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牧民心書) 부임(赴任) 제2조 치장(治裝).
2. 동행(同行)이 많아서는 안 된다.
자제 한 사람이 따라가면 좋을 것이다.
요즈음 풍습에 소위 책객(冊客)주1)이라는 것이 있어 회계를 맡고 있는데, 이는 예(禮)가 아니니 없애야 한다.[다음 병객조(屛客條)에 자세히 나온다.]
만약 자기의 글솜씨가 거칠고 졸렬하면, 한 사람쯤 데리고 가서 서기(書記)의 일을 맡기는 것은 좋다.
겸인(傔人)주2)은 관부(官府)의 큰 좀이니, 절대로 데리고 가서는 안 된다. 만약 공이 많은 자가 있으면, 후하게 줄 것을 약속하면 된다.
노복(奴僕)을 데리고 가서는 안 된다. 다만 한 사람쯤은 내행(內行)주3) 때 따라오도록 한다.
총괄하여 말하면 자제 이하는 관속(官屬)들과 접촉하여서는 안 된다. 신영(新迎)주4)하는 아전이 올라오는 날에 수리(首吏)주5)를 불러 약속을 하되, “자제 이하는 얼굴은 대면할 수 있지만, 말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자제들이 말을 걸면 너희들이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죄는 자제들에게 있다. 그렇지 않고 우연히 말 한마디라도 건다면 네게 죄가 있다. 아전과 하인들이 말을 거는 것을 금하지 못하면 네게 죄가 있다.” 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에 자기 사람을 단속하여 금법을 법하지 못하도록 하고, 범하는 자가 있거든 용서없이 꼭 죄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
허자(許鎡)주6)가 가선령(嘉善令)주7)이 되었는데 청렴하고 강직하여, 부임할 때 겨우 아들 하나, 종 하나를 데리고 갔다. 겨울철에 그 아들이 추위에 떨면서 공에게 밖에 나가서 숯을 구해 오게 해 주기를 청하였더니, 공은 창고에서 나무막대기 한 개를 가져오게 하여 그것을 주면서, “이것을 밟아 굴리면 발이 저절로 따뜻해질 것이다.”
하였다.
살피건대, 이는 너무 각박해서 인정에 가깝지 않으니 본받을 것이 못 된다.
조청헌(趙淸獻)주8)이 성도(成都)주9)로 부임할 때, 거북 한 마리, 학 한 마리를 가지고 갔고, 재임(再任) 때는 그 거북과 학마저 버리고 다만 종 하나뿐이었다. 장공유(張公裕)가 시를 지어 전송하였다.
말은 옛길 알아 오가기에 수월하고 / 馬諳舊路行來滑
거북은 장강에 놓아주어 함께 오지 않았네 / 龜放長江不共流
양계종(楊繼宗)주11)이 가흥지부(嘉興知府)주12)가 되었을 때 종 하나만 데리고 갔으므로 마치 길손 행색 같았다. 임기 9년이 되어도 끝내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왕서(王恕)주13)가 운남(雲南)주14) 지방을 순무(巡撫)하러 갈 때, 종은 데리고 가지 않고 고시(告示)를 써 붙이기를, “집안 하인을 데리고 오고는 싶었으나, 백성들의 원망을 살까 두려웠으므로 늙은 몸을 돌보지 않고 단신으로 온 것이다.” 하니, 모두 향을 피우며 예를 드렸다.
당간(唐侃)주15)이 영풍지현(永豐知縣)주16)이 되어 부임할 때, 처자는 데리고 가지 않고 종 한둘만 데리고 나물밥과 콩국으로 지내니, 오래되매 아전과 백성들이 믿고 복종하였다.
사자양(謝子襄)주17)이 벼슬살이 하되 청렴하고 근신하여, 벼슬살이 30년에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이상은 《명사(明史)》에서 인용하였다.]
[역주]
[주-D001] 책객(冊客) : 고을 수령의 비서(秘書) 사무를 맡아보던 사람으로 관제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사로이 임용하였다. 책방(冊房)이라고도 한다.
[주-D002] 겸인(傔人) : 실내에서 수령의 잔심부름을 맡아보던 사사로운 종이다. 청지기, 또는 겸종(傔從)이라고도 한다.
[주-D003] 내행(內行) : 부인들의 행차이다.
[주-D004] 신영(新迎) : 도나 군의 장교나 아전이 새로 도임하는 감사나 수령을 그 집에 가서 맞아오는 일을 가리킨다.
[주-D005] 수리(首吏) : 으뜸되는 아전으로 일반적으로 이방(吏房)을 가리키나, 때에 따라서는 나온 아전 중에서 으뜸되는 아전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D006] 허자(許鎡) : 명(明)나라 목종(穆宗) 때 석병(石屛) 사람으로 자는 국기(國器)이다. 성격이 강직하였다. 강서(江西)를 순안(巡按)할 때에 순무(巡撫)에게 거슬려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왔다. 《蘭臺法鍳錄 18》 《昨非菴日纂 3集 氷操》 참조.
[주-D007] 가선령(嘉善令) : 가선은 명(明)나라 때 설치된 현의 이름인데, 절강성(浙江省)에 속하였다. 영(令)은 고을의 장(長)이다.
