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에 대한 중국의 관점>
지난 18일 메릴랜드주에 있는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한국 대통령 윤석열, 일본 총리 기시다가 미국 대통령 바이든과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해방 후에는 미국의 신식민지로 지내 온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의 수장들과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는 대충 짐작된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식민지였던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제국주의로 편입된 경우다. 맑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에 따르면 이때 ‘제국주의’란 해외에서 자국으로 유입되는 부가 자국에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부보다 더 큰 나라를 가리킨다. 단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도 질서가 있다. 한국인이 통상 ‘한미일’이라고 부르는 세 나라의 위계는 사실 ‘미일한’의 순서라고 봐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자본주의적 세계체계에서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로 되었고, 특히 1991년에 소련이 붕괴한 뒤로는 일극적 세계질서를 관장하는 초강대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국제질서에서 일본과 한국의 두 나라는 ‘대형’ 미국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신세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은 이번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에 참석하게 된 것 자체를 일신의 영광으로 여겼을지 모르나 그가 거기 갔다는 자체가 한국으로서는 차렷 자세로 미국의 지시를 받게 되었다는 말일 공산이 크다.
캠프데이비드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나 해외에서는 이번 회담에서 아시아 태평양 안보 질서에 대한 논의가 오간 것에 주목하는 모양이다. 특히 중국의 관심이 그 점에 쏠린다는 느낌이 든다. 마침 중국의 관변 매체인 <환구시보>에서 관련 주제로 사설을 냈기에 그 전문을 번역해봤다.
--------------------------------------------------------------------------
--미국·일본·한국 캠프데비이드 정상회담, 아세안에 억지 연극 요구하려 해
미국, 일본, 한국의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은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세계평화와 지역 평온에 미치는 충격 효과는 계속해서 발효될 것이다. 국제여론이 주목한 것은 3국이 서명한 ‘캠프데이비드 정신’이라는 공동성명에서 아세안과 태평양 도서국들이 대거 언급되고, 남중국해 문제가 “지금까지 볼 때 가장 강경한 어구”로 언급되었다는 것, 그것도 북핵 문제보다 먼저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서방 매체와 인터뷰한 미국 전문가들은 일제히 성명의 언급 순서가 그런 식으로 된 것에 대해 다소 “의외”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과 한국 가운데 하나는 순수하게 지역 외부 국가이고, 나머지 둘은 동북아 국가로, ‘신냉전’을 표방하는 패거리 모임에서 세 나라는 다른 지역의 정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주제넘게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管闲事)”이 그렇게 간단할 수는 없다. 외부 여론이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갖는 보편적 인상은 . “중국의 도전에 공동 대응한다”라는 것이다. 그에 대해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중국은 미·일·한 정상회담의 목적이 아니다”라며 두루뭉수리로 말했지만, 중국은 화두로 “분명히 출현했다.”
어떤 의미에서 “캠프데이비드 정신”은 흥미롭다. 원래 그것은 미국이 “신냉전”의 칼을 넘겨줄 요량으로 일본과 한국을 위해 주최한 연회였지만 결과적으로 일본과 한국은 둘 다 수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제히 3국은 그 자리에도 없었고 정상회담과는 관련이 없는 제3자 즉 아세안과 태평양 도서국들에 그 칼을 넘겨주려고 시도했다. 미·일·한은 그런 강제 플레이를 위해 아세안 국가와 태평양 도서국들과 사전에 소통한 적이 있는가? 그들의 희망을 물어는 봤는가?
3국은 모두 표면적으로는 중국을 에돌고 있지만, 아세안과 태평양 도서국들을 무기로 삼아 은밀히 중국 견제의 최전선에 배치하려 한다. “캠프데이비드 정신”은 이들 국가를 “신냉전”의 희생물로 만들려는 악랄한 계산으로 넘치고 있다. 이전에는 지역의 일부 국가가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 게임(玩平衡)”을 하며 가능한 한 더 많은 자원을 얻어내고자 했다면, 지난 2년 동안은 강대국 간의 갈등으로 더 많은 나라가 실제 우려를 더 많이 하게 된 셈이다. 미국의 전통적 안보 파트너 싱가포르와 미국이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베트남 등을 포함한 아세안 국가들은 다들 수많은 공개석상에서 “편들기”를 원하지 않음을 밝혔고, 태평양 도서국들은 더 노골적으로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미국이 아세안을 게임에 끌어들이는 일은 하루 이틀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지금도 고심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기왕의 작업이 성공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지금 한국과 일본을 끌어들이더라도 최종적 실패라는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 근본 이유는 미국이 아세안의 역사와 현실을 무시하고, 지역 국가들의 독립적인 자주외교 의지를 무시하는 데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냉전에 대해 너무나 부정적인 기억을 지니고 있으며 “신냉전”의 기도에 대해 매우 경계한다. 냉전 시기 미국은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내정에 간섭하고 대리전을 부추기거나 직접 개입함으로써 역내 국가 인민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역사적 고통을 안겼었다. 이곳은 강대국이 블록 정치와 진영 대결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가장 분개하는 지역의 하나다.
미국이 아무리 멋진 술병을 내놓아도 냉전의 낡은 술을 계속 따르는 한 아무도 그것을 마시고 싶어 하지 않는다.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은 설계 초기부터 강한 “신냉전”의 색깔을 띠고 있었던 만큼 그에 대한 아태 지역 국가들의 태도를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세안을 중심으로 해 중국과 미국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아세안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심에 두려 하는데 이것은 솔직히 말해 아세안을 불구덩이에 집어넣으려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은 진정으로 아세안을 지역 협력의 중심으로 간주하고 아세안과 협력에 의한 상생을 추진하며 확고한 행동을 해왔다. 미국의 말과 행동 간의 대비는 중국과 미국의 실제 대비를 덧붙여 보면 아세안과 세계 다른 나라들에 가장 생생한 전시물이 될 것이다.
미일한 3국이 진정으로 아세안과 태평양 도서국들을 “지원”하느냐 여부는 사실 판단하기 어렵지 않다. 관건은 그들의 행동이 지역민의 민생 발전을 촉진하는지, 해당 국가들에 새로운 발전 기회를 제공하는지, 그리고 더 안정적인 자연환경을 창조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캠프데이비드 정신”이 보여주는 분열적이고 대립적인 수사로 볼 때 미일한의 “지원”은 명백히 위선적이다. 이에 대해 지역 국가들은 더욱 경계할 필요가 있다.
-------------------------------------------------------
이상의 번역문은 원문을 일차로 구글로 번역한 뒤에 다시 손을 본 것인데(오역은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논지는 분명하다. 한미일 세 나라가 아태 지역에 간섭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고, 중국은 미국과는 달리 해당 지역의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으면서 민생 발전과 환경보호 등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과연 “진정으로 아세안을 지역 협력의 중심으로 간주하고 아세안과 협력에 의한 상생을 추진하며 확고한 행동을 해왔다”라고 할 수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점이라고 본다. 그와 관련해서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평가와 분석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위 사설은 중국이 이번 캠프데이비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분명히 말해준다. 중국어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