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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이야기

주윤발(배우)

작성자고수|작성시간26.06.19|조회수54 목록 댓글 0

홍콩의 배우이자 사진작가.



20세기 홍콩 영화 르네상스기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한 명이었으며, 《영웅본색》으로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에서 보여준 멋있는 모습은 물론 실생활에서도 드러나는 대인적인 면모로 인해 지금까지도 팬들에겐 '영원한 따거'[9]로 불린다.

대표작으로 영화는 영웅본색(英雄本色), 용호풍운(龍虎風雲), 첩혈쌍웅(喋血雙雄), 와호장룡(臥虎藏龍) 등이 있고, 드라마는 상해탄(上海灘), 소걸아(蘇乞兒), 양가장(楊家將) 등이 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한국의 홍콩 영화붐을 일으킨 대표 아이콘격 배우로, 당시 홍콩 영화의 인기는 이전과도 다른 양상을 보였는데, 이전까지의 홍콩 영화는 사실 한국에서 홍콩 영화가 인기라기보단 이소룡성룡 등 일부 액션배우의 무술 영화가 산발적으로 인기가 있는 정도였는데, 주윤발 이후 홍콩 영화는 영웅본색의 영향으로 홍콩 느와르가 가장 인기를 끌긴 했지만, 그 외에도 멜로코믹무협 등 그야말로 홍콩 영화하면 장르 가리지 않고 팔리던 최전성기를 열었다. 그리고 주윤발은 그 최전성기에서도 장국영왕조현임청하[10]와 함께 가장 인기있던 배우였다.[11]

 

한자로는 周潤發(중국 간체자로는 周润发). 외래어 표기법에 의한 표준 중국어 발음 표기는 저우룬파(Zhōu Rùnfā). 사실 광동어 발음으론 짜우연팟(Zau Jeon Faat)에 가까우나 한국에서 표기할 때는 중화권 인명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준 중국어 발음으로만 표기하기 때문에 저우룬파가 공식 표기다.[12] 광동어가 많이 쓰이는 홍콩인의 경우는 영어식 이름으로 언론에 소개되거나 그 정도다.

당사자는 (실제 만나본 한국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런 표기법과는 관계없이 굳이 부른다면 한국식 '주윤발'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고 한다. 일단 홍콩 출신 인물들은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자신의 이름에 있어 표준 중국어보다는 모국어인 광동어 발음 표기를 선호하고,주윤발의 광동어 발음인 Chow Yun-Fat[15]의 경우 '저우룬파' 보다는 '주윤발'이 차라리 더 가깝기 때문이다.[16]

 

1955년 5월 18일 홍콩 라마 섬에서 출생했다. 라마 섬의 한 마을 중에서 주씨 집성촌이 있는데 그 곳이 고향이라고 한다. 조상의 고향은 중국 광둥성 카이핑(개평)이라고 한다.


1976년 오맹달과 함께 출연한 홍콩 RTHK의 드라마 "사자산하(獅子山下)" 中

주윤발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생계가 어려워지자 중학교를 중퇴했다. 그리고 상점 직원과 우편배달부, 구두닦이, 사무 보조, 호텔 웨이터, 카메라 세일즈맨 및 택시 운전사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그러던 중 친구의 권유로[17] 1972년 연극배우로 처음 데뷔하게 되었다고 한다.

1973년 TVB 연기 훈련반에 들어갔는데, 주윤발 본인은 연기를 시작한 해를 1973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연기를 배우면서 1년 후 졸업할 수 있으면 배우를 하고, 아니면 1년 연기 배운 셈 치고 좋은 인생 경험으로 여기자고 생각하며 생활했다고 한다. 이후 TVB 연기 훈련반을 졸업하고[18], 1974년부터 TVB의 민간전기 시리즈[19]에 단역으로 출연하다, 1976년 광조라는 드라마에서 첫 주인공을 맡게 된다.

최초의 영화 데뷔작은 1976년작 영화 투태인. 그러다 1980년작인 드라마 상해탄[20]이 홍콩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스타가 되었고, 이후 1984년에는 등대여명으로 대만 금마장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소오강호 드라마에서 영호충역을 한 것도 이때이다.

