 “신이 듣건데 사려함이 먼저 정해지지 않으면 급박한 일에 대응하지 못한다 하고 병사가 미리 준비되지 않으면 적에 맞서 이길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제 저 齊나라와 吳나라가 장차 전쟁을 함에 齊나라가가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越나라가 난을 일으킴은 필연입니다. 齊나라가 전쟁에 이기면 그 병사는 晉에 다가올것입니다” 晉의 군주가 크게 두려워 말하길 “ 어찌하리오” 자공 왈 “병사를 연마시키되 쉬게 하면서 대기시키십시오” 晉의 군주가 하락하였다
[一]索隠按:卒謂急卒也. 言計慮不先定,不可以應卒有非常之事.
색은: 卒은 급하게 됨을 말한다 고려하여 계획함이 미리 정해지지 않으면 비상 사태에 급히 대응할 수 없음을 말한다
子貢去而之魯. 呉王果與斉人戦於艾陵,[一]大破斉師,獲七將軍之兵而不帰,果以兵臨晉,與晉人相遇黃池[二]之上. 呉晉爭彊. 晉人撃之,大敗呉師. 越王聞之,渉江襲呉,去城七里而軍. 呉王聞之,去晉而帰,與越戦於五湖. 三戦不勝,城門不守,越遂囲王宮,殺夫差而戮其相. [三]破呉三年,東向而霸.
자공이 떠나 魯에 갔다. 吳 왕은 과연 齊의 병사와 애릉에서 전투를 벌여 齊의 군사를 크게 이겼고 일곱 장수의 병사를 포획하여 돌아가지 않고 결국 晉에 인접하여 있으니 晉의 군사와 황지에서 만나게 되었다. 吳와 晉은 강하게 부딪히고 晉은 吳를 대패시켰다. 越 왕이 이를 듣고 강을 건너 吳를 습격하여 성에서 7리 거리에 주둔하였다. 吳왕이 이를 듣고 晉을 떠나 돌아와 越과 더불어 오호에서 전투를 벌였다. 세 번 싸워 이기지 못하고 성문을 지키지 못하자 越은 드디어 왕궁을 에워싸고 吳왕 부차를 죽이고 그의 재상들을 죽였다
吳를 격파한지 삼년에 동으로 향하여 패자가 되었다
[一]索隠按:左傳在哀十一年.
색은: 좌전 애공 11년이다
[二]索隠左傳黃池之會在哀十三年. 越入呉,呉與越平也.
색은: 좌전에 황지에서의 회합은 애공 13년이다 월이 오에 들어갔으니 오와 월은 평지이다
[三]索隠按:左傳越滅呉在哀二十二年,則事並懸隔數年. 蓋此文欲終説其事,故其辭相連.
색은: 좌전에 越이 吳를 멸한 것이 애공 22년이다 즉 사건이 현격하게 수년에 걸쳐지고 있다 아마도 이 문장에서는 그 일을 마저 설명하느라 그 말이 서로 이어진 듯 하다
故子貢一出,存魯,亂斉,破呉,彊晉而霸越. 子貢一使,使勢相破,十年之中,五國各有変. [一]
고로 자공은 한번 나서서 魯를 존속케 하고 齊를 어지럽혔으며 吳를 격파하고 晉를 강하게 하고 越을 패자로 만들었다. 자공이 한번 나섬에 세력이 서로를 깨트리게 하니 10년 내에 다섯 나라 변화가 있었다
[一]索隠按:左傳謂魯、斉、晉、呉、越也,故云「子貢出,存魯,亂斉,破呉,彊晉而霸越」.
색은: 좌전에 魯、斉、晉、呉、越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자공이 나서서 魯를 존속케 하고 齊를 어지럽혔으며 吳를 격파하고 晉를 강하게 하고 越을 패자로 만들었다 하는 것이다」
子貢好廃挙,與時転貨貲. [一]喜揚人之美,不能匿人之過. 常相魯衛,家累千金,卒終於斉.
자공은 물자를 거두었다가 시세에 따라 자산으로 만들기를 잘하였다. 남의 장점을 드러냄을 즐겨하였으되 남의 단점을 숨겨주지 못하였다. 魯와 衛에서 재상으로 있으면서 집의 재산이 천금에 이르렀는데 齊나라에서 임종하였다.
[一]集解廃挙謂停貯也. 與時謂逐時也. 夫物賎則買而停貯,値貴即逐時転易,貨売取資利也. 索隠按:家語「貨」作「化」. 王粛云:「廃挙謂買賎売貴也,転化謂隨時転貨以殖其資也.」劉氏云:「廃謂物貴而売之,挙謂物賎而収買之,転貨謂転貴収賎也.」
집해: 廃挙는 머물러 쌓아둠이라 했으니 與時는 시세를 좆음이라 대개 물건의 가격이 쌀 때 사다가 쌓아두고 가격이 등귀하면 시세에 좆아 바꾸는 것이다. 貨売는 돈의 이득을 취함이다
색은: 가어에 貨는 化로 쓰여 있다
왕숙 이르길 :廃擧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転化는 때에 따라서 재화를 운용하여 그 돈을 늘리는 것이다
유씨 이르길: 廢는 물건이 귀할 때 팔고 擧는 물건이 쌀 때 사는 것이다 転貨는 싸게 사들여 귀하게 운용하는 것이다
***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위정자는 사리사욕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백성은 무모하게 전쟁터에서 죽어갔던 모양입니다 공자는 자공의 언변이 뛰어남을 내쳤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쳤다는 것은 재주를 경계하고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재주가 필요한 상황에 접하니 오직 그의 재주만이 답을 갖고 있다 판단하고 보내고 있습니다 공자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言偃,呉人,[一]字子遊. 少孔子四十五歳.
언언은 오나라 사람이며 자는 자유이다 공자보다 45세 어리다
[一]索隠家語雲魯人. 按:偃仕魯為武城宰耳. 今呉郡有言偃塚,蓋呉郡人為是也.
색은: 가어에 노나라 사람이다 하였다
살피건데 : 언이 魯에서 벼슬하여 무성의 재가 되었다 지금 吳군에 언언의 무덤이 있으니 아마도 오군의 사람이라 한것이 맞는 듯 하다
子遊既已受業,為武城宰. [一]孔子過,聞弦歌之聲. 孔子莞爾而笑[二]曰:「割雞焉用牛刀?」[三]子遊曰:「昔者偃聞諸夫子曰,君子學道則愛人,小人學道則易使.」[四]孔子曰:「二三子,[五]偃之言是也. 前言戯之耳.」[六]孔子以為子遊習於文學.
자유가 학업을 마치고 무성의 재가 되었다. 공자가 지나치다 거문고 소리를 들었다. 공자가 미소를 지으며 왈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자유 아뢰길 “지난번에 제가 스승님께 듣기로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 하였습니다” 공자 왈 “제자들아 언의 말이 옳다. 좀전의 말은 농담이었다” 공자는 자유가 문학을 익혔다고 인정하였다
[一]正義括地志云:「在兗州,即南城也. 輿地志云南武城県,魯武城邑,子遊為宰者也,在泰山郡.」
정의 괄지지에 이르길: 연주에 있으며 즉 남성이다 여지지에 이르길 남무성현 노무성읍에서 자유가 재 벼슬을 하였다 하는데 태산군에 있다
[二]集解何晏曰:「莞爾,小笑貌.」
집해 하안 왈: 완이는 작게 웃는 모습이다
[三]集解孔安國曰:「言治小何須用大道.」
집해 공안국 왈: 작은 것을 다스리면서 어찌 큰 도를 사용하리오 하는 말이다
[四]集解孔安國曰:「道謂禮樂也. 樂以和人,人和則易使.」
집해 공안국 왈: ‘道는 예와 음악을 이름이니 음악으로 사람을 화기롭게 하여 사람이 화기로우면 부리기 쉽다’
[五]集解孔安國曰:「従行者.」
집해 공안국 왈: 따르던 이를 이른다
[六]集解孔安國曰:「戯以治小而用大.」
집해 공안국 왈: ‘작은 것을 다스리려 큰 것을 썼음을 희롱한 것이다’
***무성이 아마도 조그마한 읍이었나 봅니다 공자의 자랑스런 제자인 자유가 작은 읍에서 여유롭게 거문고를 튕기며 예악을 실현하고 있으니 공자가 희롱삼아 너만한 인재가 촌구석에 묻혀 있으니 아깝구나 하였던 겁니다 제자가 정색하며 도를 배우고 익힘은 군자나 소인이나 모두 유용하다 하셨으니 제가 여기서 행하는 일 또한 그만한 가치가 있다 하겟습니다 하고 의견을 올립니다 공자께서 흔쾌히 잘못을 인정하고 또한 비유에 능하다 하여 글을 제대로 익혔다 칭찬하고 있는가 봅니다
蔔商[一]字子夏. 少孔子四十四歳.
복상은 자가 자하이다 공자보다 44세 어리다
[一]集解家語雲衛人. 鄭玄曰溫國蔔商. 索隠按:家語雲衛人,鄭玄雲溫國人,不同者,溫國今河內溫県,元屬衛故.
