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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이야기

제니퍼로페즈(가수.배우)

작성자고수|작성시간26.06.17|조회수37 목록 댓글 0

 

 

미국의 배우, 가수, 사업가.

북미 박스오피스 1위, 빌보드 핫 100 1위, 연예인 패션 브랜드 역사상 최고의 판매 실적, 향수 업계 사상 두 번째로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배우로서도, 가수로서도, 사업가로서도 확실히 성공을 이룬 반박할 여지가 없는 멀티 엔터테이너이다. 연기, 음악, 사업 모든 분야에서 1년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신작, 신곡, 신상품을 내놓는 진정한 워커홀릭이다.

배우로서는 <Selena>에 처음으로 주연으로 발탁되어 라티노 연예인의 확고한 정체성을 보여주면서도,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 작품에 출연해 흥행을 견인하며 로코퀸으로써의 대중의 사랑을 얻었다. 음악적인 면에 있어서도 '뉴욕 브롱스' 출신이라는 것을 적극 앞세워 힙합R&B 음악 뿐만 아니라 트렌디한 EDM 음악을 발표하기도 하는 등 재기발랄한 'New York Girl'인 동시에 다양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또한 탄탄하고 볼륨있는 몸매로도 유명하다. 댄서 시절엔 "엉덩이가 (다른 백인 댄서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 는 농담을 받기도 했으나, 데뷔를 하고 큰 인기를 얻은 이후로는 그녀의 몸매가 곧 볼륨있고 탄탄한 몸매의 상징이 되었다. 그에 대한 평가들 중 하나는 "JLO의 등장 때문에 남성들이 여성을 볼 때 상반신(가슴)이 아니라 엉덩이를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미 여성들 사이에서 엉덩이 수술 건수가 늘어났다는 풍문까지 있을 정도. 그녀의 탄탄하고 볼륨있는 몸매는 변하지 않았지만, 니키 미나즈와 킴 카다시안 등 단순한 '풍만한 볼륨 몸매'를 넘어선 방송인들이 대거 등장한 이후로, 엉덩이의 대명사로 제니퍼 로페즈를 꼽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다. 그러나 이기 아잘레아와 "Booty"라는 노래를 내놓는 등 여전히 원조 엉그로를 뽐내고 있다.

굉장히 핫한 설레브리티의 대명사로도 유명했다. 전성기인 1990년대~2000년대에는 패리스 힐튼-린제이 로한-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함께 헐리웃 셀렙계를 사분할하여 차지했다. 이 시절 미국 여성들은 J.Lo를 따라 스타일링한 여성들로 넘쳐났다.

 활동

 

1986년 영화 《My Little Girl》 오디션에 합격해 단역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영화배우의 꿈을 키웠지만, 부모님이 "히스패닉계 미국인 출신으로 미국 연예계에서 성공을 거둘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고, 결국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1학기를 마치고, 집에서 독립해 맨해튼으로 향했으며 뮤지컬에 출연하는 등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수 년 간 그럴듯한 배역을 얻지 못했지만 1993년 12월 2일부터 방영한 CBS 드라마 《Second Chances》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1994년 캘리포니아 노스리지 대지진으로 세트장이 파괴되어 촬영 및 방송 일정이 전면 중단되는 안타까운 사태가 벌어졌다. 1994년 8월 4일부터 해당 드라마의 스핀오프 격인 작품 《Hotel Malibu》가 제작되었지만 시청률 저조로 금방 종영했다. 겨우 비중 있는 배역을 맡았지만 부득이하게 폐지되는 바람에 이후 한동안 그저 그런 배역을 맡으며 무명 생활을 이어갔다. 이 시기에는 우상이었던 자넷 잭슨의 That's the Way Love Goes의 뮤직비디오에 백댄서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3월 21일 멕시코계 라틴 팝 가수로 큰 인기를 얻은 '셀레나 킨타닐야 페레스'의 비극적[5]인 삶을 다룬 전기 영화 《Selena》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무명 배우 인생이 크게 반전되었다. 제니퍼가 영화계에서 얼굴을 알릴 수 있게 해준 작품으로, 많은 호평을 얻었다. 그녀는 이 작품 이후 할리우드 주연급 배우로 성장하여, 1년 만에 출연료가 4배나 상승했으며, 10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는 최초의 히스패닉 여성 배우로 등극했다. 로맨틱 코메디 흥행 아이콘으로 등극한 이후로는 출연료가 10배 이상 상승해 최고 당시 최고 수준의 출연료인 25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개런티를 받았다.

