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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묘초(本因妙抄)

작성자연화|작성시간26.06.22|조회수37 목록 댓글 0

본인묘초(本因妙抄)어서(御書)p.870~877

 

법화본문종혈맥상승사(法華本門宗血脈相承事) 本因妙의 行者 日蓮 이것을 記함.

 

나의 외용(外用)의 스승이신 전교대사는 生年 四十二世에 불립사(천태산의 佛立寺)의 대화상(大和尙)을 만나 뵈옵고 의도(義道)를 궁구(窮究)하여,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비법(秘法)을 결(決)하신날, 대당(大唐)의 정원이십일년태세을유(貞元二十一年太歲乙酉) 五月 三日. 삼대장소(三大章疏)를 전하여 각 칠면칠중(七面七重)의 구결(口訣)을 가지고 결정하셨느니라.

 

소위 현의칠면(玄義七面)의 결(決)이란 정석(正釋) 오중(五重) 열명(列名)에 입각(立脚)해서 결(決)하셨느니라.

 

一에 의명판의(依名判義)의 일면(一面).

 

명(名)이란 법의 분위(分位)에 있어서 시설(施設)함.

체(體)란 재주(宰主)를 의(義)로함.

종(宗)이란 소작(所作)의 구경(究竟)이니라.수지(受持) 본인(本因)의 소작(所作)에 의하여 구창(口唱) 본과(本果)의 구경(究竟)을 득함.

용(用)이란 증체(證體) 본인본과상(本因本果上)의 공능덕행(功能德行)이니라.

교(敎)란 계(誡)를 의(義)로 하며, 계(誡)란 본(本)을 위한 적(迹)이므로 적(迹)은 즉 유명무실(有名無實) 무득도(無得道)인 것을 실상(實相)의 명제(名題)는 본적(本迹)이 동일하므로 본적일치(本迹一致)라고 사유(思惟)하리라는 것을 크게 훈계하기 위해 삼종(三種)의 교상(敎相)을 세워서 종숙탈(種熟脫)의 논불론(論不論)을 세우는 것이니라.경문(經文)과 해석(解釋)은 명백하니라.

 

이와같이 문문(文文)・구구(句句)의 명(名)・묘정(妙正)의 심의(深義). 본적승열(本迹勝劣)의 본의(本意)를 나타내시는 것이니라. 그렇다 하더라도 천태 전교의 홍통은 오로지 이(理)의 상(上)의 법상(法相)・적화부촉(迹化付屬)・상법(像法)의 이위(理位)・관행오품(觀行五品)의 교주(敎主)이므로 적(迹)을 표면(表面)으로 하여 중(衆)을 구제(救濟)하고, 본(本)을 숨기어 이면(裏面)으로 사용하는 것이니 깊이 깊이 비장할지어다, 비장할지어다

 

二에 불의(佛意)・기정(機情).이의(二意)의 일면(一面),불의(佛意)는 관행(觀行)・상사(相似)를 본(本)으로 하고 기정(機情)은 이즉(理卽)・명자(名字)를 본(本)으로 한다.

 

어느것이나 체용(體用)에서 떨어지지 않으며, 체용(體用)은 법화의 심지(心智)에 의해 일대오시(一代五時)의 순서 천심(淺深)을 개척(開拓)함이라.

 

다음에 기정(機情)이란 대통결연(大通結緣)의 중(衆)을 위하여 사미(四味)의 조양(調養)을 설치(設置)해서 법화에 내입(來入)함인데, 본적이문(本迹二門) 내지 문문(文文)・구구(句句)는 이 이의(二意)를 가지고 분별(分別)해야 하는것이니라.

 

三에 사중천심(四重淺深)의 일면(一面),

 

명(名)의 사중(四重)이 있음.

一에는 명체무상(名體無常)의 의(義)・이전(爾前)의 제경제종(諸經諸宗)이니라.

二에는 체실명가(體實名假)・적문(迹門)・시각무상(始覺無常)이니라.

三에는 명체구실(名體具實)・본문(本門)・본각상주(本覺常住)이니라.

四에는 명체불가사의(名體不可思議)인데 이는 관심직달(觀心直達)의 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담연(湛然)이 가로되[수탈재현(雖脫在現)・구등본종(具騰本種)]운운

 

다음에 체(體)의 사중(四重)이란

一에 삼제격력(三諦隔歷)의 체(體)・이전권교(爾前權敎)이니라.

二에 이성원융(理性圓融)의 체(體)・적문(迹門)십사품(十四品)이니라.

三에 삼천본유(三千本有)의 체(體)・본문(本門)십사품(十四品)이니라.

四에 자성불가사의(自性不可思議)의 체(體)・나의 내증(內證)의 수량품(壽量品)・사행(事行)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이니라.

 

다음에 종(宗)의 사중(四重)이란

一에 인과이성(因果異性)의 종(宗). 방편(方便)권교(權敎)이니라.

二에 인과동성(因果同性)의 종(宗). 이는 적문(迹門)이니라.

三에 인과병상(因果並常)의 종(宗). 즉 본문(本門)이니라.

四에 인과일념(因果一念)의 종(宗).

文에 가로되[개자(芥子)만큼도 心이 있으면 즉 三千을 갖춤]이라고, 이는 즉(卽) 말법순원(末法純圓)・결요부촉(結要付屬)의 妙法이니라 운운

 

다음에 용(用)의 사중(四重)이란

一에 신통환화(神通幻化)의 용(用)・금경(今經)이전(已前)에 밝히는바의 불(佛)・보살(菩薩)・출가이생(出假利生)을 말함

二에 보현색신(普賢色身)의 용(用)・즉 일신중(一身中)에 있어서 십계(十界)를 구족(具足)하는 일이며, 본적(本迹)일대오시(一代五時)에 긍(亘)함.

三에 무작상주(無作常住)의 용(用)・증도팔상(證道八相)이 있으며, 무작자재(無作自在)를 말함이라.

四에 일심(一心)의 화용(化用)・혹설기신(或說己身) 등이니라.

 

다음에 교(敎)의 사중(四重)이란

一에는 단현격리(但顯隔理)의 교(敎)・권소(權小)이니라.

二에는 교즉실리(敎卽實理)의 교(敎)・적문(迹門)이니라.

三에는 자성회중(自性會中)의 교(敎)・응불(應佛)의 본문(本門)이니라.

四에는 일심법계(一心法界)의 교(敎)・수량품(壽量品)의 문저(文底)의 법문(法門)・ 자수용보신여래(自受用報身如來)의 진실(眞實)의 본문(本門)・구원일념(久遠一念)의 南無妙法蓮華經. 수탈재현(雖脫在現) 구등본종(具騰本種)의 승열(勝劣)이 이것이니라.

 

제사(第四)에 팔중천심(八重淺深)의 일면(一面)이니라.

