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곳에 가 보았는데 그 집터는 깊은 산속이라 바위가 많이 있고 흙이 모자라는 곳이었다. 집 지을 흙이 부족하면 본인 논에서 파다 지었다고 하는데 거리가 3km정도는 되는 오르막길이었다.
산당의 1층은 반지하로 하고 2, 3층은 지상으로 칠성각(七星閣)을 경내에 지었고 그 안에는 제단을 쌓고 12개의 상을 차렸다. 집 지은 재료는 일체 새것으로 하고 유리는 가까운 곳에 없어 멀리 광주나 목포에서 구해다 사용했다. 지금처럼 차가 다니는 때가 아니었다. 거리만 해도 30km는 더 되는데다 도로가 험하고 요즘처럼 굴이 있는 도로가 없이 전부 구불구불한 비포장 산길이다. 건물 내부는 벽지를 붙일 필요가 없이 모두가 좋은 판자로 치장했다.
산당 마당에는 샘을 3층으로 팠다. 상탕, 중탕, 하탕으로 상탕은 깨끗한 음료로 쓰고 중탕은 채소를 씻거나 그릇을 씻고 하탕은 빨래를 하거나 집안으로 물을 끌어들여 목욕실도 만들었다. 우리 선조들은 제사 때마다 언제나 목욕을 하고 나서 지내는 것이 예의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연못을 따로 파고 유산각을 지었다. 연못에는 잉어와 여러 가지 물고기를 길렀다. 산당의 정원에는 기화요초를 구해다 심었다.
지금 그 건물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차도 없고 길도 훨씬 험했을 것인데 건물 짓는 데 필요한 흙을 지어 날라다 지었다. 거기에 제사를 지내기에 편리하도록 수도 시설을 만들고 아름답게 마당 조경까지 갖추었으니 이만하면 신당 짓는 데 얼마만큼의 정성을 들였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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