같은 해 4월 11일 개봉한 본격 아나콘다 습격 영화 《아나콘다》에서 주연 Terri 역을 맡았다. 흥행에 성공하면서, 대중들에게 확실히 얼굴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10월 3일 개봉한 숀 펜 주연의 스릴러, 범죄 영화 《U Turn》 역시 개봉하면서 1년 동안 3작품에 주연으로 이름을 올리는 등 주가를 올렸다.

영화배우로 커리어를 차근차근 쌓아 스타반열에 올라가던 중,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뜬금없는 가수 진출 선언을 하게된다.

1999년 5월 4일 가수 첫 데뷔 싱글 《If You Had My Love[6]를 발매했다. 이 때가 그녀의 나이 30세. 당시 빌보드에선 한창 아이돌 열풍이 불고 신인가수의 데뷔시기가 다소 빨랐었는데 30대의 나이에 댄스 가수에 도전을 한 것은 성별을 불구하고도 상당히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선 첫 데뷔 싱글임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다르게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했다. 발매 하자마자 엄청난 화제를 이끌어내며 유럽 싱글 차트를 석권했다.

첫 번째 앨범 <On the 6>를 발매했다. 앨범명인 <On the 6>는 제니퍼의 고향인 '브롱크스'에서 '맨하탄'으로 향하는 전철 번호가 '6'였다는 것에 착안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댄스 및 라틴 팝 음악들을 수록했으며, 예상 외로 평론가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큰 흥행을 거둔 싱글 성적에 비해 당시 앨범 판매는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이후 미국에서 앨범 판매량 트리플 플래티넘을 인증 받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 판매량 800만 장을 돌파하는 등의 인기를 과시했다.

2001년 1월 26일 개봉한 로맨틱 코메디 영화 《The Wedding Planner》에서 매튜 매커너히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인기 몰이에 성공했다. 같은 주 그녀의 앨범 <J.Lo>도 빌보드 200 1위에 오르면서 JLO 전성시대를 알렸다. 흥행 기세를 따라서 5월 18일에 멜로 영화 《Angel Eyes》도 개봉했다. 개봉 첫 주에 반짝 인기를 얻었지만, 다음 주 관객이 수직 하강해 손익분기점도 넘지 못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이 작품으로 골든 라즈베리에서 '최악의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 되는 굴욕을 당했다. 1년 후 또 골든 라즈베리의 후보로 지명 되었는데, 그 작품은 바로 2002년 5월 24일 개봉한 스릴러 영화 《Enough》. 배우의 연기는 호평을 받았으나, 내용과 연출 등의 측면에서 혹평을 받았고 흥행에서도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2번째 앨범인 <J.Lo>를 발매했다. 발매 첫 주 Billboard 앨범 차트[7] 1위를 기록함과 동시에, 영화 <웨딩 플래너>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워 기네스북에 등록됐다. 이후 앨범 판매 쿼드러플 인증을 받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9월 4일 4번째 싱글 <I'm Real>을 발매했다. 곧바로 당대 최고 래퍼였던 자 룰이 피처링에 참여한 리믹스 버전도 발매하여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뮤직비디오에서 입고 나온 핑크색 트레이닝복 패션이 엄청난 화제가 되어 트레이닝복 패션을 전세계적으로 유행시켰다. 참고로 이 뮤직비디오와 2003년 발매된 이효리의 <10 Minutes> 뮤직비디오를 비교해보면 제이로 뮤비가 많은 영향을 준 것을 알 수 있다.

2002년 2월 5일 리믹스 앨범인 <J to tha L-O! The Remixes>를 발매했다. 리믹스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Billboard 200에서 1위로 데뷔했으며, 미국에서 많이 팔린 리믹스 앨범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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