 

명(名)의 팔중(八重)이란

一에 명체영별(名體永別)의 명(名).

二에 명체불리(名體不離)의 명(名).

三에 종체유출(從體流出)의 명(名).

四에 명체구족(名體具足)의 명(名).

五에 본분상주(本分常住)의 명(名).

六에 과해묘성(果海妙性)의 명(名).

七에 무상불가사의(無相不可思議)의 명(名).

八에 자성기기(自性己己)의 명(名). 내지 교(敎)를 알지니라 운운. 文 그대로 사유(思惟)해야하느니라.

 

제오(第五)에 환주당문(環住當文)의 일면(一面),

사팔(四八)의 천심(淺深)을 가지고 본적승열(本迹勝劣)을 알지어다.

 

제육(第六)에 단입기심(但入己心)의 일면(一面),

처음 대법동점(大法東漸)으로부터 제십(第十)의 판교(判敎)에 이르기까지 文의 생기(生起)를 제쳐놓고 오로지 심리(心理)의 승열(勝劣)에 넣어서 정의(正意)를 이룰지니라. 소위 대법(大法)이란 즉 행자(行者)의 기심(己心)의 이명(異名)이니라 운운

석(釋)의 의(意)는 문의(文意)의 광박(廣博)을 떠나서 수제(首題)의 이(理)를 오로지 한다고 석(釋)하셨느니라.

 

제칠(第七)에 출리생사(出離生死)의 일면(一面),

심(心)은 일대응불(一代應佛)의 수량품(壽量品)을 적(迹)으로 하고, 내증(內證)의 수량품(壽量品)을 본(本)으로 하여, 석존(釋尊) 구원명자즉(久遠名字卽)의 신(身)과 위(位)에 입각(立脚)하여 南無妙法蓮華經라 봉창하는 이를 출리생사(出離生死)의 일면(一面)이라고 이름함이라. 본적(本迹) 약신약위(約身約位)의 석(釋), 이것을 생각해야 할것이니라. 이상 현문(玄文)이 끝남

 

문구(文句)의 칠면(七面)의 결(決)이란

 

一에 의명(依名)의 일면(一面)

그 의(義)는 위와 같음.

 

二에 감응(感應)의 일면(一面)

삼시홍경(三時弘經)에 긍(亘)하느니라.

이전(爾前) 적문(迹門)의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 홍경(弘經)의 감응(感應)보다 본문(本門) 말법(末法) 홍경(弘經)의 감응(感應)은 진실(眞實)로 진실(眞實)로 뛰어났느니라.

 

三에 사교(四敎)의 일면(一面),

四에 오시(五時)의 일면(一面),

五에 본적(本迹)의 일면(一面),

六에 체용(體用)의 일면(一面),

七에 입기심(入己心)의 일면(一面), 남김없이 모두 그 심(心)은 전과 동일하다.

지위대사(智威大師)의 전(傳)에는 현의문구(玄義文句)의 양부(兩部)에 이전적문(爾前迹門)에 각각 삼십중(三十重)의 천심(淺深)을 가지고 구결(口訣)하셨느니라.

상세히는 전교대사 칠면결(七面決)과 같으니라.

 

또 마하지관(摩訶止觀) 일부(一部)에는 십중현관(十重顯觀)을 세워서 이를 통(通)하셨느니라.

 

一은 대교입관(待敎立觀)・

이전(爾前)・본(本)・적(迹)의 삼교(三敎)를 파(破)하고 불가사의(不可思議) 실리(實理)의 妙法蓮華經의 관(觀)을 세움. 文에 가로되 원돈자초연실상(圓頓者初緣實相)이라 운운.

적문(迹門)을 이구(理具)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 하는데, 탈익(脫益)의 법화는 본적(本迹) 공히 적(迹)이니라. 본문(本門)을 사행(事行)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 하는데 하종(下種)의 법화는 독일(獨一)의 본문(本門)이니라. 이를 불가사의실리(不可思議實理)의 묘관(妙觀)이라고 말하느니라.

 

二에 폐교입관(廢敎立觀)・

심(心)은 권교(權敎) 및 적집(迹執)을 버리고, 본문(本門) 수제(首題)의 이(理)를 취하여 사행(事行)에 쓰라고 함이니라.

 

三에 개교현관(開敎顯觀)・

文에 가로되, 일체제법(一切諸法)・본시불법(本是佛法)・삼제(三諦)의 이(理)를 갖추는것을 이름하여 불법(佛法)이라하니, 어찌하여 교(敎)를 제외하랴.

 

四에 회교현관(會敎顯觀)・

교상(敎相)의 법화를 버리고 관심(觀心)의 법화를 믿으라고.

 

五에 주불가사의현관(住不可思議顯觀)・

文에 가로되 이는 조작(造作)이 아닌 고로 천진(天眞)이라고 하며. 증지원명(證智圓明)한 고로 독랑(獨朗)이라고 함 운운. 석(釋)의 의(意)는 구창(口唱) 수제(首題)의 이(理)에 조작(造作)이 없다.

 

금일(今日) 숙탈(熟脫)의 본적이문(本迹二門)을 적(迹)으로 하고, 구원명자(久遠名字)의 본문(本門)을 본(本)으로 함이라.

 

신심 강성하여 오직 여념없이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하면 범신즉불신(凡身卽佛身)이니라. 이를 천진독랑(天眞獨朗)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 이름하느니라.

 

물어 가로되, 전대에 이 법문(法門)을 안사람이 있었느뇨,

답하여 가로되 있었느니라.

구(求)하여 가로되 누구뇨, 명시(明示)하여 가로되, 석존(釋尊)이니라.

물어가로되, 부처를 제외하고 타(他)에 이것을 안 인사(人師) 논사(論師)가 있느뇨.

답하여 가로되, 천태가 曰[천진・용수・내감냉연(內鑒冷然) 외적시의(外適時宜)]라고 금일(今日) 南無妙法蓮華經는 남악・천태・묘락・전교의 내감냉연(內鑒冷然)・외적시의(外適時宜)이니라.

내감냉연(內鑒冷然)・외적시의(外適時宜)의 수행(修行)의 때는 본적일치(本迹一致)이니라.

 

유지무지(有智無智)를 가리지 않고 원돈자초연실상(圓頓者初緣實相)의 이(理)는 조작(造作)이 아닌 고로 천진(天眞)이라 말하고, 증지원명(證智圓明)인 고로 독랑(獨朗)이라 말한다고 하여, 이위관행(理位觀行)으로 향하게 해서 이익(利益)케하고, 말법(末法)의 시(時)를 기다리는 것이니라.

 

고로 천태 가로되(단(但) 당시(當時) 대이익(大利益)을 획득(獲得)할 뿐만 아니라 후오백세(後五百歲) 멀리 묘도(妙道)에 첨(沾)하리라)고 운운.

