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의 표준시민] 능력주의와 학벌주의
능력주의와 학벌주의
21 세기 초반 한국의 시민들에 의해 추동된 정치사회적 역동성은 비슷한 경제규모의 다른 사회와 비교해서도 매우 이례적이다. 한국 사회는, 또 한국의 시민은 왜 ‘지금 이런 모습’인가? 나의 주장을 최대한 단순화시키면 ‘한국 사회의 오늘’이 바로 ‘표준시민’이라는 주체의 탄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민적 역동성이 발현된 사회적 조건들을 톺아보는 것은 ‘표준시민’이라는 주체의 모습을 형상화시키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작업의 하나다. 이제부터 그 조건들을 살펴볼 것이다. 먼저 능력주의와 학벌주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먼저 이야기한다고 해서 가장 중요하거나 또는 덜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 한 논의의 순서는 중요도와 무관하다.
한국 사람들은, 특히 진보적인 사람들일수록 ‘학벌주의’를 “봉건적-전근대적인 어떤 것”으로 이해하려 한다. 확실히 학벌주의는 봉건 시대의 신분 제도를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 예컨대 ‘서울대/연․고대/수도권 상위대/수도권 하위대/지방 국립대/지잡대/고졸 이하’라는 오늘날 ‘일반적인’ 학벌 서열을 보자. ‘지잡대’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일반화된 속어로, ‘지방에 있는 잡스러운 대학’을 싸잡아 비하하는 말이다. 지나친 과장 아니냐, 너무 복잡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렇지 않다. 정말 ‘제대로’ 순위를 매기려면 카이스트(KAIST)와 포항공대 등 이공계 엘리트 양성기관과 의대, 한의대, 법대, 경영대 등 학과별로 세분화된 서열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쯤 되면 봉건 시대 신분 제도를 단지 떠올리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조선 시대의 ‘양반/중인/상민/천민’이라는 신분 질서를 능가하는 엄격하고 세밀한 신분 체계다. 이 신분체계가 실제로 기능하도록 만드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학벌에 대한 믿음이다. 입시 점수를 대체적 기준으로 삼는 대학 서열은, 인터넷 게시판에 종종 출몰하는 소위 ‘훌리건’들의 대학 랭킹에서부터 주요 일간신문의 대학 순위평가에 이르기까지, ‘학벌 피라미드’가 엄연히 실존하고 있음을 동어 반복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국인들의 학벌 서열화 욕망은 처절할 정도로 지독한 것이어서, 최근 10여년 사이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학벌 피라미드에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서열까지 덧붙여졌다.
처음 들어간 대학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해버린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도 무척 불합리하다.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서울대의 나라”, “망국적 학벌주의”, “학벌카스트” 등등의 수사를 동원해가며 학벌주의의 폐해를 지적해온 주된 이유다. 그래서 사람들은 학벌주의의 반대편에 ‘능력주의’를 놓곤 한다. 학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실력을 보여주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하건, 어쨌든 그런 생각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학벌주의는 전근대적인 게 아니라 ‘지극히 근대적인 것’이다. 이것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근대적 공교육의 맹아는 영국의 퍼블릭 스쿨이었다. 이름은 ‘퍼블릭(public, 공공의) 스쿨’이지만, 올바른 번역어는 ‘사립학교’다. 1442년 헨리 5세가 설립한 이튼 칼리지가 대표적인데, 헨리 5세는 “1년 수입이 5마르크 이상인 사람은 입학할 자격이 없다”고 선언했다. 빈곤층에 무상교육을 하기 위한 학교였던 셈이다. 하지만 금세 귀족형 사립학교로 변질되고 말았다. 학교 당국과 귀족들은 빈곤층 자녀들을 퇴학시키기 위해 점심시간에 출석을 불렀다. 기숙사에서 생활하지 않는 빈곤층 자녀들이 점심을 먹으러 집에 다녀오는 틈을 타 잽싸게 출석을 부르고, 결석 처리를 해버렸던 것이다. 학교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교장들과 귀족들의 선민주의가 결합한 결과, 최초의 공공교육기관은 출발부터 기형적인 형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교육기관의 높은 진입장벽을 없애야 한다는 지상명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력해지고 명백해졌다. 그 명제가 강화되는 과정은 서구의 근대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봉건제가 허물어지고 각국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발발한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선언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선언은 듣기엔 좋았지만, 사실 노동계급이 배제된 반쪽짜리 선언이었다. 그 선언은, 단지 귀족들과 교회의 기득권을 빼앗기 위한 부르주아 계급의 무기였을 뿐이다. 어쨌든 부르주아는 새롭게 부상한 개혁세력이자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총아였다. 낡은 제도는 모래처럼 허물어졌다. 부르주아의, 부르주아를 위한, 부르주아에 의한 제도들이 속속 탄생했다. 칼 마르크스가 지적한 것처럼,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역사는 눈부시게 진보했다. 교육 제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르주아들은 귀족의 허세, 성직자-지식인의 위선, 장인의 폐쇄성을 증오했다. 부르주아들은 모든 미신과 인습을 발가벗겨 백일하에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발가벗겨졌다. 자신이 노동계급을 착취한다는 사실만 빼고 말이다. 부르주아는 그것을 '합리성'이라 불렀다. 대개 그 합리성은 시장의 합리성을 이르는 말이다. 시장 합리성은 무엇인가. 부르주아가 생각하기에 ‘시장’이란, 100%의 확률로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름난 장인이 몇 년에 걸쳐 혼신을 다해 만들어낸 제품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면 그저 잉여의 생산물, 다시 말해 쓰레기에 불과하다. 반면 아무리 허술하고 천박한 제품도 시장에서 잘 팔리기만 하면 탁월하고 훌륭한 제품이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부르주아의 인권 선언은 사실 제대로 풀어쓰면 “시장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이다.
