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진달래서정

【랍비 하임 엘라자르 스피라 Chaim Elazar Spira(1868~1937)】「정치적 시오니즘 반대」

작성자씨알|작성시간26.06.18|조회수9 목록 댓글 0

【랍비 하임 엘라자르 스피라 Chaim Elazar Spira(1868~1937)】 「정치적 시오니즘 반대」

 

랍비 하임 엘라자르 스피라(Chaim Elazar Spira, 1868~1937)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무카체베 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초보수 하시디즘(유대교 신비주의 유파)인 '문카치(Munkacs) 왕조'의 수석 랍비였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종교 저서인 《민차스 엘라자르(Minchas Elazar)》의 이름을 따서 이 명칭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당대 가장 영향력 있으면서도 논쟁적인 유대교 지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1. 가문과 직무

  • 세습 구조: 유서 깊은 랍비 가문 출신으로, 1913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뒤를 이어 문카치와 주변 유대인 공동체의 최고 랍비가 되었다. 
  • 교육 기관 설립: 공동체 내에 '마흐지케 토라'라는 초등학교와 랍비 대학인 '다르케이 트슈바 예시바'를 설립해 후학을 양성했다. 

2. 완고한 반(反)시오니즘 성향

  • 정치적 시오니즘 반대: 인간의 정치적 힘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재건하려는 시오니즘(Zionism) 운동에 격렬히 반대했다. 그는 오직 메시아의 도래만이 유대인의 구원과 국가 회복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 아구다트 이스라엘 비판: 정통파 유대교 정치 조직인 '아구다트 이스라엘'마저도 세속주의와 타협한다는 이유로 강하게 비판했다. 

3. 신비주의와 역사적 일화

  • 예루살렘 여정과 알판다리와의 만남: 1930년, 그는 메시아의 도래를 앞당기기 위한 영적 논의를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수백 세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 거물 카발라(유대 신비주의) 학자 솔로몬 엘리에저 알판다리를 만나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 딸의 거대한 결혼식: 1933년 열린 그의 딸 에스더의 결혼식에는 전 유럽에서 2만 명이 넘는 하객이 몰려들었으며, 축제가 7일 동안 지속되어 당시 유럽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4. 사후와 유산

  • 가문의 종교적 맥: 그가 1937년에 사망한 후 사위인 바루흐 라비노비치가 직위를 승계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의 박해를 피해 홀로코스트 확산 전 팔레스타인으로 탈출했다.
  • 현재: 오늘날 문카치 하시디즘 가문은 그의 손자인 모셰 라이브 라비노비치 랍비에 의해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는 그가 생전에 조성한 주거 지역인 '바테이 문카치(Batei Munkacs)'가 남아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