 

천태・장안・묘락・전교등의 대성(大聖)은 내증(內證)은 본적승열(本迹勝劣)・외용(外用)은 본적일치(本迹一致)이니라.그 까닭은 교상(敎相)도 관심(觀心)도 상사(相似) 관행(觀行) 해료(解了)의 인사(人師)・시기 (時機)또한 상법(像法)이니라.부촉(付屬)은 즉(卽) 망수여인(妄授餘人)・자신도 역시 적화(迹化)의 중(衆)・관음・묘음・문수・약왕 등의 화신(化身)이니라.

 

이제 말법(末法)은 본화(本化)의살타(薩埵)・상행 등의 출세(出世)의 경(境)・본문(本門) 유선(流宣)의 시각(時刻)이니, 어찌해서 이관(理觀)을 사용하고 사행(事行)을 수행하지 않겠느뇨.

내가 아는 바는 내증(內證)・외용(外用) 공히 본적승열(本迹勝劣)이니라. 만약 본적일치(本迹一致)라고 수행(修行)한다면 본문(本門) 부촉(付屬)을 멸실(滅失)하는 괴이(怪異)한 일이니라.

 

본적(本迹)의 부동(不同)은 처처(處處)에 이를 썼는데, 그렇다 해도 숙습(宿習)이 나쁜자(者)는 본적(本迹)에 미혹전도(迷惑轉倒)함인가.만약 본적승열(本迹勝劣)을 모른다면 미래(未來)의 악도(惡道)가 가장 불쌍하니라.

 

숙업(宿業)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원망(怨望)할것인가,나의 제자(弟子)들 중(中)에도 천태, 전교의 해료(解了)의 이관(理觀)을 벗어나지 못함이라.

 

본적(本迹)에 대해서 일왕승렬(一王勝劣) 재왕일치(再王一致)의 유의(謬義)가 있어서 자타(自他)를 미혹(迷惑)케하는 조목(條目)은 숙습(宿習)이 그렇게 한것인가.염부제(閻浮提) 제일(第一)의 비사(秘事)라 해도 만년구호(萬年救護)를 위(爲)해 이것을 기술(記述)하여 남겨두는 바이니라.

 

나의 미래(未來)에 있어서 나의 불법(佛法)을 파하기 위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원품(元品)의 대석(大石)・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사자신중(師子身中)의 황충(蝗蟲)으로 되어 이름을 日蓮에 빗대어 본적일치(本迹一致)라고 하는 사의(邪義)를 주장하여 많은 중생(衆生)을 바야흐로 악도(惡道)로 이끌것이니라. 만약 도심(道心)이 있는 자(者)는 그들 사사(邪師)를 버리고 마땅히 나의 정의(正義)에 따를지어다.

 

정의(正義)란 본적승열(本迹勝劣)의 심비 ,구등본종(具騰本種)의 실리(實理)이니라.

 

日蓮 일기(一期)의 대사(大事)이므로 제자(弟子)들에게도 조석(朝夕)으로 가르치고 또한 일기(一期)의 소조(所造)등은 모두가 이 의(意)이니라. 그럼에도 적집(迹執)을 벗어나지 못하여 ,혹은 경(輕)[견혹(見惑)] 혹은 멸(蔑)[사혹(思惑)] 혹은 치(癡)[진사혹(塵沙惑)] 혹은 미(迷)[무명혹(無明惑)] 고로 日蓮이 입의(立義)를 사용(使用)하지 않는 것이니라.

 

나의 교상(敎相)・관심(觀心)은 이즉(理卽)・명자(名字)・우악우견(愚惡愚見)을 위함이니라.

日蓮은 명자즉(名字卽)의 위(位)이고, 제자단나(第子檀那)는 이즉(理卽)의 위(位)이니라.

상행소전(上行所傳) 결요부촉(結要付屬)의 행의(行儀)는 교관판승(敎觀判乘)・개명자즉(皆名字卽)・오미(五味)의 주(主)의 수행(修行)이니라.

 

그러므로 교상(敎相)의 순서・요용(要用)에 의(依)할지니라.오직 대강(大綱)이 있을때는 다른 망목(網目)은 소용없느니라.그는 망목(網目)・이는 대강(大綱)・그는 망목(網目)의 교상(敎相)의 주(主)・이는 대강(大綱)・수제(首題)의 주(主)・ 아마도 日蓮의 행의(行儀)에는 천태・전교도 미치지 못하리라.어찌 하물며 타사(他師)의 행의(行儀)에 있어서랴.

 

다만 재세(在世) 팔개년(八箇年)의 의식(儀式)을 옮겨 멸후(滅後)・말법(末法)의 행의(行儀)로 함이라.그렇다 하더라도 부처는 숙탈(熟脫)의 교주(敎主)・나는 하종(下種)의 법주(法主)이니라.

 

그의 일품이반(一品二半)은 사리불등을 위해서는 관심(觀心)이고 우리들 범부를 위해서는 교상(敎相)이니라.이즉(理卽)・단망(短妄)의 범부(凡夫)를 위한 관심(觀心)은 여행에 걸치지 않는 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이와 같이 심의(深義)를 모르는 벽인(僻人)이 나타나서 나의 입의(立義)는 교상(敎相)에서 벗어난 외(外)라고 생각하는 것이니라.이들은 모두 숙업(宿業)이 나쁜 수인감과(修因感果)가 지극(至極)한 것이니라.

 

저 천태대사(天台大師)에게는 삼천인(三千人)의 제자가 있었는데 장안(章安) 일인(一人)이 분명하니라. 전교대사(傳敎大師)는 삼천인(三千人)의 중도(衆徒)를 두었는데 기신(義眞) 이후에는 그것이 없는 것과 같다.지금도 또한 그와 같아서 수많은 제자가 있다 해도 의심(疑心)없이 정의(正義)를 전하는 자(者)는 드문 것이어서 일(一) 이(二)의 소석(小石)과 같으니 비장(秘藏)해야 할 법문(法門)이니라.

 

六에 주교현관(住敎顯觀)・

七에 주교비관(住敎悲觀)・

八에 복교현관(覆敎顯觀)・

九에 주교용관(住敎用觀)・

十에 주관용교(住觀用敎)・ 이 오중(五重)은 상(上)의 오중(五重)과 같으니 사용(使用)할지어다.

 

물어가로되, 본적수수불가사의일(本迹雖殊不可思議一)・본적(本迹)의 교(敎)에 있어서 별(別)하여 불가사의(不可思議)의 관리(觀理)를 나타내는 고(故)로 하고 운운.

 

기정(機精)에 입각(立脚)하면 본적(本迹)에 있어서 구근(久近)의 이(異)가 있는것이니 이는 일왕(一往)의 천의(淺義)이니라.내증(內證)에 입각(立脚)해서 이것을 논(論)하면 승열(勝劣)은 있을수 없느니라.재왕(再往)의 심의(深義)는 불가사의일(不可思議一)이니라.운운

 

여하(如何)의 의(意)는 알아야 하느뇨.

