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숨, 바람
박사 논문에 필요한 바슐라르의 책 중 《공기의 꿈》에 관해 공부하다가 바람이 데려가는 다른 세상에 관해 쓴 소설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 오즈의 마법사. 이 소설의 주인공 도로시는 캔자스주 광활한 초원 한가운데에서 농부인 헨리 아저씨, 엠 아줌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곳은 풀도 나무도 모두 칙칙한 잿빛으로 가득 차 아저씨의 긴 턱수염과 낡은 부츠, 엠 아줌마의 젊은 시절의 발그레하던 뺨과 입술도 같은 색입니다. 하지만 도로시는 잿빛이 아닌 검은색의 강아지 토토의 까맣고 생글생글 빛나는 눈을 보며 늘 웃으며, 그곳의 색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소설 속의 회색 세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캔자스의 ‘잿빛 세계’는 생명력과 기쁨이 거세된 척박한 현실이자, 대공황과 가뭄 속에서 소외당하던 사람들의 삶을 투영합니다. 도로시가 다채로운 환상의 세계를 모두 경험한 뒤 다시 이 잿빛 땅으로 기쁘게 돌아오는 이야기는, 진정한 구원이 화려한 도피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팍팍한 일상 속에서 내면의 지혜와 사랑, 용기를 발휘하며 나만의 구체적인 ‘장소’를 일구어 나가는 것임을 말합니다.
바람은 우주의 호흡입니다. 세상 어디에나 들락날락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바람을 코로 숨을 쉬는 것만이 아니라 피부도 숨을 쉬고 다른 모든 것으로 바람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동물도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쉰다는 것은 열려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즉 외부의 바람은 온 우주가 숨을 쉬어 내 안으로 들어오고 그것은 다시 우주로 내보내는 것이죠. 세상일이 거칠어 스트레스가 쌓이면 내 안에 들어오는 바람도 거칠어져서 한숨을 푹 내쉬게 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존재가 산소를 빨리빨리 흡수하여 우리를 힘들게 하는 장애물을 내보내고 하는 것입니다.
캔자스의 회색 지평선이 보이는 들판에 살던 도로시가 우주의 호흡인 큰바람으로 환상의 세계로 가서 만나는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는 우리 안에 있는 장애물인 셈입니다. 위대한 마법사 오즈가 자신들의 결핍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고 '노란 벽돌 길'을 걷지만, 사실 그들이 갈망하던 지혜, 사랑, 용기는 그들의 여정 속에서 스스로 실천하며 증명해 내었습니다. 외부의 절대자(오즈)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존재하던 잠재력이 '연대와 실천'을 통해 발현된 것입니다.
우리가 쉬는 숨 속에는 우리 속에 있는 우주의 힘이 우리를 구원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 《오즈의 마법사》, L. 프랭크 바움, 인디고, 2009년
2026년 6월 12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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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연구원 이선애
수필가, sosod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