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형 하브루타 vs 한국형 하브루타
지난 2012년 말 하브루타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교육을 전혀 받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이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하브루타가 누구나 배워야 하는 교수학습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예로 하브루타를 잘 실천하는 일선 교사들의 공통적인 말을 빌자면 다른 어떤 교수학습법보다 하브루타는 쉽고 즐겁고 효과가 탁월하다고 합니다. 특히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학습자에게 질문을 만들게 하고 그 질문을 가지고 대화 또는 토론하면 되기 때문에 액션 러닝이나 PBL과 같은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업에 적용하기 쉽다는 반응입니다.
게다가 하브루타는 수업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브루타는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적용 가능하고 심지어 기업에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언제 어디서나 사람 둘만 있으면 적용 가능하다는 것인 최대 장점인 하브루타는 같은 교육내용을 언제든지 연계할 수 있어서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브루타가 한국에 와서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사실, 하브루타는 질문을 핵심으로 한다는 본질은 크게 바뀌진 않았지만 한국의 교육여건상 변형은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한국에 처음 하브루타가 전해질 때 그 정의는 "짝을 지어 질문/대화/토론/논쟁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랍어인 하브루타는 하베르라는 히브리어에서 왔는데요. 유대인들에게 하브루타는 그냥 공부를 같이 하는 짝(Study partner)정도의 의미이지만, 한국에 와서는 교수학습법으로 수업모형의 형태로 개발되어서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습니다.
2017년 12월 24일 김정완 연수원장님이 만난 랍비 아리 그린스펀은 하브루타를 수업에 적용하지 않고 예습/복습 개념이라고 했다고 하는데요. 랍비와의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예시바 도서관에서 하브루타인 친구와 함께 예습 또는 복습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의 하브루타는 수업 시간에 정식으로 수업모형이라는 이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수업 시간에 활발한 질문과 토론이 일어나는 예시바의 교실에서는 굳이 하브루타를 할 이유가 없지만 마치 공동묘지처럼 숨소리 하나 나지 않고 주무시는 학생들이 많은 한국의 교실에서는 짝을 대면하고 활발하게 대화하게 하는 하브루타는 이런 풍경을 삭제할 매우 좋은 수업방식이라는 것이 일선 하브루타 교사들의 이야기 입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하브루타의 기본 구성요소를 김정완 연수원장(하브루타 문화협회) 은 다음과 같이 비교했는데요. 유대인 하브루타는 세 가지인데 비해 한국은 한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시바에서는 교사, 두 사람, 텍스트가 하브루타를 할 수 있는 기본 구성요소로 예시바 도서관에는 실제로 이 세 가지 요소가 다 갖춰져 있지만 한국형 하브루타의 정의에 보면 스승이나 텍스트에 대한 개념이 명시돼 있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가장 큰 차이점으로 예시바 도서관에는 학생들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 랍비들이 배치돼 있어서 토론하다 잘 모르는 내용이 등장하면 둘이 함께 가서 랍비에게 질문할 수 있고, 실제로 탈무드나 성경에서조차 하브루타 스타일의 기본 구성 요소인 스승과 친구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탈무드 피르케이 아보스 1:6(후반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를 위해 선생을 세워라, 좋은 친구를 얻어라, 모든 사람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라.
이전 4절에서 자기의 집을 현자들이 모이는 집(예시바)으로 만들라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이 구절은 하브루타를 말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7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해당 구절에서 목적어가 다 빠져 있는데, 조철수 박사는 <예수평전>에서 이 구절에 빠진
목적어를 스승(을 구하라), 친구(를 찾아라), 토라(를 두드려라=연구하라)라고 보았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스승과 텍스트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없어서 하브루타가 자칫 두 사람의 대화/토론/논쟁의 국면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실제 하브루타에서는 텍스트를 반드시 갖추도록 하지만 정의에 명시돼 있지 않아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고, 스승도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인데도 이것에 대한 언급도 없어서 아쉽습니다.
하브루타를 단순히 학습의 개념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적극적인 교육의 차원으로 격상시키고 싶다면 교사를 하브루타 정의의 개념에 명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을 코칭해 좋은 방향, 선한 길로 인도할 책임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학생 둘이 모여앉아 텍스트를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나눈다고 100%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때 전문적인 식견과 지식이 없는 학생들은 그 한계 안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에 교사는 그 한계를 넘어서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교육적으로 바른 길을 인도해 토론이 생산적이고 건설적으로 이뤄지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브루타 정의를 조금 바꾼다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교사의 코칭 아래 텍스트를 가지고 짝을 지어 대화/토의/논쟁하는 것."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기존의 한국형 하브루타 정의(짝을 지어 질문/대화/토론/논쟁하는 것)는 이런 점에서 자체 모순적입니다. 하브루타를 수업에 적용하기 때문에 교수학습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정의에는 교사가 빠져 있고, 텍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교사와 텍스트가 없는 수업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수학습법이라면 하브루타의 정의에도 교사와 텍스트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하브루타 문화협회 김정완 연수원장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김정완 연수원장은 교사의 교육적 역할을 염두해 둔다면 이러한 정의적 변형은 불가피하다고 제시했는데요. 아래의 표가 다음과 같습니다..
하브루타 완전체(교사와 학생, 텍스트간의 삼위 일체)
위의 정의에서 코칭의 개념을 넣은 것은 이성일 교사의 말마따나 교사가 네비게이션이 아니라 나침반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조언자지 백과사전이 아니고 모든 학습은 학생이 하는 것이지 교사가 하는 게 아닙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하브루타 활동을 지켜보고 그들의 하브루타가 잘 이뤄지도록 조언하는 것이고 새로운 통찰에 이르도록 적절한 발문으로 학생들의 사고력을 확장시켜주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정완 연수원장은 개인적으로 유대인의 하브루타에 더 끌린다고 하는데요. 예습/복습 개념으로의 하브루타가 더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에서입니다. 물론 한국 교실 수업분위기가 예시바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이렇게라도 학생들을 깨우고 싶어하는 교사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처음에는 수업에 적용해서 학생들을 적응시킨 다음, 익숙해지면 유대인 스타일로 바꾸는 것으로 종국에는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에 질문과 토론을 중심으로 한국형 하브루타도 진행되기를 바래봅니다.
이스라엘형 하브루타 | 한국형 하브루타 |
함께 공부하는 짝(사람) | 짝을 지어 질문/대화/토의/토론하는 것 |
학습법(예습/복습, 도서관) | 교수학습법(수업, 교실) |
스승, 두 사람, 텍스트 | 두 사람 |
질문이 핵심 | 질문이 핵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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