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주거형태는 인간이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해 알아
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자료이다. 일본의 주거도 예외일 수 없다. 주거양식의 다양성은 기
후나 생업, 지리 등 생태학적 환경과 직접 관련되어 있으며,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蟁문
화적 조건과의 상호작용의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초기 인류학에서는 의식주에 대한 민족
지적 보고가 많았으며, 특히 건축물의 구조나 형식의 분류, 분포, 계통을 조사하여 그 역사
를 재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가옥을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현재는 문화인류학
의 관심이 물질문화에서 사회과학적 문제로 옮겨감에 따라, 지금까지 주로 물질문화 영역에
서 취급되어온 주거양식에 대한 연구가 감소했다.
한 실증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의 의식주 중 아직까지 전통적 생활양식을 가장 많이 유지
하고 있는 영역은 주생활이라 한다. 이 조사는 일본인의 생활사는 메이지 이후의 여러가
지 의미에서 구미화의 역사이지만, 주생활은 의생활이나 식생활에 비해 구미화의 영향을 가
장 적게 받은 영역으로서, 일본문화의 기층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라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
여주고 있다. 따라서, 주거는 일본인의 전통적 삶의 양식을 살펴보는 데 대단히 유효한 테마
라고 할 수 있다.
가옥이 인간의 물질문화의 중요한 일부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앞에서 언급
한 인간의 생활문화라는 맥락에서 검토하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사회蟁문화적 문제에 귀결
된다. 이러한 생활문화의 차원에서 주거양식을 다루고자 할 때, 적어도 다음 4가지 영역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첫째, 가옥의 소재나 형식에 관한 물질문화 차원, 둘
째 공간구성이나 가옥배치 등의 상징적 차원, 셋째 공간이용이나 권위체계 등의 사회적 차
원, 넷째 생활의식이나 공간의식 등의 인지적蟁신체적 차원이다. 이하 위의 4가지 영역을 중
심으로 일본인의 주거양식에 대해 개괄적으로 정리하고, 약간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1) 주거양식의 변화
일본에서 집을 보통 '이에(家)'라고 하는데, '이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건축
물로서의 '이에(집)'이고, 다른 하나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후손에게 물려주는 가족의 결
합원리로서의 '이에'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중복되어 일본인들의 주거양식에 관한 여러가
지 관념을 만들었다. '이에오 츠구'라고 하면, 두 가지 이에를 계승한다는 의미이고, '잇코오
카마에루'라 하면 분가나 세대독립을 통해 사회적으로 한 집 몫을 다할 수 있는 자격(사회
적 인격)을 취득한다는 의미이다.
동경의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끝없이 이어지는 2층 독립가옥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일본의 '잇코다테(一戶建, 단독주택)'라 하는 이에들이다. 잇코다테는 현대 일본의 주거양식
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 밖에 아파트나 맨션으로 일컬어지는 '집합주택'이나 '단지주택'
이 있다. 잇코다테와 함께 널리 보급된 아파트나 맨션의 집합주택은 일반적으로 인구의 도
시집중에 의한 주택난 해소가 목적이지만, 기초자치단체인 지방의 '市町村'에 건설된 공영
주택단지와 같이 사회보장적 성격이 짙은 것도 있다.
집합주택은 구미와 거의 같은 시기인 에도시대에 에도를 비롯한 오사카와 쿄토 등의 대도
시의 형성과 함께 나타났다. 현재와 같은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는 관동대지진(1923) 이후 '지
진피해복구 의연금'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동윤회(同潤會, 지금의 주택공단의 모태)가 처음으
로 건설했다. 이 때 동윤회를 중심으로 이른바 '문화주택'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주택이 도
시 교외에 건설되나, 2차대전 전까지 일본인의 생활양식에 맞지 않아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문화주택은 일본의 새로운 주거형태에 관한 시행착오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에 들어오면 공영집합주택으로서 '단지아파트'가 전국에 건설되는데, 단지아파트
건설은 과학적 합리주의에 근거한 철저한 '소형주의'로 일관하여, '단지사이즈'라는 '타타미
(일본식 돗자리)'를 출현시켰고, 그에 따른 가구의 표준규격화도 촉진시켰다. 또한 이 시대에
유행한 침식분리주의에 따라 다이닝蟁키친을 채용함으로써 오늘날 집의 규모와 형식을 가늠
하는 지표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LDK시스템'이 나타나게 된다.
1960년대 후반이 되면, '맨션'이라 하는 냉난방설계의 고급 아파트가 도심생활을 할 수밖
에 없는 고소득자와 전문직업인을 상대로 건설되었다. 1970년대에는 이러한 고급 맨션이 통
근시간 2시간 거리의 교외에 건설되어 일반 화이트칼라층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들을 지
칭한 이름으로 맨션을 비롯한 펜션(pension), 매존(maison), 하이츠(heights), 팰러스(palace),
아넥스(annex) 등이 등장하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호화스러운 이미지를 판매전략으로 삼
은 주택건설사업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초기에 '문화적' 이미지가 따라 붙었던
이러한 집합주택들도 협소한 공간에다 아무런 특징이나 개성을 찾아볼 수 없는 획일적 구조
때문에, 시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는데 실패했다. 특히, 방이 벽으로 구분되어 전통적 일본
가옥의 특징인 타타미방이 지닌 전용성과 융통성, 개방성이 사라진 데 대한 불만이 컸다. 이
제 '단지'는 협소하며 획일적인 생활공간이며, 조그만 정원이 딸린 '마이홈(단독주택)'에 들어
가기 전에 일시적으로 세들어 사는 집으로 인식되고 있다.
(2) 소재와 형식
일본의 농촌에 가보면, 아주 다양한 집 모양이 눈길을 끄는데, 우선 집의 규모가 대단히
크며, 지붕의 모양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전통적 '카야부키(억새지붕)'에서 과도기적 '도탄
(함석)' 지붕과 현대적 기와지붕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뒤의 두 가지 형태가 카야부키
와 다른 것은 지붕 위에 구멍이 없어 통기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지붕이
숨을 쉴 수 없다'고 한다. 습기와 더운 공기가 지붕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 차 있어
기둥이나 건축자재들이 썩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억새지붕은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에는
쉬원하다. 이는 전통적 집이 억새나 흙벽, 타타미, '도마(土間, 봉당)'에 의해 밖의 더위와 추
위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민가는 목재로 골격을 짜고, 억새로 지붕을 덮고, 방에 타타미를 깔고, 방과 방 사
이에 '쇼지(障子, 장지문)'와 '이타도(板戶, 널문 또는 판자문)'로 차단한 것이다. 다만, 억새의
생산과 공동체적 노동교환의 어려움으로 지붕은 함석과 기와로 바뀌는 추세이다. 그럼 여기
서 민가의 내부를 잠시 들여다 보기로 하겠다.
마당 입구에서 출입문을 들어서면, 바닥이 흙인 도마가 나타난다. 여기서 신발을 벗고 올
라서면 '이마(居間, 거실)'인데, 이마에는 정사각형 밥상 모양의 '코타츠(炬嫧, 각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이마와 부엌 사이에 난방이나 취사용으로 불을 피우는 '이로리(井爐裏)'가
있는 집도 있다. 도마를 등지고 앉으면 전면에 바닥보다 약간 높은 곳에 꽃을 장식해 놓거
나 여러가지 선물꾸러미를 쌓아둔 '토코노마(床間)'가 있다. 왼쪽이나 오른쪽(마당 반대쪽)에
는 사람 키 높이에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부츠단(佛壇)'이 있고, 다시 조금 비스듬히 높은
곳(천정 가까이)에는 신도의 여러 신을 모시는 '카미다나(神棚, 감실)'가 있다. 정면 토코노마
의 왼쪽이나 오른쪽에 나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양쪽에 방이 늘어서 있다. 말하자면 일
본 민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밭 '전(田)' 자형의 '겹집'인 것이다. 방과 방 사이는 쇼지
와 이타도로 차단되어 있으며, 집 안에서 모임이나 잔치를 열 때면, 쇼지와 이타도를 활짝
열어 젖혀 '자시키(座敷)'라는 하나의 커다란 방을 만든다. 즉 방과 방 사이의 개폐가 자유롭
다는 말이다. 일본의 가옥이 개방적이며 공간의 전용성이 뛰어나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3) 방의 배치에서 보는 두 가지 방위
주거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규명한 레비-스트로스는 트로브리앤드제도(Trobriand
Islands)의 주거공간이 자연과 문화, 날 것과 요리한 것, 주변과 중심이라는 2항대립적 구조
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일본의 주택에서도 이러한 2항대립적 코드가 존재하는데, 예를 들
면 '우치(內)'와 '소토(外)'를 비롯한 '오모테(表)'와 '우라(裏)', '카미(上)'와 '시모(下)'의 구별
이다. 일본의 주거에 관한 상징론적 연구를 보면, 일본 농가의 전통적 가옥은 기능상의 다양
한 공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田'자형이며 오모테의 비일상적 공간과 우라의 일상적 공
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오모테의 비일상적 공간이야 말로 상징론적
의미와 관련되는 부분이다.