‘정확히 한국적인 의미에서의 학벌주의’는 근대 서구 사회에 존재하지는 않았고 지금도 그렇지 않다(국립대 통합 이전의 프랑스가 그나마 한국 상황에 가장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바탕에 깔린 논리와 감수성은 근대 이후 서구 사회의 물적 토대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차별의 논리’다. 하지만 봉건제적 차별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의 차별이다. 끝없이 아래로 세습되는 부와 권력, 신분에 의한 차별을 부르주아는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계급의 무식함도 혐오스러워 했다. 그리하여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가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계급의 구별 짓기 전략이 됐다. 질 좋은 교육을 받고 ‘교양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 그것이 바로 귀족에 대한 선망과 (노동계급과의) 구별 짓기라는 두 가지 목표를 만족시키는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는 시장의 기능에 추호도 의심을 품지 않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기업을 세우기도 한다. 사실 이건 시장 논리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 행동이다. 거의 신비롭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기업은 끊임없이 생겨난다. 그리고 수많은 기업이 망해간다. 이걸 합리적인 과정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 없다. 유일하게 합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부분이 ‘거래비용의 축소’라는 측면이다. 기업이란, 코즈(R. H. Coase)가 지적한 것처럼, 시장의 구성원이지만 동시에 완전히 시장과 다른 내부 작동원리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기업 내부에서는 시장 원리가 아닌 기업가의 판단에 의해 자원분배가 이루어지므로 리스크가 따르지만, 동시에 시장이었다면 발생했을 거래비용이 거의 제로가 된다는 엄청난 이점이 있다. 학벌주의의 배후에 있는 부르주아의 욕망은 기업의 원리처럼 신비로운 측면이 있지만, 학벌주의가 거래비용을 줄여준다는 면에서 기업과 비슷한 합리성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순전히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둘 다 스터캐스틱(stochasitc: 무작위와 작위가 공존하는 선택)한 과정인 셈이다.
요 컨대 학벌주의와 능력주의는 양자 모두 ‘반봉건주의’라는 같은 뿌리를 가진 근대적 이데올로기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학벌주의는, 교육 제도에 배태된(embeded)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점차 학력을 통한 차별화 기제로 관습화된 것이다. 관습화됐다는 것은 그것이 효율적이라는 의미도 된다. 학벌주의는 기업의 운영 원리에, 능력주의는 시장의 기본 원리에 상응한다는 유비는 여기에 착안한 이야기다. 한편, 기업의 운영 원리에 시장의 운영 원리를 삽입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라 할 수 있다. 기업 내부를 ‘작은 완전경쟁 시장’으로 만듦으로써 노동자간의 경쟁을 격화시키고, 심지어 자기 자신과의 경쟁(자기계발에 의한 자기 착취)까지 끌어내는 과정을 통해 착취율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시장 원리와 기업 원리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던 시기가 바로 케인스의 시대였고 서구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학벌주의의 대안, 심지어 반대말로 통용되고 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이데올로기가 이제 와서 서로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학벌을 선망하고 학벌질서에 복종하면서도 동시에 강렬한 반감을 갖는다. 학벌주의를 기득권의 ‘철밥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생각하는 까닭이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학벌주의보다 능력주의에 훨씬 더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경향을 보인다. 능력주의의 득세는 ‘교양인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어서가 아니라 그 욕망의 물적 토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말해 학벌주의가 거래비용을 예전만큼 줄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 시기 한국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상품-인간이 과거와 다른 종류라는 걸 암시한다.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를 장악한 극소수의 엘리트와 절대다수의 비정규 노동자로 구성되는 사회라면, 좋은 학교를 나온 교양인은 그저 ‘잉여 인간’일 뿐이다.
