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는 세종 때부터 성종 때까지 부근에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길렀었다. 그런데 잠실의 누에치는 사람들이 모두 여자였으므로 이곳의 감독관은 궁궐의 환관, 즉 내시를 보내서 누에고치의 생산실적을 점검하게 하였다.
애초에 이 지역은 강북 즉, 행정구역상 양주군 뚝도면(지금의 뚝섬)에 속하였으나 물의 범람으로 섬이 생겨 나게 되었다. 토사가 쌓이면서 제법 섬의 형태를 갖추었고 큰 섬으로 변하게 되었다. 원래 한강은 송파에 접어들면서 신천강(새내)과 송파강(남쪽)으로 갈라져 큰 섬인 잠실섬(360만평)과 그 서남쪽의 작은 부리섬(30만평 정도)을 만들었고,잠실 왼쪽에는 무동도라는 또다른 작은 섬이 한강 흐름의 변화에 따라 생겼다가 사라지곤 했다. 부렴마을이 있던 부리섬은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잠실과 백사장으로 연결됐다.
예전의 한강은 광진교를 지나 남북으로 갈라져 흘렀다. 남쪽의 물길(송파강)은 현재의 석촌호수와 지하철 2호선 잠실새내역 남쪽을 거쳐 잠실종합운동장 자리에서 탄천과 합쳤다. 북쪽 물길(신천강)은 현재 한강과 비슷한데, 너비는 절반 이하로 좁았다. 잠실·부리섬이 육지로 된 건 한강 공유수면 매립 사업 때문이었다.
1971년 남쪽으로 굽어돌던 송파강을 메워 잠실섬을 75만평의 육지로 만들었다. 잠실 북쪽은 물속으로 가라앉혀 신천강의 너비를 넓힘으로써 지금의 지형을 만들었다. 이 사업 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주변 터와 합친 340만평에 잠실아파트단지와 잠실종합운동장을 만드는 잠실지구 종합 개발계획 사업이 추진돼 새로운 개발지로 변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