집해: 가어에 衛나라 사람이다 하였는데 정현 왈 溫나라 사람 복상이라 하였다
색은: 가어에 衛나라 사람이다 하였는데 정현 왈 溫나라 사람이라 하였는데 같지 않은 것은 溫국이 지금의 하내 온현으로 원래 衛에 속하였던 탓이다
子夏問:「『巧笑倩兮,美目盼兮,素以為絢兮』,何謂也?」[一]子曰:「絵事後素.」[二]曰:「禮後乎?」[三]孔子曰:「商始可與言詩已矣.」[四]
자하가 여쭙기를 “교태로운 미소 어여쁘다. 고운 눈이 어여쁘다. 흰 바탕에 채색 무늬를 한다네 하였거늘 무엇을 말하는지요?” 공자 왈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이 하얗게 한 뒤의 일이로다” 자하 왈“예를 갖춘 다음이라 하오이까” 공자 왈 “상이 비로소 더불어 시를 논할 만 하도다”
[一]集解馬融曰:「倩,笑貌. 盼,動目貌. 絢,文貌. 此上二句在衛風碩人之二章,其下一句逸詩.」
집해 마융 왈: 倩은 웃는 모습이다 盼은 눈을 움직이는 모습이다 絢은 무늬의 모습이다. 상 2구는 시경 위풍 석인의 2장에 있고 그 아래는 빠진 시에 있다
[二]集解鄭玄曰:「絵,畫文也. 凡晝絵先布衆色,然後以素分布其閒以成其文,喩美女雖有倩盼美質,亦須禮以成也.」
집해 정현 왈:絵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니 무릇 회화에서 먼저 여러 가지 색을 칠하고 이후에 하얀색을 그 사이에 번지게 하여 그 무늬를 완성하나니 비유컨대 미녀가 비록 아름다운 눈빛과 자질을 가졌어도 역시 예를 갖춘 뒤에 완성됨이다
[三]集解何晏曰:「孔言繪事後素,子夏聞而解知以素喩禮,故曰『禮後乎』.」
집해 하안 왈: ‘공자가 회사후소를 말하고 자하가 素를 예에 비유하여 이해하여 알아듣게 되어 예가 행해진 후입니까 한 것이다’
[四]集解包氏曰:「能発明我意,可與言詩矣.」
집해 포씨 왈: ‘능히 나의 뜻을 펼쳐 밝힐 수 있으니 가히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다 ’
子貢問:「師與商孰賢?」子曰:「師也過,商也不及.」[一]「然則師愈與?」曰:「過猶不及.」
자공이 여쭙기를 “사(顓孫師 자는 子張)와 상(蔔商 자 子夏)은 누가 더 어질다 하겠습니까” 공자 왈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사가 낫다 하겠습니까?”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라”
[一]集解孔安國曰:「言倶不得中.」
집해 공안국 왈: 모두다 가운데를 얻지 못하였다
子謂子夏曰:「汝為君子儒,無為小人儒.」[一]
공자가 자하에 이르길 “너는 군자로 유학자가 되고 소인배 유학자가 되지 말거라”
[一]集解何晏曰:「君子之儒將以明道,小人為儒則矜其名.」
집해 하안 왈: ‘군자가 유학자가 되면 장차 도를 밝히는 것이고 소인이 유학자가 되면 그 이름을 자랑한다’
***爲己之學을 하라 합니다 스스로의 출세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신의 수양을 쌓게 되는 공부를 하란 뜻입니다 처음부터 군자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소인이 되는 방향으로 공부하면 소인이 되고 군자가 되는 공부를 하면 군자가 되는 겁니다 지금 공자가 자하에게 군자가 될 생각으로 공부하여야지 소인이 되는 공부를 하려 하지 말라 당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좀더 자세한 언급이 있었겠습니다만 후세의 유학자는 뜻풀이를 하안의 설명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孔子既沒,子夏居西河[一]教授,為魏文侯師. [二]其子死,哭之失明.
공자가 돌아가시고 자하는 서하에 머물며 가르치며 魏 문후의 스승이 되었다 그 아들이 죽으매 곡하다 실명하였다
[一]索隠在河東郡之西界,蓋近竜門. 劉氏云:「今同州河西県有子夏石室學堂也.」正義西河郡,今汾州也. 爾雅云:「両河閒曰冀州.」禮記云:「自東河至於西河.」河東故號竜門河為西河,漢因為西河郡,汾州也,子夏所教処. 括地志云:「謁泉山一名隠泉山,在汾州隰城県北四十里. 注水経云『其山崖壁五,崖半有一石室,去地五十丈,頂上平地十許頃. 隨國集記云此為子夏石室,退老西河居此』. 有蔔商神祠,今見在.」
색은: 하동군의 서쪽 경계에 있으며 용문 근처이다
유씨 이르길 : 지금의 동주 하서현에 자하석실 학당이 있다
정의: 서하군은 지금의 분주이다
이아에 이르길 : 양쪽 동하와 서하의 사이를 일러 기주라 한다
예기에 이르길: 동하에서 서하에 이르는 곳이다 하동의 옛 이름이 용문하인데 서하가 되었고 漢대에 서하군 분주로 자하가 가르쳤던 곳이다
괄지지에 이르길 : 갈천산은 일명 은천산인데 분주 습성현 북서쪽 40리 지점이다
주수경에 이르길: 그 산에 절벽이 다섯 있고 절벽 한가운데 석실이 있어서 바닥에서 50장이 되고 정상에 평탄한 대지가 10여경이 된다 수국집기에 이르길 이곳이 자하석실이며 은퇴하여 늘그막에 서하의 이곳에 머물렀다 하였으며 복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어 지금 볼 수 있다
[二]索隠按:子夏文學著於四科,序詩,傳易. 又孔子以春秋屬商. 又傳禮,著在禮志. 而此史並不論,空記論語小事,亦其疏也. 正義文侯都安邑. 孔子卒後,子夏教於西河之上,文侯師事之,咨問國政焉.
색은: 자하는 공자의 문하들 중 네가지 과목 즉 덕행, 언어, 정사, 문학 중에서 문학과 서시, 전역에 뛰어났으며 또한 공자는 춘추를 자하에게 맡기었다 또한 전례를 지었음이 예지에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논의되지 않고 논어소사에 기록이 없으니 또한 소홀하였던 것이다
정의: 문후는 안읍에 도읍하였다 공자 사후 자하는 서하에서 가르쳤고 문후는 그를 스승으로 섬겼으며 국정을 그에게 자문하였다
顓孫師,陳人,[一]字子張. 少孔子四十八歳.
전손사는 陳 사람이며 자는 자장이다. 공자보다 48세 어리다
[一]索隠鄭玄目錄陽城人. 陽城,県名,屬陳郡.
색은: 정현목록에 양성 사람이라 하였고 양성은 현의 이름이며 진군에 속한다
子張問幹祿,[一]孔子曰:「多聞闕疑,慎言其餘,則寡尤;[二]多見闕殆,慎行其餘,則寡悔. [三]言寡尤,行寡悔,祿在其中矣.」[四]
자장이 녹봉을 받는 자리를 구하는 것에 대해 여쭈니 공자 왈“많은 것을 듣고 의심되는 것은 제외시켜 두어라 그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많이 살피되 위험한 것은 제외시켜 그 나머지 부분을 행함에도 조심스럽다면 후회가 없을 것이다. 말에 허물이 없고 행동에 후회가 없다면 녹은 그 안에 있게 될 것이다”
[一]集解鄭玄曰:「幹,求也. 祿,祿位也.」
집해 정현 왈: ‘幹은 구함이고 祿은 녹을 받는 직위이다’
[二]集解包氏曰:「尤,過也. 疑則闕之;其餘不疑,猶慎言之,則少過.」
집해 포씨 왈: ‘尤는 잘못됨이다. 의심스러우면 이를 제외시켜 두고 그 나머지 의심스럽지 않은 것들은 오히려 조심스럽게 이를 말한 즉 잘못이 적게 되는 것이다’
[三]集解包氏曰:「殆,危也. 所見危者,闕而不行,則少悔.」
집해 포씨 왈: ‘殆는 위험함이다 살펴서 위험한 것은 제외시켜 두어서 행하지 않은 즉 후회함이 적으리라’
[四]集解鄭玄曰:「言行如此,雖不得祿,得祿之道.」
집해 정현 왈:‘언행이 이와 같다면 비록 봉녹의 지위를 얻지 못하였어도 그 지위를 얻는 길을 얻은 것이다’
他日従在陳蔡閒,困,問行. 孔子曰:「言忠信,行篤敬,雖蠻貊之國行也;言不忠信,行不篤敬,雖州里行乎哉![一]立則見其參於前也,在輿則見其倚於衡,夫然後行.」[二]子張書諸紳 [三].
다른 날 陳과 蔡의 사이에서 공자를 따르던 중 행함의 도리를 여쭈니 공자 왈 “말이 충성스럽고 믿음이 있으면서 행함이 독실하고 공경스러우면 오랑캐의 나라일지라도 행세를 할것이고, 말이 충신하지 않고 행함에 독실하고 공경이 없으면 나라 안에서도 행세할 수 있겠는가? 서있을 때는 앞에 가지런하게 그러함을 내 보이고, 수레에 앉은 즉 수레 멍에에 그러함이 자리한듯 내 보인 연후에 행세하느니라” 자장이 그의 띠에 적어 기록하였다
(***첫 문장에 보이는 困은 다른 글에서 보이지 않고 문장 상 의미가 불분명하여 해석하지 않았음)
[一]集解鄭玄曰:「二千五百家為州,五家為鄰,五鄰為里. 行乎哉,言不可行.」
집해 정현 왈: 이천오백 가구는 州가 되고 다섯 가구는 鄰이 되며 다섯 린이 里가 된다 행할 수 있겠느냐 한 것은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二]集解包氏曰:「衡,軶也. 言思念忠信,立則常想見,參然在前;在輿則若倚於車軶.」
집해 포씨 왈: 衡은 멍애를 이른다 충성스러움과 신의를 생각하여 서있을 때 항상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 가지런히 앞에 서고 수레에 앉은 즉 수레의 멍애에 기대어 있는 듯 함을 말한다
[三]集解孔安國曰:「紳,大帯也.」
집해 공안국 왈: 紳은 큰 허리띠이다
子張問:「士何如斯可謂之達矣?」孔子曰:「何哉,爾所謂達者?」子張対曰:「在國必聞,在家必聞.」[一]孔子曰:「是聞也,非達也. 夫達者,質直而好義,察言而観色,慮以下人,[二]在國及家必達. [三]夫聞也者,色取仁而行違,居之不疑,[四]在國及家必聞.」[五]
자장이 여쭈되 “선비가 어떠하면 가히 현달하였다 하오리까?” 공자 왈 “무엇이더냐 네가 말하는 현달함이란?” 자장이 답하여 아뢰되“나라에 있으면 반드시 소문이 나고 집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남 이옵니다” 공자 왈 “이는 소문이되 현달함이 아니구나. 대저 현달한 이는 자질이 곧고 의리를 즐기며 말을 살피고 색을 관찰하여 남의 아래에 있는 듯 사려하게 되니 나라와 집에 있음에 반드시 현달하다 함이오 대저 소문이 난 자는 어진 듯 색을 취하되 행동이 어긋나고 거처함에 스스로 의심하지 않으니 나라와 집에서 반드시 그러한 평을 들을 뿐이다”
[一]集解鄭玄曰:「言士之所在,皆能有名譽.」
집해 정현 왈: ‘선비가 거처하는 곳에서 모두 능히 명예를 가짐을 말한다’
[二]集解馬融曰:「常有謙退之志,察言語,観顔色,知其所欲,其念慮常欲下於人.」
집해 마융 왈: ‘늘 겸양하는 뜻을 갖고 말을 자세히 살피고 안색을 관찰하여 바라는 바를 알아내어 늘 다른 이의 아래에 처하고자 염려하는 것이다’
[三]集解馬融曰:「謙尊而光,卑而不可踰.」
짐해 마융 왈: ‘겸손하고 공경하되 빛이 나고 낮게 처신하되 감히 넘볼 수 없음이다’
[四]集解馬融曰:「此言佞人也. 佞人仮仁者之色,行之則違;安居其偽而不自疑.」
집해 마융 왈: ‘이는 간사한 이를 이름이니 간사한 이는 인자의 낯빛을 빌리되 행동이 어긋나고, 거짓됨에 편히 거처하되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다’
[五]集解馬融曰:「佞人黨多.」
집해 마융 왈: ‘간사한 이는 무리가 많다’
曾參,南武城人,[一]字子輿. 少孔子四十六歳.
증삼은 남쪽 무성 사람이다 자는 자여이다. 공자보다 46세 어리다
[一]索隠按:武城屬魯. 當時魯更有北武城,故言南也. 正義括地志云:「南武城在兗州,子遊為宰者. 地理志云定襄有武城,清河有武城,故此云南武城也.」
색은: 무성은 魯에 속한다 당시 魯에는 북무성이 또한 있었기에 남쪽을 말하였다.
