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 핀 사랑의 꽃
1910년 유럽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한 소녀는, 훗날 온 세상을 감동시킨 위대한 사랑의 화신이 될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마더 테레사, 그녀의 본명은 아녜스 곤자 보야지우였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를 '빈자의 어머니'라 불렀고, 시간이 흘러 가톨릭 교회는 그녀를 '콜카타의 성녀 테레사'로 추대했다.
그녀의 삶은 18세에 수녀회에 입회하면서부터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도 땅에 발을 딛고 교사로서의 삶을 살던 그녀는 어느 날 기차 안에서 깊은 울림을 느꼈다고 한다. "가장 가난한 이들을 섬기라."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녀는 안락한 수도원의 담장을 넘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곳으로 걸어 나갔다.
화려한 옷 대신 그녀가 선택한 것은 푸른 테두리가 둘려진 흰색 사리였다. 그것은 인도의 가장 가난한 여성들이 입는 옷이었고, 그녀는 스스로 그들과 한 몸이 되기를 선택했다. 1950년 그녀는 '사랑의 선교회'를 세워, 버려진 아이들과 병든 자들, 쓸쓸히 임종을 맞이해야 하는 무연고자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의 손은 더럽고 추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눈은 모든 생명체 속에서 신의 모습을 보았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그녀는 영광보다는 나눔을 택했다. 시상식의 만찬을 취소하고 그 비용을 모두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급식비로 내놓았던 일화는, 그녀가 얼마나 세속적인 명예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녀에게 있어 성공이란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졌는지에 있었을 것이다.
물론 세상의 빛이 강한 만큼 그림자도 존재한다. 그녀의 활동에 대한 여러 논란과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의료 환경이나 재정 운영, 신앙의 방식에 대한 이견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논의를 넘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얼마나 깊은 헌신을 다할 수 있는지 보여준 그녀의 삶 자체가 주는 울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997년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인도 정부는 그녀에게 국장을 거행했다. 평민이자 외국인 출신으로서는 간디 이후 두 번째 있는 일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오늘날에도 그녀의 이름은 '사랑'과 '헌신'의 동의어로 남아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마음은 점점 더 메말라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자도생의 세상 속에서 남을 돌볼 여유를 잃어가고 있을 때, 마더 테레사의 삶은 우리에게 거울처럼 다가온다. 진정한 위대함은 높은 곳에 서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는 것임을, 그녀는 평생의 실천으로 증명해 보였다.
우리는 이제 그녀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한다. 비록 우리의 힘이 미약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작다 할지라도, 주변의 어려운 이들에게 눈을 돌리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난과 냉소 대신 이해와 나눔을 선택하고,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섬기고 돕는 마음을 가지는 것, 그것이 바로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을 실천하는 길이다.
그리고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아직 아프고 차갑다 할지라도, 한 사람의 진심이 모여 언젠가는 거대한 온기가 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우리는 믿는다. 마더 테레사가 그랬듯이, 우리도 작은 사랑을 쌓아가며 더불어 사는 세상,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따뜻한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시대에 가져야 할 마음이며, 반드시 이루어낼 약속이다.
출처 : 문화앤피플(https://www.cn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