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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모음

성모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새기심"과 안토니오 성인의 "기도와 헌신의 영을 간직함"을 묵상하며....

작성자마리향기|작성시간26.06.13|조회수0 목록 댓글 0
호명환 신부

성모님께서 "마음속에 곰곰이 간직하고 되새기심"은 그리스도교 관상의 핵심이 무언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 말씀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독특한 해석으로 비추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과 성 요셉은 군중 속에서 아기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성전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은 그분을 다시 찾았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영혼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고귀한 탄생을 찾고자 한다면, 군중을 떠나 여러분이 온 근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혼의 모든 능력과 그 활동은 곧 군중입니다. 기억, 이해, 의지—이 모든 것이 여러분 마음을 분산시키므로, 그것들을 떠나야 합니다. 감각, 상상, 혹은 여러분이 자신을 찾으려 애쓰는 그 무엇이든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이 탄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솟아나야 하며, 그래야만 이 탄생이 참되고 분명하게 빛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활동을 멈추고, 모든 능력은 여러분 자신의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목적을 섬겨야 합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려면 오직 하느님께서만 그것을 행하셔야 하며, 여러분은 그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자신의 의지와 지식을 내려놓을 때, 하느님께서 손수 그분의 지식으로 기꺼이 들어오시어 그곳을 환히 비추실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프란치스칸들이 기념하는 성인이 있습니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1195-1231)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모님의 "마음속에 곰곰이 간직하고 새기신 삶"과 성 프란치코와 성 안토니오의 "기도와 헌신의 영을 마음에 간직하는 삶"을 함께 연결하여 묵상해 보겠습니다.

그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하느님께 자신을 열정적으로 봉헌하는 삶을 살았던 성인입니다. 그의 삶에 대해 잠깐 나누겠습니다.

