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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애가 끊어지는 듯한 사랑과 연민의 정"을 의식해 봅시다

작성자마리향기| 작성시간26.06.14| 조회수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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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마리향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4
    마태오가 사용한 그리스어
    σπλαγχνίζομαι(splagchnizomai-스플락크니조마이)는
    특별히 깊은 감정을 나타내는 말로, 문자 그대로 "
    내장(심장, 간, 폐)"을 가리키며, 기계에 대해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깊은 연민을 뜻합니다.
    우리말에도 "몹시 슬프서 애가 끊어지는 듯하다"라는 표현이 있지요.
    이것이 바로 마태오가 사용한 그리스어
    "스플락크니조마이"에 해당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보시고, '나인'이라는
    마을의 과부를 보시고, 그들을 향해
    깊은 연민의 정으로 움직이셨습니다.
    바로 그 동정심과 연민, 자비가
    열두 제자를 파견하도록 이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다스리고 복종하게 하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당신께서 보여주신 그 자비와 연민과 동정심을
    그대로 실천하라고 파견하신 것입니다.
  • 작성자 마리향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4
    만일 우리가 지금의 고비를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곧 개인으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공동체로부터 바깥과 주위로 흘러가는
    전혀 새로운 사고의 길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우주적 비전(cosmovision)"과
    의식의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생애 안에서조차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가르침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와 더 깊은 관계를 새롭게 하고
    그분에 대한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또한 그분이 씨앗을 뿌리신 그리스도교를
    살아 있고, 현대적이며, 시대에 맞는 종교로
    바라보게 하며, 이 아름다운 흐름의 비전
    곧 나눔과 일치의 비전—을
    새로운 우주적 관점(cosmovision) 속으로
    전해 나갈 수 있는 사명을 감당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이제 공은 우리 공동체의 손에 놓 있습니다.
    우리 이 비전과 함께 달려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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