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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이야기

스티븐시걸(배우)

작성자고수|작성시간26.06.18|조회수68 목록 댓글 0

스티븐 시걸

 

최근 수정 시각: 2026-06-16 

 

 

 

 

 

 

 

 

스티븐 시걸
Steven Seagal
본명스티븐 프레더릭 시걸
Steven Frederic Seagal
별명The Great One
출생1952년 4월 10일 (74세)
미시간주 랜싱
국적 미국
 (1952.04.10 ~ 현재)

 세르비아
 (2016.01.11 ~ 현재)

 러시아
 (2016.11.25 ~ 현재)
신장193cm
직업배우영화감독극작가무술가뮤지션
부모 : 새뮤얼 스티븐 시걸(1928년~1991년)
 : 퍼트리샤 시걸(1930년~2003년)
배우자후지타니 미야코
(1975년 결혼~1986년 이혼)
아드리엔 라 루사
(1984 결혼~1984년 이혼)
켈리 르브록
(1987년 결혼~1996년 이혼)
에르데네투야 시걸
(2009년 결혼~현재)
자녀3남 4녀







데뷔1988년 영화
형사 니코[1]
데뷔앨범데뷔앨범 : 2005년 1집 앨범
《Songs from the Crystal Cave》
액션 스타일아이키도[2]
종교성공회 → 불교 (티베트 불교)
정당공정 러시아
[3]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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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표정이 똑같다고 알려진 전설의 영화배우. 어떤 연기를 해도 절대 표정이 바뀌지 않는다. 희로애락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한 표정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어찌보면 놀라운 인물. 자매품으로 모든 표정이 같은 기업인축구인야구인빙상인도 있다.

자신이 출연하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 대부분 한 대도 맞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무쌍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특징. 심지어 영화 하드 투 킬에서는 온 몸에 총알을 맞고도 7년 뒤에 회복하는 결말이 나왔다. 과연 하드 투 킬. 사실 두 명 더 죽여서 하드 투 킬이라 카더라 그래서 무적의 사나이무패의 사나이라고도 불린다. 척 노리스장클로드 반담 등과 함께 세계최강의 사나이를 다투는 남자. 다만 영화 초반부에 폭발에 휘말려 바로 퇴장한 파이널 디씨전이라든지, 클레멘타인이라든지 패배하는 경우도 있다.

 


권총 한 자루로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도 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권총 한 자루로 헬기를 격추시킨 전적이 있다. 또한 클레멘타인을 제외하면 다른 출연작에서는 악역을 하지 않았으나... 2010년 개봉한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 액션영화 마셰티에서 드디어 치졸한 악당으로 나와 주인공 대니 트레조와 싸우다가 패하자 할복해 죽는 배역으로 나오고 말았다. 

돌프 룬드그렌장클로드 반담 등과 같이 거론되는 경우가 많은데서[6] 알 수 있겠지만 제임스 벨루시찰스 브론슨, 마이클 듀디코프, 올리비에 그루너 같은 배우들처럼 연기력의 여부를 떠나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할리우드의 한철 장사 같은 액션 영화에 출연하면서 소모되어버린 배우 계열에 포함된다.

 

 생애

 

미국 미시간주에서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아버지와 의료기기기사(medical technician)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퍼트리샤는 독일-영국-네덜란드계였고, 아버지 새뮤얼은 벨라루스계 미국인으로 유대인이었다. 그의 집안의 원래 성씨는 시겔만(Siegelman)이었으나 부친 대에 성을 시걸(Seagal)로 바꾸었다. 5살 때 캘리포니아 풀러턴으로 이사갔다.

어릴 때부터 일본 무술에 관심이 많아 일본인 도장에 다니면서 무술을 연마했다.

17살 때 아예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약 15년간 일본 오사카에서 살면서 무도인 및 무술 사범으로 활동했다. 도장을 열어 운영했는데, 외국인으로서는 일본에서 유일했다고 한다. 1975년 일본인 무도인 관장의 딸 후지타니 미야코와 결혼해 아들과 딸[7]도 낳았다.

1984년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와 LA에서 무술관을 열었다.

 시걸권

언제나 무표정으로 수상하게 몸을 움직이며 적의 관절을 전부 꺾어버리는 기묘한 무술인 시걸권(Seagal拳)의 창시자이자 달인. 시걸권을 사용하게 되면 그의 몸에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는 농담. 꺾으려면 잡아야 하잖아.

그의 손에 잡히는 모든 신체 부위는 곧바로 꺾이고 부러지며 적이 내지르는 팔이나 다리가 최우선 타겟이 되기 때문에 그를 마주한 악당들은 사지 말단부터 하나하나 꺾이고 부러지는 고통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목뼈를 조르거나 돌려서 문자 그대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짧고 강렬한 마무리 내지는 일격기는 그야말로 시걸권의 상징. 상단의 영상만 봐도 재생하는 동안 내내 악당들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무기나 총을 들어도 예외는 없어서 샷건을 무릎에다 갈겨버려 아예 끊어버리고 칼을 들면 팔 관절을 썰어버리는 등, 관절에 대한 심상치 않은 집착이 느껴질 정도.

