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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김성일을 위한 변명

작성자李翰邦| 작성시간14.05.09| 조회수6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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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同心圓 작성시간14.05.13 거짓보고 하는 지체가 잘못이지 무슨 변명을 하는지... 선조의 판단을 흐리게 한자를 두둔하는 자체가 문제다. 정말로 중대한 보고를 목에칼이 들어와도 진언을 해야지... 어이고...?
  • 작성자 최동순 작성시간14.05.14 유성룡의 징비록에 학봉의 속 마음이 나와 있다. [1591년 봄 통신사는 일본에서 돌아와 선조에게 복명할 때, 황윤길은 "반드시 병화가 있을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고, 김성일은 "신은 그러한 정세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라고 하고는, 이어 "황윤길이 인심을 동요시키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라고 했다. 유성룡이 김성일에게 "그대의 말은 황윤길의 말과 같지 않은데 만일에 병화가 있게 되면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묻자, "나 역시 어찌 왜적이 끝내 동병치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겠는가마는, 다만 황윤길의 말이 너무 지나쳐 중앙과 지방의 인심이 놀라 당황할 것이므로 이를 해명했을 뿐입니다." 라고 했다.]
  • 작성자 최동순 작성시간14.05.15 총명하고 강직했던 학봉이 중요한 보고를 왜 이렇게 하였을까? 민심의 동요를 걱정하신 것 같은데....
    그러나 결국 우리 민족 최대 수난인 임진왜란은 일어 났고, 선조의 판단을 흐리게 한 책임이 일부 있다.
  • 작성자 同心圓 작성시간14.05.14 사실을 왜곡하고 적당히 핑계를 되는것은 군자의 도라가 아니조...지금도 정치인들은 적당히 국민(백성)을 우습게 여기는 소치가 아닐까요...
  • 작성자 李翰邦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5.17 임진왜란이 끝나 갈 무렵 서인들은 전쟁책임을 동인에게 미루는 전략을 펴게 됩니다.
    학봉은 통신사 보고를 잘못하였고 서애 류성룡은 주화오국을 했다고 북인측에서 공격하게 된다.
    월천 조목은 북인의 후원을 받아 도산서원에 유일하게 종향되었다고 트집을 잡고 한강 정구는
    남명 조식과 퇴계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고 비판하게 된다.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를 퇴계에게서
    분리하여 바로 조광조로 학맥을 연결하게 된다. 인조반정 후 서인들은 비판세력을 제거하고
    300년간 마라를 독점했고 망국 후 친일파로 전향하게 된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한번도 철저한
    자기반성을 한 적이 없다.노론 중 독립유공자가 10명도 되지 않는다.
  • 작성자 同心圓 작성시간14.05.18 역사를 잘모르지만 당파싸움은 반대를 위한 반대 파당의 이익을 위해 목슴걸고 진정한 백성과 나라를 위해 정쟁을 못한점이죠. 동인이든 서인이든 못난 조상들이죠. 지금의 대한민국도 현실을 직시하지않고 당리당락을 위해 국가와국민을 우롱하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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