일본의 전통적 민가(농가)에는 지역에 따라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대부분 명확한 두 가지
방위가 존재한다. 즉 오모테와 우라, 카미와 시모라고 하는 서로 마주보는 두 개의 방위이
다. 이 두 가지 방위에 따라 공간을 분류하면, '캬쿠마(客間, 객실)'와 '난도(納戶, 헛방)',
객실의 '츠기노마(次間, 다음방)', 객실의 '오쿠노마(奧間, 안쪽방)', 손님 출입구와 손님용 변
소, 일상의 주요 출입구와 부엌, 카미와 시모에는 객실과 도마(土間)가 있다. 이렇게 나누어
진 방은 주거 안에 차지하고 있는 상대적 위치를 나타내는 말로 호칭된다. 예를 들면 '오쿠
노자(안쪽방)'나 '나카노마(가운데방)', 자시키(座敷), 난도, '시모노마(아랫방)', 오모테 등이
있다. 이는 평면이 장방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또한 신사
나 사원과 같이 좌우대칭으로 만들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하나의 중심축에 대한 좌우라
는 방위구별은 존재하기 어렵다. 어느 쪽을 중시하느냐, 즉 방위에 대한 우열 개념의 존재여
부를 따져보면, 오모테와 우라가 카미와 시모에 비해 상위개념이었으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
이것이 역전되는 경향이 있다 한다. 이는 카미와 시모 방향으로 연속된 공간이 새로 만들
어짐으로써 카미와 시모의 방위개념이 강화된 것에서 비롯된다. 이에 비해 한국은 대청을
사이에 두고 사랑방과 안방이 일직선상으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오모테와 우라의 구분은
아주 미약하며, 카미(사랑방)와 시모(안방)의 개념이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주거공간은 동물과 달리 사회적 행동의 장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이
바로 방의 방위에 대한 상징론적 의미가 실제생활에 관련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
들방'이나 '침실'과 같은 특별히 기능적으로 한정된 방의 쓰임새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특히, 우리의 안방과 사람방의 구분처럼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공간구성에 반영된 예
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교도의 주거가 남성과 여성의 영역으로 확실하게 나뉘어
져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의 주거에도 성차(性差)에 의한 구별이 존재한
다. '고키부리 테이슈(바퀴벌래 남편)'라고 하면, 여성의 영역인 부엌에 아무런 저항없이
들어가는 남성을 빗데어 표현한 말로서 성차에 의한 공간을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주택의 거실에는 대부분 조상신을 모셔 놓은 부츠단과 신도계통의 신을 모셔 놓은 카
미다나가 있다. 둘 모두 '마츠리(祭司)' 공간으로서, 이에는 곧 그 구성원과 그들이 섬기는
신불의 공존이나 공생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주거가 의례蟁상징적으로 사용되는 또 하
나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 민가에서는 부츠단이나 카미다나 외에도 에비스신(惠比須
神)이나 난도신(納戶神), 수신(水神) 등의 여러 형태의 기능신들을 모시고 있으며, 자시키
는 조상공양(法事)을 위한 의례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4) 도마(土間)와 난도(納戶)
일본 집의 바닥은 도마와 '이타노마(마루방)', '타타미노마(타타미방)'로 되어 있으며, 도마
는 원시시대, 이타노마는 헤이안시대, 타타미노마는 카마쿠라의 무사사회에 출현했다고 한
다. 현대 도시주택에서는 도마를 찾아볼 수 없으나, 농촌이나 어촌에서는 우천시의 농삿일
이나 도구 보관소, 음식물의 저장, 마굿간 등, 여러가지 생산노동을 위한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도마의 기능은 이로리에서의 불의 사용(요리와 난방)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불을 안
전하게 다스릴 수 있는 흙의 특성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또한 츠보이(坪井洋文)에 의하면,
부엌이나 거실에 모셔져 있는 신들은 원래 도마에 모셔져 있던 신이 이에(家)의 수호신으로
다양한 기능을 갖게 되면서 이로리 주변으로 흩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도마는 이에의 수
호신을 모시는 공간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난도의 사용목적은 가재도구나 곡물의 수납, 잠자리 등으로 이용되는데, 여기서 잠자리는
보통 개인이 사용하는 잠자리와는 다른 의미로서 부부만의 '아이를 만드는 곳'으로 통용된
다. 따라서, 난도는 이에의 가장 북쪽에 있으며, 도마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
다. 외부는 흙벽으로 차단되어 있으며 입구도 폐쇄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부
부만의 침실로서 그들의 사생활을 확보하고, 추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노인이나 병약한 사람의 휴식용, 출산 장소, 죽은 자의 염습 등 여러가지 은밀한 인간
의 생활공간으로, 공개적이며 의례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자시키와 대조적인 쓰임새에 주목
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자시키와 난도를 성(聖)과 부정(不淨)의 대비관계로 파악하는 논
의에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주택이 개방적 구조라는 점을 감안하면, 난도의
폐쇄성과 독립성은 주목할 만하다.
(5) 손님을 위한 공간 - 이로리(井爐裏)와 자시키(座敷)
일본 주택의 공간을 지칭하는 말로서 '6조'(6帖), '4조반(4帖半)'과 같은 타타미의 수를 나
타내는 말이 있다. 즉 타타미가 깔려 있는 방은 기능적으로 동질적 공간이며, 차이가 있다면
크기 정도이다. '차노마(茶間, 다실)'라고 해도, 차를 마시기 위한 방이 아니라 가족들이 모여
차를 마시고, 담소하며, 식사도 하고, 심지어는 잠을 자는 공간으로도 이용된다. 이렇게 보
면, 일본주택의 내부공간은 아무런 특성도 없는 공간의 집합체인 것처럼 보이나 반드시 그
렇지는 않다.
전통적 일본주택의 거주공간은 의미론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범주의 공간으로 나
눌 수 있다. 즉 앞의 식생활에서 언급된 '케'의 공간과 '하레'의 공간이다. 케의 공간은 가족
들의 일상적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하레의 공간은 비일상적인 행사(의례)를 위한 공
간으로, 예를 들면 귀한 손님(때로는 神)을 맞이해서 대접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두 가지 범
주에 속하는 공간이 바로 '자시키'인데, 자시키는 신분에 따른 격식을 중시했던 무가사회에
서 출현한 것이다. 그들은 집 밖의 손님을 위해 별채를 짓고, 그 안에 자시키를 마련한 다
음, 자시키 정면에 정원을 꾸미고, 자시키로 통하는 '츠기노마(次間)', 손님용 현관과 변소,
그들이 드나드는 문 등을 갖춰 놓았다. 특히 무가사회에서 현관은 그 집 주인의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대단히 중시되었다. 왜냐하면, 현관은 소토(外)도 우치(內)도 아
닌 공간으로서 외부손님을 맞이하고 보내는 의례적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토코노마
(床間)'나 족자, 꽃꽂이 등, 손님을 맞이해서 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내부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썼으며, 독특한 맛을 그것도 복잡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마셔야 하는 '다도(茶道)'도
고안해 냈다.
민가에서는 별동이나 별체에 가까운 무가사회의 자시키와는 달리, 일상적으로 침실로 사
용하는 방을 여러 개 합쳐서 특정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보통의 방이
집안의 길흉사나 종교적 모임인 '코(講)' 등, 의례적이며 비일상적 기회에는 자시키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시키는 특별히 마련된 하레의 신성한 공간인 것이다.
케의 공간인 '다이도코로(台所)'는 현재 취사전용의 공간이지만, 원래 가운데에 이로리를
만들어 취사 휴식, 작업장, 이웃이나 친척을 맞이하는 공간 등 다양하게 이용되었다. 취사는
주로 도마에 설치된 '나가시(설거지 하는 곳)'나 '카마도(부뚜막)'에서 했다. 그러니까 현재는
취사전용의 다이도코로와 담소나 휴식, 손님맞이 전용의 '이마'가 분리되어 있다는 말이다.
취사와 난방, 커뮤니케이션 등의 다양한 기능을 가진 이로리는 아직도 지은지 오래된 민
가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로리 주위에는 '요코자'와 '카카자', '오토코자', '캬쿠자' 등 지위
에 따라 지정된 자리가 있으며, 각각 가장자리, 여자자리, 남자자리, 손님자리에 해당한다.
이로리에서는 우리의 온돌방에서 아랫목을 손님에게 권하는 것과 같은 좌석의 가변성이 없
다. 즉 가장이 앉은 '요코자(橫座)'는 가장의 부모나 사찰의 주지정도의 사람이 아니면 자리
를 양보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가장의 전용자리인 셈이다.
