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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조선】<진리 체득의 길 , 성서조선 第 130 號 (1939年 11月)>

작성자씨알|작성시간26.06.16|조회수15 목록 댓글 0

【성서조선】<진리 체득의 길 , 성서조선 第 130 號 (1939年 11月)>

 

              진리 체득의 길 

                                               성서조선 第 130 號 (1939年 11月)

 

 

예수께서 천국의 성장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마치 씨가 싹이 트고 자라서 이삭이 맺히는 것과 같아서 어느 틈에 성숙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 계절과 순서를 따라 되는 것을 말씀하셨다. 느린 듯하나 빠르고, 빠른 듯하나 느리게.

진리를 몸소 터득하는 길이 또한 마찬가지다. 자연적인 성장을 기다려야 되는 것이지 인위적인 속성만으로는 안 될 뿐더러 도리어 그릇되게 만드는 수도 없지 않다.

그런데 현대인, 특히 똑똑하다는 청년들은 모든 일을 ‘스피드’ 로만 해결하려는 풍조에 물들었다. 진리를 터득하는 일에도 속성이 아니면 못 견디어 한다. 이는 실로 어려운 바람이요,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만사가 모두 스피드화 하여 빠른 것만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진리, 특히 인생의 초석이 되며 능력이 되는 신앙의 진리는 빠르게 되는 것이 아니다. 우주가 유구한 것처럼 유구한 심정으로 탐구하지 않고는 될 수 없는 일이다.

보라, 채소를 재배하는 농부가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려고 싶다고 그렇게 되겠는가. 배추 한 포기나 무 한 뿌리에 필요한 비료를 계산해서 이것을 싹이 틀 당시에 한꺼번에 뿌린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싹은 거름에 절여 죽을 것이다.

경험이 많은 농부는 오줌 한 통을 수십, 수백 배의 물로 희석한다. 이것을 한번, 또 한번 수십 번에 나누어 뿌린다. 같은 일을 거듭하는 것은 결코 그가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우주의 법칙에 통달한 것이다.

얼마 전에 우리 일요 집회에 참석하는 청년으로부터 주문이 있었다. “……야나이하라 식의 토요학교(구체적인 문제를 자유롭게 토의하고 자발적으로 배울 수 있는 스쿨)가 실현된다면 모든 일을 제쳐놓고 솔선하여 참가하겠으나, 현재의 집회는 …….”

야나이하라 다다오(失內原 忠雄) 씨의 토요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자유토의만으로 심원한 진리를 확실하게 움켜 쥘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현대인은 이 자유토의가 진리를 배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알고 있다. 가장 ‘스피드 업’ 한 방법인 줄로 믿고 있으나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옛날 사람은 말이 없는 가운데 진리를 터득하였다. 공자가 사랑하는 제자 안회(顔回)를 보라. 공자의 말을 조금도 거스르지 않아서 어리석게만 느껴졌지만 결국 안회는 어리석지 않았다.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불위여우 퇴이성기사 역족이발 회야불우)

어리석은 것 같아야 한다. 말 없는 가운데 깨달아야 한다.

진리의 세계에는 스피드가 쓸데없다. 말을 잘하는 것도 필요 없다. 낙락장송은 하루나 일년에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이테를 수십 개, 수백 개 더해가면서 유유히 성장한다. 대기만성이라 하였다.

무릇 심원한 진리를 몸소 터득하려는 이는 스스로 어리석은 자같이 할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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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 공자가 제자 안회와 더불어 하루종일 말을 하여도 한마디의 반대도 없었다. “마치 어리석은 자 같았다. 그러나 물러나서 그 사생활을 살펴보니 나의 말을 충분히 행동으로 실천해 내고 있다. 안회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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