답하여 가로되,

주교현관(住敎顯觀)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주교비관(住敎悲觀)은 법성적연(法性寂然)・

복교현관(覆敎顯觀)은 명자판교(名字判敎)・

주교용관(住敎用觀)은 불가사의일(不可思議一)・

주관용교(住觀用敎)는 이현묘원(以顯妙圓)이라고 하는 대사(大事)가 이것이니라.

교관불가사의(敎觀不可思議)・천연본성(天然本性)의 곳에 독일법계(獨一法界)의 묘관(妙觀)을 세우니, 이를 불가사의(不可思議)의 본적승열(本迹勝劣)이라고 하느니라.

 

또한 절대불가사의(絶對不可思議)의 내증(內證)・불가득(不可得)・언어도단(言語道斷)의 승열(勝劣)은 천태・묘락・전교가 남긴바, 아가(我家)의 비밀(秘密)・관심직달(觀心直達)의 승열(勝劣)이니라.

 

적(迹)이라는 명칭(名稱)이 있다 해도 유명무실(有名無實)・본무금유(本無今有)의 적문(迹門)이니라.실(實)로 불가사의(不可思議)의 묘법(妙法)은 오직 수량품(壽量品)에 한(限)하는 고(故)로 불가사의일(不可思議一)이라 해석(解釋)하느니라.

 

적문(迹門)의 妙法蓮華經의 제호(題號)는 본문(本門)과 상사(相似)하다 할지라도 의리(義理)는 천지(天地)의 격차(隔差)가 있으며, 성불(成佛)또한 수화(水火)와 같은 부동(不同)이니라.

 

구원명자(久遠名字)의 妙法蓮華經의 목탄서인 까닭을 나타내기 위해 일(一)이라고 해석(解釋)하는것이니 말학(末學)은 의망(疑網)을 남기지 말지어다.

 

日蓮 영산회상(靈山會上)・다보탑중(多寶塔中)에 있어서 어버이이신 석존(釋尊)으로부터 직수(直授)해 받든바 비법(秘法)이니라.깊이깊이 비장(秘藏)하고 비장(秘藏)하라. 전(傳)하고 전(傳)할지어다.

 

마하지관(摩訶止觀) 칠면구결(七面口決)이란

의명판의(依名判義)・부문원의(附文元意)・적조일상(寂照一相)・교행증(敎行證)・육구이식(六九二識)・절제사려(絶諸思慮)・출리생사(出離生死)의 일면(一面) 이상(已上).

 

일체제법(一切諸法)・종본이래(從本已來)・불생불멸(不生不滅)・성상응연(性相凝然)・석가폐구(釋迦閉口)・신자절언(身子絶言) 운운.이것은 적문(迹門) 천태(天台)・지관(止觀)의 내증(內證)이니라.

 

본문(本門) 日蓮의 지관(止觀)은 석가(釋迦)는 입을 열고 문수(文殊)는 말을하니 적문(迹門) 불가사의(不可思議)・불가설(不可說)・본문(本門) 불가사의가설(不可思議可說)의 증거(證據)의 석(釋) 이것이니라.

 

또한 삼대부(三大部)에 있어서 일동십이(一同十異)・사동육이(四同六異)가 있음이라.전교(傳敎)는 불립사(佛立寺)로부터 이것을 구결(口決)했으며 일동(一同)이란 명동(名同)이니라.십이(十異)란 명동의이(名同義異),소의이(所依異),관심이(觀心異),방정이(傍正異),용교이(用敎異),대기이(對機異),현본이이(顯本理異),수행이(修行異),상승이(相承異),원지이(元旨異),사동(四同)이란 명동(名同), 의동(義同), 소의동(所依同), 소현동(所顯同)이니라.

 

육이(六異)란 석이(釋異), 대강망목이(大綱網目異), 본말이(本末異), 관심이(觀心異), 교내외관이(敎內外觀異), 자행화타이(自行化他異) 이것이니라.

 

이제 요(要)로써 이것을 말한다면 적본관심(迹本觀心)・동명이의(同名異義)이니라. 시종(始終)・본말(本末) 공히 수행(修行)도 각도(覺道)도 시기(時機)도 감응(感應)도 모두 승열(勝劣)이니라.

차하(此下) 이십사번(二十四番) 승열(勝劣)이니라.

 

그의 본문(本門)은

나의 적문(迹門),

 

그의 승(勝)은

이의 열(劣).

 

그의 심의(深義)는

나의 천의(淺義) .

 

그의 심리(深理)는

이의 천리(淺理).

 

그의 극위(極位)는

이의 천위(淺位).

 

그의 극과(極果)는

이의 초심(初心),

 

그의 관심(觀心)은

이의 교상(敎相).

 

그는 태성(台星)의 나라에 출생함.

이는 일천(日天)의 나라에 출생함.

 

그는 약왕(藥王)

이는 상행(上行)

 

그는 해료(解了)의 기(機)를 이롭게하고

이는 우악(愚惡)의 기(機)를 이익케함.

 

그의 홍통(弘通)은 태성(台星),소거(所居)의 고령(高嶺)이니라.

이의 홍경(弘經)은 일왕(日往)・능주(能住)의 고봉(高峰)이니라.

 

그는 상기(上機)를 가르치고

이는 하기(下機)를 교훈(敎訓)함.

 

그는 일부(一部)를 가지고 본존(本尊)으로 하고

이는 칠자(七字)를 본존(本尊)으로함.

 

그는 상대개회(相對開會)를 표면(表面)으로 하고

이는 절대개회(絶對開會)를 표면(表面)으로함.

 

그는 숙탈(熟脫),

이는 하종(下種).

 

그는 중기(衆機)를 위해 원돈자초연실상(圓頓者初緣實相)이라고 명시함.

이는 만기(萬機)를 위해 南無妙法蓮華經라고 권함.

 

그는 악구원질(惡口怨嫉).

이는 원도유죄(遠島流罪)

 

그는 일부(一部)를 독송(讀誦)한다해도 이자(二字)를 읽지 않는 일이 있음.

이는 문문(文文) 구구(句句) 모두 이를 읽음.

 

그는 정직한 묘법(妙法)의 명호(名號)를 바꾸어 일심삼관(一心三觀)이라고 이름함. 있는 그대로의 대법(大法)이 아니므로 대권(帶權)의 법과 흡사하니라.

이는 신방피차(信謗彼此)・결정성보리(決定成菩提)・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씀

 

그는 제종(諸宗)의 유리(謬義)를 대강(大綱)쓰고 나타낸다고 해도. 아직도 언설(言說)하지 않음.

