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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통유

작성자박철우|작성시간23.01.13|조회수7 목록 댓글 0



- 찰스 칼렙 콜튼

진실의 가장 큰 친구는 시간이고 진실의 가장 큰 적은 작은 편견이며
진실의 영원한 동반자는 겸손이다





지혜(智慧)와 통유(通幽)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가끔 바둑을 두고는 했습니다.
실력은 대등했으나 이기는 쪽은 언제나 이성계였습니다.

이에 이성계가 말합니다.

“대사는 나무를 보고 있지만 나는 숲을 보는 중이라오.”

무학대사는 잔 수에 밝았고, 이성계는 대세에 밝아 반상을 두루 살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길을 가다 한 농부가 산 밑에 집을 짓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풍수지리에 능한 무학대사는 “농부는 3년 안에 거부가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들어설 자리라고 말입니다.

이와 반대로 이성계는 저곳은 몇 년 안에 폐허가 될 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서 둘이 내기를 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3년 후, 그곳을 지나던 무학대사는 자신의 생각과 반대로 그곳에 폐가가 들어서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이 사실을 이성계에게 전했습니다.
이성계는 웃으며 “대사는 잔 수에는 밝으나 대세에는 약한 것이 문제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곳이 폐허가 된 것은 대사의 풍수지리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대사의 예상대로 그 농부는 큰 부자가 되었는데’, 무학대사가 볼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부자가 된 사람이 그런 골짜기에 살지 않을 것이라고 까지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부자가 된 농부는 산 밑의 외딴 산골에서 살지 않고, 분명 사람이 많은 번화가로 나가서 떵떵거리며 살 것이라고 예측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곳이 폐허가 될 거라고 예측했던 것입니다.
무학대사는 풍수지리를 읽는 것에는 분명 능했지만 이성계처럼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에는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집터가 명당임을 아는 것까지는 배움의 영역, 즉 지식의 영역입니다.
부자가 된 농부가 그 집을 떠날 것까지 볼 수 있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자 ‘비움의 영역’입니다.

바둑에서는 이를 ‘통유의 단계’라고 합니다.

‘지혜’란 ‘지식’을 활용하여 이르고자하는 이치에 가장 알맞는 방법이나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고,
‘통유’란 채우는 단계를 지나 비움으로써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경지를 말합니다.

현재의 삶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살아가려면 자기만의 틀에서 나와, 자기 밖의 세상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세상의 이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자기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들이 부분적으로는 맞고, 옳을 수는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틀리고 그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시각과 생각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혜와 통유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기를 바란다면, 항상 역지사지의 시각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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