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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이야기

던젤워싱턴(배우)

작성자고수|작성시간26.06.18|조회수37 목록 댓글 0

덴젤 워싱턴

포크일시 : 2026-01-05 

분류

 

 

덴젤 워싱턴
Denzel Washington
본명덴젤 헤이스 워싱턴 주니어
Denzel Hayes Washington, Jr.
출생1954년 12월 28일 (71세)
뉴욕주 마운트 버넌[1]
국적
 미국
신체182cm[2]
직업배우작가감독프로듀서
데뷔1977년 영화 《윌마》
학력포덤 대학교 (언론학 / B.A.)
배우자폴레타 워싱턴(1983년 – 현재)
자녀장남 존 데이비드 워싱턴(1984년생)
장녀 카티아 워싱턴(1986년생)
차녀 올리비아 워싱턴(1991년생)[3]
차남 말콤 워싱턴(1991년생)
훈장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4]
종교개신교 (오순절교회 / COGIC)[5]

 

1. 개요2. 생애

2.1. 작품 활동

3. 사생활4. 위상 및 연기력5. 여담6. 출연작

6.1. 영화6.2. TV 시리즈6.3. 공연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Denzel Washington 1977-2022 Filmography


I think when all is said and done, he's the greatest actor of our generation.
그는 우리 세대에서 최고의 배우라고 생각한다.


에단 호크

미국의 배우이자 영화감독, 제작자.

2. 생애[편집]



덴젤 워싱턴의 어린 시절

1954년 12월 28일, 뉴욕주 마운트버넌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리니스 린 워싱턴'은 조지아주에서 미용사로 일했으며, 아버지 '덴젤 헤이스 워싱턴'은 오순절교회의 목사이자 뉴욕시 수도국 직원 및 S. 클라인 백화점에서 일하기도 했다. 덴젤은 1968년까지 마운트버넌에 위치한 페닝턴-그라임스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그가 14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양육권을 얻은 어머니에게 뉴욕 뉴윈저에 위치한 사립 예비학교인 오클랜드 군사학교로 보내졌다. 후에 덴젤은 인터뷰에서 "그 결정이 저의 인생을 바꿔 놓았는데, 제가 살던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겁니다. 당시 저와 같이 다니던 친구들은 지금까지 합쳐서 40년은 교도소에서 인생을 보냈을 거예요."라며 어머니의 선택을 칭찬했다.

오클랜드 군사학교를 졸업한 뒤, 1970년부터 1971년까지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해변에 위치한 메인랜드 고등학교에 다녔다. 덴젤은 텍사스 공과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꿈꿨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있다. 과거, 마운트 버넌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러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레드 레이더스(Red Raiders)'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마침 텍사스 공과대학교 안에 레드 레이더스라는 이름을 가진 운동부가 존재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진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학하는 데에는 실패했고, 대신 포덤 대학교에서 피터 존 칼리시모의 가르침을 받고 농구부에서 가드로 활동했으며, 드라마와 저널리즘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운동도 하고 싶었지만 배우로서의 자질도 충분하다는 평가를 주변에서 많이 받은 덴젤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하는데, 확실하게 정하기 위해 한 학기를 휴학한 뒤, 코네티컷에서 애니메이션 감독, 청소부로도 잠시동안 일해보기도 했다. 마침 주변에서 재능 쇼를 개최하자 참여한 덴젤은 동료에게 연기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이때부터 자신의 직업을 배우로 확실히 정하게 되었다.

2.1. 작품 활동[편집]



▲ 영화 《윌마》 中

포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윌마 글로딘 루돌프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윌마(1977)에서 조연으로 데뷔했다. 이후 대학을 다니면서 연극무대에[6] 올라 꾸준히 연기 향상에 노력을 가했다. 본격적인 영화 및 첫 할리우드 데뷔작은 1981년에 개봉한 카본 카피이며, 1981년 11월 20일에 초연된《군인의 연극》에서 마빈 피터슨 역을 맡아 1982년 오비 어워드에서 상을 수상했다.



▲ 영화 《자유의 절규》 中

노만 주이슨 감독의 영화 《솔저 스토리(1984)》에서 인상적인 조연 연기를 펼쳤다. 2차대전 당시 미 육군의 흑인 부사관 워터스가 군부대 안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흑인 사병들은 KKK가 저지른 짓으로 여기고 백인 장교들은 사건을 덮으려고 한다. 이 와중에 진실을 찾으려는 흑인 장교 데이븐포트과 반목하던 흑인 피터슨 일병 역을 맡아 주목받게 된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반 아파르트헤이트 정치 활동가인 스티브 비코(Steve Biko)와 백인 기자 도널드 우즈간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자유의 절규(1987)》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고,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 이때부터 평범한 조연 배우였던 덴젤은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 영화 《영광의 깃발》 中

고작 2년 뒤에 개봉한 1989년작 《영광의 깃발》에서 도전적이고 자제력 있는 전 노예 군인을 연기하여 아카데미 남우조연상과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다. 같은 해에는《마이티 퀸》에도 출연했으며, 비록 《영광의 깃발》로 인해 묻혔으나, 1988년작인《여왕과 국가를 위해》에서는 뛰어난 군인임에도 인종차별이 막심하고 폭력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갈등에 빠지는 '루벤 제임스' 역을 훌륭하게 소화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해당 영화는 흥행에도 실패하고 평가도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편이다.

