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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이야기

오드리햅번(배우)

작성자고수|작성시간26.06.20|조회수66 목록 댓글 0

캐서린 헵번과 베티 데이비스에 이어 미국영화연구소(AFI) 선정 가장 위대한 여성 배우 3위에 선정된 인물이며, 에미상 ∙ 그래미 어워드

 ∙ 

아카데미상 ∙ 토니상을 모두 수상한 미국 대중문화계의 그랜드슬램(EGOT) 수상자이다. 사실상 할리우드를 넘어서 클래식 시대의 막바지인 1950~60년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오드리 헵번은 1950년대~1960년대 초를 상징하는 여배우로, 영화계를 넘어 대중문화계가 현대화되던 시기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다. 대중음악계와 비교를 해보자면 1950년대 초 프랭크 시나트라나 냇 킹 콜 등의 고전 스탠다드 팝 가수가 유행하던 시절 영화계에 등장하였으며, 1964년 비틀즈가 처음 등장하여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일으킬 때 오드리 헵번의 전성기가 끝났다. 비틀즈가 사이키델릭 록, 블루스 록 등으로 장르를 바꾸며 1960년대 말 하드 록 밴드들이 나와 본격적으로 현대적인 대중음악 체계가 형성되던 시기 오드리 헵번은 배우로서 사실상 은퇴했다. 또한, 이 시기에 영화계도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라는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며 영화 촬영 기법이 현대적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 결과 오드리 헵번은 클래식 시대의 마지막 아이콘으로 남게 되었다. 폴 뉴먼그레고리 펙비틀즈와 함께 1960년대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인물로도 여겨진다. 현재까지도 '만인의 연인'으로 칭송받고 있다.

또한 오드리 헵번은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인도주의적인 가치를 설파한 스타하면 떠오르는 연예인이다. 영화계에서 은퇴한 후 유니세프를 통해 개발도상국으로 건너가 자선활동과 기부를 꾸준히 하며 난민 구호활동에 노력을 기울이는 제2의 삶을 살아 칭송을 받았고 이를 근거로 1992년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의 수훈자가 되었다.

'The Spirit of Audrey'

(뉴욕 유니세프 본사 앞에는 오드리 헵번의 업적과 봉사, 희생 정신을 기린 'The Spirit of Audrey'라는 이름의 동상이 서 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미인 중 한 명이며, 현재까지도 세기의 미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를 꼽으라면 1위를 다툴 정도로 눈부신 외모를 가졌다. 작은 얼굴, 큰 눈, 선명한 이목구비,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 장신, 몸매 등 하나만 있어도 아름답다라는 포인트를 다 가지고 태어났다.

지금까지도 동서양 막론하고 the beauty라는 별명이 있고 특히 당시 여성들의 우상 중 한 명이었다. 섹시하거나 글래머인 미녀들이 많이 보이던 시대에 오드리 헵번의 지적이며 고상한 외모는 센세이션했다. 위베르 드 지방시는 오드리 헵번을 옷을 걸치기에 너무나 완벽한 옷걸이라는 농담도 했고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새벽 촬영 후 리틀 블랙 드레스를 입고 흡연하기 위해 바깥으로 잠시 나갔을 때 사람들이 하나같이 "여신"이라고 말했으며, <로마의 휴일> 촬영 시 감독 윌리엄 와일러는 오드리를 촬영하는 동안 "저를 포함해 촬영 스태프, 조명 스태프 등 수많은 사람들이 넋을 놓고 오드리를 바라보았다. (오드리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이제 전세계가 오드리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라고 말한 일화도 있다.

