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기념관 건축부지 4천평 기증하셨다
원로배우 신영균(95) 할아버님이 이승만기념관 건립 부지로 자신의 사유지 4000평 기증하셨다. 23년 6, 29일 발족한 이승만대통령 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위원장, 이승만·박정희·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이 고문을 맡았다. 기증될 부지는 한강변 본인이 이대통령과 낚시하던 추억의 곳에 기념관이 들어설수 있다.연합뉴스와통화에서 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발족 회의때 기념관 부지 기증 의사를 알렸다.이 대통령과 낚시하던 곳"으로 대통령과 인연 있는 땅이니 기증하기로 했다". 기념관 부지로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인근, 이승만연구원, 낙산근린 공원 등 서울 중구와 종로구가 검토되던중에 이승만대통령 기념재단을 설립해 기금모금운동, 사업신청 등의 활동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체 사업비의 30%를 정부가 지원할 수 있다. 그는 추진위 참여 과정에 대해서도 사연을 전했다. " 제 고향도 같은 황해도 평산이고 건국의 아버지로서 존경해 왔기에 흔쾌히 받아드렸다." 그가 어떻게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로 "존경"할수 있었을까. 대통령 하야 이후 60여년을 돌아보면 남다른 감회가 떠오른다고 했다.
이승만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무지와 오해, 왜곡과 거짓소문기억만 남겼으며 지난 20년 민주화의 이름으로 ‘악마화’의 의도적 폄훼가 자행됐었기 때문이다. 신 회장과 이 전 대통령 사이엔 개인적인 만남뿐아니라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20세기 중반 한반도에 자유 민주공화국을 건설했으면서 무일푼으로 세상을 떠난 이 전 대통령이 그렇듯, 신 회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꼽힐 만하다. 약 3000억 자산가이자 제15·16대 국회의원도 지낸 인물이지만, 평소 유언이 "내 관엔 성경책 한권만 넣어 달라"였다.
2019년 인터뷰시 고린도전서 15: 10절을 최애 구절로 "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지금까지 500억 자산을 세상에 되돌린 사회환원 행보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충무로 명보극장(현 명보아트홀) 기증도 화제였다. 1977년 8월 7억5000만원에 인수한 명보 극장의 자산가치가 40년 사이 60배 넘게 뛰었다. 신 회장의 소신에 따라 제주영화 박물관도 기증. 그의 기부로 설립된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영화인 자녀 장학금지원등, 아름다운 예술인상 시상 등을 통해 문화예술인 발굴 및 양성 사업을 해왔다. 모교 서울대학교에도 시가 100억원 상당의 대지를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의사,정치인, 성공한 사업가인 그는. 서울대 치대를 나와 의사로 일하다 1960년에 영화 ‘과부’로 데뷔해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연산군’‘열녀문’‘빨간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등이 대표작이다. 1960∼197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큰별, 한 시대를 대표한 주연급 배우가 흔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적 없다는게 좋은 모델이다. 이화여대 정외과 출신 7살 연하 부인에게 충실했던 것 역시 크리스천의 미덕이 발휘됐다. 2019년 언론 인터뷰에서 술·담배·도박·여자를 멀리하고 살아 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제가 조금 재미없게 살았죠. 그래도 원칙 하나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미남형 외모에 자신의 매력으로 누군가 파멸로 이끌 이미지가 아니었다. 퇴폐적 방탕아와 동떨어진 믿음직하고 건실한 배역을 맡았으며, 반듯한 사생활이 그 이미지를 받쳐주어. 28년생이라‘28청춘’별명이다. 이제 기념관 건립을 위한 그의 공헌이 새로운 미담재료다. 대한민국-反대한민국’의 대결이었던 현대사 75년에 ‘원로배우 신영균’은 모두가 기억 해야 할 또 하나의 제목이 됐으니 참으로 닮고싶은 신앙인의 모델이되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