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면 희망이 있다….
유다교 전통에 ‘북돋는 식사’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유족들을 위해 친구들이 밥상을 차리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식탁을 차리는 것은 ‘베이글’이라는 빵과 커피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군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줌으로써 살아갈 새로운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북돋는’이라는 말은
‘힘과 용기를 주고,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밥상은 ‘북돋는 밥상’에 의미가 있습니다.
굶주림에 지친 군중에게 예수님의 밥상은 용기와 위로의 밥상입니다.
믿고 따르던 스승을 잃은 제자들을 위해 차려놓은 예수님의 미사성제 밥상은
기운을 불어넣은 ‘북돋는 밥상’입니다.
아멘.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사랑이라 할지라도 철저히 그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완성은 하느님의 은총인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수많은 상처를 주고받으면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상처를 덜 주고, 덜 받고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리고 “상처를 안 받고, 안 주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요?
단호하게 ‘없다’라고 말씀을 드리겠지만, 다만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에페소서 4장 32절에 보면 사도 바오로는 말씀합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아멘.
사랑하는 고운님들!
존 엘드리지가 쓴 “예기치 못한 사랑”이라는 책을 보면,
“저희 마음에 하느님이 심어놓은 사랑의 말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마음 안에 심어놓은 사랑은 삶의 자리에서 매 순간 마음을 통해 말씀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물론 ‘기쁠 때뿐만 아니라, 고통과 슬픔의 때에도
하느님께서 심어놓으신 사랑의 말씀이 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귀에 들리는 순간,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거룩한 사랑이 시작되고
가득 채워져, 사람들 마음 안에 용서의 은총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 두레박 사제는 하느님께서 고운님들에게 심어주신 최고의 사랑은
‘미사성제’라는 사랑의 말씀을 고운님들에게 드립니다.
미사성제는
‘참회하면서 기도하고, 기억하면서 친교를 나누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밥상”입니다.
그래서 미사성제는 고운님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밥상입니다.
왜냐하면‘혼자’는 넘어질 수밖에 없지만, ‘함께’라면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운님들을 북돋는 이 미사성제 밥상에서 기쁠 때나
고통스러울 때도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고운님들은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라는 은총으로 잘 차려진
미사성제 밥상에 참례하여 마음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면서 함께 용기와 위로를 받으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저 두레박 사제도 하느님의 최고의 사랑인 미사성제를 봉헌하면서
몸과 마음이 아픈 고운님들과 아픈 이들을 돌보는 고운님들, 그리고
고운님들의 자녀들, 특히 늘 기억하는 모든 은인 고운님들에게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일기를 마무리하면서….
‘함께’라면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 있기에, 고운님들은
미사성제 밥상에 참례하여 마음에 심어놓으신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의 말씀을
새기고, 기억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고운님들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