정의 괄지지 이르길: 남무성은 연주에 있으며 자유가 그곳의 재가 되었다 지리지에 이르길 정양에 무성이 있으며 청하에 무성이 있어 이로 인해 남무성이라 불렀다
孔子以為能通孝道,[一]故授之業. 作孝経. 死於魯.
공자는 증삼이 능히 효의 도에 통달하였다 여겼다. 그리하여 그에게 업을 주어서 효경을 짓게 하였다 魯에서 임종하였다
[一]正義韓詩外傳云:「曾子曰:『吾嘗仕為吏,祿不過鍾釜,尚猶欣欣而喜者,非以為多也,樂道養親也. 親沒之後,吾嘗南遊於越,得尊官,堂高九仭,榱提三尺,轉轂百乗,然猶北向而泣者,非為賎也,悲不見吾親也.』」
정의: 한시외전에 전하길 ‘증자 가로되 내가 일찍이 관리가 되었는데 녹이 얼마되지 않았거늘 오히려 즐거이 임하였던 것은 많다 여겨서가 아니고 어버이를 봉양하는 길을 즐겼기 때문이다. 어버이가 돌아가시고 뒤에 나는 남으로 越 지역을 주유 하였는데 존귀한 관직을 얻게 되어 당의 높이가 아홉 길이나 되고 서까래 돌출부만 해도 3척에 수레가 백대이거늘 오히려 북향하여 울게 되는 것은 지위가 천해서가 아니고 내 어버이를 뵐 수 없기 때문이었다’
澹台滅明,[一]武城人,[二]字子羽. 少孔子三十九歳.
담대멸명은 무성 사람이다 자는 자우이다 공자보다 39세 어리다
[一]集解包氏曰:「澹台,姓;滅明,名.」正義括地志云:「延津在滑州霊昌県東七里. 注水経云:『黃河水至此為之延津. 昔澹台子羽齎千金之璧渡河,陽侯波起,両蛟夾舟. 子羽曰:「吾可以義求,不可以威劫.」操剣斬蛟. 蛟死,乃投璧於河,三投而輒躍出,乃毀璧而去,亦無怪意.』即此津也.」
집해 포씨 왈: ‘담재는 성이고 멸명은 이름이다’
정의 괄지지에 전하길: ‘연진은 활주 영창현 동쪽으로 7리 되는 곳에 있는데 주수경에 전하길 황하의 물이 이곳에 이르러 연진이 되는데 이전에 담대자우가 천금의 옥을 받들고 강을 건너는데 양후(*전설상의 파도의 신)가 파도를 일으키고 교룡 두 마리가 배를 에워쌌다. 자우가 이르길 ‘나를 의로써 죽게 할 수 있지만 위세에 겁먹게 할 수 없느니라’ 하며 검을 잡아 용을 베었다. 용이 죽자 옥을 강에 던졌는데 세 번을 던지는 대로 다시 뛰쳐 올라 이에 옥을 부수고 가니 괴이함이 없어졌다 하니 이 진을 이름이다’
[二]正義括地志云亦在兗州.
정의 괄지지 이르길:연주에 있다
狀貌甚悪. 欲事孔子,孔子以為材薄. 既已受業,退而修行,行不由徑,非公事不見卿大夫. [一]
외모가 심히 추하였다. 공자를 섬기고자 하는데 공자가 재질이 모자란다 여기었다. 업을 이미 수여받고 나서도 물러나서 수행을 하고 행함에 지름길을 거치지 않고, 공적인 일이 아니면 경과 대부를 보려하지 않았다
[一]集解包氏曰:「言其公且方.」
집해 포씨 왈: ‘ 그가 공정하고 반듯함을 말한다’
南遊至江,[一]従弟子三百人,設取予去就,名施乎諸侯. 孔子聞之,曰:「吾以言取人,失之宰予;以貌取人,失之子羽[二].」
남으로 주유하여 강에 이르렀는데 따르는 제자가 3백인이었는데 취하고 주고 물러나고 나아감을 설명하여 이름을 제후에게 알렸다. 공자가 이를 듣고 왈 “내가 말로 사람을 취하여 재여에서 실패하였고, 용모로 사람을 취하여 자우에서 실패하였다”
[一]索隠按:今呉國東南有澹台湖,即其遺跡所在.
색은: ‘지금 吳국의 동남지역에 담대호가 있으니 즉 그 유적이 있는 곳이다’
[二]索隠按:家語「子羽有君子之容,而行不勝其貌」. 而上文云「滅明狀貌甚悪」,則以子羽形陋也. 今此孔子云「以貌取人,失之子羽」,與家語正相反. 正義按:澹子羽墓在兗州鄒城県.
색은: 공자가어에 전하되 자우는 군자의 용모가 있되 행실이 그 용모를 따르지 못하였다 하는데 위의 글에 전하길 멸명의 외모가 심히 추하다 하였거늘 즉 자우의 외형이 누추하다 하였는데 지금 공자가 말한 외모로 사람을 취하여 자우에서 실패했다 함은 공자가어와 상반된다
정의: 담자우의 묘가 연주 추성현에 있다
***재여는 공자 제자 중에서 가장 비난 받는 인물입니다 종합하여 보면 말이 좋고 전통적 관습에 반항적이고 공손하지 않으면서 성공에 대한 욕심이 앞섰던가 봅니다 여기서 자우란 인물과 대조되는 것으로 보아서 인물도 좋았던 모양입니다 지금 세태에서 생각한다면 연예인 기질이 있었던 모양인데 시절도 맞지 않았고 함부로 게기기엔 공자란 인물이 너무 큰 산이었습니다 소도 비빌 언덕을 보고 덤빈다는데 말입니다
宓不斉字子賎. [一]少孔子三十歳. [二]
복부제의 자는 자천이다 공자보다 30세 어리다
[一]集解孔安國曰魯人. 正義顔氏家訓云:「兗州永昌郡城,舊単父県地也. 東門有子賎碑,漢世所立,乃雲済南伏生即子賎之後,是『虙』之與『伏』古來通,字誤為『宓』,較可明矣. 虙字従『虍』,音呼;宓従『■』. 音綿. 下倶為『必』,世傳寫誤也.」
집해 공안국 왈: 노나라 사람이다
정의 안씨가훈에 이르길: 연주 영창군성은 옛 단보현 땅이다 동쪽 문에 자천비가 있는데 漢대에 세워진 것으로 제남 복생이 자천의 후손이라 되어 있다 즉 虙』과 『伏』이 옛날에는 통하는 글자였는데 잘못 되어 『宓』으로 되었음이 비교하면 명확하다 虙 자는 『虍』에서 나왔는데 ,音呼;宓従『■』. 音綿.(**빠진 글자와 함께 의미가 불확실 하여 번역 생략함) 글자 아래에 모두 『必』부수를 넣었는데 세상에 전해지면서 잘못 쓰여진 것이다
[二]索隠家語云「魯人,字子賎,少孔子四十九歳」. 此云「三十」,不同.
색은 가어에 전하길: 노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천이다 공자보다 49세 어리다 하였으며 여기서 말한 30세와 차이가 난다
孔子謂「子賎君子哉!魯無君子,斯焉取斯?」[一]
공자 가로되 “자천은 군자로다.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어디에서 이것을 배워 취하였겟는가?”
[一]集解包氏曰:「如魯無君子,子賎安得此行而學?」
집해 포씨 왈: ‘만약 魯에 군자가 없었다면 자천이 어찌 이러한 행실과 배움을 얻었겠는가?’
子賎為単父宰,[一]反命於孔子,曰:「此國有賢不斉者五人,[二]教不斉所以治者.」孔子曰:「惜哉不斉所治者小,所治者大則庶幾矣.」
자천이 단보의 재가 되었다가 돌아와서 공자께 복명하여 아뢰되 “이 나라에 저보다 어진 이가 이가 다섯 있어서 저에게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공자 왈 “아쉽다 부제가 다스린 곳이 작음이. 다스리는 곳이 컸다면 선왕의 도에 가까워졌을텐데”
[一]正義宋州県也. 説苑云:「宓子賎理単父,弾琴,身不下堂,単父理. 巫馬期以星出,以星入,而単父亦理. 巫馬期問其故. 宓子賎曰:『我之謂任人,子之謂任力. 任力者勞,任人者逸.』」
정의: 宋의 주 혹은 현이다
설원에 전하길: 복자천이 단보를 다스리는데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당 아래에 나서지 않아도 단보가 잘 다스려졌다. 무마기는 분주히 드나들었더니 단보는 역시 잘 다스려졌다. 무마기가 그 연고를 묻자 복자천이 말하되 나는 사람에 맡기고 그대는 힘에 맡깁니다 힘에 맡기면 수고롭고 사람에 맡기면 편안합니다
[二]索隠按:家語云「不斉所父事者三人,所兄事者五人,所友者十一人」,不同也.
색은: 가어에 전하길 부제가 어버이처럼 섬기는 이가 3인이고 형처럼 모시는 이가 5인이고 벗으로 지내는 이가 11인이라 하는데 위와 같지 않다
原憲[一]字子思.
원헌은 자가 자사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 索隠鄭玄雲魯人. 家語云:「宋人. 少孔子三十六歳.」
집해 정현 왈: 노나라 사람이다 하였다
색은 정현 왈 노나라 사람이다
가어에 이르길: 송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36세 어리다 하였다
子思問恥. 孔子曰:「國有道,谷. [一]國無道,谷,恥也.」[二]
자사가 부끄러움에 대하여 여쭈니 공자 왈 “나라에 도가 있으면 봉녹을 받을 만 하되 나라에 도가 없는데 봉록을 받으면 부끄러운 일이다”
[一]集解孔安國曰:「谷,祿也. 邦有道,當食祿.」
집해 공안국 왈: 곡은 녹이니 나라에 도가 있으면 마땅히 식록을 받는다
[二]集解孔安國曰:「君無道而在其朝,食其祿,是恥辱也.」
집해 공안국 왈: 군주가 도가 없는데 그 조정에 있으면서 그 녹을 받으면 이는 치욕이다
子思曰:「克伐怨欲不行焉,可以為仁乎?」[一]孔子曰:「可以為難矣,仁則吾弗知也.」[二]
자사 왈 “남에게 이기기 좋아함과 스스로 공을 내세움, 원망함, 탐욕스러움을 행하지 않으면 仁하다 하겠습니까?” 공자 왈 “가히 어렵다 하겠지만 仁한지는 나는 모르겠다”
[一]集解馬融曰:「克,好勝人也. 伐,自伐其功. 怨,忌也. 欲,貪欲也.」
집해 마융 왈: 극은 남에게 이기기 좋아함이고, 벌은 스스로 공을 내세움이고, 원은 꺼려함이고, 욕은 탐욕스러움이다
[二]集解包氏曰:「四者行之難,未足以為仁.」
집해 포씨 왈: 이 네 가지는 행함이 어렵다 하여도 인하다 하기에는 부족하다
孔子卒,原憲遂亡在草沢中. [一]子貢相衛,而結駟連騎,排藜藿入窮閻,過謝原憲. 憲摂敝衣冠見子貢. 子貢恥之,曰:「夫子豈病乎?」原憲曰:「吾聞之,無財者謂之貧,學道而不能行者謂之病. 若憲,貧也,非病也.」子貢慚,不懌而去,終身恥其言之過也.
