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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알아가기

사도행전 2장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시다.

작성자마당|작성시간26.06.22|조회수23 목록 댓글 0

1절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오순절은 쉰 번째 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유월절 다음 날부터 오십 일째 되는 날을 가리킨다.

 

구약에서는 칠칠절(민 28:26)로 혹은 맥추절(출 23:16)이라고 불렀으며

처음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키다가

이후에는 밀과 보리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로 지켜지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절기를 살펴보면,

가나안 땅의 토착민들이 농사를 짓는 시기를 적용하여 얻은 수확의 계절 위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역사를 그 위에 더하여 절기로 지켰음을 알 수 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고,

초실절은 유월절 직후에 보리 추수가 막 시작 될때 첫 보리 이삭 한단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이다.

맥추절은 밀과 보리를 수확하며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으며,

초막절(장막절)은 과일 수확을 마친 후 광야 생활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였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이 날을 기념하여 오순절로 지키게 되었다.

유월절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초실절에는 부활하셨고 오순절에는 성령님께서 임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이미 이르매"에 해당하는 헬라어 심플레루스다이는 성취되다, 가득 차다라는 의미이다.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하셨던 때가 마침내 충만하게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하셨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성령님께서 임하시게 된 것이다.

 

이것은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구약의 율법은 죄를 깨닫게는 하였지만 죄를 완전히 제거할 수가 없어서 성령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히 유월절의 어린 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값을 담당하셨기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믿고 회개하는 자마다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선택 받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거룩한 백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역사적인 순간이 지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백이십 명의 성도들 가운데 임한 것이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약속하셨던 성령님께서 오시는 순간이 이제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2절에 보면..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놀라운 것은 그날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기다리던 성령이 임하셨던 것이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자유인이든 노예든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의인과 죄인 상관 없이

그날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성령이 임하셨다.

이들은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성령님이 오시길 기다리며 기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4절에 보면..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다른 언어라고 한 것은 방언을 말하며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아니라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자기 고향의 언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이는 하나님 만큼 높아지려고 바벨탑을 쌓던 사건 이후 혼잡해졌던 흩어졌던 언어와 민족들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무너진 관계를 회복시키고 다시 하나님의 복음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놀라운 사건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며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게 하셨다.

 

5절에 보면..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당시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나고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이 각 나라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되자

사람들은 크게 놀라며 그곳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이 모여서 서로 말하기를...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갈릴리는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그리 높이 평가받지 못하던 지역이었기에 그들의 말속에는

배운 것도 많지 않은 저 갈릴리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나라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뜻으로

그들은 경악하여 놀라는 마음과 그들을 천대하여 무시하는 마음도 담겨 있었던 것이다.

 

9절에 보면..

오순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왔는데

9절부터 11절까지는 흩어져 있던 나라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언어란 헬라어로 ‘헤테라이스 글로싸이스’로 기이한 언어 또는 언어의 말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방언을 오직 통역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신비한 언어라고 하였다.(고전 12~14장)

그러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의 방언은 통역자 없이도 각자 자기의 언어로 알아들었다.

 

바대는 동쪽 지역으로 이란, 아프가니스탄 일부로 당시는 로마가 무서워하던 강대국이었다.

메대는 이란 북서부로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다스렸던 바사와 함께 메대·바사 제국으로 불리던 곳이다.  

엘람은 이란 남서부로 수산성(수사)이 있던 곳이며 에스더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다.

 

메소코타미아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오늘날 이라크과 시리아 일부이다.

유대와 그 위쪽의 소아시아 지역 현재 터키를 가리키고 갑바도기아는 바위 속 동굴 마을로 유명하다.

본도는 터키 북부 흑해 연안이고 여기서 아시아는 에베소를 중심으로 한 로마의 아시아 속주를 가리킨다.

 

브루기아는 터키 중부지역이고 밥빌리 아는 터키의 남부 해안을 가리키며 바울의 선교지였다.

애굽은 남쪽 지역으로 이집트를 말하고 야곱이 후손들이 430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구레네는 현재 리비아 동부지역으로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시몬의 고향이다.

로마로부터 온 사람들이란 당시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에까지 복음이 전해졌음을 보여 준다.

