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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색[思 索]

【청성잡기(靑城雜記)】제3권 / 성언(醒言) 30. 〔도둑의 개과천선〕

작성자씨알|작성시간26.06.08|조회수29 목록 댓글 0

                            성언(醒言) 30. 〔도둑의 개과천선

 

 

공자께서 “천하에 도(道)가 있으면 도둑이 제일 먼저 변해서 좋은 사람이 된다.” 하셨다. 도둑은 모두 성기(性氣)를 지니고 있는 자이니, 어찌 스스로 그 잘못을 모르겠는가. 다만 깨우쳐 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니, 착한 마음이 한번 일어나면 그 변화의 속도는 보통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다.

낙정(樂靜) 조석윤(趙錫胤)이 아직 관직에 오르지 않았을 적에 일이 있어 도성에 들어가면 한 위항(委巷) 사람의 집에 머물렀다. 마침 그 집에 들렀더니 주인이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 노부부가 불사(佛事)가 있어 도성을 나가 하룻밤 자고 와야 하는데, 과년한 딸 혼자 남아 있고 집을 지킬 만한 사람이 없던 차에 다행히 공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바깥채의 자물쇠를 주고 떠났다.

그날 밤 낙정이 홀로 사랑채에 묵고 있는데, 주인집 딸이 언문책을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이 깊어지자 음심(淫心)이 일어남을 억제할 수 없어 안채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곧 멈추었고, 다시 마음의 동요가 일자 이번에는 안채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가 마당에 반쯤 이르렀다가 돌아왔다. 세 번째는 거의 그녀의 처소 안쪽 계단까지 미쳤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와서는 스스로 탄식하기를,

“내 반평생 지켜 온 지조가 오늘 밤에 다 무너지는구나!”

하고, 곧 주인이 주고 간 바깥채의 자물쇠를 가지고 안채로 통하는 문을 잠그고는 열쇠를 문밖으로 던져 버리고 잠을 청하였다.

새벽에 일어나서 그 열쇠를 주우려고 하였으나 방법이 없어 더욱 스스로 한탄해 마지않았다. 이때 갑자기 창을 두드리며 열쇠를 들여보내 주는 자가 있었다. 낙정이 놀라면서

“너는 누구냐?”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저는 도둑입니다. 이 집에 재물이 많음을 알고 밤마다 엿보고 있었으나 노부부가 잠이 적어 틈을 탈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들이 외출하는 것을 보고 몰래 들어와서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공이 간특한 마음으로 주인 딸의 방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도둑인 저도 의기(義氣)가 있는지라 공의 행위를 의롭지 않다 여기고 ‘만약 이 여인을 범한다면 내 기어이 공을 찔러 죽이고 달아나리라.’ 하고 칼을 뽑아 든 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공이 갑자기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가서 열쇠를 밖으로 던졌습니다. 소인은 저도 모르게 흔연히 감동하여 마음속으로 감탄하기를 ‘나와 저분이 똑같은 사람인데 저분은 이토록 빨리 허물을 고치건만 어찌하여 나는 아직도 도둑질을 하고 있단 말인가. 맹세코 지금부터 나쁜 짓은 버리고 착한 사람이 되겠다.’ 하여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열쇠를 돌려주어 저의 맹세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공께서는 저를 매질하여 제가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낙정이

“나는 지금 너에게 부끄러울 뿐인데 어떻게 너를 매질할 수 있겠느냐.”

하자, 도둑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공께서는 이미 잘못을 고치셨으니 부끄러울 게 뭐 있겠습니까. 그저 아프게 저를 때려서 제가 착한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낙정은 하는 수 없이 그를 몇 대 내리쳤는데, 그때마다 도둑은 두 손을 모아 빌면서

“소인이 제 죄를 압니다.”

하였다.

얼마 후 주인이 돌아와서 물었다.

“밤새 편히 주무셨습니까?”

낙정이 얼굴을 붉히며 사죄하면서

“제가 저 도둑에게 부끄럽습니다.”

하고, 그간의 사정을 자세히 알렸다. 그러자 주인은 웃으며 말하였다.

“도둑도 참으로 어질지만, 저는 본래 공께서 이와 같이 하실 줄 알았습니다.”

도둑은 마침내 낙정을 따라다니며 곁을 떠나지 않고, 낙정이 출입할 때마다 반드시 수행하였다. 그리고 여가가 있으면 신을 삼아 돈으로 바꾸어서 전에 훔쳤던 것을 두루 변상하였다. 낙정이 죽자 도둑은 삼년상을 마치고 떠났다. - 관운장(關雲長)이 진의록(秦宜祿)의 처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조조(曹操)에게 부탁하였고, 범희문(范希文 : 범중엄〈范仲淹〉)이 파양(鄱陽) 기생을 좋아하여 시를 지어 주었다. 이 두 분의 굳건하고 정직함은 천하에 필적할 자가 없는데 여색에 있어서만은 단칼에 끊지 못하였으니, 낙정 같은 자는 어찌 천고에 특출한 인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전혀 마음을 동하지 않았던 조정암(趙靜菴 : 조광조〈趙光祖〉)만은 못하다. -

설봉(雪峯) 허정(許𤊟)은 창해(滄海) 허격(許格)의 조카이다. 그가 길에서 은자(銀子) 100냥을 주워 해가 저물 때까지 그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급히 달려와서 찾는 자가 있어 물어보았더니 바로 그의 은자였다. 그리하여 은자를 돌려주자, 그 주인은 보따리를 풀어 그 반을 쥐여 주었다. 설봉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 은자를 탐내었다면 어찌 네가 반을 주기를 기다렸겠느냐.”

그러자 그가 은자 보따리를 길바닥에 내동댕이치며 큰 소리로 통곡하는 것이었다. 설봉이 깜짝 놀라 그 까닭을 묻자,

“저는 도둑입니다. 은자를 훔쳐 가지고 오다가 술에 취해 길에서 잃어버렸는데, 지금 공께서는 은자가 절로 굴러들어 왔는데도 가지지 않으시니, 저는 어떤 사람이기에 훔친 은자를 여기까지 찾으러 왔단 말입니까. 이 때문에 통곡하는 것입니다.”

하니 설봉이 말하였다.

“네가 너의 잘못을 아느냐? 안다면 이것은 매우 쉬운 일이니, 그 은자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마라.”

도둑은 즉시 이 말대로 행하고, 마침내 행실을 고쳐 착한 사람이 되었다.

 

[주-C001] 성언(醒言) : 사람을 깨우치는 말이란 뜻으로, 총 3권에 인물평 및 일화, 사론(史論), 필기(筆記), 한문단편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주-D001] 낙정(樂靜) 조석윤(趙錫胤) : 1605 ~ 1655.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윤지(胤之), 호는 낙정재(樂靜齋)이다. 1626년(인조 4)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파방(罷榜)되었고, 1628년 다시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시강원 사서(侍講院司書)를 거쳐 헌납(獻納), 수찬(修撰), 교리(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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