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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알아가기

사도행전 2장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작성자마당|작성시간26.06.23|조회수23 목록 댓글 0

22절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입을 열어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외친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비밀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직접 보고 들은 사실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소문만 들은 사람들은 정말 주님께서 그런 일들을 하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직접 보았거나 들은 사람들이 많았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를 고쳐 주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등 많은 권능을 행하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보여 주기 위해 이적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상처 입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아파하는 그 마음을 품고 그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일하셨다.

 

당시는 병자들을 보면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며 정죄하는 경우가 많았다.  

병든 사람은 질병만으로도 아프고 괴로운데 죄인 취급을 받는 것을 더 큰 아픔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 공감하시며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여기에서 기사(테라스)와 표적(세메이온)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강조점에는 차이가 있다.

기사는 놀라운 일을 가리키고 표적은 그 놀라운 일을 하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권능과 기사와 표적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나타내기 위한 증표임을 알려 주시는 표현이다.

베드로는 이 모든 일을 근거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고 있다.

 

즉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이나 폭풍을 잠잠하게 하는 일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각종 이적들과 권능을 행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일이며

베드로는 예수님이 권능과 기사와 이적을 보여 준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표적이라고 하였다.  

 

23절에 보면..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 준 바 되었거늘"

예수님께서 로마에 의해서 죽으셨지만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던 당시에는 왜 주님께서 죽으셔야 하는지 그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성령님이 임하시자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섭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십자가는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주님의 숭고하신 사랑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죄로 인해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몸까지 내어 주신 주님의 한 없는 사랑이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율법 없는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로마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다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이 율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메시아를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죽였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로마 사람들에 의해 죽으셨지만 유대인들 또한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인간의 법과 판단은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뜻까지 알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생각과 판단으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묻고 말씀 안에서 찾아야 한다.

내 생각은 완전하지 않아 오류를 범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영적인 삶이다.

 

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예수님께서 단순히 다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사망이 예수님을 붙잡아 둘 수 없다는 뜻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기 위해 또다시 다윗의 말을 인용한다.(시16장 8~11)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유대인들은 다윗을 존경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베드로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즐겨 읽는 다윗의 시편을 근거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시편의 말씀이 다윗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고 설명한다.

다윗은 죽어 무덤에 묻혔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고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는 뜻이다.

베드로가 다윗의 말을 인용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며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25절에 보면..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여기서 베드로는 다윗의 시를 인용하면서 다윗이 말한 '주'가 누구인지를 알려 준다.

다윗이 말한 그 주인공이 바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주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는 몰랐다가 이제는 성령님께서 알게 하신 것이다.

 

26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베드로는 다윗의 말을 인용하여 다윗이 기뻐했다는 말에 자신의 기쁨을 얹어서 전하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도 기뻐하고 내 혀도 즐거워하며 육체까지도 소망 가운데 거하게 되어 기쁨이 넘친다고 말한다.

 

희망에 거한다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고통을 겪으면서도 희망 속에 있다는 의미이다.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기쁨이 샘 솟는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기쁨이 가득 차다는 뜻이다. 

주님 안에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 날 수 있음은 우리는 패배해도 하나님께서는 패배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구약의 랍비들은 거룩한 자로 썪지 않는다는 이 말씀이 누구를 두고 한 말인지 해석을 못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다윗이 예언한 이 말은 예수님께서 부활 하셨기에 썩지 않고 음부에 버림을 당하지 않은 증거라고 말한다.

   

28절에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보이셨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이어지는 생명의 길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 길을 여셨고 그 길을 따르는 자들에게 충만한 기쁨을 주신다.

그러므로 다윗이 바라본 생명의 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리는 구원의 길을 말하는 것이다.

 

29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던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형제들아 라고 하면서 친근한 의미로 부른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조상 다윗을 언급하며 그의 무덤이 지금까지 남아 있음을 상기시킨다.

 

30절에 보면..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다윗이 미래의 일을 내다보고 말했으니 선지자이며 그가 증거 한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시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계획하신 일로 이미 구약 성경에 예언이 된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처음부터 아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신 후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제자들에게 부어 주셨다.

그들이 보고 들었던 방언과 성령의 역사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증거였던 것이다.

 

33절에 보면..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베드로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사건의 의미를 풀어 주고 있다.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여 다윗이 기다리시던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셨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오른 손으로 예수님을 높이셨다고 말한다.

 

34절에 보면..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 110 :1) 하시니라."

 

다윗이 말한 두분의 '주"는 첫 번째 "주"는 하나님이시고 두 번째 "내 주"는 메시아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말씀하시기를 원수가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예수님께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라고 한 말씀으로 예수님이 바로 다윗의 주님이시라는 뜻이다.