공자가 돌아가시고 원헌이 초야에 은거하였다. 자공이 위의 재상이 되어 화려한 마차를 타고서 명아주와 콩잎으로 덮힌 길을 제치고 궁색한 마을에 닿아 원헌을 찾아 인사했다. 원헌이 낡은 의관으로 자공으로 만나니 자공이 이를 부끄러히 여기어 왈 “선생은 어찌하여 병이 나셨습니까” 원헌 왈 “ 내가 듣건데 재산이 없는 이를 일컬어 가난하다 하고 도를 배웠으면서 행하지 못하는 이를 일컬어 병들었다 합니다. 그러니 저는 가난하되 병든게 아니올시다” 자공이 몹시 열적어하여 기분이 상해 돌아갔는데 종신토록 자신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부끄러워하였다.
[一]索隠家語云:「隠居衛.」
색은 가어에 전하길: 衛에 은거하였다
***원헌의 자가 자사로 중용을 지은 공자의 손자 자사와 자가 같습니다 그래서 原思라 부른다고 합니다 앞서 자공의 활약은 확인되었고 부귀를 누리는 자공이 동문수학한 벗인 원사를 방문하였는가 봅니다 유붕자원방래 하여 나눈 대화치곤 좀 거칠어 보입니다 자공이 보기에 이리 험하게 지낼 필요 있을까 해서 물어보았던 건데 나라에 도가 서지 않았는데 공직에 나서면 부끄러운 일이라 공자께 직접 훈수받은 일도 있는 터라 그 말을 자공에게 건네고 있습니다 이 원사가 또한 자신을 빗대어 克伐怨欲을 하지 않으면 군자의 기준이라 할 仁에 닿은 것이냐 여쭈었던 적이 있습니다 스승이 그것으로 모자라다 하였는데 이 원사는 好勝心 즉 이기고자 하는 마음 克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두 사람 다 마음이 편치 않았을 듯 합니다 공자의 덕성스러움을 자공이 溫良恭儉讓으로 표현하였더랬습니다 자공은 긍정적 언사로 스승을 지칭하였고 원헌은 금하여야할 점을 스스로 알고 고치고자 하였으나 끝내 벗에게 범하고 말았으니 참 아쉬운 장면입니다
公冶長,斉人,字子長. [一]
공야장은 제나라 사람이고 자는 자장이다
[一]索隠家語云:「魯人,名萇,字子長.」範甯云:「字子芝.」
색은 가어에 이르길: 노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장이고 자는 자장이다
범영 이르길: 자는 자지이다
孔子曰:「長可妻也,雖在累紲之中,[一]非其罪也.」以其子妻之. [二]
공자 왈 “공야장에게 시집 보낼만 하다 비록 수형중이지만 그의 죄가 아니다” 하고는 그의 자식을 시집보내었다.
[一]集解孔安國曰:「累,黒索也. 紲,攣也. 所以拘罪人.」
집해 공안국 왈: 累는 검은 줄이다. 紲은 매어 있음이니 묶여 있는 죄인을 이름이다
[二]集解張華曰:「公冶長墓在城陽姑幕城東南五里所,墓極高.」
집해 장화 왈: ‘공야장의 묘는 성의 남쪽에 부인의 묘는 성의 동남 5리에 있는데 묘가 극히 높다’
南宮括字子容. [一]
남궁괄의 자는 자용이다
[一]集解孔安國曰:「容,魯人」. 索隠家語作「南宮縚」. 按:其人是孟僖子之子仲孫閲也,蓋居南宮因姓焉.
집해 공안국 왈: 용는 노나라 사람이다
색은 가어에 「南宮縚(남궁도)」라 쓰여 있다
살피건데 : 이 사람은 맹희자의 아들 중손열이다 아마도 남궁에 살았던 탓에 성으로 삼은 듯 하다
問孔子曰:「羿善射,奡盪舟,[一]倶不得其死然;禹稷躬稼而有天下?」孔子弗答. [二]容出,孔子曰:「君子哉若人!上徳哉若人!」[三]「國有道,不廃;[四]國無道,免於刑戮.」三複「白珪之玷」,[五]以其兄之子妻之.
공자께 여쭙기를 “예는 활을 잘 쏘았고 오는 배를 끌 정도로 힘이 세었다 하거늘 모두 그 죽음이 온전하지 못하였습니다. 우와 직은 몸소 농사를 지었어도 천하를 가졌던 것입니까?” 공자가 답하지 않고 남용이 나가고 나서 왈 “군자로다 이 사람은, 덕이 있구나 이 사람은”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버려지지 않을 것이고 나라에 도가 없어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시경에 나오는 백규의 흠 이란 시를 세 번 반복하고는 그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 보내었다.
[一]集解孔安國曰:「羿,有窮之君,簒夏後位,其徒寒浞殺之,因其室而生奡. 奡多力,能陸地行舟,為夏後少康所殺.」正義羿音詣. 盪,大浪反.
집해 공안국 왈: 예는 유궁의 군주이다 하후를 죽이고 보위를 찬탈하였다 그 무리 한착이 그를 죽이고 그 집안과 혼인하여 오를 낳았다 오는 힘이 세서 육지에서 배를 끌 수 있었는데 하후 소강에게 죽임을 당했다
정의: 羿는 예로 읽고 盪은 탕으로 읽는다
[二]集解馬融曰:「禹盡力於溝洫,稷播百穀,故曰『躬稼』也. 禹及其身,稷及後世,皆王. 括意欲以禹稷比孔子,孔子謙,故不答.」
집해 마융 왈: 우는 논도랑에서 힘써 일하였고 직은 백곡을 심었으므로 이를 일러 몸소 농사지었다 하며 우는 그 스스로, 직은 후세에 이르러 모두 왕이 되었으니 괄은 우와 직을 공자에 비유하고자 하였는데 공자가 겸양하여 그래서 답하지 않았다
[三]集解孔安國曰:「賎不義而貴有徳,故曰君子.」
집해 공안국 왈: 불의를 천하게 여기고 덕이 있음을 귀히 여기니 군자라 일컬은 것이다’
[四]集解孔安國曰:「不廃,言見用.」
집해에서 공안국 왈 ‘ 폐하지 않음은 쓰임을 본것을 말한다’
[五]集解孔安國曰:「詩云『白珪之玷,尚可磨也;斯言之玷,不可為也』. 南容読詩至此,三反之,是其心敬慎於言.」
집해 공안국 왈: 시경에 이르기를 ‘백옥의 흠 오히려 갈아낼 수 있지만 저 말의 흠은 어쩔 수 없다네’ 하였으니 남용이 시를 읽음이 이에 이르러 세 번 되돌아 보니 그 말에 공경되고 신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와 같은 것이다’
公皙哀字季次. [一]
공석애의 자는 계차이다
[一]集解孔子家語雲斉人. 索隠家語作「公皙克」.
집해 공자가어에 이르길 제나라 사람이다
색은 가어에 공석극으로 쓰여 있다
孔子曰:「天下無行,多為家臣,仕於都;唯季次未嘗仕[一].」
공자 왈 “천하에 (도를) 행하는 이가 없어 대개는 가신이 되거나 성도에서 벼슬살이를 하지만 오직 계차만이 벼슬살이를 하지 않는구나“
[一]索隠家語云:「未嘗屈節為人臣,故子特賞歎之.」亦見遊俠傳也.
색은 가어에 전하길: ‘끝내 절개를 굽히지 않아 남의 신하가 되지 않으니 이로 해서 특별히 그를 찬탄하신 것이다’ 또한 유협전에 보인다
曾蒧[一]字皙. [二]
증점의 자는 석이다
[一]集解音點. 索隠音點,又音其炎反.
집해: 점으로 읽는다
[二]集解孔安國曰:「皙,曾參父.」索隠家語云:「曾點字子皙,曾參之父.」
집해 공안국 왈: ‘석은 증삼의 부친이다’
색은 가어에 이르길:증점의 자는 자석이고 증삼의 아비이다
侍孔子,孔子曰:「言爾志.」蒧曰:「春服既成,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浴乎沂,風乎舞雩,詠而帰.」[一]孔子喟爾歎曰:「吾與蒧也!」[二]
공자를 곁에서 모시고 있는데 공자 왈 “너의 뜻을 말해보거라” 점이 아뢰되 “ 봄옷이 갖추어지면 관을 쓴 이 오륙인과 동자 예닐곱과 더불어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다가 돌아오렵니다” 공자가 한숨을 내쉬며 찬탄하며 왈 “내가 너와 같이 하고자 한다”
[一]集解徐広曰:「一作『饋』.」駰案:包氏曰「暮春者,季春三月也. 春服既成,衣単袷之時,我欲得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浴於沂水之上,風涼於舞雩之下,歌詠先王之道,帰於夫子之門」.
집해 서광 왈: ‘다른 곳에서는 饋(음식보낼 궤) 로 되어 있다’
인안:포씨 왈 ‘모춘이라 함은 늦은 봄 3월이다. 봄옷이 이미 갖추어져 겹옷 하나 입게 될 때 나는 관을 쓴 이 오륙인과 동자 예닐곱 명과 더불어 기수위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선선한 바람쐬고 선왕의 도를 노래하고 스승님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二]集解周氏曰:「善蒧之獨知時也.」
집해 주씨 왈: ‘점이 홀로 시절을 아는 것을 칭찬한 것이다’
***사기 공자세가에 공자가 17세 무렵 모친상을 당하고 양호란 인물에게 모욕을 당하는 시점에 제자 증점이 출현합니다 결국 증점과 공자의 나이 차이는 크게 나지 않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위에서 증점이 봄을 맞아 기수에서 목욕하고 오겠단 말은 당시 다른 제자들이 말씀을 올리고 난 뒤에 증점이 옆에서 거문고를 튕기다 멈추고 스승께 말씀을 올린다 되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사제의 사이지만 벗 같은 연배의 막역하고 오랜 사이라 서로 공감되는 얘기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아름다운 장면이기도 합니다만 종심소욕불유구에서 중요한 것은 所欲하는 바가 어떠한가 하는 점이리라 여겨집니다 욕심이 적절하면 거스를 이유가 없을테니까요
顔無繇[一]字路. 路者,顔回父,[二]父子嘗各異時事孔子.
안무요는 자가 로이다 로는 안회의 부친이며 그 부자가 일찍이 각기 다른 시기에 공자를 뫼시었다.
[一]集解音遙. 正義繇音由.