1990년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차드 3세를 공공극장에서 연기하게 되었는데, 뉴욕 타임스의 멜 구소는 덴젤을 "범위와 강도를 갖춘 배우이며, 통제된 분노를 투사하는 데 능숙하다."며 호평했다. 또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모베터 블루스에서 주연인 블릭 역을 맡자, Empire의 찰스 머레이가 워싱턴의 연기를 두고 "열정적인 음악가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라는 호평을 남겼으며, "모든 리의 영화처럼 모베터 블루스는 진정한 앙상블 작품이며 연기의 수준은 일률적으로 훌륭하다. 하지만 워싱턴과 리는 더 많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는 멘트를 덧붙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인도계 미국인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미시시피 마살라(1991)》에서 주연을 맡은 덴젤은 이번에도 큰 호평을 받았으며, 시카고 선타임즈의 비평가이자 현재로서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평론가로 불리는 로저 에버트에게 "워싱턴은 엄청나고 자연스러운 매력을 지닌 배우."라는 찬사를 받았다.

파일:덴젤 워싱턴 말콤 X.gif
▲ 영화 《말콤 X》 中

흑인 운동가인 말콤 엑스의 생을 다룬 영화 《말콤 X》에서 엑스로 분했다. 싱크로율 100%에 가까운 외모와 연기로 메소드 연기의 정점을 보여준 점이 그의 연기혼을 말해주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한국에서 덴젤 워싱턴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뉴욕 타임스에서는 이 영화에 호평을 내렸고, 평론가인 빈센트 캔비는 "덴젤 워싱턴은 말콤 X에서 벤 킹슬리가 간디에서 한 일과 동일한 수준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훌륭한 배우이다. 워싱턴은 역할에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영화에 극적인 흥분을 줄 심리적 무게감, 지성, 그리고 내성도 갖추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역할로 덴젤은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게 되고, 그 해에 자신의 제작사인 먼디 레인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1993년에는 조나단 데미 감독의 영화인《필라델피아》에 출연한다. 여기서 덴젤은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인 앤드루 베켓을 변호하는 조셉 밀러 역을 맡게 되었는데, 역시나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는다. 월간 영화 잡지를 발행하는 'Sight and Sound'에서는 덴젤을 주연으로 캐스팅한 선택은 백인 동성애자의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을 흑인 관객들의 생각을 바꿨다고 평하며, 흑인 사회에서의 덴젤의 위상을 매우 높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1996년에는 페니 마셜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프리쳐스 와이프》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스파이크 리 감독의《히 갓 게임》에서는 교도소 소장이 주지사의 모교인 빅 스테이트에 입학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가석방을 제안하면서 6년형을 선고받은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7] 같은 해, 그레고리 호블릿 감독의《폴른》에서 주연을 맡는 등, 이제는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배우 중 하나로 자리를 확고히 한다. 미국의 무역 잡지인 Variety에서는 "워싱턴의 탐구적이고, 절제적이며, 예민하게 묘사된 연기를 통해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기록된다. 다른 시대라면 몽고메리 클리프트나 윌리엄 홀든이 연기했을 법한 역할이다."라고 평했다.



▲ 영화 《본 컬렉터》 中

1999년에는 범죄 스릴러인《본 컬렉터》에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공동 주연으로 출연했다. 같은 해, 권투 선수인 루빈 카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더 허리케인》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본 컬렉터만큼의 흥행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평론가들에게 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덴젤은 카터 역할로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은곰상(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비영리 일간 신문지인 시카고 선타임스의 영화 평론가인 로저 에버트는 "카터는 덴젤 워싱턴의 훌륭한 연기 중 하나이며, 말콤 X에서 보여준 연기와 동등하다."라고 밝혔다. 이후, 2000년에 카터 역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믹 라살은 "워싱턴은 가장 극단적인 삶의 모습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그는 관객을 감금과 신체적 박탈을 경험하는 한 남자의 마음속으로 데려가며, 거친 분노와 무력감, 절망과 희망의 고통을 매일 겪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며 극찬을 남겼다. 이후, 2000년에 스포츠 드라마 영화인《리멤버 타이탄》에서 고등학교 풋볼 고치인 '허먼 아이크 분(Herman Ike Boone)'을 연기했다. 미국의 정치적 진보주의 및 자유주의 뉴스 웹사이트인 살롱의 앤드류 오히에르는 워싱턴이 작품의 핵심 인물을 훌륭하게 소화해냈으며《더 허리케인》에서 보여준 것만큼 기억에 남는다는 평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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