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쓸모>
수학은 나에게도 어떤 과목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원하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수학을 해야만 했지만, 수학 문제집을 막상 펼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탈출하라'는 비상경보가 늘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해왔던 수학은 화려한 숫자와 기호로 무장한 채 나를 주눅 들게 만들던 빌런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수학 한 문제를 하루 종일 끙끙대며 혼자 풀다가 마침내 야자가 끝날 때쯤 해결한 감동의 순간도 가끔 있었기에, 애틋한 빌런 정도쯤으로 남아있긴 하다.
수학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대체로 나와 같이 오직 점수와 등급으로만 기억되는 수학의 기억은 차갑고 지루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송용진의 《문명의 뼈대》는 이 무시무시한 과목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유쾌한 초대장이다. 이 책은 수학을 공식의 감옥에서 구출해 내어,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문명이라는 거대한 건물을 지탱하는 가장 다정하고 단단한 '뼈대'로 재정의한다.
지면을 따라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수학이 얼마나 엉뚱하고도 위대한 해결사였는지 알게 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나일강이 넘칠 때마다 땅의 크기를 다시 재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순간부터,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건너기 위해 별자리를 숫자로 기록하던 항해사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피라미드가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는 것도,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이 매끄럽게 작동하는 것도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수학이라는 설계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려운 수식을 나열하는 대신, 인류가 커다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수학이라는 열쇠로 어떻게 문을 열어왔는지 그 흥미로운 모험의 역사를 들려준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그토록 아름다운 세계를 그저 '인간 계산기'가 되기 위한 고통스러운 훈련으로만 배워야 했을까?"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지금 우리의 교실과 모습을 뼈아프게 돌아보게 된다. 지금의 수학 교육은 복잡한 덫이 장치된 문제를 누가 더 실수 없이, 빠르게 푸는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계산은 이미 컴퓨터와 인공지능(AI)이 인간보다 수억 배는 더 잘하는 시대다. 기계가 0.1초 만에 해낼 계산을 위해 밤을 새우며 눈물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진짜 수학의 가치는 답을 맞히는 속도가 아니라, 엉클어진 실타래 같은 현실의 문제를 마주했을 때 이를 논리적으로 쪼개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생각의 힘'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은 수학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선물한다. 수학을 포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험 한 과목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다듬어온 가장 멋진 '논리의 언어'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늘 보던 세상의 풍경 뒤에 숨어 있던 든든하고 정교한 문명의 뼈대들이 비로소 반갑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 『문명의 뼈대』, 송용진, 다산초당, 2026
2026년 6월 16일(화)
독서로! 세계로! 미래로!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미네르바독서학교연구소 박태성
예닮글로벌학교 교사, pabianne8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