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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보면 소식

이규보의 시

작성자성인봉 (지보)|작성시간24.07.18|조회수23 목록 댓글 0

♤  이규보에 얽힌 글이 생각이 나서~

*蛙利鷺(와이로)란

蛙利鷺 唯我無蛙 人生之恨 (와이로 유아무와 인생지한),“오직 나는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蛙利鷺(와이로)란 흔희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경로(經路)를 통해 상대방에게 금품 내지 물품을 전달하고 '그 댓가로 무엇 인가를 얻는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주고 받는 반대 급부(給付)의 성격이 비 정상적인 경우로 통칭(通稱) 하고 있다.

우리가 평상시 자주 시용하고 있는 말은 자명(自明)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일본어 인지 아니면  우리말 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리숭한 태도를 취하고 정녕(丁寧) 우리 나라 에서 전래 되어 오는  말  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와이로에 대한 유래에 대하여 잠시 살펴 보면 고려 말의 유명한 학자인 이규보(李奎報)선생께서 몇 번의 과거(科擧)에 낙방(落榜)하고 초야(草野)에 묻혀 살 때 집 대문(大門)에 붙어있던 글이다.

임금이 하루는 단독으로 야행(夜行)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요행(僥倖)히 민가(民家)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을 했지만 집주인(이규보 선생)이 조금 더 가면 주막(酒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했다.

그런데 그 집 대문에 붙어있는 글이 임금을 궁금하게 한 것이다.

蛙利鷺 唯我無蛙 人生之恨 (와이로 유아무와 인생지한),
’오직 나는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도대체 개구리가 뭘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 만큼의 지식(智識)은 갖추었기에 개구리가 뜻하는 걸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이 안 잡혔다.

주막에 들려 국밥을 한 그릇 시켜먹으면서 주모(酒母)에게 외딴집(이규보집)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과거(科擧)에 낙방(落榜)하고 마을에도 잘 안 나오며, 집안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궁금증이 발동(發動)한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어 가기로 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은 안 오고해서 면담(面談)을 신청(申請)하여. 그렇게도 궁금하게 여겼던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 이란 글에 대해들을 수 있었다.

옛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을 때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바로 3일 후에 노래 시합을 하자는 것이다.
백로(白鷺)를 심판(審判)으로 하고서... 꾀꼬리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노래를 잘 하기는커녕 목소리 자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에게 노래시합을 제의하다니,
하지만 월등(越等)한 실력(實力)을 자신(自信)했기에 시합(試合)에 응(應)했다.
 

그리고 3일 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반대로 노래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안하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의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 다녔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백로(白鷺)한테 갔다주고 뒤를 부탁한 거다. 약속한 3일이 되어서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곡 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白鷺)의 판정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잘 불렀기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인 백로(白鷺)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말은, 이규보(李奎報)선생이 임금한테 불의(不義)와 불법(不法)으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比喩)해서 한 말이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 란 말이 생겼다. 와(蛙) 개구리와.   이(利)  이로울 이.  로(鷺) 해오라기로.

백로로 이규보(李奎報)선생 자신(自身)이 생각해도, 그의 실력(實力)이나 지식(智識)은 어디 내놔도 안 지는데 과거(科擧)를 보면 꼭 떨어진다는 것이다.

돈이 없고, 정승(政丞)의 자식(子息)이 아니라는 이유(理由)로...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白鷺)한테 상납(上納)한 개구리 같은 뒷거래가 없었기에 번번히 낙방(落榜)하여 초야(草野)에 묻혀 살고 있다고...

그 말을 들은 임금은 선생의 품격(品格)이나 지식(智識)이 고상(高尙)하기에, 자신(自身)도 과거(科擧)에 여러 번 낙방(落榜)하고 전국(全國)을 떠도는 떠돌이인데 며칠 후에 임시(臨時) 과거(科擧)가 있다 해서 한양(漢陽)으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궁궐(宮闕)에 들어와 임시과거를 열 것을 명(命)하였다 한다.

과거(科擧)를 보는 날,이규보(李奎報)선생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準備)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試驗官)이 내 걸은 시제(詩題)가 “唯我無蛙人生之恨 ” 이란 여덟 자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 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보선생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답을 적어 냄으로서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차후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가난한 선비는 어진 성군을 만나 충성스런 신하로 천수를 다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용을 알고 보면 현대판 “와이료” 로 요약된다.
이 와이료(蛙餌料)가 없는 세상을 우리는 만들어 가야 한다.

이 선비가 바로 고려 명종 때 유명한 문신인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1168~1241) 경기도 여주. 고려 문신이다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白雲) ,본관은 황려(黃驪=여주).

영웅서사시 동명왕편 등을 썼다.

22세 때 4번 만에 진사 시험에 합격. 최충헌에 의해 재상에 오름

​🍒[A-JAE]아재 ~옮긴글~
https://youtu.be/XmSRIihsRdE?si=aiWzE3YiYD4fBJ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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