집해: 요로 읽는다
[二]索隠家語云「顔由字路,回之父也. 孔子始教於闕里而受學焉. 少孔子六歳」,故此傳云「父子異時事孔子」,故易稱「顔氏之子」者,是父子倶學孔門也.
색은 가어에 전하길:‘안유의 자는 로이며 회의 부친이다. 공자가 처음에 궐리에서 가르칠때 배우게 되었다. 공자보다 6세 어리다’ 그래서 이 글에서 그 부자가 다른 시기에 공자를 섬기었다 하는 것이다 고로 바꾸어 이르길 안씨의 아들 이라 하였으며 이는 그 부자가 모두 공자의 문하에서 배웠던 것이다
顔回死,顔路貧,請孔子車以葬. [一]孔子曰:「材不材,亦各言其子也. 鯉也死,有棺而無槨,吾不徒行以為之槨,以吾従大夫之後,不可以徒行.」[二]
안회가 죽고 안로는 가난하여 공자에 마차를 청하여 장례를 치르고자 하니 공자 왈“재목이 되건 안되건 또한 각자의 자식을 이를 수 있도다. 리가 죽었을 때 관이 있었으나 곽을 마련치 못하였는데 내가 걷기로 하고 (마차를 팔아서) 곽을 마련치 않은 것은 내가 대부의 말석에 있었기 때문에 걸어 다닐 수 없었음이였다”
[一]集解孔安國曰:「売以作槨.」
집해에 공안국 왈 ‘마차를 팔아서 곽을 마련함이다’
[二]集解孔安國曰:「鯉,孔子子伯魚. 孔子時為大夫,言従大夫之後,不可徒行,謙辭也.」
집해에서 공안국 왈 ‘ 리는 공자의 아들 백어이다 공자가 당시 대부였기에 대부의 말석에 있어서 걸어다닐 수 없다 한 것인데 겸사이다’
***안회가 죽었을 때 하늘을 원망하며 슬퍼하던 공자가 막상 장례에 임하여 선을 긋습니다 그 선은 평생을 지켜온 예절입니다 자식도 먼저 죽었고 자식보다 기대하던 제자를 먼저 보낸 공자가 애써 자신의 뜻을 궁색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관을 마련할 경비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장례 치를 경비조차 갖지 못한 이 궁핍한 학자들이 그 안에서 예를 따지고 있으니 처량하기 그지 없습니다 달리 보면 그러한 속에서도 원칙을 다시 견지하는 노철학자가 대단하기도 합니다
商瞿,[一]魯人,字子木. [二]少孔子二十九歳.
상구는 노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목이다 공자보다 29세 어리다
[一]正義具倶反.
정의: 구로 읽는다
[二]索隠家語云:「瞿年三十八無子,母欲更娶室. 孔子曰『瞿過四十當有五丈夫子』,果然. 瞿謂梁鱣勿娶,『吾恐子或晩生,非妻之過也』.」
색은 가어에 전하길: ‘상구 나이 38세에 자식이 없어 그 모친이 다시 아내를 얻게 하고자 하는데 공자 왈 상구가 40세가 되면 다섯 아들을 얻게 될것이네 하였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상구가 양전에게 아내를 다시 얻지 말라 하며 이르길 내가 볼때 자네는 늦게 아이를 볼것인데 아내의 잘못이 아닐것일세’하였다
孔子傳易於瞿,瞿傳楚人馯[一]臂子弘,[二]弘傳江東人矯[三]子庸疵,[四]疵傳燕人周子家豎,[五]豎傳淳於人光子乗羽,[六]羽傳斉人田子荘何,[七]何傳東武人[八]王子中同,[九]同傳菑川人楊何. [一0]何元朔中以治易為漢中大夫.
공자가 역을 구에게 전하니 구는 초나라 사람 한비자홍 에게 전하고 홍이 강동 사람
교자용자 에게 전하였다 자가 연나라 사람 주자가수 에게 전하고 수가 순오 사람 광자승우에 전하고 우가 제나라 사람 전자장하 에게 전하니 하는 동무 사람 왕자중동 에게, 동이 치천 사람 양하에 전하였고 하는 원삭년(** 元朔 기원전128년 - 기원전123년 汉武帝의 세 번째 연호**)중에 역을 공부하여 한나라의 중대부가 되었다.
[一]集解徐広曰:「音寒.」
집해 서광 왈: ‘한으로 읽는다’
[二]索隠馯,徐広音韓,鄒誕生音汗. 按:儒林傳、荀卿子及漢書皆雲馯臂字子弓,今此獨作「弘」,蓋誤耳. 應劭雲子弓是子夏門人. 正義馯音汗. 顔師古云:「馯,姓也.」漢書及荀卿子皆雲字子弓,此作「弘」,蓋誤也. 應劭云:「子弓,子夏門人.」
색은: 서광이 한韓으로 읽는다 하였고, 추탄생은 한汗으로 읽는다 하였다 살피건데 유림에 전하길 순경자와 한서에 모두 한비의 字가 자궁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홀로 弘으로 이름하였으니 아마도 잘못된듯하다.
응소가 이르되 자궁은 子夏의 제자이다
정의: 馯은 汗으로 읽는다 하고
안사고에서 이르길: 馯은 성이다 한서와 순경자 모두 字를 자궁이라 하는데 여기서 弘이라 함은 아마도 잘못된 듯 하다
응소 이르길: 자궁은 자하의 문인이다
[三]集解音橋.
집해에: ‘교로 읽는다’
[四]集解自移反. 索隠儒林傳及系本皆作「蟜」. 疵音自移反. 疵字或作「疪」. 蟜是姓,疪,名也,字子肩. 子肩,然蟜姓,魯荘公族也,禮記「蟜固見季武子」. 蓋魯人,史儒林傳皆雲魯人,獨此云江東人,蓋亦誤耳. 儒林傳雲馯臂,江東人;橋疵,楚人也. 正義漢書作「橋庇」,雲魯人. 顔師古雲橋庇字子庸.
집해: ‘自zì와 移yí를 섞어 읽는다’
색은: 유림전과 계본에서 모두 蟜로 적혀있으며 疵는 自zì와 移yí를 섞어 읽는다 疵는 혹「疪」 로 적혀 있기도 하다. 蟜는 성이고 疪는 이름이다 字는 子肩이다 자견이 성이 蟜씨 이되 魯나라 荘公의 친족이다 예기에 蟜固가 계무자를 뵈었다 하였으니 아마도 노나라 사람일 것이며 사유림전에 모두 노나라 사람이라 하였는데 여기에서 유독 강동사람이다 하였으니 아마도 착오일 것이다. 유림전에 한비가 강동 사람이라 하였고 橋疵는 楚나라 사람이다 하였다
정의: 한서에 橋庇라 씌여져 있고 魯나라 사람이라 하였으며, 顔師古는 橋庇의 字가 子庸이라 하였다
[五]索隠周豎字子家,有本作「林」. 正義豎音時與反. 周豎字子家,漢書作「周醜」也.
색은:주수의 字가 子家라 하였다 林으로 쓰인 본도 있다
정의: 豎는 수로 읽는다 주수의 字가 자가이다 한서에는 「周醜」로 되어 있다
[六]索隠淳於,県名,在北海. 光羽字子乗. 正義光乗字羽. 括地志云:「淳於,國[名],在密州安丘県東三十里,古之州國,周武王封淳於國.」
색은: 순오는 현의 이름이고 북해에 있다. 광우의 字는 자승이다
정의: ‘光乗의 字가 羽이다’
괄지지에 이르길: ‘순오는 나라 이름이고 밀주 안구현 동쪽으로 삼십리에 있다. 예전의 국가로 周 무왕이 순오국을 봉하였다’
[七]索隠田何字子荘. 正義儒林傳云:「田何字子荘.」
색은: 전하의 字가 자장이다
정의: 유림전에 이르길 전하의 자가 자장이다
[八]集解徐広曰:「屬琅邪.」
집해 서광 왈: 낭야에 속한다
[九]索隠王同字子中. 正義括地志云:「東武県今密州諸城県是也.」漢[書]作「王同字子仲」.
색은: 왕동의 字가 子中이다
정의 괄지지 이르길: 동무현은 지금의 밀주 여러 성이나 현이다 한서에는 왕동의 자가 자중이라 하였다
[一0]索隠自商瞿傳易至楊何,凡八代相傳. 儒林傳何字叔元. 正義漢書云字叔元. 按:商瞿至楊何凡八代.
색은:상구에서 역을 전하여 양하에 이르기까지 무릇 8대를 서로 전하였다.
유림전에 하의 字가 숙원이다
정의: 한서에 이르길 字가 숙원이라 하였다
살피건데 상구에서 양하에 이르기까지 모두 8대이다
高柴字子羔. [一]少孔子三十歳.
고시의 자는 자고이며 공자보다 30세 어리다
[一]集解鄭玄曰衛人. 索隠鄭玄雲衛人. 家語「斉人,高氏之別族. 長不盈六尺,狀貌甚悪」. 此傳作「五尺」. 誤也. 正義家語雲斉人.
집해 정현 왈: 衛나라 사람이다
색은 정현이 전하길: 衛나라 사람이다 가어에 ‘齊나라 사람이며 고씨의 다른 친족이다. 키가 6척이 안되고 외모가 심하게 추하였다’ 여기에 5척이라 하였는데 착오이다.
정의: 가어에 齊나라 사람이라 하였다
子羔長不盈五尺,受業孔子,孔子以為愚.
子路使子羔為費郈宰,[一]孔子曰:「賊夫人之子!」[二]子路曰:「有民人焉,有社稷焉,何必読書然後為學!」[三]孔子曰:「是故悪夫佞者.」[四]
자고의 키가 다섯 자가 되지 않았다. 공자에 수업하였는데 공자는 그가 어리석다 여겼다
자로가 자고로 하여금 비후의 재가 되게 하였는데 공자 왈 “남의 자식을 해치려느냐” 자로 아뢰길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거늘 굳이 독서를 하고서야 배울 수 있겠습니까?” 공자 왈 “그래서 입이 간사한 자를 싫어하느니라”
[一]正義括地志云:「鄆州宿県二十三里郈亭.」
정의 괄지지에 전하되: ‘운주 숙현에서 23리 거리에 후정이 있다 ’
[二]集解包氏曰:「子羔學未孰習而使為政,所以賊害人.」
집해 포씨 왈: ‘자고의 배움이 아직 여물지 않아서 정사를 맡게 되었으므로 사람을 해하게 되는 것이다’
[三]集解孔安國曰:「言治人事神,於是而習,亦學也.」
집해 공안국 왈: ‘사람을 다스리고 신을 섬기면서 이에서 습득하게 되는 것도 역시 배움이라 말한 것이다’
[四]集解孔安國曰:「疾其以給應,遂己非而不知窮也.」
집해 공안국 왈: ‘필요에 따라 응대함을 질책한 것이니 마침내 자신이 잘못되어도 그 궁함을 알지 못하게 된다’
***자로는 솔직한 편이라 평소 스승인 공자에게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곤 합니다 지금도 아직 어린 사람을 데려다 쓰려 하면서 그럴듯한 이유를 대는데 스승의 질책이 무섭습니다 제가 언젠가 글공부 하면서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고 선생님의 답변에 다시 제 의견을 말하였더니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호승심을 버려야 한다 하셨습니다 요즘 토론교육이란 것을 강조하면서 입장을 바꾸어 주장을 하는 연습을 많이 하더군요 적당한 경쟁심을 부추키는 교육입니다만 공자를 비롯한 대대로 선생님들의 교육은 항상 지향하는 바가 있습니다 네 입과 네 정신을 경거망동하지 말라!