시걸은 일본전통무도인 아이키도와 각종 무술의 달인이라고 한다.[8] 한때 그의 아이키도 시범 영상이 무술 사이트 등에 떠돌기도 했다. 이 아이키도와 태국식 단검술과 가라테 등 여러 가지 무술을 종합해서 영화에서 보여주는 현재의 시걸의 스타일을 완성했다고 한다. 작중 보여지는 팔 꺾기류 기술은 전형적인 아이키도의 수법이다. 아이키도 자체에서는 상대를 제압하는 수준에서 그치지만 작정하고 꺾어버리면[9] 영화처럼 된다. 물론 그럼에도 과장된 부분은 조금 있는 편이지만, 이러한 시걸 스타일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액션영화 팬들에겐 그만의 특허물로서 인정받고 있는 그의 상징이다.

아이키도 유단자(7단)답게 아이키도 기술을 사용한 액션 또한 많았다.

 데뷔와 짧은 전성기

1984년 일본을 떠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LA에서 아이키도 도장을 열었다. 또 무술 실력을 발휘하여 경호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시걸은 193cm에 달하는 장신과 훤칠한 외모에 무술까지 겸비했기 때문에 영화계에 진출해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다.[10]

1988년에 데뷔했는데, 이미 서른 여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였다. 첫 주연 영화는 형사 니코라는 작품. 외모상으로 스티븐 시걸의 리즈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작품인 하드 투 킬(1990)은 주말의 명화에 방영되며 스티븐 시걸이 본격으로 국내에 얼굴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방영 당시에는 '7년 만의 복수'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고 부제로 Hard to kill 원제도 함께 소개되었다. 나중에 비디오로 '복수무정'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 후 액션수작 '복수무정 2'와 '죽음의 표적'을 거쳐 1992년에 나온 다섯 번째 작품인 언더 시즈[11]가 엄청난 대박을 거둬들이면서 전세계적으로 시걸 돌풍을 일으키며 A급 등극을 노리는 나름대로 유망한 액션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몰락

그러나 '언더 시즈' 1편 이후로 메이저급 영화가 줄줄이 망하면서 2001년작인 DMX와 함께 한 ‘엑시트 운즈’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비디오용 영화배우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그가 1994년 전성기 시절에 감독, 각본, 주연을 맡았던 '죽음의 땅'은... 명배우 마이클 케인도 이 영화를 살리진 못했다.(마지막 장면에 나와 자연 보호 강조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닭살이 돋는 코미디라는 평.) 최근엔 동양의 에너지를 담았다는 스티븐 시걸 에너지 드링크, 스낵바 같은 걸 팔거나 가수로서도 활동해 보는 등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보고 있으며, 클레멘타인 같은 영화에도 출연했다.

여기에는 그의 데뷔연도가 너무 늦어(1952년생이다.) 연기력이나 활약하기 힘들었던 탓도 있다. 그나마 나오는 영화들도 다 똑같은 원 패턴인 데다가 1990년대 초부터 체중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1990년대 후반에는 아예 주체를 못하는 수준으로 늘었다. 그 외에도 연기력과 사생활 등에서의 자기관리의 부재까지 겹치면서 전성기의 카리스마는 사라지고 한낱 영화팬들의 유머거리로 전락하게 되어 버렸다.

다만, 그의 몰락을 전적으로 데뷔 시기가 늦은 탓에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일단 미국 사회는 나이에 연연하는 분위기도 아니거니와, 시걸만큼 핸디캡을 지닌 배우로 따지자면, 가까운 사례로는 오스트리아 이민자였던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영국 다이빙 국대 출신인데도 노점상으로 살다가 우연한 기회로 데뷔한 제이슨 스타뎀부터, 멀리서는 왜소증 환자였던 피터 딘클리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교도소에서 보냈던 대니 트레호 같은 배우[12]도 있다. 조금 다른 사례지만, 기생충에서 소름돋는 연기로 유명한 이정은 배우의 경우, 연극 연출 경력과는 별개로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시기는 서른 여덟 살 때부터였고, 영상 무대에 모습을 비춘 건 마흔 세살이었다. 이런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시걸의 나이가 그다지 영향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아이키도 사범으로서 생활한 덕분에 액션과 스턴트 연기의 기반도 어느 정도 다져진 상태였다. 더군다나 B급 장르라고는 해도, 시걸은 그 기반으로 영화 배우 데뷔를 성공적으로 시작한 사람이다. 언더 시즈 이후의 커리어 실패와 연기력이 문제라곤 하지만[13], 아래에 후술되는 군 경력 사칭과 위계 성폭력, SNL 게스트 출연 당시 논란[14] 등의 사생활, 자기관리 문제 등 본업 외적인 면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인 것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15]