오드리 헵번이 선보인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 옷차림은 현대에도 꾸준히 유행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트레이드마크였던 짙은 눈썹과 큰 눈을 강조한 메이크업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고, 데뷔작 <로마의 휴일>에서 선보인 단발 헤어컷 역시 "헵번 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43] 헵번 스타일은 단순히 의상, 화장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서의 행동도 포함한다. 대표적으로 <로마의 휴일>에 나온 커피잔을 들 때 잔 받침을 같이 든다든가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나온 창가에 앉아 Moon River를 부르는 모습 등이 있는데 어쩌면 말로 표현하기는 극히 어려우면서도 별다를 게 없는 행동이지만, 직접 보면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사브리나에서 지방시의 옷들을 입어서 지방시를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로 격상시켰으며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선보인 헤어스타일과 검은색 드레스, 특히 사브리나 팬츠를 아직까지도 유행시키고 있으며 스카프코디, A라인 스커트, 버버리 코트를 여성복에도 정착시켰고 팔까지 올라오는 긴 장갑도 '헵번 드레스'라고 불리며 유명해졌을만큼 영화배우로 활동한 시기의 오드리 헵번은 한마디로 유행의 선두주자였다. 그래서 당대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특히 사랑받은 배우이기도 했다. 사실 1950년대 이후 오드리 헵번이 대중문화에 워낙 영향을 끼친 부분이 많다 보니, 우리 일상 생활에도 알게 모르게 정말 영향을 많이 끼친 영화배우다. 반항적이고 파격적인 이미지로 티셔츠와 가죽재킷을 유행시킨 말론 브란도와 동시기에 우아하고 지적인 여성성을 강조한 여성의류를 유행시키면서 현대 남녀의 옷 스타일을 재정의한 인물로 높이 평가받는다.

한국에서도 카페나 미용실에만 가도 사진이 걸려있는 곳이 매우 많다. 국내 방송을 보면 종종 오드리 헵번의 사진이 실내 장식으로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초상 사진은 2008년에 휴대폰 싸이언 시크릿 광고에 쓰였을 정도다.

 

 수상 경력

 영화 출연작

 여담

  • 브뤼셀에서 태어나고 부유한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 유럽 각지에서 살아본데다,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다중언어 화자였다. 아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영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네덜란드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했다.

  • 오드리 헵번은 율 브리너와 절친이었고 율 브리너의 두 번째 부인인 도리스 클레이너와도 죽을 때까지 돈독한 사이였다. 또한, 라 파지블에서 멀지 않은 옆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 로마의 휴일에서 보여준 담배를 처음 피워본 공주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하루에 담배 3갑을 피는 엄청난 골초로 유명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보여 준 긴 담배 파이프가 유명하며, 아직까지도 헵번 파이프라고 하면 통한다. 본격적인 파이프 흡연이 아닌 궐련을 끼워 피우는 형태. 흡연도 결장암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신기한 점은 독한 옛날 담배를 피웠음에도 피부가 깨끗했다.

  • 담배 피우는 오드리 헵번의 모습이 2001년 우표에 담겨 발행된 적이 있는데, 오드리의 아들이 어머니가 담배를 피는 모습이 이미지가 좋지 않다고 하여 발행 중단을 요청, 중단되었고 판매된 것들은 전량회수되어 소각처리했다. 당연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가장 최근 낙찰가가 한화로 6억 7,000만 원 정도였다. 1,400만 장을 발행했으며 당시 폐기를 담당한 직원이 30장가량 빼돌렸다는 소문이 있는데 몇 장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며 잊을 만하면 경매에 나와주셔서 그때마다 최고가를 경신한다.

  • 세기의 미녀로 평가받는 그녀지만 정작 헵번 본인은 외모 콤플렉스가 상당했다고 한다. 지인들에게 털어놓기를 "나는 피부가 좋지 않아 화장하지 않으면 볼품이 없고, 콧등도 매끄럽지 않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1990년대에 EBS에서 방송된 세계의 명배우 다큐멘터리에서 생전 오드리 헵번과 절친했던 친구가 밝힌 것으로, 다큐멘터리의 원래 명칭은 '세기의 여성들 - 오드리 헵번 편.'

  • 오드리 헵번은 자신의 건강과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식단 관리와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달콤한 디저트류를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초콜릿을 너무 좋아해서 다른 디저트류는 절제하더라도 초콜릿은 평소에 적당히 먹어주는 것으로 자기 자신과 타협했다고 한다. 이 초콜릿 사랑에는 그의 자식들이 이야기한 비화가 있다. 헵번은 어린 시절 친가가 있던 영국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확전 조짐을 보이자 네덜란드의 외가로 피신했는데, 이후 네덜란드가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해 가혹한 지배와 탄압 하에 놓이면서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하여 몸무게가 39㎏까지 빠지고 거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거의 죽기 적전에 네덜란드 병사가 준 초콜릿을 먹고 간신히 아사를 모면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의 영양실조 후유증으로 생긴 그윽한 다크서클과 마른 몸매가 그의 미모를 가장 강력하게 어필하는 상징이 되었다.

