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1932년 1월 8일, 일본의 도오쿄오 한복판, 일본 국왕의 마차 행렬에서 큰 폭발음이 울렸다. 한국의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가 히로히토 국왕을 폭살하기 위해 수류탄을 던졌던 것이다. 이 폭음은 일제 강점기 독립을 염원하는 한민족의 함성이었다.
이봉창 의사가 일본사람들이 천황으로 받드는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진 곳은 일본에서 보안과 경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경시청 앞에서였다. '황거'라고 하는 국왕의 관저도 바로 뒤에 있다. 거사는 실패했지
만 일본은 내각 전원사퇴등 발칵 뒤집혔다
선생은 1932년 9월 30일 오전 9시 350명의 경찰이 겹겹이 둘러싼 가운데 일본 도쿄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선생은 1932년10월 10일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받았다. 당시 미혼이었으며 처자식이 없는 순국이었다. 광복 후 귀국한 백범은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돌려받아 1946년 서울 효창공원에 윤봉길 백정기와 함께 안장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이 날 2023.5,24 고교 모임이 있어 양재시민의숲을 거닐면서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지나고 이봉창 의사를 회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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