그런데, 산업의 발달과 직업의 다양화로 하레의 손님과 케의 손님이라고 하는 두 가지 범
주 외에, 제 3의 범주에 속하는 새로운 유형의 방문객이 등장하는데, 이를 위한 접대공간이
바로 '오세츠마(應接間, 응접실)'이다. 메이지 이후 새로운 도시적 생활양식의 진전과 함께,
자시키 손님도 아니고 이로리나 차노마의 일상적 방문객도 아닌 제3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
는 내방객이 증가한 것이다. 직장과 가정이 멀리 떨어진 통근생활이 일상화되면서 가족들이
알지 못하는 동료나 지인(知人)이 증가하고, 친구 사이도 아닌 사무적 용건으로 찾아오는 손
님이 많아졌다. 이들을 차노마와 같은 가족의 일상적 생활공간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심리적
저항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자시키에서 맞아야 할 정도로 의례적이며
격식을 차려야 할 손님이야 하면 그렇지도 않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다른 생활공간과 상대적으로 독립된 응접실이 대부분의 서민주
택에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본에 오래 살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것 중
에 하나가 일본의 가정집에 직접 들어가 볼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집으로 초대를 잘 하지 않는 폐쇄적 행동양식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공간이 협소하여 손님
맞이 전용의 응접실을 갖출 수 없는 가옥구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시게(石毛直道)는 여러 민족의 주거를 비교한 다음, 어느 민족의 주거에도 손님을 위한
공간이 있다고 했다. 이로리는 바로 일본의 전통적 가옥의 손님맞이 공간이다. 한 때 '혼
뱌쿠쇼(本百姓)'라 일컬어진 농가에서는 사람들의 모임을 위해 자시키를 마련해 두지 않
으면 안되었다. 자시키야 말로 본백성의 신분과 지위를 상징하는 지표였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 일본의 도시가정에서는 손님을 위한 공간 즉, '캬쿠마'를 갖추려면 5LDK의 넓이가 필
요하다. 따라서, 보통 2LDK나 3LDK의 도시형 집합주택에서는 응접실이나 캬쿠마를 갖출
여유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이 세계 유수의 선진국으로 통하는 경제대국 일본의
주택사정과 주택내부의 공간이용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나 생각한
다.
(6)타타미
일본주택이라 하면 흔히 '타타미방'을 떠올리는데, 타타미는 방바닥에 까는 일본식 돗자리
이다. 볏짚을 5㎝정도의 두께로 안에 심을 넣어 가로 90㎝(半間), 세로 180㎝(1間)의 크기로
단단하게 만든 다음, 그 위에 돗자리를 붙인 것이다. 이러한 소재와 양식은 세계에서도 아주
보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지일파 사회에서는 '일본인에 버금갈 정도로 일본어
를 마스터한다'는 의미로, '타타미제(tatamiser)'라는 동사를 사용할 정도로, 타타미는 일본과
일본문화를 상징하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타타미는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차지 않는 특성 때문에, 별다른 난방시설없이 방 바닥
마감재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는데, 에도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상류계층의 집, 그것도 일부
의 방에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귀중품이었다고 한다. 대부분 마루로 된 방에서 생활한
것이다. 모모야마(挑山, 1568-1600)시대에 쿄토에서 '타타미와리(타타미 크기)'라는 설계방식
이 도입되어, 이 타타미의 크기에 맞춰 건축자재나 가재도구, 방의 크기까지 표준화되어 전
국적으로 보급되었다. 타타미의 크기가 일본인의 살림살이의 척도가 된 것이다. '6조'니 '4조
반'이니 하는 것은 이 타타미의 장 수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곧 방의 크기를 나타내는 잣
대가 된다.
타타미가 일반화됨에 따라, 앉음새도 남자는 '아구라(책상다리)', 여자는 '타테히자(한쪽 무
릎을 세워 앉는 것)'에서 남녀 모두 정좌(양 무릎을 꿇고 않는 모양)가 정식의 앉음새가 되
었다. 이는 밑바닥이 딱딱하며 따뜻한 온돌과 달리, 쿠션이 있고 따뜻하지 않는 타타미에 가
능한 한 많이 닿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방과 방을 구분하는 벽이 쇼지나 이타도와 같이 마음대로 여닫을 수 있게 하여, 방의 활
용성을 높였다. 그러나, 특정 개인의 밀실로 사용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의 주거공간에 프라이버시의 관념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리적 장벽으로 개인의
공간을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쇼지 한 장으로 공간을 상징적으로 나누고, 그 반대편에서 일
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으로 했다. 말하자면, 정신적 경계와 그
에 걸맞는 행위나 예절이 강조된 것이다. 일본인은 쇼지나 후스마(맹장지), 타타미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지만, 서구인은 벽에 둘러싸여 문을 꼭 닫은 방 안이라야 마음을 놓는다.
서구인에게 는 자연과 완전히 차단된 주거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2차대전 후 널리 보급된
단지주택은 서구양식을 본 떠 지었지만, 서양식은 주방과 화장실뿐이고, 집 안의 공간배치는
개폐가 자유로운 전통적 타타미방식을 취하고 있다. 타타미방은 초현대식 호텔에까지 '와시
츠(和室, 타타미방)'라는 이름으로 배치될 정도로, 일본인들의 거주양식에 기층을 이루고 있
는 부분이다.
(7) 오시이레(押入) - 수납과 보관
침구류나 사용하지 않는 가재도구를 넣어두는 곳으로 '오시이레'가 있는데, 말하자면 우리
의 붙박이장과 같은 것이다. 일본집에 들어가 보면, 집 안에 가구류나 침구, 옷장 등이 보잘
것 없거나 잘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알았지만 거의 모두 오시이레에 넣어둔 것이다. 물건을
사람 눈에 직접 띄지 않게 넣어 두는 수납공간에는 신발장같은 '토이타(戶板)'나 '탄스(옷
장)', 그리고 별동건물인 '쿠라(倉, 곳간)'도 있다. 특히 탄스는 지금도 여성들의 필수 혼수품
이며, 쿠라는 흙벽으로 지어 화재에 안전하므로 평상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나 귀중품같은
것을 넣어 보관하는 곳이다.
메이지 초기에 일본을 찾은 외국인이 '방에는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고, 메트(타타
미)만 깔려 있었다'고 한 것은, 일본인의 주거공간 이용의 한 단면을 잘 파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집 안에는 가재도구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 일본인의 가치관에서는
'살림살이 도구가 많은 것은 지저분한 사람'으로 간주될 정도였다. 도구들은 필요할 때 사용
하고, 그 후에는 사람 눈에 띄지 않게 감춰 놓아야 하는 것, 특히 이부자리를 낮에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칠칠치 못한 사람의 표본이었으며, 외국인에게 일본인의 이부자리는 언제나
정리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 두는 것으로 비친 것이다.
집안은 언제나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상황에 따라 필요한 도구들을 가져와 전시하는
극장의 무대와 같은 것이다. 자시키나 토코노마의 유일한 실내장식인 벽걸이 그림이나 꽃병
도 계절에 따라 매번 바꿔 놓을 정도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처럼, 일상의 생활공간이 극
장의 무대같은 것이라면,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대 뒤'(수납공간)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시이레나 쿠라와 같은 '무대 뒤'가 없다면, 일본인의 생활공간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인의 공간이용을 서구의 '박물관형'에 대비시켜 '극장형'에 비유
한 것은, 아주 절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8) 후로(風呂, 욕실)
현대식 아파트에 대부분 욕실이 딸려 있는 점은 우리나 일본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전통적 민가의 경우에는 우리와 크게 다르다. 일본의 민가에는 나무통으로 된 욕실이 마련
되어 있다. 일본인이 목욕을 자주 한다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습
기가 많은 여름날씨와의 상관관계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으나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겨울
에도 거의 매일 목욕을 하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목욕을 한다는 것은 신체위생적 목적뿐만
아니라, 방 전체를 데우는 난방법의 부재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보온효과, 혈액순환을 촉진
시켜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한 것, 그리고 가족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장 등, 여러가지 의미와
기능을 지니고 있다. 아침에 목욕을 하지 않는 점이나 가족이 함께 들어가는 습관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인에게 노천탕이 인기가 있는 것도 때를 씻기보다는 자연을 감상(특
히 설경)하는 데에 중요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인에게 목욕은 신체위
생뿐만 아니라 정신위생의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가옥내의 욕실과 함께 '센토(錢湯, 대중탕)'도 널리 이용되며, 그 연장선상에서 온천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대중탕이나 온천은 신체위생과 정신위생을 비롯하여 의료나
오락의 기능이 세트화된 시설이다. 대도시에는 '유나(湯女, 목욕탕에서 일하는 윤락녀)'의 등
장과 함께 '소푸란도(이전에는 '터어키탕'이라 했음)'라는 새로운 형태의 유흥장도 등장했다.