漆彫開字子開. [一]
칠조개의 자는 자개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也. 索隠鄭玄雲魯人. 家語云:「蔡人,字子若,少孔子十一歳.」又曰:「習
尚書,不樂仕. 孔子曰:『可以仕矣.』対曰:『吾斯之未能信.』」王粛云:「未得用斯書之意,故曰『未能信』也.」正義家語云:「蔡人,字子若,少孔子十一歳. 習尚書,不樂仕.」
집해 정현 왈: ‘노나라 사람이다’
색은 정현 전하길: 그가 노나라 사람이다
가어에 전하길: ‘蔡나라 사람이다 자는 자약이다 공자보다 11세 어리다’ 또 이르되 ‘상서를 익혔으되 벼슬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공자가 이르길 이제 벼슬살이 할만하다 하니 아뢰길 저는 그 일을 믿을만큼 잘 하지 못합니다.
왕숙 전하길: 상서의 뜻을 쫒을 만 하지 못합니다 하였던 것이니 그래서 믿을만큼 능하지 못하다 하였던 것이다
정의 가어에 전하길: ’채나라 사람이며 자는 자약이다 공자보다 11세 어리며 상서를 익혔으되 벼슬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
孔子使開仕,対曰:「吾斯之未能信.」[一]孔子説. [二]
공자가 자개로 하여금 벼슬하게 하니 아뢰길 저는 그 일을 믿을만큼 잘 하지 못합니다
공자가 기뻐하였다
[一]集解孔安國曰:「仕進之道. 未能信者,未能究習.」
집해 공안국 왈: ‘벼슬에 나아가는 도를 능히 믿을 만하지 못함을 이르니 궁구하여 습득함이 능하지 못함이다’
[二]集解鄭玄曰:「善其志道深.」
집해 정현 왈: ‘그 뜻과 도가 심오함을 좋게 여기신 것이다’
公伯繚字子周. [一]
공백료의 자는 자주이다
[一]集解馬融曰魯人. 索隠馬融雲魯人. 家語無公伯繚而有申繚子周. 而譙周云「疑公伯繚是讒愬之人,孔子不責,而云『其如命何』,非弟子之流也」. 今亦列比在七十二賢之數,蓋太史公誤. 且
「繚」亦作「遼」也. 正義家語有申繚子周. 古史考云:「疑公伯僚是讒愬之人,孔子不責,而雲命,非弟子之流也.」
집해 마융 왈: ‘노나라 사람이다 ’
색은 마융 이르길: 노나라 사람이라 하되 공자가어에 공백료가 없고 신료자주가 보인다 그리고 초주가 일러 ‘ 공백료는 (자로를) 참훼하였으되 공자가 그를 책하지 않고서 그런 자가 명을 어찌하랴 하는 것으로 보아 공자의 제자가 아닌 듯 하다’ 하였는데 지금 여기에 72현에 나열되어 있는 것은 태사공의 착오로 보인다 또한 「繚」는 「遼」로 쓰여 있다.
정의:가어에 신료자주가 보인다 고사고에 이르길 공백료는 사람을 참훼하였는데 공자가 책하지 않고 운명을 이야기 하였으니 공자의 제자가 아닐것이다
周愬子路於季孫,子服景伯以告孔子,曰:「夫子固有惑志[一],繚也,吾力猶能肆諸市朝.」[二]孔子曰:「道之將行,命也;道之將廃,命也. 公伯繚其如命何!」
자주가 계손씨에게 자로를 모함하였다 자복경백이 공자에 고하기를 “ (저의 주군) 계손씨가 의심을 갖게 된 것은 공백료의 탓입니다. 저는 그를 죽여 저자거리에 내다 놓을 힘이 있습니다”공자 왈 “도가 장차 행해짐은 명이요 도가 장차 없어짐도 명이거늘 공백료 그런 자가 명을 어찌 하리오”
[一]集解孔安國曰:「季孫信譖,恚子路也.」
집해 공안국 왈: ‘계손씨가 참소를 믿고 자로에 화를 내었다’
[二]集解鄭玄曰:「吾勢猶能辨子路之無罪於季孫,使人誅僚而肆之也. 有罪既刑,陳其屍曰肆.」
집해 정현 왈: ‘내 힘은 능히 자로의 무죄를 계손씨에게 변호할 수 있고 공백료를 죽여 저자에 내어 놓을 수 있다 함이니 죄가 있어 형을 실행해 그 시신을 내어 놓음을 肆라 한다
司馬耕字子牛. [一]
사마경의 자는 자우이다
[一]集解孔安國曰宋人. 索隠家語云「宋人,字子牛」,孔安國亦云「宋人,弟安子曰司馬犂」也. 牛是桓魋之弟,以魋為宋司馬,故牛遂以司馬為氏也.
집해 공안국 왈: ‘송나라 사람이다’
색은 공자가어에 전하길:‘송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우이다’ 공안국은 또 이르길 ‘송나라 사람으로 제안자가 가로되 사마리이다’ 하였는데 자우는 환퇴의 동생으로 환퇴가 송의 사마가 되어 사마를 성씨로 삼았다
牛多言而躁. 問仁於孔子,孔子曰:「仁者其言也訒.」[一]曰:「其言也訒,斯可謂之仁乎?」子曰:「為之難,言之得無訒乎!」[二]
자우는 말이 많고 조급했다 공자께 인을 여쭈니 공자 왈 “인자는 그 말이 과묵하니라” 다시 여쭈되 “그 말이 과묵하면 그럼 인하다 하겠습니까?” 공자 왈 “인을 행하기가 어려웁거늘 말이 과묵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一]集解孔安國曰:「訒,難也.」
집해 공안국 왈: ‘訒이란 難함이다’
[二]集解孔安國曰:「行仁難,言仁亦不得不訒也.」
집해 공안국 왈: ‘인을 행함이 어려우니 인을 말함도 부득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음이다“
問君子,子曰:「君子不憂不懼.」[一]曰:「不憂不懼,斯可謂之君子乎?」子曰:「內省不疚,夫何憂何懼!」[二]
군자에 대해 여쭈니 공자 왈 “군자는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다시 여쭈니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를 가히 군자라 하겠습니까?” 공자 왈 “스스로 살펴 허물이 없으니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一]集解孔安國曰:「牛兄桓魋將為亂,牛自宋來學,常憂懼,故孔子解之也.」
집해 공안국 왈: ‘자우의 형 환퇴가 장차 난을 일으키고자 하니 자우가 송에서 와서 배우는데 늘 걱정하고 두려워 하여 일부러 공자께서 이를 풀어주시는 것이다’
[二]集解包氏曰:「疚,病. 自省無罪悪,無可憂懼.」
집해 포씨 왈: ‘疚는 병들었음이니 스스로 살펴서 죄악이 없으면 걱정과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樊須字子遅. [一]少孔子三十六歳.
번수의 字는 자지다 공자보다 36세 어리다
[一]集解鄭玄曰斉人. 索隠家語雲魯人也. 正義家語雲魯人.
집해 정현 왈: ‘齊나라 사람이다 ’
색은 공자가어에 전하길: 노나라 사람이다 하였다
정의 공자가어에 전하길 노나라 사람이다 하였다
樊遅請學稼,孔子曰:「吾不如老農.」請學圃,曰:「吾不如老圃.」[一]樊遅出,孔子曰:「小人哉樊須也!上好禮,則民莫敢不敬;上好義,則民莫敢不服;上好信,則民莫敢不用情. [二]夫如是,則四方之民繈負其子而至矣,焉用稼!」[三]
번지가 농사 짓는 것을 배우고자 청하니 공자 왈 “나는 농부만 못하다” 번지가 다시 채소 가꾸는 법을 여쭈니 공자 왈 “나는 채소 밭 일꾼만 못하다” 번지가 나가니 공자 왈 “번지는 소인이로다.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곧 백성이 감히 불경하지 못하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곧 백성이 감히 불복하지 못하고,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백성이 감히 정성스럽지 않을 수 없음이라 이와 같으면 즉 사방의 백성이 포태기에 아이를 업고 답지할 것인데 어찌 농사짓는 법을 사용하리오”
[一]集解馬融曰:「樹五谷曰稼,樹菜蔬曰圃.」
집해 마융 왈: ‘오곡을 심는 것을 稼라 하며, 채소를 심는 것을 일러 圃라 한다’
[二]集解孔安國曰:「情,実也. 言民化上各以実應.」
집해 공안국 왈: ‘情은 실질됨이니 백성이 윗 사람에 교화되면 각기 실질로 응함이다’
[三]集解包氏曰:「禮義與信足以成徳,何用學稼以教民乎!負子之器曰繈.」
집해 포씨 왈 ‘예의와 신뢰로 족히 덕을 쌓을 수 있는데 어찌 농사짓는 것을 배워 백성을 교화하리오 아이를 업을 때 쓰는 기구를 일러 繈(포대기 강)이라 한다
樊遅問仁,子曰:「愛人.」問智,曰:「知人.」
번지가 仁을 여쭙자 공자 왈 “사람을 사랑함이다” 智지에 대해 여쭙자 공자 왈 “사람을 아는 것이다”
有若[一]少孔子四十三歳. [二]有若曰:「禮之用,和為貴,先王之道斯為美. 小大由之,有所不行;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三]「信近於義,言可複也;[四]恭近於禮,遠恥辱也;[五]因不失其親,亦可宗也.」[六]
유약은 공자보다 43세 어리다 유약 왈 “예의 쓰임은 화합을 귀히 여기니 선왕의 도는 이를 아름답게 여겼다. 크고 작은 것이 모두 여기서 유래하였으되 행해지지 못하는 바가 있음은 화함을 알아 화하되 예로써 매듭하지 않으면 또한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약속한 바가 의에 가까우면 실행할 수 있다. 공경됨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 할 수 있음은 그 친밀함을 잃지 않은 고로 또한 존경받게 되는 것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
집해 정현 왈: ‘노나라 사람이다’
[二]索隠家語云:「魯人,字子有,少孔子三十三歳.」今此傳云「四十二歳」,不知傳誤,又所見不同也?正義家語云「魯人,字有,少孔子三十三歳」,不同.