그의 드라마 초기 출연작에서 주 상대 여배우는 적파랍(사정봉의 엄마), 무건인(1976년 미스홍콩 출신), 정유령(가예전시 1기생), 진수주, 조아지(73년 미스홍콩 4위), 장문청(TVB 1기생, 상해탄에서 조아지의 친구, 천왕군영회에서 주윤발의 아내 역) 등이 있다.

 최전성기 (1980년대 중반 ~ 1990년대 초)

그는 따뜻한 마음씨와 현대적인 기사도의[21] 풍모를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주윤발과의 첫 만남에 대한 오우삼의 회고

주로 드라마판에서 주연 배우로 활동하던 주윤발이 영화판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한건 오우삼 감독과의 만남이 주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영웅본색 촬영을 위해 마크 역의 배우를 물색하던 오우삼 감독은 어느 날 지역신문을 보다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주윤발의 기사를 읽게 되었고 그를 만나보기로 한다. 그리고 오우삼은 주윤발과의 첫 대면에서 '따뜻한 마음씨와 현대에 잃어버린 의협과 기사도의 풍모가 느껴지는 사람이다.'라고 느껴 캐스팅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1986년 개봉한 영웅본색은 주윤발을 내수용 스타에서 단숨에 아시아의 스타로 발돋움시켰다.[22]

이 영화에서 주윤발은 의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연연하지 않는 비장한 카리스마를 보여줘 홍콩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권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홍콩 느와르 풍의 도시적 유혈액션이 강조되는 이 영화에서 그는 이후 '마지막 보이스카웃', '매트릭스', '페이스 오프' 등 많은 헐리웃 영화에서 패러디하게 되는 멋진 쌍권총 액션을 보여주었고, 한국에서 썬글라스와 바바리 코트의 느와르식 패션과 담배 대신 성냥개비를 씹는 특유의 모습을 크게 유행시켰다. 여담으로 주윤발은 사실 총기를 싫어한다고 밝힌 바 있는 평화주의자다.

이후 영웅본색의 속편들을 비롯해서 많은 느와르 영화와 도신 시리즈 등 도박물, 멜로, 휴먼 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등 여러 장르의 영화에 다작으로 출연하였는데, 느와르식의 고독한 킬러 Badass 분위기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풍부한 표정과 유머러스한 입담을 가지고 있는 연기파 배우로 '대장부일기', '장단각지연', '공자다정' 같은 영화에서는 코미디 역할도 굉장히 잘 소화해낸다. 또한 악역에도 도전했는데, 1985년작 드라마 '충열전기 양가장'[23]에서 자존심 때문에 송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는 신선 여동빈 역을, 1987년작 영화 소생몽경혼(국내 개봉명은 몽경영웅)에서는 처절할 정도로 찌질한 부패경찰 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최전성기인 1980년대 말 주윤발은 매년 1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그야말로 몸이 남아날까 싶을 정도의 다작을 했는데[24], 이는 결과적으로 이미지 소비를 불러오기도 했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홍콩 반환을 앞두고 일종의 허무주의를 반영한 도박물이 대거 나왔는데, 주윤발도 도신 등 여러 편에 출연하며 여전히 기세를 이어갔다. 이런 다작은 주윤발의 인기와 더불어 의리있는 그의 성격상 무명 시절 도움 받은 감독과 제작자들의 출연 제의를 잘 거절하지 못했기 때문도 있었고, 한편으론 당시 홍콩 영화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삼합회 등의 조폭 계열 일부 회사들이 배우의 이미지 소비를 딱히 고려하지 않고 돈만 벌면 장땡식으로 아류작을 남발한 사정도 있었다.[25] 그리고 이는 결국 1997년 홍콩 반환으로 인한 인재 유출 등과 겹쳐 홍콩 영화계 전체의 쇠락으로 귀결되는 한 원인이 된다.

 

 할리우드 진출 (1990년대 말 ~ 2000년대 초)

미국으로 먼저 진출한 절친 오우삼 감독[26]의 요청으로 1998년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란 액션 느와르 영화에 출연해 헐리우드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데, 아무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지라 과묵한 킬러 모습으로 등장해서 연기폭이 줄어든 평면적인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그 후 1999년 애나 앤드 킹커럽터에 출연했지만 큰 히트는 못쳤다.