이는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타사(他師)의 사의(邪義)를 규명(糾明)하여 삼류(三類)의 강적(强敵)을 초래(招來)함.

 

그는 안락(安樂) 보현(普賢)의 설상(說相)에 의(依)하고

이는 권지(勸持) 불경(不輕)의 행상(行相)을 사용함.

 

그는 일부(一部)에 승열(勝劣)을 세우고

이는 일부(一部)를 적(迹)이라 전함.

 

그는 응불(應佛)의 범위(範圍)에 머물고

이는 수량품(壽量品)의 문저(文底)를 사용함.

 

그는 응불승진(應佛昇進)의 자수용보신(自受用報身)의 일념삼천(一念三千) 일심삼관(一心三觀).

이는 구원원초(久遠元初)의 자수용보신(自受用報身) 무작본유(無作本有)의 묘법(妙法)을 직접부름.

 

이러한 심의(深義)는 적화(迹化)의 중(衆)・보현(普賢)・문수(文殊)・관음(觀音)・약왕(藥王)등의 대보살(大菩薩)에게도 부촉(付屬)하지 않는 바의 대사(大事)이므로 알지 못하는 비법(秘法)이니. 하물며 범사(凡師)에 있어서랴.

 

만약 말법에 있어서 본적일치(本迹一致)라고 수행(修行)하며 소화(所化)등에게 가르치는 자(者)라면 자신도 오역죄(五逆罪)를 만들지 않고서 무간(無間)에 떨어지며, 그에게 수종(隨從)한 도배(徒輩)도 아비(阿鼻)에 빠지게 될것은 의심(疑心)없는 것이니라.

이 서(書)를 일견(一見)한 사람들은 이(理)[보현] 지(智)[문수] 일언(一言)의 살타. 생사절단(生死絶斷)의 제(際). 정광각오(定光覺悟)의 대보살이니라.

 

전교 가로되 [문수(文殊)의 이검(利劍)은 육륜(六輪)에 통(通)하고 십이(十二)의 생류(生類)를 절단(絶斷)함. 운운. 일도(一刀)를 내려서「妙法」만방(萬方)에 칙(勅)하니 자연히 따라서 삼제(三諦)를 낸다. 견문각지(見聞覺知)에 밝으니라]

이 일언(一言)의 삼제(三諦)를 명시(明示)함에 일언(一言) 일언(一言) 이상은 없느니라.

만약 미달자(未達者)도 일송(一頌)을 열음에 「題目」삼반(三般)「三諦」동일(同一)하게 통지(通知)하지 않음이 없다.

생불(生佛)이 스스로 일현(一現)함을 이를 일언(一言)의 묘지(妙旨)・일교(一敎)의 현의(玄義)라함 운운.

 

천태 가로되 [일언삼제(一言三諦)・찰나성도(刹那成道)・반게성도(半偈成道)]라고 운운.

전교 가로되 [불계(佛界)의 지(智)는 구계(九界)를 경(境)으로하고, 구계(九界)의 지(智)는 불계(佛界)를 경(境)으로 함이라.

경지(境地)가 서로 명훈(冥薰)해서 범성상항(凡聖常恒)함을 이를 찰나성도(刹那成道)라고 함,

삼도즉삼덕(三道卽三德)이라 해득(解得)하면 제악(諸惡)은 당장 진선(眞善)으로 됨을 이를 반게성도(半偈成道)라 이름함.

 

이제 회석(會釋)하여 가로되,

제불보살(諸佛菩薩)의 정광삼매(定光三昧)도 범성일여(凡聖一如)의 증도(證道)・찰나반게(刹那成道)의 성도(成道)도

아가(我家)의 승열수행(勝劣修行)인 南無妙法蓮華經의 일언(一言)에 다 섭(攝)하는 것이니라.

 

이 혈맥(血脈)을 열거(列擧)함은 말대(末代) 천학(淺學)의 자(者)가 나의 가자(假字)의 소식문(消息文)을 멸여(蔑如)하며

천태의 한자(漢字)의 지관(止觀)을 보고 안목(眼目)을 미혹(迷惑)시켜, 심의(心意)를 경동(驚動)하여,혹은 가자(假字)를 한자(漢字)로 고치며, 혹은 지관명정(止觀明靜)・전대미문(前代未聞)의 견(見)에 골몰하며 본적일치(本迹一致)의 생각을 함이라.

 

나의 내증(內證)의 수량품(壽量品)을 모르고 지관(止觀)에 동의(同意)하고 오직 자견(自見)의 벽견(僻見)을 본(本)으로 해서 나의 입의(立義)를 파실(破失)하여 악도(惡道)에 떨어지는 고로 천태삼대장소(天台三大章疏)의 오전(奧傳)에 속함이라.

 

천태,전교등이 비장(秘藏)하신 정의(正義)・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비전(秘傳)을 써서 삼가 나타내는 일은 한편 두려움이 있고, 한편 거리낌이 있노라.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날 공정(公亭)에서 응당 이것을 피람(披覽)해드리리라.

회통(會通)을 가(加)하는 일은 한편 광선유포(廣宣流布)를 위하고 한편 말대천학(末代淺學)을 위함이니라

 

또 천태 전교의 석(釋) 등도 나의 진실(眞實)한 본회(本懷)가 아니리라. 미래(未來) 영아(嬰兒)의 제자(弟子)들은 그것을 본회(本懷)라고 생각할 것이로다.

 

지난 문영(文永)의 면허(免許)의 날에

이전(爾前) 적문(迹門)의 방법(傍法)을 대치(對治)하고 본문(本門)의 정의(正義)를 세워 주시면 불일간(不日間) 풍년(豊年)이 되리라고 말씀드렸던바, 듣는 사람마다 혀를 차고 귀를 막았느니라.

그때 나의 편은 한사람도 없고 유아(唯我)(日蓮)과 여아(與我)(日興)뿐이니라.

 

물어 가로되,

수량품(壽量品) 문저(文底)의 대사(大事)라고 하는 비법(秘法)은 어떠한가.

답하여 가로되,

유밀(唯密)의 정법(正法)이니 비장(秘藏)하고 비장(秘藏)할지어다.

 

일대응불(一代應佛)의 경지(境地)에 머무르는 쪽은 이상(理上)의 법상(法相)이므로 일부(一部) 공(共)히 이(理)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이며, 적상(迹上)의 본문수량(本門壽量)이라고 득의(得意)시키는것을 탈익(脫益)의 문상(文上)이라고 하느니라.

문저(文底)란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명자(名字)의 묘법(妙法)을 여행(餘行)에 걸치지 않고 직달(直達)의 정관(正觀)・사행(事行)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南無妙法蓮華經이것이니라.

 

권실(權實)은 理[금일본적이(今日本迹理)]이며

본적(本迹)은 事[구원본적사(久遠本迹事)]이니라.