  • 워낙 호리호리한 몸매 때문에 아담할 것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지만, 키가 170cm로 현대 기준으로 봐도 장신이다.

  • 오드리 헵번은 매 역할마다 진지한 자세로 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사브리나>를 찍을 때는 실제로 전문 요리사에게 요리를 배웠고 <하오의 연정>을 찍을 때는 첼로 연주를 배워서 직접 첼로를 연주했다. <파계>를 찍을 때는 실제로 수녀 수업을 받으면서 영화를 촬영하다가 병원에 실려갔다고 한다.

  • 시안색(cyan)을 좋아했다고 한다.

  • 생전 인상깊은 영화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을 꼽았는데 킴 노박의 이중인격 연기가 특히 뛰어났다며 극찬했다. 현기증은 1958년 개봉 당시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폭망한 흥행 성적을 냈으나 지금은 재평가되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으므로 오드리 헵번이 영화를 보는 안목이 확실히 있었다. 오드리는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히치콕 역시 마음에 들어해서 오드리를 위해 <판사를 위한 보석금은 없다>라는 영화를 준비한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 여주인공이 강간당하는 장면이 들어가있는 영화 대본을 보고 유산의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던 오드리는 출연할 수 없다며 항의했고 히치콕은 그 장면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고집했다. 결국 오드리는 출연을 고사했고 영화 제작이 중단되면서 히치콕은 20만 달러의 손실을 겪자 이후 주위 사람들에게 오드리를 비난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히치콕은 손실을 매꾸기 위해 TV 기술자들과 협업하며 저예산 영화를 만들게 되는데 바로 <사이코>였다. 오드리 역시 히치콕이 감독한 스릴러에 출연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1963년 히치콕의 스타일을 모방한 스릴러 영화 <샤레이드>에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 자주 출연한 배우 케리 그랜트와 함께 출연했다.

  • 영화 '아멜리에'로 유명한 프랑스 배우 오드리 토투도 부모님이 이 배우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 한국 영화 수상한 그녀에 주인공 젊어진 오말순(심은경이 연기)이 이름을 오드리 헵번을 따서 '오두리' 라고 하며 스타일도 노골적으로 오마주한다. 인상깊은 대사로는 "오드리 헵번이 죽어버렸어?"

  • 한국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조말복은 오드리 햅번을 본따 활동명을 오들희로 정했다.

  • 2013년 영국의 초콜릿 회사 갤럭시 초콜릿의 광고에 CG로 구현되어 등장했다. 실제로 다른 디저트는 안 먹어도 초콜릿만큼은 광적으로 좋아한 초콜릿 광이었으니 적절한 광고.

  • 2013년 3월 7일에 방영된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는 헵번의 열렬한 팬이 등장했다. 심지어 이 인물은 스스로 헵번의 피규어까지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팬의 블로그 또한 이 팬은 2015년 추석 연휴 마지막 날, MBC에서 방송된 능력자들이라는 특집프로그램에도 한국인 중 오드리 헵번 덕후로 출연하였다. 그리고 해당 프로그램에서 둘째 아들과의 SNS 인맥을 과시함과 동시에 오드리 헵번의 첫째 아들이 직접 출연하였다. 현재는 오드리 헵번 컨셉의 브런치 카페를 운영 중이다.

  • 2014년 5월 4일 구글에서 오드리 헵번의 탄생 85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일 로고를 제작했다. # 여담으로 원본 이미지는 인물 사진의 거장인 유서프 카시가 찍은 사진이다.

  • 2014년 11월 29일부터 2015년 3월 8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오드리 헵번의 생애 전체를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렸다. 헵번의 둘째 아들로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 회장을 맡고 있는 루카 도티가 주관하여 헵번이 출연한 영화의 소품과 의상, 집에서 쓰던 물품 등을 전시했다고 한다.