주윤발이 서구권에서도 인지도를 높인 건 2000년 개봉한 영화 와호장룡이 북미권에서 대히트하면서부터였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제작했지만 표준 중국어 영화라[27] 그래도 주윤발 입장에선 영어보단 대사 처리가 쉬웠고, 평소 무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본인의 연기력으로 커버해[28] 은둔 강호고수 이모백(리무바이) 역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할리우드는 이런 무림고수 이미지를 써먹으려고 했든지, 이후 방탄승에 캐스팅했으나, 역시 영어 연기의 한계를 드러내며 망작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부턴 캐리비안의 해적드래곤볼 에볼루션 등의 영화에서 조연을 주로 맡으며 헐리웃 영화 속에서 역할 비중이 확 줄게 되었다. 사실 주윤발의 이런 굴곡은 1997년 중국 귀속을 앞두고 홍콩을 떠나 할리우드 진출을 모색했던 대부분의 홍콩영화인들이 겪은 일이다. 홍콩에서는 이미 실력을 인정받고 유명한 영화인들인데, 할리우드에서는 이방인이라 기반이 없던 데다 영어라는 언어적 한계까지 겹쳐 알게 모르게 차별대우를 받거나 틀에 박힌 역할만 맡게 됐던 것. 그래서 1997년을 전후하여 해외로 이주했거나 진출했던 많은 감독, 배우들이 2000년대 중반 들어선 다시 홍콩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중국 활동기 (2000년대 중반 ~)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할리우드 작품에도 출연했지만, 주 활동 무대는 중국이 된다. 2006년 영화 황후화에서 냉정한 황제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으며 2010년 영화 공자의 공자 역을 맡았고, 2012년 10월 조조 - 황제의 반란[29]에서 조조 역을 맡아 열연했다. 주윤발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지만, 영화 자체는 평이 썩 좋진 않았다.

오우삼의 중국 복귀 영화 적벽대전에 (본인의 조상인) 주유 역을 제안받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론 하차했다. 적벽대전에서 하차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데, 개런티나 대본 문제, 긴 촬영기간 등 설만 난무했다. 실제로 적벽대전은 촬영 직전까지도 대본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며, 예상 촬영기간도 무려 6개월이어서 대본과 긴 촬영기간 때문에 하차한 것이 결정적이라고 한다. 주유 역을 맡은 양조위도 대본과 촬영기간을 이유로 하차를 선언한 적이 있었고, 이후 다시 복귀했지만 양조위는 결국 2008년 적벽대전 한 작품에만 매달려야 했다.

2014년은 주윤발 본인에게 여러 일이 있던 해였다. 중공 정부에 불만을 표출하는 홍콩 우산 시위가 있었고, "홍콩 학생들의 용기에 감동했다"며 시위를 지지하는 포지션을 취했다. 그 후 주윤발에게 중국 당국이 1년간 대륙 방송 출연 금지를 시키자, 주윤발 본인은 "괜찮다. 돈을 좀 덜 벌면 된다."면서 개의치 않는다는 답변을 내놓아 민주 진영의 찬사를 받았다. 사실 주윤발은 과거 1989년 5월 30일에도 중국에서 천안문 시위가 일어났을 당시 이들을 지지하는 의미로 홍콩에서 콘서트를 열면서 반독재 성향을 드러낸 바 있다.

다만 한 가지 고려할 점은, 지금도 주윤발은 중국 본토에서 활동하고 있긴 하다.[31] 사실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겠다 싶으면 표현의 자유를 어느 정도는 허용하는 편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통제하기 어려운 페이스북, 유튜브 등 서구권 SNS는 죄다 금지시켜놨지만, 대만 영화는 조건에만 맞으면 중국 개봉도 한다. 결론적으로 주윤발은 2014년 민주화 시위를 지지했고 중국 당국과 사이가 나쁜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아주 사이가 틀어진 건 아니다. 애당초 중국의 눈밖에 난 연예인은 황추생처럼 중국 활동이 전면금지되지만, 주윤발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며 홍콩 반환 후 현재까지 중국 본토에서 어느 정도 활동하고는 있다.

