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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색[思 索]

【청성잡기(靑城雜記)】제3권 / 성언(醒言) 29. 〔거지들의 연회〕

작성자씨알|작성시간26.06.06|조회수34 목록 댓글 0

         성언(醒言) 29.〔거지들의 연회〕

 

 

도성 안에 모여 사는 거지들이 해마다 항상 수백 명에 이르렀다. 그들의 생활 규칙은 거지들 중에서 한 명을 뽑아 왕초로 삼고, 기거동작과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것을 그의 명령에 따라 하여 감히 조금도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었다. 아침저녁으로 거지들은 구걸한 음식을 모아 왕초에게 공경히 바치고, 왕초는 태연히 앉아 있었다. - 서울에 왕초 한 명이 있고, 서문시(西門市)와 이현시(梨峴市)에 각각 인을당(人乙堂)이 한 채씩 있어 두 왕초가 나누어 거처하면서 뭇 거지들을 맡아 관리하고 지휘하였는데, 사람들이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

 

영조(英祖) 경진년(1760, 영조 36)에 큰 풍년이 들자, 임금께서 서울과 지방에서 잔치를 베풀어 즐기라고 명하셨다. 용호영(龍虎營)의 악대(樂隊)는 오군영(五軍營) 중에 으뜸이었는데, 그중에 이씨(李氏) 성을 가진 자가 우두머리로 그를 패두(牌頭)라고 불렀다. 이 패두는 평소 호걸이라고 소문이 나서 도성의 창기(娼妓)들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당시에는 금주령(禁酒令)이 매우 엄격하여 상하(上下)의 연회에 오로지 기녀와 음악만을 숭상하였으므로 용호영의 악대를 데려다가 음악을 연주하면 훌륭한 잔치이고, 그렇지 못하면 수치로 여겼다.

이씨는 연회에 자주 초청되어 피곤하였으므로 때로는 병을 핑계 대고 집에 있기도 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떤 거지가 찾아와서 부탁하였다.

“거지 왕초 아무개가 삼가 패두님께 아룁니다. 다행히 국가의 명령으로 온 백성들이 함께 즐기게 되었으니, 저희가 비록 거지이지만 또한 국가의 한 백성입니다. 아무 날에 여러 거지들이 모여 연융대(鍊戎臺)에서 잔치를 하려 하니, 수고로우시겠지만 패두님께서 음악을 도와주신다면 저희들은 감히 그 은덕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씨가 매우 화를 내며 꾸짖기를,

“서평군(西平君 이요(李橈) )과 낙창군(洛昌君 이탱(李樘) )의 부름에도 내 가지 않았는데, 어찌 너희 거지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한단 말이냐.”

하고는 종을 불러 쫓아내니, 거지가 웃으면서 물러갔다. 이씨는 더욱더 분노하며 비통해했다.

“나는 악대 노릇이 이처럼 천한 직업인 줄은 생각지 못하였다. 거지까지 나를 부리려 하다니.”

잠시 후 어떤 사람이 와서 매우 거칠게 문을 두드리기에 이씨가 나가 보니,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으나 몸은 매우 건장한 이가 있었는데 바로 거지 왕초였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이씨를 노려보며 말했다.

“패두님의 머리통은 구리로 되었고 집은 물로 지었습니까? 우리 무리 수백 명이 성안에서 흩어져 돌아다니면 순라군(巡邏軍)도 묻지 않습니다. 저희들이 몽둥이 하나에 횃불 하나씩 들고 오면 패두님의 무사함을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하여 우리를 이토록 깔보십니까?”

이씨는 예전부터 악대를 따라 사람들과 가까이 어울려서 거지들의 생활상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는 참으로 사내대장부일세. 내가 잘 몰라서 오해했네. 지금 바로 자네 말대로 하겠네.”

그러자 거지 왕초가 이렇게 말하였다.

“내일 아침 식사 후에 공(公)은 아무 기생 아무 악공과 함께 총융청(摠戎廳) 앞에 있는 집으로 오셔서 음악을 크게 연주하시되, 부디 시간을 엄수해 주십시오.”

이씨가 웃으며

“알았네.”

하고 대답하자, 왕초는 한참을 응시하다가 눈도장까지 찍고 갔다. 이씨는 곧 자신의 무리를 모두 부르되 거문고와 피리, 비파와 북 등을 모두 새것으로 준비해 가지고 오게 하였으며, 명기(名妓) 몇몇도 모두 불렀다. 이들이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물었으나 이씨는 웃으며,

“일단 나를 따라와 봐라.”

하였다. 이씨가 약속한 곳에 이르러,

“음악을 연주하라.”