입욕설비의 규격화와 대량생산, 도시가스와 프로판가스의 보급으로 도시의 협소한 가옥에도
욕실이 마련되어, 대중탕보다는 집 안의 욕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대중탕은 고급화와 온천화를 시도하는데, 이는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가정용 사우나 시설을 비롯하여 가정내의 욕실에서도 온천맛을 내는 각종 액제가 개발되고,
심지어는 온천수를 가정으로 배달하는 비즈니스까지 등장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일본의 욕실은 화장실과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미풍의 욕조와 세
면기, 변기가 같은 장소에 세트화된 배스룸은 일본인에게 잘 먹혀 들지 않았다. 물리적 기능
면으로만 생각하면, 수도관의 배열이나 물을 대량으로 함께 쓰는 방수시설의 공사 등 합리
적인 면이 많지만, 문화적 감각에서는 편안하고 쾌적한 입욕과 결코 청결하지 못한 배설행
위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사회에서 '아카스리(때밀이)'라는 새로운 목욕관행이 유행하고 있는데, 아주 흥미
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인의 목욕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때를 씻는다'는 의미
가 약하다. 그러나, 한국의 '때밀이'가 여성들의 피부미용에 좋다는 것으로 알려져, 일본 전
국에서 '아카스리'라는 새로운 목욕 풍속도가 전개되고 있다. 관광지의 온천이나 대도시의
대중탕에 아카스리 아르바이트생을 찾는 광고가 나기도 하며, 심지어 일본인의 한국 단체관
광 코스에 '혼바(본고장, 원조)'의 '아카스리'가 단골메뉴로 들어가 있기도 하다. 이는 일본인
의 전통적 목욕문화에 있어서 새로운 발견, 즉 문화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의
일본 이미지 중에는 '혼탕'이나 '혼욕'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는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때를 미는 행위'에서 연상되는 불결함을 이성(異性) 앞에 들어내 보인다고 하는 심리적 저
항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혼욕은 일본에서 실제 찾아보기 힘들며, 있다고 해도 목욕문화
사적 가치나 남성들의 장난기 어린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9) 난방
일본서 겨울을 나본 사람이면, 기온에 비해 실제 체감온도가 대단히 낮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썰렁한 방의 한기에 적응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린다. 일본의 주택은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데 중점을 두어 지었기 때문이다. "집은 여름을 생각해서 지을 것"이라는 말은 통풍
과 습기의 차단을 설계의 포인트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가스나 석유 등의 난방기구로 직
접 공기를 데우는 직접난방 방식이 도입된 것은 2차대전 후의 일이다. 그 때까지는 이로리
에 불을 피워 거기서 생긴 숯불을 코타츠 밑에 넣어, 신체의 일부분만을 따뜻하게 하는 것
으로 추운 겨울을 지냈다.
이러한 난방방법은 물리적으로 자연의 영향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화로에 다가가서 손
을 조금 쬐는 것으로 추위를 관념적으로 극복해 버리는, 이를테면 자연에 순응하면서 추위
에 대해 내재적인 힘을 기르는 생활관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추운 겨울에 일부러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유키미(雪見, 눈감상)'를 즐기는 것이나 한 겨울에 강물에 띄어드는 축제가
성행하는 것 등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로리나 코타츠라고 해도 기껏해야 몸의 앞
부분을 따뜻하게 하는 것으로, 가옥의 구조가 바깥 공기가 통하게 되어 있는 이상, 방 전체
를 데워 전신을 따뜻하게 하는 난방방법은 전통적인 일본인의 겨울나기에는 없었다. 이는
자연과 아주 친화적인 삶의 방식이 주택구조에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의 한 건축학자는 일본의 주택이 외부의 추위나 더위에 대해서 피난처(shelter)로서의
구실을 거의 하지 못하는 점에 주목하여, 일본인은 '가혹한(austere)'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
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유럽 건축의 벽이 외부의 열이나 소리, 빛, 공기를 완전히 차단하
고, 심지어 외적까지 막을 수 있는 기능을 하고 있는 데 비해, 일본의 주택은 이 모든 것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의 산업의 근대화로 주택의 개량과 함께 냉난방방법에 획기적 변화
가 일어났다. 예를 들면, 석유나 가스, 전기스토브, 전기코타츠 등이 자연친화적인 전통적 난
방시설인 이로리를 밀어내고, 이어서 알루미늄샤시의 등장으로 외부공기를 완전히 차단함으
로써 에어컨에 의한 냉난방효과가 극대화시켜 사철 쾌적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동
시에 거주공간의 밀실화나 개실화(個室化)를 촉진시켜, 외부의 자연과 주거내의 공간을 완전
히 격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자연과의 격리된 삶이 현대 일본인의 주거양식이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다.
(10) 정원과 '니와(庭)'
일본의 주택은 그 형식이 단독주택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여분의 택지를 이용한 정원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 정원은 헤이안시대에 정토교(淨土敎)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정토만라(淨土曼羅, 아미타여래의 극락정토의 세계)를 뜰에 표현한 것이다. 헤이안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한 정원은 연못을 바다의 축소판으로 하여, 일본의 해안 명승지를 재현한 것
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처럼, 일본의 정원은 그 기원이 종교적 세계나 철학적 세계를
재현한 것이든, 와카(和歌)에 등장하는 명승고적을 흉내낸 것이든, 현실적 명소의 모습을 축
약해 표현한 것이다. 쿄토에 있는 '류안지(龍安寺)' 의 '세키테이(石庭)'는 불과 50평 넓이
에 대자연을 압축시켜 표현한 것으로,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전통적 정원의 모습은 그들의 세계관을 표현한 것으로서, 산과 계곡, 그 사이
를 흐르는 작은 강, 강 위의 다리,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민가나 전답, 신사나 사찰 등을 모
두 축소시켜 표현한 '하코니와(箱庭)'만 하더라도, 일본인의 마음 속 깊이 존재하는 전원적
풍경에 대한 이미지를 축약해서 표현한 것이다. 이어령이 축경(縮景)의 풍경기호로서 일본의
정원을 주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원은 거기서 놀거나
휴식을 취하는 장소가 아니라, 단지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음을 감상하는 곳이었다.
'니와(庭)'라고 하면, 잔디밭과 화단을 연상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현대인의 감각이다. 관
상용 수목이나 꽃을 인공적으로 심어 놓은 곳이 현대의 니와이지만, 원래 대지 안에 식물을
심지 않은 맨땅 부분이 니와(마당)였다. 니와는 멍석을 깔아 놓고 곡식을 말리거나 수확을
위한 공간이었다. 따라서, 감상용의 공간으로서의 정원과 노동공간으로서의 니와는 별개의
것이었다. 근대화와 산업화로 직장과 주거가 분리된 도시주택에서는 이러한 니와가 불필요
하게 되었다. 한편, 감상용 정원도 도시지역의 택지난으로 정착되지 못했다. 현대의 니와는
집을 짓고 남은 최소한의 공간에 잔디를 심고, 아이들을 위한 그네를 가져다 놓거나, 골프
연습장정도로 활용되고 있다. 화단을 가꾸는 일도 휴일을 이용한 잠시동안의 가벼운 노동으
로 충분하다. 본래 니와가 지니고 있던 노동공간으로서의 의미는 퇴색되었으며, 그렇다고 감
상용 정원의 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11) 결론과 과제
지금까지 살펴본 일본 주택의 특징은 첫째, 목조주택이라는 점이며, 둘째 무더운 여름을
쾌적하게 보낼 수 있는 통기성이 뛰어나며, 셋째 장지문이나 널문 등의 칸막이를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의 개방성이나 전용성이 대단히 높으며, 넷째 현관이나 토코노마, 도마와 같은 직
접적 거주공간이 아닌 공간을 소중히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가족구조는 2차대전 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해 핵가족으로 분열되어, '이
에'(家) 의식이나 가족내의 인간관계 등은 크게 변했다고 하나, 아직 주생활에 관한 한 전통
적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주생활에 관한 논의는 인간의 공간에 대한 인식체계를 실증적으
로 점검할 수 있는 중요한 분야이다. 주거가 가정생활의 공간적 표현이라고 하는 것도, 주거
의 동향을 관찰함으로써 어느 정도 생활현상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주거양식
에 대한 보다 많은 생활문화론적 연구가 기대된다.
일본의 주택에는 오모테와 우라, 카미와 시모의 두 가지 대립적인 방위가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오모테도 아니고 우라도 아니며, 카미도 아니고 시모도 아닌 '오쿠(奧)'라는 제3의
공간은 무시해도 좋은가. 다시 말해, 오모테와 우라의 대개념만으로는 오쿠라는 중층적(重層
的) 공간을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주거의 오모테인 니와(庭) 쪽에서 보면, 그 반대쪽에
있는 공간은 '세도(背戶, 뒤란이나 뒤뜰)'라 하는데, 이는 인간 신체의 '세나카(背中, 뒤쪽)'의
이미지와 관련된다. 또한 마을의 오쿠는 일상적으로 마을 사람들이 얼굴을 대하는 '오모테가
와(表側)'에서 보면, 그 뒤편(산 속이나 산 중턱)을 가리키며, 거기에는 어김없이 신사가 있
다. 즉 주거든 마을이든 오쿠로 간주되는 곳은 얼굴을 마주하는 오모테의 반대쪽에 있으며,
그곳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신이 마음을 통하는 종교적 이미지가 농후한 공간이 아닐까. 이
제부터는 오모테와 우라, 시모와 카미의 두 가지 대립적 개념뿐만 아니라, 오쿠라는 제3의
공간도 함께 분석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자료이다. 일본의 주거도 예외일 수 없다. 주거양식의 다양성은 기
후나 생업, 지리 등 생태학적 환경과 직접 관련되어 있으며,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蟁문
화적 조건과의 상호작용의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초기 인류학에서는 의식주에 대한 민족
지적 보고가 많았으며, 특히 건축물의 구조나 형식의 분류, 분포, 계통을 조사하여 그 역사
를 재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가옥을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현재는 문화인류학
의 관심이 물질문화에서 사회과학적 문제로 옮겨감에 따라, 지금까지 주로 물질문화 영역에
서 취급되어온 주거양식에 대한 연구가 감소했다.