 

또한 권실(權實)은 약지약교(約智約敎)[일대응불본적(一代應佛本迹)]

본적(本迹)은 약신약위(約身約位)・명자신(名字身)[구원본적(久遠本迹)]

또 가로되, 수탈재현(雖脫在現)・구등본종(具騰本種)이라고 했느니라.

석존(釋尊)・구원명자즉(久遠名字卽)의 위의 자신(自身)의 수행(修行)을 말법(末法) 금시(今時) 日蓮 의 명자즉(名字卽)의 몸에 옮겼노라.

이는 조작(造作)이 아니니라. 고(故)로 천진(天眞)이라 하고, 증지원명(證智圓明)인고로 독랑(獨朗)이라 하는 행의(行儀)・본문입행(本門立行)의 혈맥(血脈) 이것을 기술(記述)하니, 비장(秘藏)하고 비장(秘藏)할지어다.

 

또 일문자(日文字)의 구전(口傳)・산탕(産湯)의 구결(口決)・이개(二箇)는 양대사(兩大事)의 현지(玄旨)에 상당(相當)함,

본존(本尊) 칠개(七箇)의 구전(口傳)은 칠면(七面)의 결(決)에 이것을 표시(表示)하고, 교화홍경(敎化弘經)의 칠개(七箇)의 전(傳)은 홍통자(弘通者)의 대요(大要)이니라.

 

또 이 혈맥(血脈)및 본존(本尊)의 대사(大事)는 日蓮 적적(嫡嫡) 좌주전법(座主傳法)의 서(書)・탑중상승(塔中相承)의 품승유수일인(品承唯授一人)의 혈맥(血脈)이니라.

단단히 명심하여 비장(秘藏)하고 비장(秘藏)할지어다. 전(傳)할지어다.

법화본문종(法華本門宗) 혈맥상승(血脈相承)을 끝냄.

 

홍안오(弘安午) 태세(太歲)임오(壬午) 十月 十一日

 

日蓮 在御判

 

└ 접기

◈ 本因妙의 信心 ◈

 

1)부처의 설법에는 顯了(현요) 隱密(은밀)의 二義가 있다,

  현요는 經文에 佛意가 분명하게 顯然(현연)하고 있는 것을 말하며

  은밀은 부처의 本意가 經文內에 몰래 숨겨져 있는 것을 말한다

  (내증으로 알수 있고) 相伝이 아니면 알기 어렵다 어서 398쪽)

 

2)佛性을 種子에 비유해서 佛種이라고 하며 了因(요인)이란 智慧즉 報身으 로 나타난다

  이것을 받는 因種을 了因이라 한다

  법화현의에 隨文一句(수문일구) (一句라도 듣고 따르는 것)는 이는

  지혜즉 了因의 種이며, 彈指散華(탄지산화)는 緣因의 種, 마음이 있는者 이는

  正因의 種이니라, 즉 이는 부처의 經文을 문법하면 지혜가 발현되어 탄지산화 즉

  부처에게 공양을 해서 善根을 쌓는 수행으로 正因의 種 즉 佛力覺知를 할수있다,

  正因佛性은 体 (俱体)三如是이며 本覺의 如來이다,

  了因,緣因佛性은 用(俱用)七如是이며 (구체구용의 無作三身으로 나타나는 것)

  이것이 佛法의 究極이다,

 

  大聖人의 御書(經文)를 聞法 즉 一文一句를 설함을 듣고 초수희 즉 一念 信解의

  마음으로 무의왈신의 信을 구축해 나가면 이 聞法下種이 文底所被 (문저소피)의機緣

  (기연)(어본존과 기응상대)에 의해서 發心下種으로 연결 된다 찰라시종 一念의 因果로

  되어 佛力이 己心에 常住해서 난신난해한 법문을 이해할수 있게되며 난이 옮을 안락

  으로 기죄필이즉 六根淸淨으로 발적현본을 이루게하며 不生滅의 妙理를 證得 하게된다,

  已今當說(이금당설) 최위 난신난해 와 육난구이는 십계호구의 법문이

  법화경에 한하는 法門이므로 법화경을 難信難解(난신난해)라고 했다,

  佛滅後(불멸후)1800년동안에 三國(인도,중국,일본)에 三人만이 이 正法을 각지했다

  (석존 천태 전교)

 

  御相伝에 明星池를 볼때 不可思議 하도다 日蓮의 그림자 지금의 대만다라 이니라,

  또 가로되 창제하는 바의 七字는 佛界이니라 봉창하는 바의 우리 중생은 九界이니라,

  이는 진실한 십계호구이다 운운

 

3)人法体一이란 法이 사람에게 와서 感應한다는 것이며 사람이 無作三身즉 부처로

  實相으로 나타 난다는 것이다,

  無作三身이란 末法의 법화경의 行者이다, 이것은 人法体一을 나타내고 어본존의

  핵심이다 (자수용신즉 일념삼천, 일념삼천즉 자수용신)

  천태대사는 법화경을 究明하고 그 구극의 法體가 妙法인 것을 內觀했다 이는 理로서의

  法이며 생명 자체로서의 체득은 아니다 따라서 敎에 의해 수행하고 이 비밀의 장에

  들어 가는것을 얻음, 이라고 했다,

 

  대성인께서는 생명 자체로서의 妙法, 人法体一의 생명의 극점에 座를 두고 있기에

  名도 体도 宗도 用도 敎도 모두가 南無妙法蓮華經이다 수량품의 是好良藥의 文이

  人法体一의 本尊이 되고 기바대신의 藥童(약동)이를 견주어 생각하라, 이것은 기바가

  태어날때 침과약 주머니를 가지고 태어났다 고 하여 의술인 법을 체현했다고 하는것이다 

  (의술:法,  기바:人)

  日蓮大聖人 一身의 당체는 本佛의 生命이며 삼대비법을 구족한 존극의 생명이시다

  그 생명을 초목에 入魂하여 도현한 것이 일념부제의 총여의 대어본존이며 본문계단의

  어본존이시다 이 어본존 즉 日蓮 己心의 佛界는 본문의 제목에 의해서 나타난다,

 

4)부자석신명 이란 창제수행이며 자행과 화타의 양면의 실천을 포함하고 있다 본문의

  제목이 그 行에 있어서 자행화타에 걸친다는 것이 末法 대성인의 佛法 독자성 특질이며

  완벽한 실천론을 교시하시고 있다

  信의 극치를 설한 것이, 一心에 부처를 보기를 원하여의 文과

  行의 극치를 설한 것이, 스스로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의 文을 色心二法 에 걸쳐 읽으신