  • 2017년 9월 27일 오드리 헵번의 생전 애장품들이 경매에 나왔다. 그 중 '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대본이 있었는데 할리우드 대본 역사상 가장 높은 가격인 632,750파운드(9억 8,000만 원)에 낙찰되어 신기록을 세웠다. 이날 경매에서 팔린 헵번의 소장품들 총 판매액은 약 71억원이었다고 한다.

  • 2020년 오드리 헵번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다. 

  • 앙드레 김은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어떻게 영화 내내 옷차림이 수차례 바뀌냐 서양사람들은 옷이 많아 저렇게 그때그때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구나'하고 충격을 받았고, 이는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삶으로 가게 된 하나의 계기라고 한다.

  • 안네 프랑크와도 여러 측면에서 엮이는 인물이다. 둘 다 1929년생 동갑내기였고, 오드리 헵번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 발레 수업을 받기 위해 암스테르담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실제로 암스테르담 내 오드리 헵번의 거주지와 안네의 거주지가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종전 이후 안네의 일기가 출판되자 여러모로 자신과 안네가 공통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내용을 거의 외우다 싶을 정도로 읽었고, 1950년대에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안네의 아버지 오토와 직접 만나기도 했다. 또한 안네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자기는 유대인이 아니라 결국 살아남았다는 의식에 죄책감을 갖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전쟁 중에는 아른험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이때도 주변에서 유대인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훗날 안네의 일기가 영화화되었을 때 영화 제작진 측에서는 헵번을 캐스팅하려고 했지만,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죄책감 때문에 캐스팅을 사양했다. 그녀가 인생 막바지에 난민 구호 활동에 적극 나섰던 것도 본인 역시 안네처럼 2차대전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그럼에도 안네와는 달리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갚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 신기동전기 건담 W의 리리나 도리안의 모델. 특히 퀸 리리나의 모습은 의상부터 악세사리까지 로마의 휴일의 앤 공주와 판박이. 후술할 라크스와 오드리도 헵번의 이미지를 따왔고, 리리나가 정립한 공주+평화주의자+리더형 히로인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헵번이 건담 시리즈에 끼친 영향이 꽤 크다고 볼 수 있다.

  • 기동전사 건담 SEED 시리즈의 라크스 클라인의 모델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리리나처럼 로마의 휴일의 앤 공주에서 따왔다.

  • 기동전사 건담 UC에서 미네바의 가명 ’오드리 번’이 이 배우로부터 따왔다. 이름이 뭐냐고 묻는 버나지에게 미네바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가 마침 극장에 걸린 영화포스터 '가출한 공주(Runaway Princess)‘[53]의 여주인공 이름을 발견하곤 즉석에서 '오드리 번'이라고 적당히 둘러댔다. 버나지는 이후 그녀의 정체(본명)를 알게 된 후에도 계속해서 미네바를 오드리로 부른다.

  •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 포켓몬스터 X·Y의 챔피언 카르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54]

  •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애완동물 대전이 등장하면서 추가된 애완동물 조련사 npc 중 '오드리 번헵'[55]이라는 인물이 있다. 스톰윈드에서 애완동물 대전 입문 퀘스트를 주고 있다.

  • 이나영이 1999년 방영된 MBC 베스트극장 '굿바이, 오드리 헵번'에서 오드리 헵번을 닮은 배우 지망생으로 출연한다. 그리고 라네즈 cf에서도 오드리 헵번으로 분장하고 나온다.

  • 미국 드라마 가십걸의 주인공 블레어 월더프가 헵번의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설정으로, 꿈 속에서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프닝과 마이 페어 레이디 의상등을 재연하기도 했다.

  • 한국에서의 전담 성우는 1980년대까지는 장유진, 1990년대부터는 정미숙. MBC 초창기에는 당시 인기 성우 정소희가 맡았지만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 러브 라이브! 니지가사키 학원 스쿨 아이돌 동호회의 오사카 시즈쿠의 두 번째 싱글곡 オードリー는 제목 그대로 오드리 헵번을 동경하는 시즈쿠의 마음을 노래한 곡이다.

  • 서울 역삼동에 오드리 헵번의 카페가 오픈했었다. 관련재단과 협의하에 만들어진 공식적인 카페다.실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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