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기도
서원기도는 자신의 소원을 고백하면서 하느님에게 어떤 서약을 하는 기도다.
예를 들어 아들이 없던 한나는 하느님에게 서원하며 이렇게 말했다.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원하기 이전에 하느님이 어떤 서원의 내용을
기뻐하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입타는 서원을 잘못하여 이로 인해 자신의 무남독녀를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또한 부정한 재물을 가지고 하느님에게 서원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개인적 신심으로 특정 행위와 기도
자선과 순례 등을 하느님께 약속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하느님에게 약속을 드리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그래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혼인성사와 설품성사, 수도자의 종신 서원에는
언제나 약속이 들어 있다.
하느님에게 드린 서원은 마땅히 그분에게 드려야 할 경외심의 표현이자, 성실하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그래서 반드시 지킫록 노력해야 한다.
통곡기도
통곡기도는 마음을 찢는 기도로 억울함 때문에 울며 부르짖는 기도다.
프닌나가 한나의 화를 돋우면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하느님에게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면서 주님께 기도하였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런 기도를 기꺼이 들어 주셨다.
여기서 사영된 '비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울부짖다.'
'탄식하다' 라는 뜻이고 신약 성경에서는 '비명'
'통곡'이라는 뜻의 '크라우게'가 이 기도에 해당한다.
살다보면 다른 사람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잘못 때문에 통곡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울음을 통해 스스로 정리되고 정화될 수 있지만 '울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도
하느님이 허락해 주신 큰 은총이다.
오히려 울지도 못하는 완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더 큰 문제라는 뜻이다.
늘 이성과 합리성에 갇혀 있는 게산적인 사람은 제대로 기도하기 어렵다.
가끔이라도 우리는 절박한 어려움 앞에서 하느님에게 울며 부르짖을 줄도 알아야 한다.
저절로 터져 나오는 외침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감출 필요도 없다.
이런 면에서 이웃의 눈물과 아픔에 무관심한 사람도 하느님에게 가까이 가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울어 주고 함께 아파해 줄
하느님이 곁에 계시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