이는 황추생 등에 비해 주윤발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 중공도 전면금지를 시키긴 좀 꺼려지는 측면도 있는 듯하고(탕웨이도 색계 논란으로 2000년대 중국 활동이 한동안 금지되었다가 한국 등 해외에서 인기를 끌자 2010년대 슬며시 활동이 재개된 바 있었다), 반대로 주윤발도 2020년대 들어선 정치적 발언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다만 후술되어 있듯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창작의 자유 발언 등을 하긴 했다.

2016년 홍콩 영화인 콜드 워 2에 출연했다.

2018년 홍콩에서 제작한 무쌍에 곽부성과 함께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했다.

2018년 SBS 예능프로 런닝맨에서 홍콩에 가 주윤발을 만나는 미션을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 사전 조사도 안 하고 다짜고짜 간 거라 결국 집도 못 찾고 만남에 실패하고 만다. 이후 주윤발이 이 소식을 들은 건지 어쨌는지 MBC 실화탐사대의 취재에 응해 오래간만에 국내 방송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9년 당국이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한 이른바 복면금지법을 발표하자 얼마 안 가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거리로 나와 조깅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는데, 대놓고 정치적 퍼포먼스를 한 건 아니지만 그간의 행적을 보면 묘한 지점이 있어 네티즌들 사이에선 나름 화제가 되었다.

2023년 6월 29일 오랜만에 영화계에 복귀한 원영의와 함께 출연한 "별규아도신"(别叫我赌神; 도신이라 부르지 마)이 개봉했다. 오랜만에 도박 관련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 영화는 1990년대의 도신 시리즈와는 직접적 연관은 없고 도박물보단 가족 드라마물이다.[32]

2023년 홍콩 언론 등에서 7월 6일 자로 뇌졸중으로 인한 혼수 상태에 빠졌다는 내용을 보도했으나, 이는 가짜 뉴스로 밝혀졌다. 7월 초에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고 한창 홍콩과 대륙의 영화관을 돌면서 벌이던 "별규아도신" 프로모션 활동을 며칠 중단했는데, 이것이 와전된 듯싶다. 7월 9일 영화 홍보차 무대인사에 오른 근황이 포착되었다.

2023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을 겸해서 오래간만에 내한한다.#

2023년 10월 4일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고 아시아영화인상도 수상했다. 소감으로 주윤발은 "올해로 배우 생활을 한 지 딱 50년이 됐다. 확실히 긴 세월이지만, 어떻게 보면 금세 지나간 것도 같다"면서 "배우가 될 수 있게 해준 홍콩TV를 비롯해 홍콩 영화계와 연기할 수 있도록 응원해 준 아내, 의미 깊은 상을 주신 부산국제영화제, 오랜 시간 사랑과 응원을 주신 한국 팬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더불어 "여러분의 건승을 빕니다. 건강하세요"라며 한국어로 "기뻐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밀키스!"를 외쳐 환호를 받았다.#

10월 5일 기자회견에서 자긴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일 뿐이라며 소탈한 면모를 보였다. 또 상기한 건강 이상설 관련해 마라톤 대회도 준비할 정도로 여전히 건강하다며, 마라톤하다 실제로 죽으면 가짜뉴스는 아닐 것이라며 본인에 대한 가짜뉴스 사건을 우회적으로 풍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내한 동안 주윤발은 해운대 해변에서 오전마다 조깅을 했다. 그 외 한국 영화의 강점으로 창작의 자유를 꼽으며, 가끔은 이런 이야기까지 다룰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한 기자가 '따거'라고 한번 불러보고 싶었다며 따거라고 부르자, '니하오 니하오'라고 유머스럽게 응해주기도 했다.

오픈토크와 핸드프린팅 행사도 가졌는데, 본인 왈 홍콩스타거리에도 본인이 핸드프린팅한 건 없다며 본인의 첫 핸드프린팅이라고 밝혔다. 실제 홍콩 구룡(까우룽) 스타의 거리(Avenue of Stars)에 가보면 주윤발 이름이 새겨진 타일은 있지만 손바닥을 찍는 곳은 다른 스타들과 달리 비어있는 상황이다. 아마도 해당 거리가 조성되던 시기 주윤발은 헐리웃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라 참여하지 못했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길바닥에 직접 찍으러 가기도 뭐해서인지 그냥 놔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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