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 하임 엘라자르 스피라 Chaim Elazar Spira(1868~1937)】 「정치적 시오니즘 반대」
랍비 하임 엘라자르 스피라(Chaim Elazar Spira, 1868~1937)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무카체베 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초보수 하시디즘(유대교 신비주의 유파)인 '문카치(Munkacs) 왕조'의 수석 랍비였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종교 저서인 《민차스 엘라자르(Minchas Elazar)》의 이름을 따서 이 명칭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당대 가장 영향력 있으면서도 논쟁적인 유대교 지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1. 가문과 직무
- 세습 구조: 유서 깊은 랍비 가문 출신으로, 1913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뒤를 이어 문카치와 주변 유대인 공동체의 최고 랍비가 되었다.
- 교육 기관 설립: 공동체 내에 '마흐지케 토라'라는 초등학교와 랍비 대학인 '다르케이 트슈바 예시바'를 설립해 후학을 양성했다.
2. 완고한 반(反)시오니즘 성향
- 정치적 시오니즘 반대: 인간의 정치적 힘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재건하려는 시오니즘(Zionism) 운동에 격렬히 반대했다. 그는 오직 메시아의 도래만이 유대인의 구원과 국가 회복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 아구다트 이스라엘 비판: 정통파 유대교 정치 조직인 '아구다트 이스라엘'마저도 세속주의와 타협한다는 이유로 강하게 비판했다.
3. 신비주의와 역사적 일화
- 예루살렘 여정과 알판다리와의 만남: 1930년, 그는 메시아의 도래를 앞당기기 위한 영적 논의를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수백 세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 거물 카발라(유대 신비주의) 학자 솔로몬 엘리에저 알판다리를 만나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 딸의 거대한 결혼식: 1933년 열린 그의 딸 에스더의 결혼식에는 전 유럽에서 2만 명이 넘는 하객이 몰려들었으며, 축제가 7일 동안 지속되어 당시 유럽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4. 사후와 유산
- 가문의 종교적 맥: 그가 1937년에 사망한 후 사위인 바루흐 라비노비치가 직위를 승계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의 박해를 피해 홀로코스트 확산 전 팔레스타인으로 탈출했다.
- 현재: 오늘날 문카치 하시디즘 가문은 그의 손자인 모셰 라이브 라비노비치 랍비에 의해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는 그가 생전에 조성한 주거 지역인 '바테이 문카치(Batei Munkacs)'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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