색은 공자가어에 전하길: ‘노나라 사람이다 字는 子有이다 공자보다 33세 어리다 하였는데 여기서 42세로 하였는데 어느것이 착오인지 알 수 없다
정의: 노나라 사람이다 字은 유이다 공자보다 33세 어리다 하였으니 또한 같지 않다
[三]集解馬融曰:「人知禮貴和,而毎事従和,不以禮為節,亦不可以行也.」
집해 마융 왈: ‘사람으로 예가 화함을 귀히 여김을 알아 매사에 화함을 따르되 예로써 매듭을 짓지 않으면 또한 행할 수 없음이라’
[四]集解何晏曰:「複猶覆也. 義不必信,信非義也. 以其言可覆,故曰近義.」
집해 하안 왈: ‘複은 覆(다시 복)이라 義가 반드시 信하다 할 수 없으며,信은 義라 할 수 없다. 그 말을 다시 할 수 있다(즉 실천할 수 있다) 하여 義에 가깝다 하는 것이다’
[五]集解何晏曰:「恭不合禮,非禮也. 以其能遠恥辱,故曰近禮.」
집해 하안 왈: ‘공경함이 예에 어긋나면 예가 아니다. 치욕을 멀리 할 수 있으므로 해서 예에 가깝다 하는 것이다’
[六]集解孔安國曰:「因,親也. 言所親不失其親,亦可宗敬.」
집해 공안국 왈: ‘因은 親이다 친밀한 관계에서 친밀함을 잃지 않으면 또한 존경을 받을 수 있다’
孔子既沒,弟子思慕,有若狀似孔子,弟子相與共立為師,師之如夫子時也. 他日,弟子進問曰:「昔夫子當行,使弟子持雨具,已而果雨. 弟子問曰:『夫子何以知之?』夫子曰:『詩不雲乎?「月離於畢,俾滂沱矣.」[一]昨暮月不宿畢乎?』他日,月宿畢,竟不雨. 商瞿年長無子,其母為取室. [二]孔子使之斉,瞿母請之. 孔子曰:『無憂,瞿年四十後當有五丈夫子.』[三]已而果然. 問夫子何以知此?」有若黙然無以應. 弟子起曰:「有子避之,此非子之座也!」
공자가 몰하시고 제자들이 사모하여 유약이 공자와 외모가 비슷하였기로 제자들이 서로 더불어 스승으로 세우고 공자 생존시처럼 스승으로 모시었다. 다른 날 제자가 나서서 여쭙되
“전에 공부자께서 나서실 때 제자로 하여금 우장을 챙기게 하시더니 과연 비가 왔기에 제자가 여쭙기를 스승님은 어찌 아셨습니까 하였더니 공부자께서 말씀하시길 시경에 전하지 않더냐 달이 필에서 떨어지니 큰 물이 들더라 하였거늘 어제 저녁 달이 필에 머물지 않았느냐 하시었습니다 다른 날엔 달이 필에 머물었는데 끝내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상구가 나이가 들도록 아들이 없어 그 어미가 새 장가를 보내려 하니 공자께서 그를 제에 사신 보내려 하자 구의 어미가 공자께 이를 청하시니 공자께서 이르시길 걱정 마시오 구의 나이 40 이후에 마땅히 다섯 아들을 볼것입니다 하였고 과연 그러하였습니다 스승님(공자)께서는 어찌 알게 되셨는지 여쭙고자 합니다” 유약이 침묵하고 응답하지 않으니 제자가 일어서며 말하기를 “유자가 자리를 물러나시구려 여기는 선생의 자리가 아닌가 보오”
[一]集解毛傳曰:「畢,噣也. 月離陰星則雨.」
집해 모전왈: 畢은 噣(쪼을 탁)이다 달이 음성을 벗어나면 즉 비가 온다
[二]正義家語云:「瞿年三十八無子,母欲更娶室. 孔子曰:『瞿年過四十當有五丈夫子.』果然.」中備云:「魯人商瞿使向斉國,瞿年四十,今後使行遠路,畏慮,恐絶無子. 夫子正月與瞿母筮,告曰:『後有五丈夫子.』子貢曰:『何以知?』子曰:『卦遇大畜,艮之二世. 九二甲寅木為世,六五景子水為應. 世生外象生象來爻生互內象,艮別子,應有五子,一子短命.』顔回云:『何以知之?』『內象是本子,一艮変為二醜三陽爻五,於是五子,一子短命.』『何以知短命?』『他以故也.』」
정의 공자가어에 전하길: ‘상구의 나이 38세에 아들이 없어 그 어미가 다시 장가를 보내고자 하는데 공자 왈 구의 나이 40을 넘기면 마땅히 다섯 장부가 생깁니다 하였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중비 전하되: 노나라 사람 상구가 제나라로 사신을 가게 되었는데 구의 나이가 40이 되어 이제 먼 길을 가게 되자 근심하니 아들이 없어 후사를 잇지 못함이라 공부자께서 정월에 구의 모친과 더불어 점을 치고 이르길 나중에 다섯 아들이 있습니다 자공이 여쭙길 어찌 알아내셨습니까 하니 공자 왈 점괘가 대축괘이고 간괘는 2세를 보임이라. 구이는 갑인목이니 세상이고 육오는 경자수라 응함이다. 세상에 외형을 갖춘 사물을 내고 상형이 옴을 내니 爻는 상호 안의 상을 만든다. 艮괘는 자식과 이별함이니 마땅히 다섯 아들이 있되 한 아이는 단명하게 된다’ 안회 여쭙기를 어찌 이를 아십니까 하니 이르시되 안의 상은 본디 자식인데 간괘 하나가 변하여 二醜三陽 다서 효로 되나니 이에 다섯 아들이 있되 한 아들이 단명하게 되니라 어찌 단명함을 아십니까 그는 사고를 당하게 되느니라
[三]集解五男也. 索隠謂五男也.
집해: 다섯 남아라 되었고 색은에 일러 다섯 남아라 하였다
公西赤字子華. [一]少孔子四十二歳.
공서적은 자가 자화이다 공자보다 42세 어리다
[一]集解鄭玄曰魯人.
집해 정현 왈 ‘노나라 사람이다
子華使於斉,冉有為其母請粟. 孔子曰:「與之釜.」[一]請益,曰:「與之庾.」[二]冉子與之粟五秉. [三]孔子曰:「赤之適斉也,乗肥馬,衣軽裘. 吾聞君子周急不継富.」[四]
자화가 齊에 사신으로 갔는데 염유가 그 모친을 위하여 곡식을 청하니 공자 왈 “부 만큼 내주어라” 더 줄것을 청하니 공자 왈 “유 만큼 더 주거라” 염자가 곡식 다섯 병 만큼 내주었다. 공자 왈 “공서적이 齊에 갈 때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가죽옷을 입고 갔거늘 내 듣기로 군자는 곤란함을 구제하되 부유함을 더하게 하지 않는다 하였다”
[一]集解馬融曰:「六鬥四升曰釜.」
집해 마융 왈: 6鬥4升을 釜라 한다
[二]集解包氏曰:「十六鬥曰庾.」
집해 포씨 왈: 16鬥를 일러 庾라 한다
[三]集解馬融曰:「十六斛曰秉,五秉合八十斛.」
집해 마융 왈: 16斛을 秉이라 한다 5秉은 80斛이 된다.
[四]集解鄭玄曰:「非冉有與之太多.」
집해 정현 왈: 염유가 너무 많이 내준 것을 비난하시었다
巫馬施字子旗. [一]少孔子三十歳.
무마시는 字가 子旗이며 공자보다 30세 어리다
[一]集解鄭玄曰魯人. 索隠鄭玄雲魯人. 家語云:「陳人,字子期.」正義音其.
집해 정현 왈: 노나라 사람이다
색은 정현 왈: 노나라 사람이다
공자가어에 전하길: 陳나라 사람이다 字는 子期이다
陳司敗[一]問孔子曰:「魯昭公知禮乎?」孔子曰:「知禮.」退而揖巫馬旗曰:「吾聞君子不黨,君子亦黨乎?魯君娶呉女為夫人,命之為孟子. 孟子姓姫,諱稱同姓,故謂之孟子. 魯君而知禮,孰不知禮!」[二]施以告孔子,孔子曰:「丘也幸,苟有過,人必知之. 臣不可言君親之悪,為諱者,禮也.」[三]
진사패가 공자께 여쭙기를 “노 소공은 예를 안다 하겠습니까?” 공자 왈 “예를 알지요”물러나와 무마기에 읍하고 말하길 “내가 듣기에 군자는 무리 짓지 않는다 하거늘 군자도 역시 무리 짓는가 봅니다 노나라 군주는 吳나라 여인을 부인으로 맞았는데 맹자라 이름하였습니다 맹자의 성이 희인데 동성을 휘하고자 칭한 것입니다 그래서 맹자라 하였는데 노의 군주가 예를 안다 하면 누가 예를 모른다 하겠습니까?” 무마기가 이를 공자에 고하니 공자 왈 “나는 행복하도다 진실로 잘못이 있으면 사람들이 반드시 나로 하여금 이를 알게 하는구나. 신하는 군주의 가족사의 잘못됨을 말하지 않으니 이로해서 휘 함은 예이다”
[一]集解孔安國曰:「司敗,官名. 陳大夫也.」
집해 공안국 왈: 사패는 관직명이고 陳의 대부이다
[二]集解孔安國曰:「相助匿非曰黨. 禮同姓不婚,而君娶之. 當稱『呉姫』,諱曰『孟子』.」
집해 공안국 왈: 서로 도와 잘못을 숨기는 것을 黨이라 한다. 예에 동성은 결혼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군주가 동성을 취하였으니 마땅히 오희라 칭해야 하거늘 휘하여 맹자라 한 것이다
[三]集解孔安國曰:「以司敗之言告也. 諱國悪,禮也. 聖人之道弘,故受之為過也.」
집해 공안국 왈: 사패의 말은 일러줌이고 나라의 잘못을 휘함은 예이다 성인의 도는 커서 이를 잘못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梁鱣[一]字叔魚. [二]少孔子二十九歳.
양전의 자는 숙어이다 공자보다 29세 어리다
[一]集解一作「鯉」.
집해: 일부에는 「鯉」로 쓰여있다
[二]集解孔子家語曰斉人. 索隠家語雲斉人,字叔魚也.
집해 공자가어 왈:齊나라 사람이다
색은: 가어에 이르길 제나라 사람이며 字는 숙어이다
顔幸字子柳. [一]少孔子四十六歳. [二]
안행의 자는 자류이다 공자보다 46세 어리다
[一]集解鄭玄曰魯人. 索隠家語云:「顔幸,字柳.」按:禮記有顔柳,或此人.
집해 정현 왈: 노나라 사람이다
색은: 가어에 이르길 안행의 字는 류이다
살피건데 예기에 안류가 있는데 혹 이 사람인가 한다
[二]索隠家語云「少三十六歳」,與鄭玄同.
색은: 가어에 전하기를 36세 어리다 하였는데 정현과 같다
冉孺字子魯,[一]少孔子五十歳.
염유의 자는 자노이다 공자보다 50세 어리다
[一]集解一作「曾」. 索隠家語字子魯,魯人. 作「冉儒」.