한 실증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의 의식주 중 아직까지 전통적 생활양식을 가장 많이 유지
하고 있는 영역은 주생활이라 한다. 이 조사는 일본인의 생활사는 메이지 이후의 여러가
지 의미에서 구미화의 역사이지만, 주생활은 의생활이나 식생활에 비해 구미화의 영향을 가
장 적게 받은 영역으로서, 일본문화의 기층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라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
여주고 있다. 따라서, 주거는 일본인의 전통적 삶의 양식을 살펴보는 데 대단히 유효한 테마
라고 할 수 있다.
가옥이 인간의 물질문화의 중요한 일부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앞에서 언급
한 인간의 생활문화라는 맥락에서 검토하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사회蟁문화적 문제에 귀결
된다. 이러한 생활문화의 차원에서 주거양식을 다루고자 할 때, 적어도 다음 4가지 영역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첫째, 가옥의 소재나 형식에 관한 물질문화 차원, 둘
째 공간구성이나 가옥배치 등의 상징적 차원, 셋째 공간이용이나 권위체계 등의 사회적 차
원, 넷째 생활의식이나 공간의식 등의 인지적蟁신체적 차원이다. 이하 위의 4가지 영역을 중
심으로 일본인의 주거양식에 대해 개괄적으로 정리하고, 약간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1) 주거양식의 변화
일본에서 집을 보통 '이에(家)'라고 하는데, '이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건축
물로서의 '이에(집)'이고, 다른 하나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후손에게 물려주는 가족의 결
합원리로서의 '이에'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중복되어 일본인들의 주거양식에 관한 여러가
지 관념을 만들었다. '이에오 츠구'라고 하면, 두 가지 이에를 계승한다는 의미이고, '잇코오
카마에루'라 하면 분가나 세대독립을 통해 사회적으로 한 집 몫을 다할 수 있는 자격(사회
적 인격)을 취득한다는 의미이다.
동경의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끝없이 이어지는 2층 독립가옥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일본의 '잇코다테(一戶建, 단독주택)'라 하는 이에들이다. 잇코다테는 현대 일본의 주거양식
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 밖에 아파트나 맨션으로 일컬어지는 '집합주택'이나 '단지주택'
이 있다. 잇코다테와 함께 널리 보급된 아파트나 맨션의 집합주택은 일반적으로 인구의 도
시집중에 의한 주택난 해소가 목적이지만, 기초자치단체인 지방의 '市町村'에 건설된 공영
주택단지와 같이 사회보장적 성격이 짙은 것도 있다.
집합주택은 구미와 거의 같은 시기인 에도시대에 에도를 비롯한 오사카와 쿄토 등의 대도
시의 형성과 함께 나타났다. 현재와 같은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는 관동대지진(1923) 이후 '지
진피해복구 의연금'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동윤회(同潤會, 지금의 주택공단의 모태)가 처음으
로 건설했다. 이 때 동윤회를 중심으로 이른바 '문화주택'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주택이 도
시 교외에 건설되나, 2차대전 전까지 일본인의 생활양식에 맞지 않아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문화주택은 일본의 새로운 주거형태에 관한 시행착오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에 들어오면 공영집합주택으로서 '단지아파트'가 전국에 건설되는데, 단지아파트
건설은 과학적 합리주의에 근거한 철저한 '소형주의'로 일관하여, '단지사이즈'라는 '타타미
(일본식 돗자리)'를 출현시켰고, 그에 따른 가구의 표준규격화도 촉진시켰다. 또한 이 시대에
유행한 침식분리주의에 따라 다이닝蟁키친을 채용함으로써 오늘날 집의 규모와 형식을 가늠
하는 지표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LDK시스템'이 나타나게 된다.
1960년대 후반이 되면, '맨션'이라 하는 냉난방설계의 고급 아파트가 도심생활을 할 수밖
에 없는 고소득자와 전문직업인을 상대로 건설되었다. 1970년대에는 이러한 고급 맨션이 통
근시간 2시간 거리의 교외에 건설되어 일반 화이트칼라층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들을 지
칭한 이름으로 맨션을 비롯한 펜션(pension), 매존(maison), 하이츠(heights), 팰러스(palace),
아넥스(annex) 등이 등장하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호화스러운 이미지를 판매전략으로 삼
은 주택건설사업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초기에 '문화적' 이미지가 따라 붙었던
이러한 집합주택들도 협소한 공간에다 아무런 특징이나 개성을 찾아볼 수 없는 획일적 구조
때문에, 시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는데 실패했다. 특히, 방이 벽으로 구분되어 전통적 일본
가옥의 특징인 타타미방이 지닌 전용성과 융통성, 개방성이 사라진 데 대한 불만이 컸다. 이
제 '단지'는 협소하며 획일적인 생활공간이며, 조그만 정원이 딸린 '마이홈(단독주택)'에 들어
가기 전에 일시적으로 세들어 사는 집으로 인식되고 있다.
(2) 소재와 형식
일본의 농촌에 가보면, 아주 다양한 집 모양이 눈길을 끄는데, 우선 집의 규모가 대단히
크며, 지붕의 모양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전통적 '카야부키(억새지붕)'에서 과도기적 '도탄
(함석)' 지붕과 현대적 기와지붕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뒤의 두 가지 형태가 카야부키
와 다른 것은 지붕 위에 구멍이 없어 통기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지붕이
숨을 쉴 수 없다'고 한다. 습기와 더운 공기가 지붕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 차 있어
기둥이나 건축자재들이 썩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억새지붕은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에는
쉬원하다. 이는 전통적 집이 억새나 흙벽, 타타미, '도마(土間, 봉당)'에 의해 밖의 더위와 추
위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민가는 목재로 골격을 짜고, 억새로 지붕을 덮고, 방에 타타미를 깔고, 방과 방 사
이에 '쇼지(障子, 장지문)'와 '이타도(板戶, 널문 또는 판자문)'로 차단한 것이다. 다만, 억새의
생산과 공동체적 노동교환의 어려움으로 지붕은 함석과 기와로 바뀌는 추세이다. 그럼 여기
서 민가의 내부를 잠시 들여다 보기로 하겠다.
마당 입구에서 출입문을 들어서면, 바닥이 흙인 도마가 나타난다. 여기서 신발을 벗고 올
라서면 '이마(居間, 거실)'인데, 이마에는 정사각형 밥상 모양의 '코타츠(炬嫧, 각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이마와 부엌 사이에 난방이나 취사용으로 불을 피우는 '이로리(井爐裏)'가
있는 집도 있다. 도마를 등지고 앉으면 전면에 바닥보다 약간 높은 곳에 꽃을 장식해 놓거
나 여러가지 선물꾸러미를 쌓아둔 '토코노마(床間)'가 있다. 왼쪽이나 오른쪽(마당 반대쪽)에
는 사람 키 높이에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부츠단(佛壇)'이 있고, 다시 조금 비스듬히 높은
곳(천정 가까이)에는 신도의 여러 신을 모시는 '카미다나(神棚, 감실)'가 있다. 정면 토코노마
의 왼쪽이나 오른쪽에 나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양쪽에 방이 늘어서 있다. 말하자면 일
본 민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밭 '전(田)' 자형의 '겹집'인 것이다. 방과 방 사이는 쇼지
와 이타도로 차단되어 있으며, 집 안에서 모임이나 잔치를 열 때면, 쇼지와 이타도를 활짝
열어 젖혀 '자시키(座敷)'라는 하나의 커다란 방을 만든다. 즉 방과 방 사이의 개폐가 자유롭
다는 말이다. 일본의 가옥이 개방적이며 공간의 전용성이 뛰어나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3) 방의 배치에서 보는 두 가지 방위
주거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규명한 레비-스트로스는 트로브리앤드제도(Trobriand
Islands)의 주거공간이 자연과 문화, 날 것과 요리한 것, 주변과 중심이라는 2항대립적 구조
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일본의 주택에서도 이러한 2항대립적 코드가 존재하는데, 예를 들
면 '우치(內)'와 '소토(外)'를 비롯한 '오모테(表)'와 '우라(裏)', '카미(上)'와 '시모(下)'의 구별
이다. 일본의 주거에 관한 상징론적 연구를 보면, 일본 농가의 전통적 가옥은 기능상의 다양
한 공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田'자형이며 오모테의 비일상적 공간과 우라의 일상적 공
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오모테의 비일상적 공간이야 말로 상징론적
의미와 관련되는 부분이다.