 

발등상은 좌석 앞에 발을 올려놓는 발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원수를 발등상 되게 했다는 말은

상대방을 굴복시켰다는 말로 승리한 왕이 패배한 왕의 목을  발로 밟았던 관습에서 유래했다.(수 10:24).

여기서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이 결국 그분 앞에 굴복하게 될 것을 뜻한다.(시 110:1)

 

36절에 보면..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그 예수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시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그들이 피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며 그들이 회개해야 함을 선포한다.

그리고 점점 더 강도 높은 설교로 그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의 자리로 이끌고 있다.  

 

37절에 보면..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베드로의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렸다고 하는 이 '찔려'는 마음 깊은 곳을 날카롭게 꿰뚫는다는 뜻이다.  

베드로의 설교가 단순히 귀에 들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양심을 찔러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했다는 의미이다.

직역하면 베드로의 설교가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그들의 마음이 강하게 요동치게 했다는 말이다.

사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아파하며 고통스러워할 때에 회개의 출발점이 된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이 물음은 죽음을 눈앞에 둔 자의 필사적인 부르짖음과도 같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어찌해야 하는가 하는 절규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의 죄를 분명히 지적하였지만

그 죄 때문에 그들이 절망 속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그들이 회복 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준다.  

 

38절에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회개’에 해당하는 ‘메타노이아’는 잘못했다는 고백이 아니라 마음을 돌이키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애통함으로 세상을 향하던 마음을 바꾸어 주께로 향하게 하는 것이 회개이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회개의 길을 열어 주며 다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은혜의 문을 보여 준다.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선물로 받는다는 성령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만을 위한 선물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의 은혜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만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자녀들과 먼 훗날 태어날 사람들에게 그리고 땅 끝에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흘러가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이천 년 전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신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다.

 

40절에 보면..

베드로는 지금까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성령 강림의 의미를 차근차근 설명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듯이 여러 말로 거듭 권면하며 외친다.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당시의 패역한 세대를 가리키며

구약에서는 패역한 세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으나 예수님을 죽이는데 동참한 자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이다.

베드로는 기승전결을 완벽한 복음의 말씀을 전한 후 말을 마치며 결단하라고 하였다.

 

41절에 보면..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베드로의 말을 받아 들인 자들은 유대인이라는 자존심과 교만을 다 내려놓고 셰례를 받았다.

이들은 세례를 받음으로 이 악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하였다.

베드로의 능력이 아니라 베드로 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삼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원래 세례는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귀의할 때에 물로 세례를 받게 하는 것이었는데

세례 요한이 유대인들에게도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외쳤으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세례란 천대 받던 이방인들이나 받는 것이지 유대인들은 날 때부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니

자기들은 받지 않아도 된다고 교만하게 자부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세례란 물에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온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이제부터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겠노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선언이다. 

곧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겠다는 삶의 결단이며 순종의 시작인 것이다.  

 

42절에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들 삼천명은 세례만 받고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이날 사도들에게 세례를 받은 3,000명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복음으로

세워진 최초의 교회가 되고 그동안동안 누구도 보여 준 일이 없는 놀라운 경건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일이다.

그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기에 몰두하였다는 뜻이다.

날마다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기에 힘쓴 사람들 가운데 성령님의 역사가 더욱 풍성하게 나타났다.

 

성도들 간의 아름다운 교제로 나타났다는 말은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성도들이 한 가족처럼

마음을 나누고 삶을 함께 나누는 교제를 말하여서 물건까지도 서로 공유하는 신앙의 공동체가 된 것이다.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했다는 것은 함께 모여 예배하며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기도에 힘썼다는 뜻이다.  

말씀과 교제와 성찬과 기도가 초대 교회를 세우는 중심이 되었다.

 

43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나눠주고

이들이 보여 준 초대교회 성도들의 교제는 단순히 대화나 나누는 교제가 아니었다.

마음을 나누고 삶을 함께 공유하면서 누구든지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면 아낌없이 내주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이런 일을 하기 위해 그들은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모이기에 힘썼다는 뜻이다.

사실 사람의 결심만으로는 이렇게 살 수 없다.

그들 안에 임하신 성령님께서 한마음이 되게 하시고 서로 사랑하게 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42절에서의 떡을 떼는 것은 성찬식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각 가정에서 음식을 가리킨다.

성전에 모여 말씀과 교제와 성찬과(예배와) 기도를 할 뿐만 아니라 집마다 돌아가며

함께 음식을 먹을 때에도 순전한 마음으로 먹으며 하나님께 찬미의 기도와 찬양을 드린 것이다.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의 부흥은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말씀과 사랑과 기도로

변화된 삶에서 나온 것으로 사람을 더하게 하신 분도 사도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시다.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먼저 그들을 변화시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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