[주-D008] 조청헌(趙淸獻) : 송(宋)나라 서안(西安) 사람 조변(趙抃)으로 청헌(淸獻)은 그의 시호이다. 자는 각도(閣道), 호는 지비자(知非子)ㆍ고재거사(高齋居士)이다.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있을 적에 권력 있는 사람도 피하지 않고 탄핵하니, 당시에 철면어사(鐵面御史)라 칭하였다. 익주 지사(益州知事)ㆍ성도지부(成都知府) 등 외직으로 나가 치적이 많았고, 참지정사(參知政事)ㆍ태자소보(太子少保)를 역임하였다. 《宋史 卷316 趙抃列傳》 《宋元學案 卷12 濂溪學案下》 《昨非菴日纂 1集 內省》 참조.
[주-D009] 성도(成都) : 부(府)의 이름으로 사천성(四川省)의 수도이다.
[주-D010] 장공유(張公裕) : 미상.
[주-D011] 양계종(楊繼宗) : 명(明)나라 양성(陽城) 사람으로 자는 승방(承芳), 시호는 정숙(貞肅)이다. 벼슬은 형부주사(刑部主事)ㆍ가흥지부(嘉興知府)ㆍ호광안찰사(湖廣按察使)ㆍ첨도어사(僉都御史)를 역임하였다. 《明史 卷159 楊繼宗列傳》
[주-D012] 가흥지부(嘉興知府) : 가흥은 부(府)의 이름으로 절강성(浙江省)에 속해 있었다. 지부(知府)는 관명으로 부의 장관(長官)이다. 송대(宋代)에 부(府)에 지사(知事)를 두었는데 지부의 명칭이 이때부터 비롯되었으며, 명(明) 때에 비로소 부(府)마다 지부 1인을 정하였다. 지현(知縣)ㆍ지주(知州)의 명칭도 있다.
[주-D013] 왕서(王恕) : 명나라 삼원(三原) 사람으로 자는 종관(宗貫), 호는 개암(介菴)ㆍ석거(石渠), 시호는 단의(端毅)이다. 벼슬은 순무운남(巡撫雲南), 병부(兵部)ㆍ이부(吏部)의 상서(尙書)를 지냈다. 저서에 《완역의견(玩易意見)》ㆍ《석거의견(石渠意見)》ㆍ《왕단의주의(王端毅奏議)》ㆍ《왕단의문집(王端毅文集)》 등이 있다. 《明史 卷182 王恕列傳》 《明儒學案 卷9 三原學案》 《昨非菴日纂 1ㆍ2集 氷操》 참조.
[주-D014] 운남(雲南) : 부(府)의 이름으로, 명나라 때 두었다. 운남성(雲南省) 곤명현(昆明縣)에 있다.
[주-D015] 당간(唐侃) : 명(明)나라 단도(丹徒) 사람으로 자는 정직(廷直)이다. 벼슬은 영풍지현(永豐知縣)ㆍ무정 지주(武定知州)를 지내고 형부 주사(刑部主事)에 이르렀다. 효도로 이름났다. 《明史 卷281 循吏列傳 唐侃》
[주-D016] 영풍지현(永豐知縣) : 영풍은 현의 이름으로 지금의 강서성(江西省)에 있었다. 지현(知縣)은 관명으로 한 현의 우두머리. 지현의 칭호는 당대(唐代)에 벌써 시작하였다. 송 태종(宋太宗)이 현령에 무능한 사람이 많으므로 조관(朝官)이나 경관(京官)을 파견하여 현의 정치를 관장하게 하였는데 그것을 지현사(知縣事)라 하였다. 즉 현령은 아니면서 현의 일을 맡았다는 뜻이다. 명(明)ㆍ청(淸) 때에 관명이 되었다. 지부(知府)ㆍ지주(知州)의 명칭이 있다.
[주-D017] 사자양(謝子襄) : 명나라 신감(新淦) 사람으로 이름은 연(兗), 자(字)가 자양(子襄)인데 자로 행세하였다. 청전지현(靑田知縣)ㆍ처주 지부(處州知府)를 역임하였는데 치적이 있었고, 반졸(叛卒) 오미(吳米)를 잡은 공이 있었다. 《明史 卷281 循吏列傳 謝子襄》
牧民心書
治裝 赴任 第二條
同行者。不可多。
子弟一人。宜從行。
〇近俗有所謂冊客。以掌會計。非禮也。宜除之。詳下屏客條。
若我之札翰荒拙。宜携一客。以掌書記。
〇傔人者。官府之大蠹也。切不可携。如有功多者。宜約厚贈。
〇奴僕不可携。只許一箇。內行時隨來。
〇總之。子弟以下。不可與官屬接語。新迎吏來之日。召首吏約之曰。
子弟以下。可以接面。不可以接語。子弟有語。汝不得不答。罪在子弟。其餘偶一接語。汝則有罪。吏隷接語。汝不能禁。汝則有罪。
〇乃飭我人。毋得犯禁。其有犯者。必罪無赦。
許鎡爲嘉善令。廉介剛直。來任只携一子一僕。冬月。其子畏寒。乞公從外索炭。公命庫中。取一木棍。與之曰。踏此旋轉。足自溫矣。〇按此太刻薄。不近情。不可效也。
趙淸獻任成都。携一龜一鶴。其再任也。屏去龜鶴。只一蒼頭。張公裕送以詩云。馬諳舊路行來滑。龜放長江不共流。
楊繼宗嘉興知府。止帶蒼頭一人。如旅寓然。考滿九載。終不以家累相隨。
王恕撫雲南。不挈僮僕。其告示有云。欲携家僮隨行。恐致子民嗟怨。是以不恤衰老。單身自來。人皆焚香禮之。
〇唐侃知永豐縣。之官。不携妻子。獨與一二僮僕。飯蔬豆羹以居。久之。吏民信服。
〇謝子襄爲吏廉謹。歷官三十年。不以家累自隨。已丈明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