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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면 소식

수필 : 산타의 추억

작성자松谷(송곡)|작성시간16.12.14|조회수55 목록 댓글 0




산타의 추억

 

김 형 예

 

 성탄절이 다가왔다. 거리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고, 맑고 청량한 구세군 종소리가 정겹다.아름다운 네온등이 거리를 밝히고 즐비한 상가들은 형형색색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크리스마스 튜-리를 장식한 체 손님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퇴근길이다. 집에서 몇 정거장 전 지하철역에서 내려 30여 분을 걸어간다. 버스로 갈아타고 가도되고 그대로계속 전동차에 타고 있으면 집 가까운 역에서 내릴 수 있지만, 일부러 중간에서 내린다. 운동하기 위해서다.

 

  오늘 저녁부터 한파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정확했는지 퇴근길 매서운 겨울의 칼바람이 뼛속 깊이 파고든다. 앙상한 가로수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 비추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은 차가운 겨울만큼이나 더욱더 을씨년스럽다. 퇴근길의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은 케롤송이 울린다.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문득 아련한 어린 시절 추억이 머릿속을 스친다.

 

 내 고향은 소백산 자락의 첩첩 산골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우리 집에 낡은 라디오가 한 대 있었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뉘엿뉘엿 서산으로 해가 넘어갈 무렵이면 <마루치, 아라치>라는 어린이 연속극이 전파를 탄다.썰매 타던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친구들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옹기종기 우리 집 라디오 앞으로 모여든다. 태권 동자 마루치, 아라치가 파란 해골 13호와 악당들을 물리치는 활약상을 들으며 우리는 정의감과 의협심을 키우고 동심을 살찌웠다

  

 애초에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우리 집이지만 이맘때는 항상 내 마음이 설렌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때문이다. 성탄절 아침에 눈을 뜨면 한해도 거르지 않고 머리맡에는 선물이 놓여 있었다. 호두, 양말, 벙어리장갑, 오꼬시, 고구마과자, 돌사탕, 학용품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성탄절의 유래에 대해서는 애초에 관심 밖이다. 겨울방학 기간이라 선생님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동네에 교회도 성당도 없어 누구 하나 성탄절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고 애써 묻지도 않았다. 오직 성탄절은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받는 날이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웠다어머니도 성탄절의 유래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고 동네에는 교회가 없었기에 교인이 한 명도 없어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열심히 공부 잘하고 착한 어린이에게는 하늘에서 썰매를 타고 오신 산타할아버지가 많은 선물을 주고, 나쁜 짓을 하거나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어린이에게는 선물을 안 준다.” 어머니의 이야기만 철석같이 믿었다. 어쩌다 친구들과 나쁜 행동을 했던 것이 머릿속에 떠올려질 때면 혹시나 산타의 선물을 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을 하곤 했었다. 새해가 밝으면 항상 달력 맨 마지막 성탄일에 혹여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연필로 몇 번씩이나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려놓기도 했다. 매년 성탄 전일이면 어머니는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산타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며 채근하지만,이유를 알지 못했다. 올해만큼은 기어이 산타의 얼굴을 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두 눈 부릅뜨고 버티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다음 날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인 선물을 바라보며 잠이 든 것에 대해 후회도 하고 잠들지 않았을 때 찾아오지 않은 산타를 원망도 하면서 또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기다렸다. 한 번도 산타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고 어머니가 산타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한참이나 철이 든 몇 년 뒤의 일이다. 요즘 아이들은 영악하다 했던가? 딸아이가 어린 시절 나도 어머니처럼 산타가 되었다. 잠든 딸아이의 머리맡에 선물을 갖다놓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선물을 받아든 순간 산타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리는 딸아이가 못내 얄밉고 섭섭하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는 듯 고요한 세월은 잠시도 지체함이 없이 달려왔나 보다. 각종 네온등이 거리를 밝히고 귀에 익숙한 케롤송이 퇴근길 귓전을 울리는 것으로 보아 성탄절이 가깝다. 탁상 달력에는 송년회 등 각종 모임 일정이 빼곡히 여백을 메우고 있고 어린 시절 그렇게도 손꼽아 기다렸던 성탄절이건만 이제는 하나도 반갑지 않다. 속절없이 나이만 더하게 되니 말이다. 머리에는 하얀 서리 내리고 이마에 깊은 잔주름 가득한 거울 속에 비쳐진 나를 바라보며 문득 부질없는 생각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이번 성탄절에는 푸짐한 선물 보따리 대신 산타할아버지가 지나가는 세월일랑 굵은 동아줄로 꽁꽁 묶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원고지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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