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은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하나님께 드린 기도이다.
이 기도를 학자들은 대제사장 기도라고 하기도 하고 믿는 자들을 위한 중보 기도라고도 한다.
1절~26절까지 이어지는 이 기도에는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주님이 하신 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또한 잡히실 때 흩어질 제자들과 그 제자들을 통해 세워질 미래의 제자들을 향한 간절한 사랑이 녹아있다.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영화로운 일이라고 참으로 놀라우신 고백을 하신다.
그 참혹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영화롭다고 하신 것은 그 일이 구원을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들을 구원하셔야 하는데 완벽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짐승의 피로 대신해 그 죄 사함을 일시적으로는 받을 수 있었으나 그것으로는 완벽하지 않았다.
완전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짐승의 제사가 아닌 예수님께서 그 죄를 담당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역사를 십자가에서 완성하게 되시니 그것을 영화로운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2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려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만민을 구원하는 일을 아들에게 맡기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게 하셨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아들에게 영생을 주는 권세를 맡기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사람이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 갈 수가 없어 죄를 대신할 피 값은 예수님이 감당하신 것이다.
3절에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야다'로 단순한 정보를 아는 게 아니라 서로 교제를 통해 경험에서 아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알고 믿음의 삶을 살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영생을 구하기 위해서 구약에서는 죄를 담당해 주시기 위해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고
신약에서는 오신 예수님을 메시아를 맞이하여 그를 알아보고 그 말씀을 들어야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그 완성을 기다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 멸망을 당할 자들의 되느냐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그 순간부터 우리도 마지막 종말의 시간 안에 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미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소유한 자들로 영광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4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받았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사명이니 예수님께서는 그 소명을 받아 완수하였다고 말씀드린다.
즉 하나님께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님께 주어 하나님께서 맡기신 구원의 사명을 이루셨다는 뜻이다.
아직 십자가를 지시지도 않았는데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그 일은 주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다짐이시다.
6절에 보면..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표적을 통하여 보여 주셨다.
원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고 하신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고 부족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말씀을 지켰다고 하셨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솔직히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긴가 민가 하고는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완전히 안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두둔하며 중보 기도하신다.
8절에 보면..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알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예수님은 여기서 참으로 안다고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으므로 아버지께 강조하신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처럼 완벽했다면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에 다 도망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훗날에 그들이 어떻게 순종하는지 아시기에 그들의 연약함을 감싸주고 계신다.
9절에 보면..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라 그 제자들을 통하여서 앞으로
또 전도될 미래의 제자들을 위함이라고 거듭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강조해서 말씀하신다.
그래서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기도로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10절에 보면..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 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지금은 연약하지만 훗날 그들이 복음을 전하며 나타낼 믿음의 열매들로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는 말씀이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 난 육적인 부활을 통해서 받으신 영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훨씬 큰 영광이다.
11절에 보면..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받으실 십자가의 고난 보다도 남겨질 제자들에 대한 염려와 애정으로 정성을 다 쏟으신다.
예수님께서 가시고 나면 그들이 다 흩어지게 되지만 그들을 보호하여 주셔서 그들을 품어 달라고 기도하신다.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그들이 있으니 그들까지도 다 품어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12절에 보면..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가운데 다만 멸망의 자식이 된 가룟 유다를 빼고 다른 제자들은 잘 지켰다고 하신다.
성경을 응하게 함은 다윗의 친구였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함께 반역을 하였던 것을 비유로 드신 것이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 41:9)
가룟 유다는 끝내 예수님을 떠남으로 멸망의 길을 갔으며 이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13절에 보면..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면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춤만이 가지게 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진 기쁨이 제자들 안에도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비록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 제자들이 흩어지겠지만 하나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잃지 않기를 바라신 것이다.
아효~~ 그러나 이렇게 예수님께서 간절하게 기도하셨지만 기쁨은 그만두고 자기들도 죽을까 봐 다 도망쳤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그들을 품어 주시고 하나님께 부탁드리고 계신다.
임종할 때에 남겨진 가족들을 향하여 죽어가는 자신보다 남겨질 가족들을 염려하는 부모와 같은 심정이셨다.
남겨질 제자들이 겪어야 할 박해를 염려하여 그들을 향한 애정과 안타까움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신다.
14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지금 예수님의 마음은 온통 제자들을 향한 염려로 가득해서 하나님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애태우신다.
행여나 하나님께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두고 다 달아나는 것을 보고 제자들을 미워하실까 봐
아버지 그게 아닙니다 그들이 연약해서 그렇지 세상에 속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감싸시는 것만 같다.
15절에 보면..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기 위함이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시면서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 달라고 구하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악에 빠지지 않도록 온전히 지켜 달라고 기도하신다.
여기서 악은 악한 행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사탄의 미혹과 죄의 권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 속에서 살더라도 악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또한 그들을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기를 아버지께 간구하신다.
즉 믿음의 성도들이 세상 속에 있는 악과 타협하여 불의를 행하지 않고 보존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니다."
비록 제자들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소속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가치관과 죄악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에는 악한 영은 우리를 결코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러나 사탄은 세상의 권세와 유혹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약하게 만들려고 끊임없이 공격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러한 유혹과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 몸에 병균이 들어와도 우리 몸 안에는 병균에 대한 저항력이 있어서 병에 걸리지 않게 하지만
만약에 우리 몸에 저항력이 없으면 병균이 우리 몸을 사정없이 침공하여도 우리 몸이 막아낼 도리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백혈구와 같이 우리 마음속에 악이 들어오면 말씀으로 막아내고 쫓아내 주신다는 뜻이다.
17절에 보면..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구별되게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기도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죄인들을 구원하게 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신다.
이는 제자들이 세상을 떠나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받은 말씀과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맡은 사람들이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로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여 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죄가 있어서 거룩해지셨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드려 십자가의 길을 순종하신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로서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20절에 보면..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함이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만이 아니라 장차 제자들이 전할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신다.
즉 이 기도는 당시의 제자들뿐 아니라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과 교회를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
제자들의 증언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며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 없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제자들의 말을 듣고 주님을 믿는 자들이란 신약 시대의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 즉 교회를 가리킨다.
이로써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을 뜻하게 되어 유대인이라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믿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21절에 보면...
"아버지여 ,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하나이신 것처럼 믿는 자들도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신다.
성도들은 서로 다른 환경과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한 주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러므로 각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 됨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받은 영광을 믿는 자에게 주심은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심이다.
성도들의 하나 됨은 단순한 친목이나 인간적인 연합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적인 연합이다.
23절에 보면..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에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될 때 생명의 통로가 열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흘러 들어오게 된다.
반면에 하나님을 떠나서 사람들끼리만 하나가 되려고 하면 결국 인간의 생각과 욕심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연합된 공동체가 된다.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음을 알게 된다.
24절에 보면..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소망은 이 땅의 영광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나라에 있다.
25절에 보면..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해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나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더 잘 섬긴다고 하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제자들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였을지라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셨음을 믿으며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을 위하여 마지막까지 기도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께 맡겨 드리고 계신다.
26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 이후에도 성령님을 통하여 계속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처럼 그 사랑이 믿는 자들 안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게 하시고
또한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시며 결국 제자들을 향한 사랑으로 기도를 마치신다.
이 기도는 평안하실 때 하신 기도가 아니라 고난의 길을 앞두고 하신 제자들을 향한 애절한 중보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