일본의 전통적 민가(농가)에는 지역에 따라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대부분 명확한 두 가지
방위가 존재한다. 즉 오모테와 우라, 카미와 시모라고 하는 서로 마주보는 두 개의 방위이
다. 이 두 가지 방위에 따라 공간을 분류하면, '캬쿠마(客間, 객실)'와 '난도(納戶, 헛방)',
객실의 '츠기노마(次間, 다음방)', 객실의 '오쿠노마(奧間, 안쪽방)', 손님 출입구와 손님용 변
소, 일상의 주요 출입구와 부엌, 카미와 시모에는 객실과 도마(土間)가 있다. 이렇게 나누어
진 방은 주거 안에 차지하고 있는 상대적 위치를 나타내는 말로 호칭된다. 예를 들면 '오쿠
노자(안쪽방)'나 '나카노마(가운데방)', 자시키(座敷), 난도, '시모노마(아랫방)', 오모테 등이
있다. 이는 평면이 장방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또한 신사
나 사원과 같이 좌우대칭으로 만들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하나의 중심축에 대한 좌우라
는 방위구별은 존재하기 어렵다. 어느 쪽을 중시하느냐, 즉 방위에 대한 우열 개념의 존재여
부를 따져보면, 오모테와 우라가 카미와 시모에 비해 상위개념이었으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
이것이 역전되는 경향이 있다 한다. 이는 카미와 시모 방향으로 연속된 공간이 새로 만들
어짐으로써 카미와 시모의 방위개념이 강화된 것에서 비롯된다. 이에 비해 한국은 대청을
사이에 두고 사랑방과 안방이 일직선상으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오모테와 우라의 구분은
아주 미약하며, 카미(사랑방)와 시모(안방)의 개념이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주거공간은 동물과 달리 사회적 행동의 장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이
바로 방의 방위에 대한 상징론적 의미가 실제생활에 관련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
들방'이나 '침실'과 같은 특별히 기능적으로 한정된 방의 쓰임새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특히, 우리의 안방과 사람방의 구분처럼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공간구성에 반영된 예
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교도의 주거가 남성과 여성의 영역으로 확실하게 나뉘어
져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의 주거에도 성차(性差)에 의한 구별이 존재한
다. '고키부리 테이슈(바퀴벌래 남편)'라고 하면, 여성의 영역인 부엌에 아무런 저항없이
들어가는 남성을 빗데어 표현한 말로서 성차에 의한 공간을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주택의 거실에는 대부분 조상신을 모셔 놓은 부츠단과 신도계통의 신을 모셔 놓은 카
미다나가 있다. 둘 모두 '마츠리(祭司)' 공간으로서, 이에는 곧 그 구성원과 그들이 섬기는
신불의 공존이나 공생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주거가 의례蟁상징적으로 사용되는 또 하
나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 민가에서는 부츠단이나 카미다나 외에도 에비스신(惠比須
神)이나 난도신(納戶神), 수신(水神) 등의 여러 형태의 기능신들을 모시고 있으며, 자시키
는 조상공양(法事)을 위한 의례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4) 도마(土間)와 난도(納戶)
일본 집의 바닥은 도마와 '이타노마(마루방)', '타타미노마(타타미방)'로 되어 있으며, 도마
는 원시시대, 이타노마는 헤이안시대, 타타미노마는 카마쿠라의 무사사회에 출현했다고 한
다. 현대 도시주택에서는 도마를 찾아볼 수 없으나, 농촌이나 어촌에서는 우천시의 농삿일
이나 도구 보관소, 음식물의 저장, 마굿간 등, 여러가지 생산노동을 위한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도마의 기능은 이로리에서의 불의 사용(요리와 난방)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불을 안
전하게 다스릴 수 있는 흙의 특성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또한 츠보이(坪井洋文)에 의하면,
부엌이나 거실에 모셔져 있는 신들은 원래 도마에 모셔져 있던 신이 이에(家)의 수호신으로
다양한 기능을 갖게 되면서 이로리 주변으로 흩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도마는 이에의 수
호신을 모시는 공간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난도의 사용목적은 가재도구나 곡물의 수납, 잠자리 등으로 이용되는데, 여기서 잠자리는
보통 개인이 사용하는 잠자리와는 다른 의미로서 부부만의 '아이를 만드는 곳'으로 통용된
다. 따라서, 난도는 이에의 가장 북쪽에 있으며, 도마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
다. 외부는 흙벽으로 차단되어 있으며 입구도 폐쇄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부
부만의 침실로서 그들의 사생활을 확보하고, 추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노인이나 병약한 사람의 휴식용, 출산 장소, 죽은 자의 염습 등 여러가지 은밀한 인간
의 생활공간으로, 공개적이며 의례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자시키와 대조적인 쓰임새에 주목
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자시키와 난도를 성(聖)과 부정(不淨)의 대비관계로 파악하는 논
의에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주택이 개방적 구조라는 점을 감안하면, 난도의
폐쇄성과 독립성은 주목할 만하다.
(5) 손님을 위한 공간 - 이로리(井爐裏)와 자시키(座敷)
일본 주택의 공간을 지칭하는 말로서 '6조'(6帖), '4조반(4帖半)'과 같은 타타미의 수를 나
타내는 말이 있다. 즉 타타미가 깔려 있는 방은 기능적으로 동질적 공간이며, 차이가 있다면
크기 정도이다. '차노마(茶間, 다실)'라고 해도, 차를 마시기 위한 방이 아니라 가족들이 모여
차를 마시고, 담소하며, 식사도 하고, 심지어는 잠을 자는 공간으로도 이용된다. 이렇게 보
면, 일본주택의 내부공간은 아무런 특성도 없는 공간의 집합체인 것처럼 보이나 반드시 그
렇지는 않다.
전통적 일본주택의 거주공간은 의미론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범주의 공간으로 나
눌 수 있다. 즉 앞의 식생활에서 언급된 '케'의 공간과 '하레'의 공간이다. 케의 공간은 가족
들의 일상적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하레의 공간은 비일상적인 행사(의례)를 위한 공
간으로, 예를 들면 귀한 손님(때로는 神)을 맞이해서 대접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두 가지 범
주에 속하는 공간이 바로 '자시키'인데, 자시키는 신분에 따른 격식을 중시했던 무가사회에
서 출현한 것이다. 그들은 집 밖의 손님을 위해 별채를 짓고, 그 안에 자시키를 마련한 다
음, 자시키 정면에 정원을 꾸미고, 자시키로 통하는 '츠기노마(次間)', 손님용 현관과 변소,
그들이 드나드는 문 등을 갖춰 놓았다. 특히 무가사회에서 현관은 그 집 주인의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대단히 중시되었다. 왜냐하면, 현관은 소토(外)도 우치(內)도 아
닌 공간으로서 외부손님을 맞이하고 보내는 의례적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토코노마
(床間)'나 족자, 꽃꽂이 등, 손님을 맞이해서 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내부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썼으며, 독특한 맛을 그것도 복잡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마셔야 하는 '다도(茶道)'도
고안해 냈다.
민가에서는 별동이나 별체에 가까운 무가사회의 자시키와는 달리, 일상적으로 침실로 사
용하는 방을 여러 개 합쳐서 특정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보통의 방이
집안의 길흉사나 종교적 모임인 '코(講)' 등, 의례적이며 비일상적 기회에는 자시키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시키는 특별히 마련된 하레의 신성한 공간인 것이다.
케의 공간인 '다이도코로(台所)'는 현재 취사전용의 공간이지만, 원래 가운데에 이로리를
만들어 취사 휴식, 작업장, 이웃이나 친척을 맞이하는 공간 등 다양하게 이용되었다. 취사는
주로 도마에 설치된 '나가시(설거지 하는 곳)'나 '카마도(부뚜막)'에서 했다. 그러니까 현재는
취사전용의 다이도코로와 담소나 휴식, 손님맞이 전용의 '이마'가 분리되어 있다는 말이다.
취사와 난방, 커뮤니케이션 등의 다양한 기능을 가진 이로리는 아직도 지은지 오래된 민
가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로리 주위에는 '요코자'와 '카카자', '오토코자', '캬쿠자' 등 지위
에 따라 지정된 자리가 있으며, 각각 가장자리, 여자자리, 남자자리, 손님자리에 해당한다.
이로리에서는 우리의 온돌방에서 아랫목을 손님에게 권하는 것과 같은 좌석의 가변성이 없
다. 즉 가장이 앉은 '요코자(橫座)'는 가장의 부모나 사찰의 주지정도의 사람이 아니면 자리
를 양보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가장의 전용자리인 셈이다.