안토니오 성인은 본래 포르투칼 리스본 태생이고 그의 본 이름은 페르난두 마르팅스 드불룡이스(Fernando Martins de Bulhões)인데, 그는 15세가 되던 해인 1210년에 리스본에 있는 우구스티노 참사 수도회의 상비센트드포라 수도원에 입회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잦은 방문으로 인해 마음에 산란해지자 그는 1212년에 코임브라에 있는 산타크루스 대수도원으로 옮겨가 거기에서 8년 동안 신학과 라틴어를 공부하며 기도에 전념하였습니다. 1219년에 사제품을 받은 그는 수도원의 방문객들을 환대하는 일을 하면서 코임브라 외곽의 작은 은수처에 정착하여 살게 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의 형제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의 소박하고 검소한 복음적 삶의 자세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그 은수처의 5명의 형제들이 모로코에 선교를 갔다가 순교하였는데,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알폰소가 모로코 정부에 순교자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이 5명의 시신을 안토니오가 머물던 산타크루스(성 십자가) 수도원에 안장하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토니오는 자기도 이들처럼 선교하다가 순교하고자 하는 열망에 장상의 허락을 받아 1220년에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안토니오(사막의 대 안토니오 성인 주보)라는 수도명으로 새롭게 서원을 하게 됩니다. 그후 아프리카의 모로코로 선교를 지원하여 그곳에 갔지만 거기에서 심한 병을 얻어 포르투칼로 돌아오는 중 배가 항로에서 벗어나 포르투칼이 아닌 시칠리아 섬에 당도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시칠리아에서 출발하여 토스카나로 도착해서 그곳 수도원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하지만 병약한 그의 건강 상태 때문에 수도 생활이 녹록치 않았습니다. 최종적으로 그는 로마냐의 포를리 인근에 있는 산파올로라는 시골의 은수처로 이동되었는데, 이는 그의 건강 악화를 고려하여 내려진 조치였습니다. 그곳에서 안토니오는 한 수사가 인근 동굴에 만든 독방에 은거하며 개인적으로 기도와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1222년 어느 날, 포를리에서 프란치스코회 사제 서품식이 있게 되었는데, 도미니코회 수사들도 많이 자리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사 중 누가 강론할 것인지를 놓고 예기치 않게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회 측에서는 도미니코회가 설교자회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만큼 뛰어난 설교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도미니코회원 가운데 한 사람이 강론대에 서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도미니코회원들은 프란치스코회의 서품식이었기에 프란치스코회원이 당연히 강론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강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로 참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크게 난처해진 수도원장은 이 사태를 해결할 사람을 모색하던 중 안토니오가 가장 제격일 것 같아 보여, 안토니오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성령이 그의 입을 통해 말씀을 내려주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안토니오는 극구 사양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강론대에 서게 되었는데, 그의 강론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는 우렁찬 목소리와 겸손한 태도 뿐만 아니라 강론의 주제 및 전체적인 내용 그리고 유창한 웅변 실력을 통해 청중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청중은 모두 수년간 아우구스티노회에서 수도 생활을 하면서 성경에 대한 지식을 쌓아 올린 그의 해박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안토니오 성인은 설교자로 유명해지게 되었고, 프란치스코 성인도 그에게 형제들을 가르칠 허락을 주게 됩니다. 안토니오에게 보낸 프란시스코의 편지에 그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나의 주교(안토니오는 주교가 아니었지만 프란치스코는 신학자들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주교"라고 부르고 있음) 안토니오 형제에게 프란치스코 형제가 인사합니다. 수도 규칙에 담겨 있는 대로, 신학 연구로 거룩한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으면, 그대가 형제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일은 나의 마음에 듭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렇게 그는 작은 형제회의 첫 번째 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기도와 관상에 머물며 동시에 설교하는 일에 더욱 헌신하기 위하여 공식적인 직책에서 면제해 줄 것을 간절히 바랐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고해성사를 주는 신부로서의 그의 성공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중 1226년 10월 프란치스코 성인이 선종하자 이탈리아로 돌아와 이듬해 에밀리아(Emilia) 관구의 관구장 대리로 선출되었으나, 설교에 전념하기 위해 1230년에 사임한 뒤 파도바 수도원에 정착하면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파도바 전체를 완전히 개종시킨 그의 설교는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또한 그는 채무자,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는 일을 비롯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이단자를 개종시키는 등 끊임없이 활동하였습니다.

1231년 그는 수종 등을 겸한 열병으로 잠시 요양할 목적으로 캄포 산 피에로(Campo San Piero)로 갔으나, 병이 심해져 파도바로 되돌아오는 길에 베로나(Verona)의 아르첼라(Arcella)에 있는 클라라 수녀원에서 선종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안토니오 성인에게 분부하고 "기도와 헌신의 영"이란 마음과 정성과 애를 다하여 주님과의 깊고 친밀한 관계성 안에 있고자 하는 영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헌신(devotio)이 의미하는 바가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CAC의 매일 묵상에서 리처드 신부님의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는 요한 복음의 말씀에 대한 강론 내용이 소개되었는데, 이 강론에서 리처드 신부님이 강조하는 바가 바로 이 "기도와 헌신의 영"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성모님이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 새기신 바"이고요!

리처드 신부님은 이 강론에서 우리가 옳고 바르고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성 안에 머무는 것이라고 강조하여 말합니다. 우리는 사실 죽을 때까지 완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사랑이요 자비이신 하느님 안에 머물고자 하는 노력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와 신심의 영을 끄지 않는 삶의 자세라고 저는 봅니다.

이런 삶의 자세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님의 티 없이 깨끗하신 성심에서 솟아나는 것이고, 또한 프란치스코 성인이 강조하며 살았고 또 안토니오 성인이 살아냈던 "기도와 헌신의 영"을 깊이 간직하는 삶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정성스럽게 살고자 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부족함과 실수, 흠과 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과 안토니오 성인을 기리며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성 안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져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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