  대성인께서는 이 文에 의해 己心의 佛果(본존)을 나타낸 다고 하시며, 一이란 妙이며

  心이란 法이며 欲이란 蓮이며 見이란 華이며 佛이란 經이니라, 이 五字를 홍통하려면

  不自惜身命 이것 이니라,

  一心으로 부처를 보는 마음을 하나로 하여, 부처를 보는 마음을 보면 부처 이니라,(중략)

  법화경을 위하여 몸을 버리고 목숨도 아끼지 말라고 강성히 말한것은 이 까닭이니라

  어서 892쪽,

  이 본존은 사람에 즉해서 法, 법에 즉해서 사람이니라, 그 体는 人法一個 이니라 고

  로 一念三千 즉 自受用身이다,

 

5)제목에 体宗用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중생이 본존을 緣으로 제목을 부르면 본존에서

  智즉(報身)이 나와서 중생의 몸이 法身임을 알게한다,

  本因妙抄에 수지즉 本因의 所作에 의해서 구창즉 本果의 究竟을 얻음,

  題目은 觀心位의 敎相이다 어서 866쪽, 제목은 관심의 법문을 교상으로 나타낸 것,

  보통은 신심구창 만으로 觀行을 이룰수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렵지만 일념부제의 총여의

  대어본존을 믿고 제목 봉창하면 所信所唱의 본존의 佛力과 法力에 의해서 신속하게 관행

  을 성취한다, 이는 三世諸佛의 지혜를 所有하는 것으로 즉 慧가 제목안에 가라 앉아있다,

 

6)본인묘초 에는 ,

  在世 8개년의 의식을 옮겨 멸후 末法의 行義로 하도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처는 숙탈의 敎主, 나는 下種의 法主이니라, 그의 一品二半은 사리불 등을 위해서는

  觀心이고 우리들 범부를 위해서는 敎相이니라 理즉 斷妄의 범부를 위한 관심은 余行에

  걸치지 않은 南無妙法蓮華經 이것 이니라,

  이와 같은 深義를 모르는 벽인이 나타나서 나의 入義는 교상에서 벋어난 外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숙업이 졸렬한 修因感果가 지극한 것이니라 저 천태대사 에게는 三千

  人의 제자가 있었는데 章安 一人이 분 명하니라, 전교대사 에게는 三千人의 중도를 두었는

  데 기신 이후는 그것이 없는 것과 같도다

  지금도 그와 같아서 수많은 제자가 있다해도 의심없이 正義를 伝하는 者는 드문 것이

  어서 一 二의 石과 같으니 비장해야 할 법문이니라, 어서 874쪽,

 

  니치칸 상인은 觀心의 本尊이란 事行의 題目이다,

  관심 본존이란, 이 어본존은 人法体一의 本尊 諸佛諸經의 能生의 根源 일체중생의 成佛의

  種子이며 수지 함으로써 바로 正觀에 달하는 事行의 南無妙法蓮華經 이므로 관심의

  본존이라고 하느니라,

 

  事行의 제목이란

  신심은 제목을 부르는 시초이므로 本因妙이고,

  제목을 부르는 것은 신심의 끝인 고로 本果妙 이다

  이것은 찰라시종 一念의 因果이므로 蓮華에 해당된다,

  법화의 自在神力이란 三諦즉 一心에 나타나는 것, 범부의 三諦가 본존의 力用에 의해서

  法身 報身 應身 즉 無作三身으로 나타난다,

  즉 能化所化 妙法經力으로 즉신성불 한다, 三大秘法이란 無作三身이다,

 

 

7)名体宗用敎(명체종용교) 五重玄의 요약,

 

 名이란 名体不思議 觀心直達(명체불사의 관심직달)의 南無妙法蓮華經

 体이란 自性不思議 중생의 心性을 究竟해 보면 三千의 形相(형상)을 말해서 불가사의

     体라는 것, 자성이란 일체제법의 本性이며 不思議 妙法 이므로 대성인께서는 어본존

     으로 도현해 주셨다,

 宗이란 因果一念 구계즉불계, 불계즉구계가 찰라일념(순간의 생명에 갖춰진다는 것)

     생명의 인과는 色心不二의 一念 즉 색심불이의 생명을 수립하는 것(즉 이불병좌의

     의식,경지명합 본인본과 인과구시)

     대성인은 십계호구 事의 일념삼천을 생명의 實相으로 어본존의 생명에 구족됨을

     나타 내시고 참의 實相은 어본존을 境으로 信心을 智로 해서 경지명합을 하는것이다

     고 하셨다 지용의 보살은 석존 己心의 보살계로 師弟不二 구계즉 불계를 밝힌것이다 

     九界 佛界가 相應하고 感應해서 완전한 体와 用을 구현하는 것이다

 用이란 一心化用 즉 중생을 화도하는 거동으로 수량품 제16의 如來가 설하는 바의 경전은

     모두 중생을 도탈하기 위해서다

     혹은 己身을 설하고 혹은 他身을 설하고 혹은 己事를 나타내고 혹은 他事를 나타내고,

     諸 言說하는 바는 모두 사실이며 헛되지 않도다, 己身 己事는 佛界를, 他身 他事는

     九界를가르킨다,

敎이란 一心法界란 중생의 一心이 一切萬法이라는 것 즉 생명에 三千의 諸法이 모두 갖춰

     있다는 一念三千의 法理를 말한다 十界三千의 의정 색심 비정 초목 허공찰토 어느것도

     제외하지 않고 티끌도 남기지 않고 一念의 마음에 포함하고 이 一念의 마음이 法界에

     편만 함을 가르켜서 萬法이라고 한다 이 理를 각지함을 一心法界라고 한다 어서 383쪽,

 

色心不二의 一念을 수립 한다 란,

    一切法즉 心 : 如是我聞,

    心즉 一切法 : 作礼二去,

    己心外에 法이없다 因果俱時 不可思議 一法의 体가 一念의心法, 이를 色心總在의

    一念이라 한다, 法界를 一心에 포함시키는 것은 如의 義이며, 一心을 법계에 여는

   것은 去의 義이고 三諦三觀 口決相承과 같은 뜻이니라 운운, 어서 872쪽,

 

 

8)一念三千之事 어서 412쪽 요약,

  一念三千 一心三觀의 法門은 법화경의 十如是에서 일어 났노라

  文의 心은 백계천여 삼세간 운운, 그런데 一心三觀이라 함은 余宗에서는 如是라 하는데

  이는 벽사로서 二義가 빠졌으니 천태 남악의 御義를 모르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當宗

  (日蓮正宗)에서는 천태의 소석과 같이 세번 읽으면 공덕이 뛰어나도다

 

