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미국 영화계에서 대중을 가장 실망시키지 않은 영웅이다.
미국의 배우 및 감독.
배우로서 서부극, 특히 스파게티 웨스턴의 가장 대표적인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으며, 1960년대에는 서부극으로, 197~80년대에는 〈더티 해리〉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1990년대부터는 드라마성 강한 영화들의 주인공을 맡았다. 영화 감독으로도 1971년 〈어둠속에 벨이 울릴때〉로 활동을 시작하여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거장이다. 30대 중반에 처음 인기를 얻었으며, 2000년대 이후로도 꾸준한 활동으로 손꼽히는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다.
인기 덕에 정치쪽에도 잠깐 발을 디뎌 캘리포니아 주 카멜 시[5]의 시장을 무소속으로 출마, 1986년 4월 8일에 당선, 2년 동안 재임했었다.
이외에도 다재다능해서 〈체인질링〉에서는 직접 영화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미스틱 리버〉 등의 음악도 역시 직접 작곡했다.
영화 배우, 감독으로서 모두 최고 수준으로 성공한 매우 드문 인물이며, 영화 역사상 가장 롱런한 영화인이다. 특히 말년운을 논할 때 손꼽히는 사례로, 다들 은퇴할 나이에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화에 성공했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는 걸작을 쏟아내며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올라섰다.
영화 활동
캘리포니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공부보다는 운동이나 외부 활동에 더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고 한다.
한때 음악에 큰 열정을 보이며 고교 졸업 후 재즈를 공부하길 희망했지만, 가정 형편을 비롯한 여러 사정으로 인해 다른 진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20대 초반 미 육군에 징집되어 군인으로 지냈는데, 당시 한창이던 6.25 전쟁에는 투입되지 않았고 그 대신 고향인 샌프란시스코 시 부근의 군 부대에서 2년 가까이 복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군 항공기 승객으로 부대를 복귀하던 중에 추락 사고가 발생하여 불의의 부상을 입었다. 그 후 청문회를 기다리던 중에 누군가가 배우처럼 생겼으니 배우를 하면 어떻냐고 해서 제대하고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6] 이 같은 군 생활 경험과 어린 시절의 재즈를 향한 관심은, 향후 그가 연출하는 작품들의 단초가 되었다.
1955년에 영화계에서 단역으로 데뷔했다. 1955년작인 〈해저괴물의 복수〉에서 단역으로 나온 게 첫 데뷔이지만 해당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같은 해에 나온 저예산 괴수물 괴작 타란툴라에서 이름도 없는 공군 조종사로 단역으로 나와 세월이 지나 이 영화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59년에 주연을 맡은 서부극 미국 드라마 로하이드가 큰 인기를 얻고 장기시리즈가 되면서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TV스타는 무비스타에 비해 위상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었기에 그가 엄청난 스타였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세르조 레오네 감독과 함께 한 무법자 3부작 황야의 무법자(1964), 석양의 건맨(1965), 석양의 무법자(1966)가 성공하면서 영화배우로 자리잡게 된다. 무법자 시리즈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 그는 처음에 시큰둥 해서 그냥 여행하는 셈 치고[7] 출연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리즈의 대성공으로 인해 할리우드에서의 인지도가 올라가서 그의 앞길이 열리게 된다. 이 무법자 3부작은 미국에서는 1967년에 뒤늦게 개봉되는데 즉 37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미국에서 인지도 있는 영화배우가 된 것이다.
1960~70년대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에 다수 출연하여,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실력 좋고 고독한 무법자 캐릭터가 마치 페르소나처럼 여러 영화에서 그의 연기와 함께 차용되었으며, 자신이 감독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는 그 무법자 캐릭터를 자신만의 재해석으로 집대성을 이룬다고 평가된다.
| 1966년 영화 〈석양의 무법자〉에서 |
영화감독 데뷔는 1971년작인 공포스릴러 영화 <어둠속에 벨이 울릴때>. 스토커 사생팬에게 시달리는 DJ를 맡아 명연기와 같이 평과 흥행에서도 성공하며 성공적인 영화 데뷔를 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영화를 꾸준히 연출했으며 1988년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의 전기영화인 버드로 당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적으로도 명감독이라는 호평을 받아 흥행성과 작품성으로 안정적인 감독으로도 인정받는다.
또한 1976년에 연출한 <무법자 조시 웨일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저평가받은 웨스턴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감독을 할 때 가장 중시하는 건 각본이며 각본에 굉장히 심혈을 기울인다고 한다. 의외로 연출은 촬영 현장의 상황을 보고 즉흥적으로 바꾸거나 배우에게 임의로 맡길 때도 많다고 한다.
이스트우드의 영화 연출방식은 그의 스승이었던 세르조 레오네 감독한테 많은 영감을 받았다.
1993년에는 볼프강 페터젠 감독의 영화 사선에서에 출연하였다. 이 영화는 존 힝클리 주니어가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조디 포스터에게 관심받기 위해 대통령을 저격하려 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2003년에는 영화 미스틱 리버에 연출을 맡았으며 숀 펜이 출연하였다. 이스트우드가 감독으로서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 영화이기도 하며, 받을 듯 말듯하던 숀 펜이 드디어 이 영화로 7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미스틱 리버는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에도 노미네이트 되었다.
이후 1년 만에 다시 연출을 맡게 되는데, 이게 바로 이스트우드 감독의 필생의 역작이라 평가되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다. 모건 프리먼과 힐러리 스왱크도 출연하였다.
