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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타]'말의 힘'에 대한 밥 실험

작성자이환준|작성시간21.04.26|조회수1,158 목록 댓글 0

 

'말의 힘'에 대한 밥 실험  

지난 5월 서울 성수고등학교 권정은 선생님은 아이들과 말의 힘에 대한 실험을 하기 위하여 2개의 유리병으로 실험을 했다. 밥을 넣어 둔 한쪽 유리병에는 “감사합니다”를 쓰고 다른 한쪽에는 “짜증나”를 써 놓았다. 두 개의 유리병을 교실 뒤에 놓고 학생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학생들이 한쪽에는 '고마워', '사랑해' ,'감사해' 등의 긍정적인 말을, 다른 한쪽 병에는 '미워', '싫어', '짜증나' 등의 부정적인 말을 하게 하였다.   3주 동안의 실험 후, 실험 결과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놀랐다. “감사합니다”를 써 놓은 병을 열어 보니 밥에 구수한 냄새가 나는 누룩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짜증나”라고 써 놓은 병을 열어 보니 밥에 숨이 막힐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나는 시커먼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 김진경새벽편지 가족, 2011년 10월 11일 사랑밭 새벽편지 누리집 중에서-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말의 힘에 대한 설명을 자주 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학생들에게 보여 주었던 다중 매체 자료 중 하나가 위에 소개한 말의 힘에 대한 밥 실험이다. 이 내용은 한국교육방송EBS이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소개한 적도 있었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학생들은 말의 힘을 쉽게 믿지 않았다. 남의 말을 쉽게 믿지 못하는 학생들과 진실을 가르쳐야 할 선생과의 간격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난 직접 실험을 해서 학생들에게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실험 결과를 교지에 실어서 내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에게도 진실을 가르쳐 주리라고 다짐하였다.   “얘들아, 내가 직접 실험을 해서 보여 줄게. 내 실험은 반드시 성공할 거야.”   나는 아이들에게 이 실험을 선언하는 순간부터 말의 힘이 작용할 것이라 믿었다. 내가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했다. 사실 그 순간에도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냥 말을 하고 무작정 기다렸다. 그것이 진정한 말의 힘을 증명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불안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실험 재료로 적합한 것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말의 힘에 대한 밥 실험은 3주 동안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나는 그것보다 빨리 결과를 얻고 싶었다. 일주일, 늦어도 열흘 안에 결과를 보고 싶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실험 재료를 구할 수 있다. 구할 수 있다. 구할 수 있다.”   또 다시 말의 힘에 의존해 보기로 했다. 혼잣말을 수없이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을 하였는데 집 식탁 위에 내가 찾던 실험 재료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내가 실험 재료로 선택한 것은 바나나였다. 바나나는 밥 실험 보다 더 빠른 결과를 나에게 보여 줄 것 같았다.





실험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하여, 같은 가지에서 난 바나나 중에 아주 비슷하게 생긴 놈 두 개를 골랐다. 색깔뿐만 아니라 크기, 익은 정도, 심지어 껍질에 찍힌 점의 개수도 비슷한 놈으로 고르고 또 골랐다. 그렇게 바나나 두 개를 고른 후에,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을 적어서 바나나에 붙이려 했는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고심 끝에 긍정적인 말은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예쁘다’는 단어와 기독교 최고의 윤리인 ‘사랑’을 조합하여 적었다. 부정적인 말을 정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너무 심한 욕을 적어 놓으면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지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욕을 해야 하는데 입이 너무 더러워지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다. ‘~자식’이라고 하자니 왠지 욕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고, ‘~새끼’라고 하자니 내 입이 너무 더러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같은 놈’으로 적었다.

 



 

바나나가 썩으면서 생기는 물로 책상이 오염될까봐 두 개의 바나나를 플라스틱 통 안에 넣었다. 조건을 같게 하기 위해서 똑같은 통으로 고르고, 동시에 물로 깨끗이 씻어서 마른 행주로 물기를 제거하였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쓰레기 같은 놈”이 적힌 바나나에는 나쁜 말을, “예쁜아 사랑해”가 적힌 바나나에는 사랑의 말을 해 주었다. 조건을 똑같이 하기 위해서 하루는 “예쁜아 사랑해”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다음 날에는 “쓰레기 같은 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초를 재가면서 똑같은 시간 동안 말을 하였고, 채광 조건이나 바람, 습도도 똑같이 맞추었다.   열흘 후

 

 

“쓰레기 같은 놈”이 적힌 바나나는 완전히 검은색으로 썩어 있는 반면,

 

 

“예쁜아 사랑해”가 적힌 바나나는 본연의 노란색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실험 결과를 보고 학생들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 보였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한 학생이 나쁜 말을 들으면 우리의 마음도 썩어 들어갈 거라고 발표를 하였는데, 그 학생의 말이 아주 인상 깊었다. 욕을 들으면 마음에 상처가 나고, 심하면 마음의 밭이 썩기 시작하는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니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실험 이후에 우리 반 학생 전원이 전학을 가는 학생에게 손수 편지를 써 주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른 학교에 가서도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격려의 말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은 말의 힘을 믿기 시작했으며, 친구에게 좋은 말하기를 편지글로 실천하였다. 솔직히 실험 결과를 보고 학생들보다도 내 자신이 훨씬 더 놀라고 말았다. 바나나가 어떤 모양으로 썩을지 예상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눈에 띄게 다른 결과가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실험을 통해서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실험 이후에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말,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나는 아이들과 나누는 한마디의 말이 세상을 밝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글_최태림 정화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되며 동화작가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나 선생님 맞아?』, 『김만중이 들려주는 구운몽』,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논술대비 세계문학 일리아드, 오디세이』, 『논술 명작 죄와 벌』, 『허균이 들려주는 홍길동전』, 『허약한 막내』, 『얼룩말 바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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