제一에 是相如라고 相性体力 이하의 十을 如라고 함은 空의 義인 고로 十法界 모두

   空諦이니라 이를 읽고 관할 때는 나의 몸은 즉 報身如來이며 팔만사천 또는

   般若라고 하느니라

제二에 如是相 이는 나의 몸의 色形에 나타난 相이니라 이는 모두 假이며 상성체력 이하의

  십법계 모두 假諦라 해서 假의 義이니라 이를 읽고 관할 때는 나의 몸은 즉 應身如來

  이며 또 解脫 이라고도 하도다

제三에 相如是라 함은 中道라 해서 부처의 法身의 모습이며 이를읽고 관할 때는 나의

  몸은 즉 法身如來이며 또는 中道라고도 法性이라고도 열반이라 고도 적멸이라고도 함이라

  이 三을 法報應 三身이라고도 공가중三諦 라고 도 法身 般若 解脫의 三德이라고도 하노라

  이 三身如來는 결코 다른 곳에 없으며 나의 몸이 즉 三德究竟의 体로서 三身즉 一의

  본각의 부처이니라 이를 아는 것을 如來라고도 聖人이라고도 悟라고도 하고, 모름을

  범부라고도 중생 이라고도 迷 라고도 하느니라

 

  如이란 중생의 如와 부처의 如가 一如로 無二如 이지만, 九界와 佛界가

  분리된 것을 是라고 말 하느니라

  如는 : 實相, 心法, 寂,

  是는 : 諸法, 色法, 照,

  法華經의 行者는 如是의 体를 듣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法体란 南無妙法蓮華經 이니라,

 

  如이란 境이며, 불변진여의 理, 色

  是이란 智이며, 수연진여의 智, 香

  相이란 境智二法 이며,         味,

  体   : 宗   : 用

  香   : 味   : 色

  定   : 慧   : 戒

  本尊 : 題目 : 戒壇

 

 니치칸 상인의 선시초 문단에는,

  我本行 菩薩道 所成壽命(아본행,보살도,소성수명), 本因妙의

 文을 해석함에 있어서, 이 一文을 나타낼 테니 그대는 듣고 깊이 이를 믿을 지어다,

 

 我이란 釋迦如來

 本이란 오백진점겁의 당초 凡夫의 御時

 行이란 本始의 行妙

 菩薩이란 位妙, 壽命즉 慧命은 本始의 智妙, 智에는 반드시 境이 있다 즉 境妙이다

 (文上에는,境妙가 없고 문저에 비침되있음)이四妙란 三大秘法이다

 본문의 본존 : 境妙

 본문의 제목 : 智妙, 行妙

 본문의 계단 : 位妙,

 

 본존즉 佛界와 계단즉 九界는 제목 창제로서 一道를 이룬다, 계단은 즉

 생명이 있는 者는 어본존을 緣으로 제목하면 반드시 佛性을 용현할 수 있다

 결국 생명속에 佛性을 덮고 있는 無明과의 싸움이다

 비유하면 지하수를 펌프로 끌어 올릴 때에는 반드시 마중물이 필요하다,

 우리들 중생의 생명속에 있는 흉중의 본존 즉 佛界를 용현하려면 반드시 마중물과

 같은 본존이란 緣이 없으면 흉중의 본존 즉 佛界는 나타낼 수가 없다,

 

 부처의 意 즉 마음이란 法華經이며 이것을 수량품 에서는 是好良藥 이라고 하여 三世의

 諸佛이 좋아하는 양약이라고 說 해졌으며 삼라삼천의 諸法은 意의 一字 이상 없느니라

 이 부처의 意를 믿는 것을 信心이라고 하느니라, 어서 776쪽,

 

 전지부촉 : 출가승의 대표, 當代의 法主上人,

 수호부촉 : 재가신도가 妙法을 수지하고, 宗門을 外護하는 것,

 

 一心三觀 : 一心으로 自身이 法身 報身 應身 즉 無作三身이라고  알게되며

            三身즉 一의 本覺의 如來임을 알게 된다,

 

 

 

名의 사중천심
명체무상(名體無常)(이전경) : 와 名은 모두 무상이다
체실명가(體實名假)․(적문) : 理의 일념삼천을 설했으나 수연진여의 智는 나타내지 못해서 名相은 허상 가(假)이다
명체구실(名體具實)(본문) : 삼천의 명상 현상도 본유의 법 본유상주(本有常住)이다
명체불가사의(名體不可思議)(문저) : 名도 體도 불가사의 즉 관심 직달의 南無妙法蓮華經

​体의 四重淺深
삼제격력(三諦隔歷)(이전경) : 공가중의 삼제를 각각 따로 파악함
이성원융(理性圓融)(적문) : 제법의 본성인 공가중삼제가 원융해서 빠짐없이 갖춰 있다는 것
삼천본유(三千本有)(본문) : 구원상주의 본국토가 설해지므로 삼천의 법이 본유상주라는 것
자성불가사의(自性不可思議)(문저) : 중생의 心性을 규명해보면 불가사의 체 일체제법이 本性이며
                                                    불가사의 묘법의 당체 이므로 이것을 日蓮대성인께서 어본존으로 도현해 주셨다


​宗의 사중천심
인과이성(因果異性)(이전경) : 구계와 불계가 성분이 다르다고 설함
인과동성(因果同性)(적문) : 구계와 불계가 성분이 같음
인과병상(因果並常)(본문) : 구계와 불계는 상주(常住)라는 것
인과일념(因果一念)(문저) : 구계즉 불계 찰라시종 일념에 갖춰있음 인과구시(因果俱時) 십계호구
                                       어본존과 감응도교로 인과의 당체로 됨


​用의 사중천심
신통환화(神通幻化)(이전경) : 佛 보살이 임시로 범부에게 출현해서 중생을 이익케 함
보현색신(普賢色身)(적문) : 佛 보살이 중생의 기근에 따라서 여러 가지 신상을 나타내 법을 설하고
중생을 이익케 함
무작상주(無作常住)(본문) : 본래 제법에 갖춰져 상주하는 무작삼신 여래의 작용으로
제불의 팔상작불 시현
일심(一心)의 화용(化用)(문저) : 중생을 화도하는 거동 수량품의 혹설 기신 혹설타신
기신 己事는 불계를 他身 他事는 구계를 가리킴


​敎의 사중천심
단현격리(但顯隔理)(이전경) : 중생의 기근에 응해서 설하고 진리를 밝히지 않음
교즉실리(敎卽實理)(적문) : 실상에 대해 설하지만 經에 따라서 다르게 설한다
대승경에서는 제법실상을 설하지만 중중의 차이가 있다
방편품에서는 십여시를 실상으로 설하고
수량품에서는 삼묘합론으로 설하고
문저 佛法에서는 삼대비법의 어본존이 실상이다
자성회중(自性會中)의 교(敎)(본문) : 수량품에서 석존이 己心에 깨달은 법문 구원실성의 事이 일념삼천의법을 밝힘
일심법계(一心法界)(문저) : 중생의 一心 생명이 일체법이라는 것 생명에는 삼천의 제법이 모두 갖춰있다
즉 일념삼천의 법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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