그런데, 산업의 발달과 직업의 다양화로 하레의 손님과 케의 손님이라고 하는 두 가지 범
주 외에, 제 3의 범주에 속하는 새로운 유형의 방문객이 등장하는데, 이를 위한 접대공간이
바로 '오세츠마(應接間, 응접실)'이다. 메이지 이후 새로운 도시적 생활양식의 진전과 함께,
자시키 손님도 아니고 이로리나 차노마의 일상적 방문객도 아닌 제3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
는 내방객이 증가한 것이다. 직장과 가정이 멀리 떨어진 통근생활이 일상화되면서 가족들이
알지 못하는 동료나 지인(知人)이 증가하고, 친구 사이도 아닌 사무적 용건으로 찾아오는 손
님이 많아졌다. 이들을 차노마와 같은 가족의 일상적 생활공간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심리적
저항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자시키에서 맞아야 할 정도로 의례적이며
격식을 차려야 할 손님이야 하면 그렇지도 않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다른 생활공간과 상대적으로 독립된 응접실이 대부분의 서민주
택에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본에 오래 살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것 중
에 하나가 일본의 가정집에 직접 들어가 볼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집으로 초대를 잘 하지 않는 폐쇄적 행동양식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공간이 협소하여 손님
맞이 전용의 응접실을 갖출 수 없는 가옥구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시게(石毛直道)는 여러 민족의 주거를 비교한 다음, 어느 민족의 주거에도 손님을 위한
공간이 있다고 했다. 이로리는 바로 일본의 전통적 가옥의 손님맞이 공간이다. 한 때 '혼
뱌쿠쇼(本百姓)'라 일컬어진 농가에서는 사람들의 모임을 위해 자시키를 마련해 두지 않
으면 안되었다. 자시키야 말로 본백성의 신분과 지위를 상징하는 지표였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 일본의 도시가정에서는 손님을 위한 공간 즉, '캬쿠마'를 갖추려면 5LDK의 넓이가 필
요하다. 따라서, 보통 2LDK나 3LDK의 도시형 집합주택에서는 응접실이나 캬쿠마를 갖출
여유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이 세계 유수의 선진국으로 통하는 경제대국 일본의
주택사정과 주택내부의 공간이용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나 생각한
다.
(6)타타미
일본주택이라 하면 흔히 '타타미방'을 떠올리는데, 타타미는 방바닥에 까는 일본식 돗자리
이다. 볏짚을 5㎝정도의 두께로 안에 심을 넣어 가로 90㎝(半間), 세로 180㎝(1間)의 크기로
단단하게 만든 다음, 그 위에 돗자리를 붙인 것이다. 이러한 소재와 양식은 세계에서도 아주
보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지일파 사회에서는 '일본인에 버금갈 정도로 일본어
를 마스터한다'는 의미로, '타타미제(tatamiser)'라는 동사를 사용할 정도로, 타타미는 일본과
일본문화를 상징하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타타미는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차지 않는 특성 때문에, 별다른 난방시설없이 방 바닥
마감재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는데, 에도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상류계층의 집, 그것도 일부
의 방에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귀중품이었다고 한다. 대부분 마루로 된 방에서 생활한
것이다. 모모야마(挑山, 1568-1600)시대에 쿄토에서 '타타미와리(타타미 크기)'라는 설계방식
이 도입되어, 이 타타미의 크기에 맞춰 건축자재나 가재도구, 방의 크기까지 표준화되어 전
국적으로 보급되었다. 타타미의 크기가 일본인의 살림살이의 척도가 된 것이다. '6조'니 '4조
반'이니 하는 것은 이 타타미의 장 수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곧 방의 크기를 나타내는 잣
대가 된다.
타타미가 일반화됨에 따라, 앉음새도 남자는 '아구라(책상다리)', 여자는 '타테히자(한쪽 무
릎을 세워 앉는 것)'에서 남녀 모두 정좌(양 무릎을 꿇고 않는 모양)가 정식의 앉음새가 되
었다. 이는 밑바닥이 딱딱하며 따뜻한 온돌과 달리, 쿠션이 있고 따뜻하지 않는 타타미에 가
능한 한 많이 닿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방과 방을 구분하는 벽이 쇼지나 이타도와 같이 마음대로 여닫을 수 있게 하여, 방의 활
용성을 높였다. 그러나, 특정 개인의 밀실로 사용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의 주거공간에 프라이버시의 관념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리적 장벽으로 개인의
공간을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쇼지 한 장으로 공간을 상징적으로 나누고, 그 반대편에서 일
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으로 했다. 말하자면, 정신적 경계와 그
에 걸맞는 행위나 예절이 강조된 것이다. 일본인은 쇼지나 후스마(맹장지), 타타미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지만, 서구인은 벽에 둘러싸여 문을 꼭 닫은 방 안이라야 마음을 놓는다.
서구인에게 는 자연과 완전히 차단된 주거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2차대전 후 널리 보급된
단지주택은 서구양식을 본 떠 지었지만, 서양식은 주방과 화장실뿐이고, 집 안의 공간배치는
개폐가 자유로운 전통적 타타미방식을 취하고 있다. 타타미방은 초현대식 호텔에까지 '와시
츠(和室, 타타미방)'라는 이름으로 배치될 정도로, 일본인들의 거주양식에 기층을 이루고 있
는 부분이다.
(7) 오시이레(押入) - 수납과 보관
침구류나 사용하지 않는 가재도구를 넣어두는 곳으로 '오시이레'가 있는데, 말하자면 우리
의 붙박이장과 같은 것이다. 일본집에 들어가 보면, 집 안에 가구류나 침구, 옷장 등이 보잘
것 없거나 잘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알았지만 거의 모두 오시이레에 넣어둔 것이다. 물건을
사람 눈에 직접 띄지 않게 넣어 두는 수납공간에는 신발장같은 '토이타(戶板)'나 '탄스(옷
장)', 그리고 별동건물인 '쿠라(倉, 곳간)'도 있다. 특히 탄스는 지금도 여성들의 필수 혼수품
이며, 쿠라는 흙벽으로 지어 화재에 안전하므로 평상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나 귀중품같은
것을 넣어 보관하는 곳이다.
메이지 초기에 일본을 찾은 외국인이 '방에는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고, 메트(타타
미)만 깔려 있었다'고 한 것은, 일본인의 주거공간 이용의 한 단면을 잘 파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집 안에는 가재도구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 일본인의 가치관에서는
'살림살이 도구가 많은 것은 지저분한 사람'으로 간주될 정도였다. 도구들은 필요할 때 사용
하고, 그 후에는 사람 눈에 띄지 않게 감춰 놓아야 하는 것, 특히 이부자리를 낮에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칠칠치 못한 사람의 표본이었으며, 외국인에게 일본인의 이부자리는 언제나
정리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 두는 것으로 비친 것이다.
집안은 언제나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상황에 따라 필요한 도구들을 가져와 전시하는
극장의 무대와 같은 것이다. 자시키나 토코노마의 유일한 실내장식인 벽걸이 그림이나 꽃병
도 계절에 따라 매번 바꿔 놓을 정도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처럼, 일상의 생활공간이 극
장의 무대같은 것이라면,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대 뒤'(수납공간)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시이레나 쿠라와 같은 '무대 뒤'가 없다면, 일본인의 생활공간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인의 공간이용을 서구의 '박물관형'에 대비시켜 '극장형'에 비유
한 것은, 아주 절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8) 후로(風呂, 욕실)
현대식 아파트에 대부분 욕실이 딸려 있는 점은 우리나 일본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전통적 민가의 경우에는 우리와 크게 다르다. 일본의 민가에는 나무통으로 된 욕실이 마련
되어 있다. 일본인이 목욕을 자주 한다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습
기가 많은 여름날씨와의 상관관계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으나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겨울
에도 거의 매일 목욕을 하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목욕을 한다는 것은 신체위생적 목적뿐만
아니라, 방 전체를 데우는 난방법의 부재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보온효과, 혈액순환을 촉진
시켜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한 것, 그리고 가족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장 등, 여러가지 의미와
기능을 지니고 있다. 아침에 목욕을 하지 않는 점이나 가족이 함께 들어가는 습관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인에게 노천탕이 인기가 있는 것도 때를 씻기보다는 자연을 감상(특
히 설경)하는 데에 중요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인에게 목욕은 신체위
생뿐만 아니라 정신위생의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가옥내의 욕실과 함께 '센토(錢湯, 대중탕)'도 널리 이용되며, 그 연장선상에서 온천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대중탕이나 온천은 신체위생과 정신위생을 비롯하여 의료나
오락의 기능이 세트화된 시설이다. 대도시에는 '유나(湯女, 목욕탕에서 일하는 윤락녀)'의 등
장과 함께 '소푸란도(이전에는 '터어키탕'이라 했음)'라는 새로운 형태의 유흥장도 등장했다.
