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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조선】<교훈의 달콤함, 성서조선 第 18 號 (1930年 7月) >

작성자씨알|작성시간26.06.21|조회수20 목록 댓글 0

    교훈의 달콤함

                                  성서조선 第 18 號 (1930年 7月)

 

 

교훈은 가르칠 것이 아니고 몸소 행할 것이다.

“종 된 자들아 범사에 육에 속한 주인에게 순종하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하나님)를 두려워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엇을 하든지 사람을 섬김으로 하지 말고 주께 섬기는 것처럼 진심을 다하여 하라.” (골 3:22~23)

사도 바울의 이 교훈을 비평하려면 얼마라도 비평할 수 있다. 억측할 수도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봉건시대의 유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정복자가 피정복자에게 하는 공갈이라고 볼 수도 있다. 공장장이나 회사 중역이 노동자들에게 하는 회유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바닷물이 들고 남에 따라 변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진리가 귀중한 까닭은 이를 연구하는 것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비평으로도 매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몸소 실천하는 사람만이 그 한없는 광채를 볼 수 있는 까닭이다.

형제들아, 종 노릇 하는 형제들아, 고용되었든지 초빙되었든지. 개인에게든지, 기관에게든지 심부름 하고 있는 형제들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일하다가 저녁 종소리에 놀라서 잡았던 일을 손에서 놓고 머리를 들어 창 밖을 본 일이 있는가? 석양은 서산에 넘어가고, 산그늘은 길게 드리우고, 동료는 벌써 없다. 나만 홀로 남았다. 내가 하는 일을 주인도 몰라준다. 나는 하루의 일로 ‘녹초’ 가 되었다. 이러 할 때에 그대들은 어떠한가?

하늘을 향하여 넘치는 것은 지나간 하루의 감사뿐이 아니었던가. 미래를 향하여 쌓는 것은 주를 뵙고 칭찬 받을 그날의 소망뿐이 아니었던가. 형제의 가슴에 솟아 올라오는 것은 ‘내일도 또한 힘껏 할 일거리를 주소서’ 하는 기도가 아니었던가.

‘진리는 머리로 들어오지 않고 손과 발로 들어 온다’ 는 서양 격언은 근대인에게 더욱 긴요한 교훈이다. 설익은 이론을 입에 얼버무리는 자들은 모른다.

몸소 자신이 근로하며 종 노릇 하여 본 이는 안다. 사도 바울이 ‘가진 자’ 를 위한 어용학자(御用學者)가 아니었음을. 간단한 교훈이지만 인생의 가장 깊고 가장 높은 진리를 섭렵할 수 있을 것이다.

천국은 거기에 보물을 쌓은 자의 고향이다. 보물이란 금, 은, 보석만이 아니다. 천국에 쌓이는 보화로서는 정직한 근로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가장 적합한 것이 아닐까?

종 된 자의 만족은 그가 한 일을 주인이 알아 줄 때에 있다. 그러나 보답이 없는 땀은 10배 100배의 보물을 천국에 쌓는 것임을 우리가 본다.

천국 이익의 거대함에 비하여 이 땅의 손실은 사소한 것이요, 밝은 햇빛 앞에 촛불일 뿐이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하는 것은 결코 미개한 민중을 교도하는 술책이 아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지혜 있는 사람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사람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셨다. (사 29:14)

늘 보고 듣는, 가장 흔한 교훈으로 지극히 높은 천국에 도달할 수 있다. 위대하도다, 바울 선생이여. 종이면 종으로서 충실하기를 힘쓸 것이며, 노동자면 그 임무를 다 함으로 천국에 보화를 쌓을 것이다.


작은 일에 안달을 내고 급한 것은 많은 경우에 유해무익한 일이다. 또 주인이 신자이거든 그 주인을 ‘형제’ 라고 업신여기지 말라(딤전 6). 선하고 온유한 주인에게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성심껏 순종하라 (벧전 2:18). 이것이 기독교의 교훈이다.

선택함을 입어 근로의 땀으로써 진리의 달콤함을 맛보는 사람은 복 있는 자이다.
(4월 19일 석양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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