하자 악공들은 모두 음악을 연주하고, 기녀들은 모두 춤을 추었다. 이때 짚옷을 걸치고 새끼로 허리띠를 맨 거지들이 떼 지어 춤을 추며 몰려들었는데, 마치 개미떼가 개미집에 모이는 것 같았다. 이들은 춤이 멈추면 노래하고, 노래가 멈추면 다시 춤을 추며,

“좋을시고, 좋을시고! 우리에게도 이처럼 좋은 날이 있구나.”

하며 즐거워하였다. 거지 왕초가 높은 자리에 앉아 내려다보며 매우 만족해하니, 기녀들이 모두 낄낄대며 계속 웃어 댔다. 이씨가 눈짓으로 못하게 하며 말했다.

“웃지 마라. 저 왕초는 나도 죽일 수 있는데 하물며 너희들이겠느냐.”

해질 무렵에 뭇 거지들이 차례에 따라 앉아서는 각기 동냥자루를 뒤져 고기 한 덩이를 꺼내기도 하고 떡 한 덩이를 꺼내기도 하니, 모두 잔칫집에서 구걸해 온 것들이었다. 이 음식들을 깨진 기왓장에 담고 풀이나 짚으로 엮어 만든 그릇에 받쳐서 잡다하게 올리며,

“저희들이 잔치를 열었기에 감히 여러분께 먼저 올립니다.”

하자, 이씨가 웃으며 사양하였다.

“내가 그대들을 위하여 음악은 연주하겠지만 그대들이 주는 음식은 받을 수 없네.”

거지들은 웃으면서 절하며,

“여러분은 귀인이니 어찌 거지의 음식을 맛보려 하시겠습니까. 당신을 위하여 다 먹겠습니다.”

하였다. 이씨는 더욱더 기생들에게 춤추게 하고 악공들에게 연주하게 하여 흥을 돕게 하였는데, 잔치가 끝나자 여러 거지들이 다시 일어나 춤을 추었다.

잠시 후에 또 깨진 과일과 문드러진 육포를 꺼내어 기생들에게 주면서,

“이 수고에 보답할 길이 없으니, 이것을 가져다가 여러분의 어린아이와 어린 손자에게 주십시오.”

하였다. 기생들이 모두 사양하니, 거지들이 또 깨끗이 먹어 치우고 나서 절하며 감사의 말을 하였다.

“여러분 덕택에 배불리 먹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거지 왕초가 앞으로 나와 절하며 말하기를,

“저희들은 이제 저녁밥을 구걸해야 합니다. 감히 여러분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훗날 길에서 뵙지요.”

하고 모두 흩어져 가 버렸다. 기생들은 모두 배도 고프고 피곤하여 이씨에게 불평을 해댔는데, 이씨는 감탄하며 말했다.

“내 오늘에서야 호쾌한 남자를 보았도다.”

그 후 이씨는 거지를 마주칠 때마다 마음속으로 그때 일을 떠올렸는데, 끝내 그 거지 왕초는 만나지 못하였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달문전(達門傳)과 같은 맥락의 글이라 하겠다.

 

[주-C001] 성언(醒言) : 사람을 깨우치는 말이란 뜻으로, 총 3권에 인물평 및 일화, 사론(史論), 필기(筆記), 한문단편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주-D001] 용호영(龍虎營) : 조선 시대 국왕을 호위하던 친위 군영으로 내삼위(內三衛), 금군청(禁軍廳)이라고도 한다.[주-D002] 오군영(五軍營) : 임진왜란 이후에 서울과 그 외곽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다섯 군영으로 훈련도감(訓鍊都監)ㆍ어영청(御營廳)ㆍ금위영(禁衛營)은 서울 방어를 위한 중앙 군영이며, 총융청(摠戎廳)과 수어청(守禦廳)은 서울 외곽 방어를 담당하였다.

[주-D003] 패두(牌頭) : 한 패의 우두머리란 뜻으로 원래 장용위(壯勇衛)의 소속 군사 50명을 인솔하는 군인을 지칭한다.[주-D004] 연융대(鍊戎臺) :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新營洞)에 있던 돈대 이름으로, 연산군(燕山君) 11년(1505)에 창의문(彰義門) 밖 경치 좋은 곳에 돈대를 쌓고 탕춘대(蕩春臺)라 하였다가 영조 30년(1754)에 연융대로 고쳤다.[주-D005] 달문전(達門傳) : 박지원의 한문 단편 소설 광문자전(廣文者傳)을 말한다. 달문은 광문(廣文)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거지들의 패두로 외모는 볼품없지만 의리가 있고 호방한 기상이 있었다고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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