집해 : 한편에는 曾으로 되어 있더
색은: 가어에 字는 자노로 되어 있으며 노나라 사람이다 「冉儒」로 쓰여있다
曹卹字子循. 少孔子五十歳. [一]
조휼의 자는 자순이다 공자보다 50세 어리다
[一]索隠曹卹少孔子五十歳. 家語同.
색은: 조휼은 공자보다 50세 어리다 가어에도 같다
伯虔字子析,[一]少孔子五十歳.
백건의 자는 자석이다 공자보다 50세 어리다
[一]索隠伯虔字子折. 家語作「伯処字子晳」,皆転寫字誤,未知適従. 正義家語云「子哲」.
색은: 백건의 자는 자석이다 가어에는 子晳으로 되어있다 옮겨지면서 잘못 쓰여진 듯한데 올바른 것을 알 수 없다
정의 가어에 이르길 「子哲」이라 하였다
公孫竜字子石. [一]少孔子五十三歳.
공손룡의 자는 자석이다 공자보다 53세 어리다
[一]集解鄭玄曰楚人. 索隠家語或作「寵」,又云「礱」,七十子図非「礱」也. 按:字子石,則「礱」或非謬. 鄭玄雲楚人,家語衛人. 然荘子所云「堅白之談」,則其人也. 正義家語雲衛人,孟子雲趙人,荘子云「堅白之談」也.
집해 정현 왈: 楚 사람이다
색은: 가어에 혹 「寵」,혹은「礱」으로 쓰여 있다,70자도에는 「礱」가 아니다.
살피건데:字는 자석이며「礱」는 잘못이 아닌듯 하다 정현이 楚나라 사람이라 하였고 가어에 衛나라 사람이라 하였다 장자에 언급된「堅白之談」의 그 사람이다.
정의: 가어에 衛나라 사람이다,맹자는 趙나라 사람이다 하였다
自子石已右三十五人,顕有年名及受業見於書傳. 其四十有二人,無年及不見書傳者紀於左:[一]
여기까지 자석에 이르는 35인은 나이와 이름 및 업을 전수 받음이 서책과 전에 드러나는데 이제부터의 42명은 나이 및 서책과 전에 드러나는 바가 없어 아래에 기록한다
[一]索隠按:家語此例唯有三十七人. 其公良孺、秦商、顔亥、叔仲會四人,家語有事跡,史記闕. 然自公伯遼、秦冉、鄡単三人,家語不載,而別有琴牢、陳亢、県亶當此三人數,皆互有也. 如文翁図所記,又有林放、蘧伯玉、申棖、申堂,倶是後人所以見増益,於今殆不可考.
색은: 공자가어에 이렇게 거론된 이가 단지 37인이다 공량유, 진상, 안핵, 숙중회 등 4인은 공자가어에 사적이 있으되 사기에 빠졌다. 그런데 공백료부터 진염, 교단 3인은 공자가어에 올라있지 않고 별도로 금뇌, 진항, 현단당 이 3인을 헤아리고 있는데 이들은 사기에도 올라있다. 문옹도 같은 곳에 기록된 바에는 또한 임방, 거백옥, 신장, 신당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후세 사람들이 더한 것이며 이제 고증하기는 어렵다
冉季字子産. [一]
염계의 자는 자산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 索隠家語冉季字産. 正義家語雲冉季字子産.
公祖句茲字子之. [一]
공손구자의 자는 자지다
[一]索隠句音鈎. 正義句音鈎.
秦祖字子南. [一]
진조의 자는 자남이다
[一]集解鄭玄曰秦人. 索隠家語字子南.
漆雕哆[一]字子斂. [二]
칠조치의 자는 자는 자렴이다
[一]集解音赤者反. 索隠赤者反. 家語字子斂.
[二]集解鄭玄曰魯人.
顔高字子驕. [一]
안고의 자는 자교이다
[一]索隠家語名産. 孔子在衛,南子招夫子為次過市,時産為禦也. 正義孔子在衛,南子招夫子為次乗過市,顔高為禦.
漆雕徒父. [一]
칠조도보
[一]索隠家語字固也.
색은에서 공자가어에 자는 고라 하였다
壌駟赤字子徒. [一]
양사적의 자는 자도이다
[一]集解鄭玄曰秦人. 索隠家語字子徒者.
商沢. [一]
상역
[一]集解家語曰字子季. 索隠家語字季.
石作蜀字子明. [一]
석작촉의 자는 자명이다
[一]索隠家語同.
任不斉字選. [一]
임부제의 자는 선이다
[一]集解鄭玄曰楚人. 索隠家語字子選也.
公良孺字子正. [一]
공량유의 자는 자정이다
[一]集解鄭玄曰:「陳人,賢而有勇.」索隠家語作「良儒」. 陳人,字子正,賢而有勇. 孔子周遊,常以家車五乗従孔子遊. 家語在三十五人之中. 亦見系家,在三十二人不見,蓋傳之數亦誤也. 鄒誕本作「公襄儒」. 正義孔子周遊,常以家車五乗従孔子. 孔子世家亦雲語在三十五人中,今在四十二人數,恐太史公誤也.
後処字子裏. [一]
후처의 자는 자리이다
[一]集解鄭玄曰斉人. 索隠家語同也.
秦冉字開. [一]
진염의 자는 개이다
[一]正義家語無此人. 王粛家語此等惟三十七人,其公良孺、秦商、顔亥、仲叔會四人,家語有事跡,而史記闕. 公伯寮、秦冉、鄡単,家語不載,而別有琴牢、陳亢、県亶三人.
公夏首字乗. [一]
공하수의 자는 승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 索隠家語同也.
奚容箴字子皙. [一]
해용잠의 자는 자석이다
[一]索隠家語同也. 正義衛人.
公肩定字子中. [一]
공견정의 자는 자중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 或曰晉人. 索隠家語同也.
顔祖字襄. [一]
안조의 자는 양이다
[一]索隠家語無此人也. 正義魯人.
鄡[一]単[二]字子家. [三]
교선의 자는 자가이다
[一]集解苦尭反.
[二]集解音善.
[三]集解徐広曰:「一云『鄔単』. 钜鹿有鄡県,太原有鄔県.」索隠鄡音苦尭反,単音善,則単名. 徐広云「一作『鄔単』,钜鹿有鄡県,太原有鄔県」. 家語無此人也.
句井疆. [一]
구정강
[一]集解鄭玄曰衛人. 正義句作「鈎」.
罕父黒字子索. [一]
한보흑의 자는 자삭이다
[一]集解家語曰:「罕父黒字索.」索隠家語作「罕父黒字索」.
秦商字子丕. [一]
진상의 자는 자비이다
[一]集解鄭玄曰楚人. 索隠家語:「魯人,字丕慈. 少孔子四歳. 其父堇,與孔子父紇倶以力聞也.」正義家語云:「魯人,字丕茲.」
申黨字周. [一]
신다의 자는 주이다
[一]索隠家語有申繚,字周. 論語有申棖. 鄭玄云「申棖,魯人,弟子也」. 蓋申堂是棖不疑,以棖堂聲相近. 上又有公伯繚,亦字周. 家語則無伯繚,是史記述伯繚一人者也. 正義魯人.
顔之僕字叔. [一]
안지복의 자는 숙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 索隠家語並同.
栄旂字子祈. [一]
영기의 자는 자기이다
[一]索隠家語栄祈字子顔也.
県成字子祺. [一]
현성의 자는 자기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 索隠家語作「子謀」也. 正義県音玄.
左人郢字行. [一]
좌인령의 자는 행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 索隠家語同也.
燕伋字思. [一]
연급의 자는 사이다
[一]索隠家語同也.
鄭國字子徒. [一]
정국의 자는 자도이다
[一]索隠家語薛邦字徒,史記作「國」而家語稱「邦」者,蓋避漢祖諱而改. 「鄭」與「薛」,字誤也. 正義家語雲薛邦字徒,史記作「國」者,避高祖諱. 「薛」字與「鄭」字誤耳.
秦非字子之. [一]
진비의 자는 자지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
施之常字子恆.
시지상의 자는 자항이다
顔噲字子聲. [一]
안쾌의 자는 자성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
歩叔乗字子車. [一]
보숙승의 자는 거이다
[一]集解鄭玄曰斉人.
原亢籍. [一]
원항적
[一]集解家語曰:「名亢,字籍.」索隠家語名亢字籍. 正義亢,作「■」,仁勇反.
집해에서 공자가어에 이름이 항이고 字가 籍이다
樂欬字子聲. [一]
악해의 자는 자성이다
[一]索隠家語同也. 正義魯人.
廉絜字庸. [一]
염결의 자는 용이다
[一]集解鄭玄曰衛人. 索隠家語同也.
叔仲會字子期. [一]
숙중회의 자는 자기 이다
[一]集解鄭玄曰晉人. 索隠鄭玄雲晉人. 家語「魯人. 少孔子五十四歳. 與孔璿年相比,二孺子倶執筆迭侍於夫子,孟武伯見而放之」是也.
顔何字冉. [一]
안하의 자는 염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 索隠家語字稱.
狄黒字皙. [一]
적흑의 자는 석이다
[一]索隠家語同.
邦巽字子斂. [一]
방손의 자는 자렴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 索隠家語「巽」作「選」,字子斂. 文翁図作「國選」,蓋亦避漢諱改之. 劉氏作「邽巽」,音圭,所見各異.
孔忠. [一]
공충
[一]集解家語曰:「忠字子蔑,孔子兄之子.」索隠家語云「忠字子蔑,孔子兄之子」也.
집해에서 가어 왈 충의 자는 자멸이며 공자의 형의 아들이다
公西輿如字子上. [一]
공서여여의 자는 자상이다
[一]索隠家語同.
公西葴字子上. [一]
공서침의 자는 자상이다
[一]集解鄭玄曰魯人. 索隠公西箴字子上,家語子上作「子尚」也.
太史公曰:學者多稱七十子之徒,譽者或過其実,毀者或損其真,鈞之未睹厥容貌,則論言弟子籍,出孔氏古文近是. 餘以弟子名姓文字悉取論語弟子問並次為篇,疑者闕焉.
나 태사공은 말하노니 학자들이 많이들 칭하길 70명의 공자의 제자라 하는데 기리고자 하는 이는 그 실질보다 넘치게 말하고 폄훼하는 자는 그 사실보다 줄이고자 한다 눈으로 보지 못한 바의 그 용모를 그릇되지 않게 말하는 것은 제자의 기록된 사실을 논하여 말하는 것인데 공씨의 고문에서 나온 바가 사실에 가깝다 나는 제자들의 이름과 字를 모두 논어의 질문에서 취하여 아울러 차례로 이 편을 만들었으며 의심스러운 것은 제외하였다
[索隠述賛]教興闕里,道在郰郷. 異能就列,秀士升堂. 依仁遊藝,合志同方. 將師宮尹,俎豆琳瑯. 惜哉不霸,空臣素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