많은 사람들이 시걸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동의하는 점은 언제나 자신만이 주인공인 똑같은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B급 액션 전문인 배우라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 로맨스 라인이 있는 영화에 출연하거나 아예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같이 코믹한 가족 영화까지 발을 넓혀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있는 데에 반해 시걸은 90년대부터 비슷한 액션 스타일만의 영화를 고집했고, 이런 성향의 배우들은 2000년대 들어서 늘어나기 시작한 다각적인 주인공을 표현하는 데에 큰 부족함을 드러냈기에 그 누구도 빠짐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몰락하거나 대중들에게 서서히 잊혀졌다.

또한 시걸은 배우로서의 본분에 집중하기보다는 각본가와 감독에게 제안을 빙자한 훈수를 두거나 촬영팀에 개입하는 등 영화를 자신의 입맛대로만 끌어가려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과 마찰을 빚었다. 또한 후술할 사례도 있듯이, 분명 결혼을 한 사람임에도 함께 촬영하는 여배우들에게 쉼없이 집적거렸다는 등의 추문도 90년대에 들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후술할 신냉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도 불구한 과격한 친러행보로 인해 러시아의 만행에 비판 및 반대하는 대다수의 할리우드 및 유럽 영화인들과 대조되는 추태를 보이는 바람에 영화계에 복귀할지 미지수가 되었다.

 

 2000년대 이후

어쨌든 많이 몰락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2000년대 후반부터는 주로 제2의 고향이라고 하는 일본에서의 인기에 기대고 있다. 그래서 이때 일본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이나 토크쇼에서 시걸이 게스트 출연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2009년 이후의 작품들이 전성기 포스를 뿜어낸다는 나름대로 호평(?)을 받으면서 다시 주가를 올리는가 싶더니...

2010년에 드디어 오랜만에 메이저 와이드릴리즈 개봉작에 나왔다.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의 <마셰티>. 대니 트레호제시카 알바로버트 드 니로돈 존슨린제이 로한셀마 헤이엑이 같이 출연한다. 시걸은 악당으로 나오는데 그의 특기 목꺾기도 안 나오고 비중도 적다. 비중도 비중이지만 이때 살이 꽤나 찐 모습으로 나와 액션 연기 자체가 이제 힘들어보인다.

 

 친러시아 행보

2010년대 들어서는 러시아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친분이 있어 2012년에는 소치에서 열린 무술대회에 함께 앉아 관람하는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2013년에는 시걸이 모스크바에 삼보-70이라는 무술도장을 열자 푸틴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는 등 꾸준히 푸틴과의 만남이 언론에 노출된 바 있었다. 그런 탓인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대해서 옹호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세바스토폴에서 러시아 내셔널리즘 성격의 공연도 푸틴과 함께 한 모양이다.

이렇게 그동안 푸틴과의 친분을 과시한 덕분인지, 2016년 1월에는 세르비아 시민권을 얻었고, 11월에는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 시민권까지 받았다. 이는 시걸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하며, 시걸은 아버지가 러시아인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이라며 앞으로도 상당 시간을 러시아에 머물 뜻을 밝혔다.

그리고 11월 25일, 러시아 국적을 획득했다.#

2017년 5월 5일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을 지지한다고 공개선언하자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시걸의 우크라이나 입국을 5년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2018년에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대미문화사절단장으로 임명했다.# 2020년에는 러시아 환경 보호 활동 중이다.#

친푸틴 반자유주의 정당 진실을 위하여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했으며, 현재는 진실을 위하여와 합당한 공정 러시아의 당원이다.#

2022년 4월 10일, 자신의 70번째 생일에 모스크바의 한 레스토랑에서 축하연을 벌였다. 축하연에는 러시아의 대(對) 영어권 선동에 앞장서온 러시아 방송국 RT의 마르가리타 시모냔 편집장과 국영방송 로시야 1의 토크쇼 진행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 등 푸틴 정권의 지지자로 알려진 이들이 참석했다. 두 사람은 모두 유럽연합의 제재 대상에 오른 이들이다.# 여기서 시걸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와중임에도 푸틴을 찬양했다.# 푸틴과 친하게 지냈던 제라르 드파르디유가 이번 전쟁을 두고 푸틴을 미쳤다며 비난하고 우크라이나에 기부금을 보내는 거랑 대조적.

2022년 8월, 시걸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교전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올레니우카 포로수용소 포격과 관련하여 러시아의 주장에 동조하며 우크라이나를 규탄했다.#

2023년 2월 27일, 러시아 우호 훈장을 수여받았다.#

2024년 5월, 푸틴의 다섯 번째 취임식에 참석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푸틴 대통령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의 5번째 임기와 함께하는 미래가 최고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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