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 중궁 仲弓 [염옹 冉雍, BC 522년 ~ ?)
성은 염(?), 이름은 옹(雍), 자는 중궁.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29세 적다. 덕행이 높고 박학하여 공자가 왕이 될 재목이라고 칭찬하자 염옹은 출신이 미천함을 한탄했다. 일찍이 공자를 스승으로 따르면서 열국을 주유하였으나 사적이 분명하지 않다.
중궁(仲弓)은 공자의 제자로서 전기제자가 아닌가 추정된다. 그의 성은 염(冉), 이름은 옹(雍), 자는 중궁(仲弓)이었다. 중궁은 특이하게 『사기』나 『공자가어』 어느 자료에도 나이에 관한 언급이 없다. 또 그가 계씨가의 가재(家宰)가 되었다는 것은 논어 13/2에 나오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역시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온 애공11년 계씨가의 가재는 이미 염유가 맡아 수행하고 있었고 염유는 공자가 죽을 때까지도 여전히 그 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중궁이 가재를 맡아 13/2의 대화를 공자와 나누었다면 그것은 자로(子路)가 계씨가의 가재가 되어 삼가의 영유읍성을 허무는 작업을 하던 정공12년이 지난 이후 공자가 자로 등과 노나라를 떠난 것으로 보이는 정공15년 이전의 어떤 시점이 아니었을까.
그러자 공자는 “얼룩소 새끼로 털이 붉고 뿔이 바르면 희생으로 쓰려 하지 않아도 산천이 내버려 두겠는가(子謂仲弓曰 ?牛之子 ?且角이면 雖欲勿用이나 山川은 其舍諸아 :『論語』雍也편)”하며 반드시 등용되어 쓰일 것이라고 격려했다. 『논어』 [옹야]에서 공자가 "중궁은 군왕의 자리에 앉을 만하다(雍也可使南面)" 고 한 것은 중궁의 마음이 넓고 크며 간략하고 중후하여 인군(人君)의 도량이 있음을 칭찬한 것이다. 정치적 문제에 탁월한 견해를 가졌던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논어』 [옹야]에서 염옹은 "자신이 경에 처하면서 간략함을 행한다<居敬而行簡>"라는 말을 하자 공자는 "옹(雍)의 말이 옳다"고 하였다. 이는 벼슬을 하는 자는 정책을 연구함에는 아주 신중히 그리고 진실하게 하여야 하지만. 그것을 실행할 때는 간단한 형식으로 실행해야 한다는 염옹의 정치적 소신을 말해 주는 것이다. 실제로 중궁은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강자의 재상이 되어 대소사를 잘 다스렸다. 한 가지 약점은 말재주가 없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으나 이마저도 공자는 "어찌 말재주를 쓰리오, 남을 대함에 입으로써 하면 자주 남에게 미움을 받느니라(焉用?이리오 禦人以口給하야 屢憎於人하나니 :『論語』公冶長편)”라고 옹호해주었다.
중궁仲弓은 염옹冉雍의 자, 그는 안회, 염백우, 민자건과 더불어 덕행이 뛰어난 제자로 꼽히며, 그의 진중함으로 노나라 삼환의 하나인 계씨 세력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언변이 어눌해 늘 비판을 받았는데, 공자는 중궁의 인재됨을 알아보고 "말 재주가 있어 어디 쓰겠느냐"며 염옹의 약점을 감싸준다. 몇 안되는 염옹과 공자와의 대화에서 보건데 염옹은 백성들을 다스림에 있어 인의와 덕치를 강조하고 있고, 이런 사고와 판단에 스승 공자는 염옹에게 지지를 보내며 훌륭한 관리가 될 인물이라고 추켜 세운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옹(雍)은 어질기는 하나 말재간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말재간이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능란한 구변으로 남을 제압하면 남에게 미움만 자주 받게 됩니다. 그가 어진지는 모르겠지만 말재간이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或曰;雍也,仁而不佞.子曰;焉用佞?禦人以口給,屢憎於人.不知其仁,焉用佞?
6/1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옹(雍)은 남면(南面)하게 할 만하다.”
子曰;雍也,可使南面.
6/2
중궁(仲弓)이 자상백자(子桑伯子)에 관해 묻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괜찮다. 단순하다.”
중궁이 말했다.
“경(敬)에 자리하여 단순함을 행하고 그로써 그 백성을 대한다면야 또한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단순함에 자리하여 단순함을 행하면 이는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옹의 말이 맞다.”
仲弓問子桑伯子.子曰;可也,簡.仲弓曰;居敬而行簡,以臨其民,不亦可乎?居簡而行簡,無乃大簡乎?子曰;雍之言然.
6/6
선생님께서 중궁(仲弓)에게 말씀하셨다.
“얼룩소의 새끼가 붉고 뿔이 반듯하다면 비록 쓰지 않으려 하더라도 산천의 신이 그를 버리겠느냐?”
子謂仲弓曰;犁牛之子,騂且角,雖欲勿用,山川其舍諸?
11/3
덕행 :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 언변 : 재아, 자공. 정치 : 염유, 계로. 학문 : 자유, 자하.
德行,顔淵,閔子騫,冉伯牛,仲弓.言語,宰我,子貢.政事,冉有,季路.文學,子游,子夏.
12/2
중궁(仲弓)이 어짊에 대해 묻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을 나서기를 귀한 손님을 맞는 것처럼 하고 백성을 부리기를 큰 제사를 올리는 것처럼 하여라.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마라. 나라에 있어서도 원망하지 말고 대부의 가(家)에 있어서도 원망하지 마라.”
중궁이 말했다.
“제가 비록 불민하나 그 말씀을 잘 받들겠습니다.”
仲弓問仁.子曰;出門如見大賓,使民如承大祭.己所不欲,勿施於人.在邦無怨,在家無怨.仲弓曰;雍雖不敏,請事斯語矣.
13/2
중궁(仲弓)이 계씨(季氏)의 가재(家宰)가 되어 정사에 대해 묻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관리들을 먼저 바로잡되 작은 잘못은 용서하고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여라.”
중궁이 말했다.
“훌륭한 인재인지를 어떻게 알고 등용합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아는 사람을 등용하여라. 네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를 내버려두겠느냐?”
仲弓爲季氏宰,問政.子曰;先有司,赦小過,擧賢才.曰;焉知賢才而擧之?曰;擧爾所知.爾所不知,人其舍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