입욕설비의 규격화와 대량생산, 도시가스와 프로판가스의 보급으로 도시의 협소한 가옥에도
욕실이 마련되어, 대중탕보다는 집 안의 욕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대중탕은 고급화와 온천화를 시도하는데, 이는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가정용 사우나 시설을 비롯하여 가정내의 욕실에서도 온천맛을 내는 각종 액제가 개발되고,
심지어는 온천수를 가정으로 배달하는 비즈니스까지 등장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일본의 욕실은 화장실과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미풍의 욕조와 세
면기, 변기가 같은 장소에 세트화된 배스룸은 일본인에게 잘 먹혀 들지 않았다. 물리적 기능
면으로만 생각하면, 수도관의 배열이나 물을 대량으로 함께 쓰는 방수시설의 공사 등 합리
적인 면이 많지만, 문화적 감각에서는 편안하고 쾌적한 입욕과 결코 청결하지 못한 배설행
위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사회에서 '아카스리(때밀이)'라는 새로운 목욕관행이 유행하고 있는데, 아주 흥미
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인의 목욕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때를 씻는다'는 의미
가 약하다. 그러나, 한국의 '때밀이'가 여성들의 피부미용에 좋다는 것으로 알려져, 일본 전
국에서 '아카스리'라는 새로운 목욕 풍속도가 전개되고 있다. 관광지의 온천이나 대도시의
대중탕에 아카스리 아르바이트생을 찾는 광고가 나기도 하며, 심지어 일본인의 한국 단체관
광 코스에 '혼바(본고장, 원조)'의 '아카스리'가 단골메뉴로 들어가 있기도 하다. 이는 일본인
의 전통적 목욕문화에 있어서 새로운 발견, 즉 문화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의
일본 이미지 중에는 '혼탕'이나 '혼욕'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는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때를 미는 행위'에서 연상되는 불결함을 이성(異性) 앞에 들어내 보인다고 하는 심리적 저
항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혼욕은 일본에서 실제 찾아보기 힘들며, 있다고 해도 목욕문화
사적 가치나 남성들의 장난기 어린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9) 난방
일본서 겨울을 나본 사람이면, 기온에 비해 실제 체감온도가 대단히 낮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썰렁한 방의 한기에 적응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린다. 일본의 주택은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데 중점을 두어 지었기 때문이다. "집은 여름을 생각해서 지을 것"이라는 말은 통풍
과 습기의 차단을 설계의 포인트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가스나 석유 등의 난방기구로 직
접 공기를 데우는 직접난방 방식이 도입된 것은 2차대전 후의 일이다. 그 때까지는 이로리
에 불을 피워 거기서 생긴 숯불을 코타츠 밑에 넣어, 신체의 일부분만을 따뜻하게 하는 것
으로 추운 겨울을 지냈다.
이러한 난방방법은 물리적으로 자연의 영향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화로에 다가가서 손
을 조금 쬐는 것으로 추위를 관념적으로 극복해 버리는, 이를테면 자연에 순응하면서 추위
에 대해 내재적인 힘을 기르는 생활관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추운 겨울에 일부러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유키미(雪見, 눈감상)'를 즐기는 것이나 한 겨울에 강물에 띄어드는 축제가
성행하는 것 등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로리나 코타츠라고 해도 기껏해야 몸의 앞
부분을 따뜻하게 하는 것으로, 가옥의 구조가 바깥 공기가 통하게 되어 있는 이상, 방 전체
를 데워 전신을 따뜻하게 하는 난방방법은 전통적인 일본인의 겨울나기에는 없었다. 이는
자연과 아주 친화적인 삶의 방식이 주택구조에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의 한 건축학자는 일본의 주택이 외부의 추위나 더위에 대해서 피난처(shelter)로서의
구실을 거의 하지 못하는 점에 주목하여, 일본인은 '가혹한(austere)'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
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유럽 건축의 벽이 외부의 열이나 소리, 빛, 공기를 완전히 차단하
고, 심지어 외적까지 막을 수 있는 기능을 하고 있는 데 비해, 일본의 주택은 이 모든 것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의 산업의 근대화로 주택의 개량과 함께 냉난방방법에 획기적 변화
가 일어났다. 예를 들면, 석유나 가스, 전기스토브, 전기코타츠 등이 자연친화적인 전통적 난
방시설인 이로리를 밀어내고, 이어서 알루미늄샤시의 등장으로 외부공기를 완전히 차단함으
로써 에어컨에 의한 냉난방효과가 극대화시켜 사철 쾌적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동
시에 거주공간의 밀실화나 개실화(個室化)를 촉진시켜, 외부의 자연과 주거내의 공간을 완전
히 격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자연과의 격리된 삶이 현대 일본인의 주거양식이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다.
(10) 정원과 '니와(庭)'
일본의 주택은 그 형식이 단독주택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여분의 택지를 이용한 정원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 정원은 헤이안시대에 정토교(淨土敎)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정토만라(淨土曼羅, 아미타여래의 극락정토의 세계)를 뜰에 표현한 것이다. 헤이안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한 정원은 연못을 바다의 축소판으로 하여, 일본의 해안 명승지를 재현한 것
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처럼, 일본의 정원은 그 기원이 종교적 세계나 철학적 세계를
재현한 것이든, 와카(和歌)에 등장하는 명승고적을 흉내낸 것이든, 현실적 명소의 모습을 축
약해 표현한 것이다. 쿄토에 있는 '류안지(龍安寺)' 의 '세키테이(石庭)'는 불과 50평 넓이
에 대자연을 압축시켜 표현한 것으로,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전통적 정원의 모습은 그들의 세계관을 표현한 것으로서, 산과 계곡, 그 사이
를 흐르는 작은 강, 강 위의 다리,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민가나 전답, 신사나 사찰 등을 모
두 축소시켜 표현한 '하코니와(箱庭)'만 하더라도, 일본인의 마음 속 깊이 존재하는 전원적
풍경에 대한 이미지를 축약해서 표현한 것이다. 이어령이 축경(縮景)의 풍경기호로서 일본의
정원을 주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원은 거기서 놀거나
휴식을 취하는 장소가 아니라, 단지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음을 감상하는 곳이었다.
'니와(庭)'라고 하면, 잔디밭과 화단을 연상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현대인의 감각이다. 관
상용 수목이나 꽃을 인공적으로 심어 놓은 곳이 현대의 니와이지만, 원래 대지 안에 식물을
심지 않은 맨땅 부분이 니와(마당)였다. 니와는 멍석을 깔아 놓고 곡식을 말리거나 수확을
위한 공간이었다. 따라서, 감상용의 공간으로서의 정원과 노동공간으로서의 니와는 별개의
것이었다. 근대화와 산업화로 직장과 주거가 분리된 도시주택에서는 이러한 니와가 불필요
하게 되었다. 한편, 감상용 정원도 도시지역의 택지난으로 정착되지 못했다. 현대의 니와는
집을 짓고 남은 최소한의 공간에 잔디를 심고, 아이들을 위한 그네를 가져다 놓거나, 골프
연습장정도로 활용되고 있다. 화단을 가꾸는 일도 휴일을 이용한 잠시동안의 가벼운 노동으
로 충분하다. 본래 니와가 지니고 있던 노동공간으로서의 의미는 퇴색되었으며, 그렇다고 감
상용 정원의 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11) 결론과 과제
지금까지 살펴본 일본 주택의 특징은 첫째, 목조주택이라는 점이며, 둘째 무더운 여름을
쾌적하게 보낼 수 있는 통기성이 뛰어나며, 셋째 장지문이나 널문 등의 칸막이를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의 개방성이나 전용성이 대단히 높으며, 넷째 현관이나 토코노마, 도마와 같은 직
접적 거주공간이 아닌 공간을 소중히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가족구조는 2차대전 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해 핵가족으로 분열되어, '이
에'(家) 의식이나 가족내의 인간관계 등은 크게 변했다고 하나, 아직 주생활에 관한 한 전통
적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주생활에 관한 논의는 인간의 공간에 대한 인식체계를 실증적으
로 점검할 수 있는 중요한 분야이다. 주거가 가정생활의 공간적 표현이라고 하는 것도, 주거
의 동향을 관찰함으로써 어느 정도 생활현상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주거양식
에 대한 보다 많은 생활문화론적 연구가 기대된다.
일본의 주택에는 오모테와 우라, 카미와 시모의 두 가지 대립적인 방위가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오모테도 아니고 우라도 아니며, 카미도 아니고 시모도 아닌 '오쿠(奧)'라는 제3의
공간은 무시해도 좋은가. 다시 말해, 오모테와 우라의 대개념만으로는 오쿠라는 중층적(重層
的) 공간을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주거의 오모테인 니와(庭) 쪽에서 보면, 그 반대쪽에
있는 공간은 '세도(背戶, 뒤란이나 뒤뜰)'라 하는데, 이는 인간 신체의 '세나카(背中, 뒤쪽)'의
이미지와 관련된다. 또한 마을의 오쿠는 일상적으로 마을 사람들이 얼굴을 대하는 '오모테가
와(表側)'에서 보면, 그 뒤편(산 속이나 산 중턱)을 가리키며, 거기에는 어김없이 신사가 있
다. 즉 주거든 마을이든 오쿠로 간주되는 곳은 얼굴을 마주하는 오모테의 반대쪽에 있으며,
그곳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신이 마음을 통하는 종교적 이미지가 농후한 공간이 아닐까. 이
제부터는 오모테와 우라, 시모와 카미의 두 가지 대립적 개념뿐만 아니라, 오쿠라는 제3의
공간도 함께 분석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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