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와 염소, 낡은 장롱,살림 도구 한가득한 보따리
장동훈 빈첸시오 신부 인천가톨릭영화제 집행위원장
나귀와 염소, 낡은 장롱, 살림 도구 한가득한 보따리.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이 낱말들을 하나로 잇는 단어가
‘성당’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큰비로 강이 범람하거나 견딜 수 없는 추위가 닥쳐오면
으레 성당을피신처로 삼았다고 합니다.
집이라고 해 봐야, 귀족들의 저택을 제외하곤 죄다
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움막뿐이었으니 육중한 돌로 지은,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성당만큼 미더운 곳은없었을 터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장롱과 솥단지 등 남루한 살림살이들도
그렇게 성당의 한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러곤 계절이 몇 번 바뀌도록 방치되곤 했습니다.
제발 찾아가라는 성당 정문에 게시된 본당 신부의 호소문은
그래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했습니다.
비에 쓸려 나가는 자신들의 집을 뒤로한 채, 보잘것없는 살림살이를 들쳐메고
종종걸음을 옮겼을 사람들에게 성당은 그야말로 ‘아버지의 집’이었을 것입니다.
깨끗하고 반듯한 오늘의 성당을 생각하면 낯설고 당혹스럽기까지 한 장면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느꼈을 성당의 실재감은
오늘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하고 실제적이었을 것입니다.
제2회 인천가톨릭영화제의 주제, ‘집’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오늘의 교회는저 옛사람들에게처럼 든든하고, 남루한 살림살이를 펼쳐놓고
밥을 지어 먹어도 부끄럽지 않을, 누구라도 깃들 문턱 낮은 ‘집’인지, 어떻게 우리는
“산발적 세계대전”(교황 프란치스코)과다름없는 오늘에 드리운 먹구름을 걷어내고
인류 공동의 집(common house)을 지켜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가톨릭(Catholic)이라는 말의 뜻이기도 한 ‘보편’은 단순히
똑같은 형태, 똑같은 생각의 일사불란한 획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다양하고 독특한 ‘너’를 품을 수 있는 아량과 여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나무마다 다른 고유한 생장의 특성을 잘 이해하면서도,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거대한 초록의 ‘숲’을 그릴 수 있는 상상력에 빗댈 수 있습니다.
물론‘다름’은 갈등과 투쟁의 요소이기도 하지만, 이 ‘보편’이라는 여백 속에서는
‘다름’은 서로를빛내는 풍요로움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1965년,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서 처음으로 국제연합(UN) 연단에 선
바오로 6세 교황은 세계대전이라는 고통의 바다를 함께 건너온
각국의 수장들 앞에서 교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전문가입니다.”
‘인간’이라는 말이 지닌 위대한 보편성이 곧
가톨릭교회가 추구하는 보편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이야말로 국가와 인종, 계급과 성별, 이념과 종교 사이의 골들을 메워
인류를 하나로 묶을 위대한 신비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지극히 인간다운 것이 가장 거룩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인류의 꿈과 교회의 꿈도 다르지 않은 셈입니다
제2회 인천가톨릭영화제의 꿈도 이와 같습니다.
기쁨과 슬픔, 탄생과 소멸, 환희와 열정, 연민과 자비, 분투와 승리 등
작품 속 섬광처럼 번득이는 ‘인간’이라는 ‘영원한 희망’을 다시 한번발견하는
귀한 시간이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