전체적으로 영화 자체도 좋았지만 특히나 영화의 후반부부터는 많은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시상식의 주인공이 됐다. 만약 이스트우드가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했다면 그랜드슬램을 이룰 수도 있었다.
2006년에는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라는 두 편의 자매작 영화를 연출하였다. 이오지마 전투를 배경으로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잘 만들어진 영화로 호평을 받았다. 일부 한국 누리꾼들로부터는 "세계 전쟁의 주범이었던 일본을 미화 시킨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기도 하였지만, 영화는 일본군의 잔혹성과 광기 또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미화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는 충분히 있는 부분이다.
2008년에는 두 편의 영화를 연출하였다. 첫 번째는 체인질링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하였으며 특히 졸리는 이 영화를 통해 연기력을 더욱더 인정받게 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공권력의 양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영화로 안젤리나 졸리는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두 번째 영화는 그랜 토리노다. 이 영화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함께 이스트우드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2009년 북미에서 엄청난 흥행 돌풍을 일으켰으며 영화 평점도 높은 편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월트의 어떤 선택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하였다.
2011년에는 J. 에드가란 영화를 연출하였다. 존 에드거 후버의 삶에 대한 전기영화이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후버 역을 맡았다. 2014년에는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연출하였다. 미국의 전설적인 스나이퍼였던 크리스 카일의 이야기를 다뤘다. 국내에서는 33만 명의 저조한 관객수를 기록하였지만 북미에서는 약 3800억 원대에 수입을 올리며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제치고 미국 역대 전쟁영화 최고수입 1위의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한편 이 영화에는 브래들리 쿠퍼와 시에나 밀러가 출연하였으며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음향편집상을 수상하였다.
2016년엔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US 에어웨이즈 1549편 불시착 사고를 바탕으로 한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을 연출하였다. 탑승객 155명의 비행기를 기적적으로 안전하게 불시착 시킨 영웅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을 미국의 국민배우 톰 행크스가 연기한 이 영화는 평단과 관객의 고른 지지를 받고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음향편집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많은 배우들이 종종 감독에도 도전하면서 영화 분야에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 보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배우와 감독으로 이렇게 성공한 사람은 정말 드물다. 최근 20여 년 동안 정말 많은 영화활동을 이어갔으며, 짧은 호흡속에 다양하고 의미있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감독으로서 이룬 성취를 종합하면 거장의 반열에 올랐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2017년 말에 촬영을 끝내고 2018년 초에 개봉한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라는 영화를 연출해, 실제 인물들을 영화에 캐스팅시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스트우드가 만든 영화 중 가장 혹평을 받았다.
2018년 12월 개봉작으로 라스트 미션[8]이라는 영화를 연출하는데, 배우로서도 복귀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영화도 실존인물을 다루는데, 80대 후반 나이로 마약을 운반하던 실존인물 레오 샤프(1924-2016)가 주인공이다. 이 샤프 역을 이스트우드 옹이 연기한다. 샤프가 결국 경찰관에게 검거된 게 2011년 87세 때로서 88세인 이스트우드 옹과 비슷한 나이로 연기한 셈이다. 하지만, 예고에서도 이제 90세가 다 되어가서 기력이 딸리는 모습을 보이기에 이제 나도 힘들고 지쳤다며 이게 마지막 영화라고 밝힐 만했다는 평이 많다. 물론 10년 전 그랜 토리노 때도 은퇴를 선언했지만 다시 배우로 활동하였는데 이제는 아흔이 넘으니 더 연기해도 몇 년 동안 더 얼마나 나올지는 미지수다.
2019년 전기 영화 리차드 쥬얼을 공개했다. 동명의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평단에서 준수한 평가를 받았으나 흥행에서는 실패를 거뒀다. 출연 배우들의 열연이 극찬을 받았는데, 신인 배우 폴 월터 하우저를 주연으로 발탁해 큰 호평을 받았고, 조연으로 출연한 캐시 베이츠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2021년 크라이 마초에서 연출뿐만 아니라 다시 한 번 주연까지 맡으면서 배우로서의 활동도 다시 한번 연장되었다. 안타깝게도 해당 작품은 HBO 맥스 독점으로 공개했으나,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9] 해당 작품이 흥행에 실패했다며 최근 새로 부임한 데이비드 자슬라브 워너 브라더스 사장이 왜 뭐하러 이걸 만들었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 발언은 50년이나 워너 브라더스와 단골로, 많은 영화를 감독하고 주연으로 활동해온 이스트우드가 들으면 무척 실망할 반응이다. 자슬라브가 임원들도 질책하자, 임원진의 대답은 지난 수십 년간 자사에 공헌해온 이스트우드 옹에게 대한 의리로 만든 영화였다고 한다.
2023년 3월 31일, 이스트우드가 감독으로서 은퇴작 배심원 #2를 만든다는 소식이 나왔다. 워너 브라더스에서 배급할 예정인데, 워너 임원진들이 자슬라브와 이야기가 잘 풀리게 돼서 이스트우드가 이번에도 워너와 작품을 만들게 된 듯하다는 내부 소식이 있다. 한 살인 재판에 참여하게 된 배심원이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피해자의 죽음을 초래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수를 할지 아니면 배심원단을 조종할지 갈등한다는 이야기를 담는다. # 2024년 11월 1일에 개봉했고 호평을 받았지만, 미국 내에서 50개 미만의 극장에서 제한적으로 개봉해 흥행은 실패했다.
이후 2026년 6월, 은퇴소식이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