더욱이 기업 복지나 노동조합, 학생운동 공동체, 지역 공동체 등의 호혜적 혜택을 입은 경험이 적을수록 능력주의에 대한 확신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능력주의에 경도된 이들에게 숙련 노동이나 장인 정신, 연공 서열제 같은 요소들은 ‘집계되고 측정되지 못하는 능력’에 불공평한 보상을 해주는 불합리한 행위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마치 정의와 평등에 대한 요구인 것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사실 50여 년 전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능력주의의 부상(The Rise of the Meritocracy)』이란 책에서 능력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썼을 때, 그것은 매우 부정적인 의미였다. 개인의 ‘측정 가능한 능력’에 의해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사회를 풍자적으로 가리키는 말이 능력주의였던 것이다. 반면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 학벌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나아가 기득권의 ‘철밥통’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평등에 대한 요구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중세 시대의 봉건주의에 대해서는 상대적 평등이긴 하겠으나 롤스(J. Rawls)의 자유주의적 평등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좀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사회의 능력주의는 ‘능력에 따라 제대로 차별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며 ‘제대로 차별해 달라’는 요구다. 당연한 말이지만, 능력주의는 학벌주의에 대한 발본적인 문제제기가 아니라 학벌주의가 처음 탄생했을 때 가졌던 효율성을 요청하는 것이며 그런 면에서 그것은 결국 ‘정상근대(正常近代)에 대한 열망’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과거와 달리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미 경제자본과 학력자본이 세습되는 사회이므로 이 정도 수준의 능력주의를 관철시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만한 진보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선동으로 가치를 지닐 뿐 사실명제가 아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더더욱 될 수 없다. 그것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실제보다 훨씬 더 봉건적인 사회로 평가 절하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진보의 상한선을 낮추거나 미리 포기해버리는 짓과 다름없다. 진보/개혁세력이 능력주의에 대한 공고한 믿음을 부수지 못한다면 기득권을 부수겠다는 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기득권이 기득권인 이유는 능력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배하는 자들이 지배하는 이유가 타고난 능력이나 자질에 있다는 식의 맹목적 믿음을 의심하는 데에서 민주주의는 출발했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특정한 능력을 가진 엘리트에 의한 지배가 특정 시공간에서만 효율적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규정되어 왔는지 망각해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엘리트에 의한 지배의 일시적 효율성을 그것의 항구적 정당성과 등치시켜버리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학벌주의와 능력주의의 충돌은, 기득권 세력과 개혁 세력의 이데올로기적 유비로 전도되어 현재 가장 격렬한 갈등 중의 하나로 드러나고 있다.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다른 선진국과 비슷하지만 갈등의 양상이 무척 다르다. 생활협동조합, 거대한 산별노조와 잘 조직된 지부들, 지역경제 공동체 등 다양한 조직문화와 기업 형태가 존재하는 경우, 그리고 중심부와 주변부의 차이가 극심하지 않은 경우, 이런 갈등은 완화되고 조정되어 드러난다. 일종의 균형이 발생하는 셈인데, 결국 그것이 사회의 붕괴를 막아낸다.
시장 원리와 기업 원리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공동체와 그 이데올로기들이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러한 공동체의 원리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그 결과, 현실이 그로테스크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종종 이런 모습들이 단순한 전근대성이나 봉건성으로 오해되어 “아직 한국은 근대를 이루지 못했다” 운운하는 소리가 나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완결된 근대성’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한국에 탈근대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서로 다른 근대성 간의 폭력적 충돌이지 근대 이후에 도래하는 어떤 실체적 단계가 아니다. 그 충돌이 폭력적인 까닭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산업화가 시행착오와 단절이 없는 맹목적 산업화였기 때문이다. 최단거리로 달려오다 보니 ‘면역 체계’ 혹은 완충지대를 만들어낼 변종(돌연변이)들이 자라날 공간이 없었다. 설령 변종들이 나왔다 해도 일치감치 싹이 꺾여버렸다. 학벌주의에 대한 유일한 대안으로 능력주의가 제시되고 이 능력주의가 마치 우리의 최종적 지향이자 모두를 위한 진보인 것처럼 유통되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사회적 완충지대를 불모화-초토화시킨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