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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모르고 열두사도에 도전

작성자마리향기|작성시간26.06.14|조회수1 목록 댓글 0

멋모르고 열두사도에 도전

이현수베드로신부 | 논현동본당주임

십 년 만에 다시 마주하게 된 본당 사목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미사 강론은 조금 과장하자면 공포의 대상입니다. 세대 차이가 더 벌어졌으니, 아이들이 나를 어려워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서기도 하거니와, 보좌 신부 때처럼 이벤트를 하자니 몇배의 용기가 더 필요합니다. 시대가 급변하다 보니 ‘요즘 어린이들은 또 얼마나 달라졌을까’라는 걱정을 안고 미사를 시작합니다. 생육의 발달로 사춘기가 한참 빨라졌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열정넘치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강론 시간에 어린이들을 집중시키는것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숙제 같기만 합니다. 몇 주 전 어린이 미사 강론 중 요한복음에서 토마스와 필립보가 나온 김에 열두 사도의 이름을 모두 아는지 물어봤습니다. 열두 명의 이름을 모두 대답하는 친구가 아무도 없었고, 다음 주에 선물을 걸고 다시 물어보겠다고 예고를 했습니다. 이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손을 든 어린이는 대답을 잘했는데, 제가 다시 확인하기 위해 열두 사도의 이름을 열거하다가 기억이 나지 않아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고 말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성경인데, 그중 미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선포되는 복음에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박제되어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예수님의부름을 받은 제자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도 못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 영예로운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제자들은 억세게 운 좋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아주 오래전에 쓰인 복음에 나온 결론만 보고 내린 막연한 부러움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큰 갈등이 싸움을 벌이고 있었을까요? 생업과 가족을 버려두고 처음 만난 낯선 사내를 따라간다는 것은 미친 짓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 세속적 욕구와 안위한 일상의 갈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와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일꾼으로 변해갑니다. 더 이상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 나약한 제자가 아닌, 진리 그 자체인 예수님만 믿고 직진하는 용기의 사도가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세상의 불의에 눈감게 되는 것은 현재 누리고 있는 육신의 안위를 먼저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시게 된다면 우리 또한 선택의 갈림길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 모두가 아무런 손익계산 없이 어린이처럼 무작정 달려가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해도 참된 진리인 예수님의 사랑은 영원히 지속되며, 우리 구원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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