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의 유래
매년 6월 6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현충일(顯忠日)* 이다.
현충일이 왜 6월 6일이 되었는지 그 유래를 정리해 본다.
왜 6월 6일일까요?
현충일이 6월 6일로 지정된 데에는 역사적 배경과 전통적인 절기가 함께 녹아있다.
6·25 전쟁의 아픔과 6월: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6·25 전쟁으로 인해
가장 많은 국군 장병들이 희생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6·25 전쟁이 일어난 '6월'을 기념하는 달로 삼았다.
전통 절기 '망종(芒種)' : 1956년 현충일을 제정할 당시, 6월 6일은
24절기 중 하나인 망종이었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망종을 보리가 익고
모내기를 시작하는 가장 좋은 날로 여겼으며,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전통이 있었다.
역사적 전례 : 조선 시대 기록을 보면, 조정에서 군사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날을
망종으로 잡았던 기록이 있다.
정부는 이러한 전통과 6·25 전쟁의 상흔을 고려하여 1956년 4월, 매년 망종 무렵인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게 되었다.
현충일의 역사적 변화
1956년 4월 : 대통령령으로 '현충기념일' 제정 (국립현충원 설립과 함께 발족)
1975년 12월 : 정식 명칭을 '현충기념일'에서 '현충일'로 변경
1982년 5월 : 대통령령에 의해 국가 공휴일(법정기념일)로 확정
현충일의 핵심 의미 : '현충' "드러날 현, 충성 충"
충성을 겉으로 뚜렷하게 나타낸다는 뜻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충절을 높이 기리고 널리 알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초기에는 6·25 전쟁 전사자들을 주로 추모했으나, 현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신 순국선열을 비롯하여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모든 호국영령을 함께 추모하는 날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오늘 아침 10시에 울린 사이렌에 맞춰 묵념을 올리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 준
영웅들을 기억하는 뜻깊은 하루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동작동 서울현충원에서 국가 추념식이 있었다.
화면에 가장 앞줄에 있는 당 대표 자리 2개가 비어있다가
5분 쯤 뒤에 한 개는 체워지고 나머지 하나는 모르겠다.
지금현재 현충원, 호국원 등에 묘비, 납골 봉안, 위폐 등으로
49만여 위가 잠들어 계신다.
호국 선열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