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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북부여행 2. 화진포(花津浦)

작성자우재영/상리 서울|작성시간10.10.24|조회수46 목록 댓글 0

동해북부여행 2. 화진포(花津浦)

 

화진포라는 지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들었던 가요,

이씨스터즈의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을 통해서였다.

낭랑한 목소리의 화음이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면

언젠가는 동해의 북단에 있는 이 해수욕장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마음은 이미 저만큼 먼저 달려 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화진포를 15,6년 전 필카시절에 다녀왔으나 사진으로 남긴 것이 없어서 아쉽던 차에

작년과 올 가을, 두 해 연거푸 갔다오는, 행운이라면 행운을 가졌다.

 

(화진포성에서 본 화진포 해수욕장)

 

화진포...

꽃나루포구...

이름처럼 풍광이 뛰어난 이 곳이지만

한 거풀 벗겨보면 현대 우리 민족의 비극이 고스란히 겹쳐있는 곳이다.

냉전의 시작 단계에서 남과 북을 이끌었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김일성.

그들의 이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곳, 화진포이다.

6.25 전에는 북한 땅이었다가 전쟁 후에 대한민국의 땅으로 바뀐 곳인데다가

남북한 당대의 최고의 권력자들의 별장이 있던 곳이니

이런 역사적인 우연이 겹치는 곳이 여기 말고 또다른 곳이 어디 있는가? 

 

 

화진포 설화는 낙동강의 원류가 되는 태백시의 황지연못의 설화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태백 황지의 전설은 내 블로그의 태백여행편에서 참조를 하면 될 것 같다. 

http://blog.daum.net/oldpavilion/13609736

 

 

화진포관광안내소가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해수욕장 쪽으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가면

 화진포 해수욕장의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바닷가 언덕위에 김일성 별장이라고 흔히 불리는 화진포성(城)이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자유당시절 부통령을 지냈던,

4.19 학생의거를 촉발하고 그로 인해 몰락, 죽음에 이른 이기붕 별장이 있다. 

 

1. 화진포 성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는 화진포 성.

감리교 선교사 셔우드 홀과 독일 건축가 H.베버에 의해 건립되었으나

6.25전쟁중에 훼손되었다가 1964년 재건축, 1999년부터 안보전시관으로 사용중이다.

1945년 이후 6.25 전까지 북한정권의 귀빈 휴양소로 사용되었고

김일성 일가가 사용한 적이 있어서 김일성 별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화진포 성의 주위는 금강송이 에워싸고 있다.

 

화진포 성의 내부.

책상위의 제니스 라디오는 1950년대 까지는 최고의 문명의 이기이자 사치품이었다.

 

 

 

화진포 해수욕장...

멀리 보인는 산들이 바로 금강산의 능선이다.

 

아래 사진의  아래 부분의 솔숲속이 이기붕별장이다.

그리고 다리건너 햇빛이 쏟아지는 부분에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이 있다.

 

2. 이기붕별장

 

자유당 독재의 막바지였던 1960년에 있었던 3.15 부정선거는 

선거 부정의 백화점이었다.

고무신, 막걸리선거로 대변되는 불법 선거운동,

릴레이투표, 피아노투표가 상징하는 투표와 개표의 부정,

경무대 경무관 곽영주와 정치깡패 이정재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권력과 주먹의 유착,

내무부장관 최인규에 의한 국가 권력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은 

부정과 폭력이 난무한 선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러한 불법과 부정은 결국 민심의 이반으로 4.19라는 국가 초유의 혁명사태를 불러왔다.

아들 이강석에 의한 부통령 후보 이기붕의 일가족 자살로 막을 내린한 가족의 몰락.

그 가족의 별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은 지금은 안보전시관으로 바뀌어 교훈을 남기고 있다.

 

 

 

 

 

 

 

 

 

 

 

 

 

 

 

3.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유능한 혁명가는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 없는것일까?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장이자 초대 대통령.

일생의 대부분을 조국의 독립과 국가 건설에 바쳤던 그이지만

마지막 몇 년의 독재와 부정선거의 과오 때문에 지금도 독재자로만의 평가를 받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그러나 이곳 화진포 기념관을 보노라면 말년의 과오에 묻혀서 폄훼되어온

그의 일생에 거친 독립을 향한 열망과 열정을 보게 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거의 모든 나라의 초대 지도자들이 이기지 못했던 독재로 향한 유혹은

일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바친 열정과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신분임에도 개인적으로는 우국과 검약으로 살아온 그의 공적들을 모두 묻어버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자유주의국가, 민주공화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바탕이

해방후의 그의 열정과 신념에서 비롯된 것도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만일 그의 신념이 없었다고 하면 우리는 지금 아마도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에 노래부르며 춤을 추며

굶주린 배와 사상의 무자유를 움켜쥐고 지상천국에서 사는 것으로 세뇌되며 살 수 밖에 없었으리라.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리고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려고 했던 이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독재에 대한 비판은 별개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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