 

그레데는 지중해의 큰 섬을 가리키고 나중에 바울이 디도에게 맡긴 교회들이 있던 곳이다.

아라비아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일부로 시나이 반도 일대를 넓게 가리키는 말이다. 

이걸 지명들을 펼쳐 보면 배꼽인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듯 사방의 지역들을 나열하고 있다.

이는 오순절 성령강림이 단순히 예루살렘 사건이 아니라 세계 선교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13절에 보면..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사람들이 방언을 하는 것을 보고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한다고 조롱하지만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받아 성령님에게 흠뻑 취해 기쁨이 넘치고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이 나타낸 감정의 변화와 방언은 주변 사람들에게 낯설고 신기한 것으로 오해받을 만도 했다.

 

14절에 보면..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성령이 임하자 다락방에 숨어 기도하던 제자들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베드로는 열한 사도와 함께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베드로는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일어난 일의 이유를 말해 줄 테니 잘 들으라고 한다.

 

15절에 보면..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취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오전 9시와 정오 그리고 오후 3시에 기도하는 관습이 있었다.

베드로는 오전 9시로 지금이 기도하는 시간인데 어찌 술에 취했겠느냐며 사람들의 오해를 바로잡는다.

명절을 지키러 온 사람들이 아침부터 술에 취해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16절에 보면..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요엘 2:28)

 

구약에서는 종종 환상과 꿈이 예언으로 언급되지만 모든 환상과 꿈이 다 예언이 되는 것은 아니라

요셉이나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환상이나 꿈을 예언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요엘은 말세가 되면 누구에게나 성령을 부어주시는 때가 오리라고 하였다.

 

성령을 받은 자들은 젊은이나 늙은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할 것 없이 요셉이나 다니엘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환상과 꿈을 꾸고 선지자들처럼 예언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말세란 세상이 끝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마지막 구원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성령 강림은 구약의 약속이 성취되어 성령이 임하신 사건이며 구원의 시대가 열렸다는 선언이다.

18절에 보면..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요엘은 그냥 남종과 여종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하였는데 베드로는 그 앞에 '내'를 덧붙였다.

"내 남종과 내 여종"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남종과 여종들이라는 뜻을 강조하여 말한 것이다.

가장 낮은 신분의 사람들까지도 하나님께 속한 자로 받아 주시고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뜻이다.

이제 성령은 특별한 몇 사람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되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요엘은 성령 강림만 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심판의 경고가 한 예언 속에 같이 들어 있는 것이다.

피와 불과 연기는 전쟁과 재난 심판과 세상의 큰 격변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이다.

즉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렸지만 하늘과 땅에 나타나는 기사와 징조는 심판의 날이 이를 것임을 알린다.

그러므로 지금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은혜의 때라고 말하고 있다.

 

참말로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무서워서 도망가고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가 맞나 싶다.

그런데 지금의 베드로는 사람들의 조롱 앞에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고 있다.

성령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하시며 장차 임할 심판을 피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고 선포한다.

성령께서 임하시니 고기를 잡던 어부 베드로가 사람을 낚는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20절에 보면..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주의 날은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라 하고 신약에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을 가리킨다.

결국 두 표현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구원을 완성하시는 날을 의미한다.

 

요엘은 그날이 이르기 전에 하늘과 땅에 큰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피처럼 변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개입하신다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는 세상이 흔들리고 역사가 뒤집히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보여 주는 징조이다.

이 말을 자연의 징조로 받아 들여 중세 사람들은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주님의 재림이 왔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천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주님의 재림은 오지 않았으므로 늘 깨어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베드로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말에 이끌리어 장차 심판의 날이 이를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베드로가 연설하던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베드로가 하는 말을 경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그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해결책을 멋지게 이야기해 준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베드로의 이 말을 듣던 사람들이 두려워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베드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있고 말씀이 살아 움직이듯 하는 것은 성령님이 도우심이다.

성령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그 마음들을 움직이게 하시는 은혜였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조그만 일에도 넘어지고 두려워하는 약한 존재이지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자신도 모르게 성령님께 이끌리어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담대하게 알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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