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돔(Edom) 민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성경 속에 어느 순간부터 에돔이라는 사람들이 자주 출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예 에돔인들의 멸망을 다룬 오바댜의 말씀까지 존재할정도로 오늘날 우리나, 히브리인들에게나 꽤 특별하게 다뤄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모압이나 암몬 사람들처럼 눈엣가시 정도로 '뭔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에돔인들의 이스라엘-유다인들을 향한 주목적이었기도 했다.
우선 이 불편한 에돔 민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에돔(Edom)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다'라는 뜻을 가졌는데, 이것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별명이자 그의 후손을 가리키는 말로 통칭되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야곱은 친어머니와 함께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었다. 이에 분노한 에서는 야곱을 죽이고자 했고, 야곱 부족은 멀리 삼촌(아람인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갔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고 여차저차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야곱은 에서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에서는 야곱의 불쌍한 꼴을 보며 오히려 측은함을 느껴 모든 과거를 용서해주게 되었다. 이후 에서의 부족은 세일 산으로 무대를 옮겨 그곳의 후리 족(성경에는 호리 족,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히위족일 가능성도 높다; 창 36)들을 몰아내고 정착하여 살게 된다.
세월이 지나 야곱의 부족은 열한 명의 아들들과 함께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가게 되었다. 하지만 에서의 부족은 이집트나 다른 주변국으로 내려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그대로 가나안 땅 남쪽 부근에 자립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2. 에돔(Edom) 민족의 자립과 적대감정
그 후로 4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러갔고, 이스라엘 민족은 몇 만~몇 십만의 거대한 집단이 되어 모세를 통해 이집트 탈출에 성공한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 했던 이들은 왕의 대로라는 비교적 안정한 길을 통해 입성하고자 했는데, 이 왕의 대로 한복판(사해 남부 지방)에는 하필 에서의 후손들, 즉 동족 에돔인들이 자립하여 거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민수기 20장에 보면,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머물고 있을 때 에돔 왕에게 미리 사신을 보내어 "우리가 거기로 지나가도 되겠습니까?" 정중하게 요청한다. 하지만 에돔 왕은 즉시 거절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혹시 우리가 지나가다 물이라도 마시면 그 값을 다 지불해드리겠습니다"하고,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보상까지도 고려한다는 입장을 밝히지만 에돔 왕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 민족의 입성을 거절한다.
아마 4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에서의 후손들이 야곱에 대한 안좋은 기억, 장자권 문제 등 여러가지 민감한 사항들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을 원수 정도 혹은 고깝게 보지 않았던 듯 하다. 사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굉장히 큰 타격이었다. 원래 목적이었던 에돔인들이 살고 있는 왕의 대로를 통해 가나안에 입성한다면 훨씬 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돔으로 인해 먼 길을 우회하여 가야만 했다.
연두색 - 에돔이 허락했다면 빠르게 입성할 수 있었던 비교적 편한 루트
빨간색 - 에돔의 거절로 돌아가야만 했던 광야길 루트
게다가 이미 신명기 말씀(신 2)에서 하나님께서 에돔 인들과 싸우지 말라고 한 부분까지 있었기 때문에 칼을 들 수도 없었다. 매우 분하지만 그냥 참고 돌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몇십년이 걸려 가나안 입성까지 겨우겨우 성공하고, 에돔과 전쟁 없이, 경계를 맞대고 땅 분배까지 잘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에돔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의 적대 감정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3. 에돔(Edom) 민족과 왕국 시대, 멸망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암흑기 사사시대를 다 보내고 인간 왕 사울을 즉위시키자 상황은 급변하게 되었다. 사울 왕은 에돔을 쳐서 무찌르는데 성공했다(삼상 14:47). 다윗 또한 에돔을 쳐서 만 팔천명을 죽이고 수비대까지 두어서 그 땅을 다스렸다(삼상 8:13). 그 때에 에돔 사람들이 다 다윗의 종이 되었다고도 기록되어 있다(삼상 8:14).
그런데 솔로몬의 타락 이후 에돔땅 에서 다시 반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윗 왕 치세 당시, 요압 장군을 통하여 에돔의 모든 남자 장정들을 다 죽였는데 이 학살의 과정에서 애굽으로 도망 가 겨우 살아남은 '하닷'이라는 인물이 후에 다윗과 요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애굽에서 나와 군대를 일으켜 솔로몬의 평생을 괴롭혔다고 한다. 이후에도 에돔인들은 요람 왕 때에도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아마샤와 웃시야 왕에게 다시 정복 당할 때까지 무려 40년 동안 저항했다. 아하스 왕 치세에도 동맹군들과 함께 에시온게벨에서 유다군대를 쫓아내고 독립을 되찾았다고 한다. 하여간 기회만 있으면...
오바댜서에는 이러한 에돔 민족의 비열한 모습과 그에 대한 책망이 강하게 드러난다. 에돔 사람들은 유다의 패망을 즐겁게 여겼으며 도망가는 유다인들을 잡아다가 오히려 바벨론 군에게 되넘겨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행위를 두고 하나님께서는 에돔이 완전히 멸절할 것이라는 말씀을 선포하셨고, 결국 에돔인들도 바벨론에게 완전히 정복당하게 된다.
4. 에돔(Edom)의 종교
에돔의 종교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사무엘상 21장의 말씀으로 볼 때 기본적인 여호와 신앙의 틀에서 벗어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도 에돔의 신에 관해 특별히 언급하신 부분도 없으며 대부분 이스라엘 민족에게 길을 내주지 않은 것, 끊임없이 대적한 것에 관한 책망만이 주를 이루었다.
5. 에돔(Edom)의 문화와 신약 시대 행보
에돔인들의 수도는 페트라(petra)라고 하는 곳이었다. 지금의 요르단 근방에 위치하고 있는데, 오바댜서의 울퉁불퉁한 바위 틈에 살며 높은 곳에 살았다는 말씀처럼 딱 그러해보인다.
에돔인들이 거주하던 땅 남서부지역에는 나바테아라 불리는 민족집단이 살고 있었는데, 큰 충돌없이 이들과 교류를 하며 잘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난 뒤, 에돔이 멸망하게 되자 나바테아(네바티안) 민족은 페트라를 자신들의 수도로 삼고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이후 에돔인들은 브엘세바로 이주하여 살았고, 자연스럽게 유대인들과 동화되며 헬라식 이름 '이두매'불리게 되었다(막 3:8). 이두매인들은 하스모니안 왕조에 의해 바리새파의 반대에도 강제로 유대교로 개종당했다. 이후 약 2만 명의 이두매(에돔) 사람들은 주후 70년경 벌어진 유대전쟁 이후 완벽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두매 출신 유명 인사는 헤롯 왕이 있겠다.
[출처] [1] 에돔(Edom)|작성자 MakariosJ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