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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조선】<신앙의 주관 객관 ,성서조선 第 93 號 (1936年 10月)>

작성자씨알|작성시간26.06.10|조회수14 목록 댓글 0

【성서조선】<신앙의 주관 객관 ,성서조선 第 93 號 (1936年 10月)>

 

                                 신앙의 주관 객관

 

성서조선 第 93 號 (1936年 10月)

 

 

무교회적 신앙은 주관적 신앙이라고 말들을 한다. 무교회를 헐뜯는 말로서 이보다 심한 것은 우리가 일찍이 듣지 못하였으나 어떤 의미로서는 이 말이 사실과 다르지 않으니 어찌할 수 없이 주관적 신앙이라는 평가를 우리는 받아들인다.

무교회주의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죽은 자라고 한다. 그것이 주관인가?

사람은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그것이 주관인가?

모든 양식은 얽매는 것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 한다. 그것이 주관인가?’

이에 대하여는 함석헌 군의 해답 (본지 제86,87호 ‘무교회’ 참조) 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이에 우리는 ‘무교회의 주관’이라고 보이는 것과 ‘교회주의자의 객관성’이 농후한 것 몇 가지만 비교하고자 한다.

무교회주의자의 주관적인 하나는 저들이 기도다운 기도를 할 줄 모름에 있다. 저들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니 본 데 없고 들은 데 없고 본받을 데가 없었다. 그러므로 주관적 요소가 농후한 기도를 형식도 없고 높낮이도 없이 적나라하게 주께 아뢴다.

그러나 교회에 출석하여 부흥전도사의 기도를 듣고 고명한 목사 장로의 장강유수 같은 기도를 귀에 익히고 권위 있는 감독의 기도 형태를 본받은 교인들은 기도하는 기술이 극도로 발달하였다.

예술적인 기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억양과 어휘 선택에까지 통일이 있고 일치가 있고 보편성을 띠어서 누가 듣든지 ‘그것은 예수쟁이의 기도로구나’ 하는 객관성을 가진다.

좀더 교회에 충실하였다면 ‘그것은 어느 교파의 기도로구나’, ‘그것은 누구누구의 지도를 받은 기도로구나’ 할 만큼 그 기도의 전체적인 구성과 어휘와 주고받는 말까지 신묘하게도 객관성을 가진다.

이런 경우에 무교회주의자는 주관적이라는 별명이 당연하나 주관적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교회주의자는 성서해석에도 객관성이 풍부하다. 대개 어느 정도를 할인하여 믿어야 한다는 객관적 표준이 있다. 감리교회에 공정한 할인율이 있고 장로교회에도 있고 성결교회에도 있다. 이 공정률에 더하거나 부족한 자는 파문하기 때문에 각기 교파의 성경해석은 실로 ‘객관성’이 있다.

이에 반하여 무교회 신도는 각기 성서를 글자대로만 해석하려고 하고 인간세상의 ‘시세’와 습관을 분간하지 못하니 이른바 ‘주관적’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객관성이 농후한 기독교를 구한다면 개신교의 어느 교파보다도 먼저 천주교로 갈 것이다. 미사도 객관성이요, 기도문도 객관성이요, 회당과 벽화도 객관성이요, 그 어느 것도 객관적 신앙이 아닌 것이 없다.

로마 바티칸 궁으로부터 서울 명동 성당에 이르기까지 일률이요, 통일이요, 누가 보아도 객관적 기독교이다.

이러한 천주교에 대하여 항의(protest)한 개신교도들은 본래 주관적 신앙이라는 비방을 받던 무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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