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기도
침묵기도는 말을 하지 않는 기도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침묵에는 크게 하느님의 침묵과 인간의 침묵이 있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침묵만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인간의 침묵이란 내적인 마음의 평화와 고요,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말없이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침묵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을 찾고 비워야 할 것과
채워야 할것을 하느님 안에서 분별하기 위해서다.
'침묵'을 뜻하는 히브러어는 '다님'이다.
이사야가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 하느님의 모습을 본 후 영적 눈이 열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라고 고백한 것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침묵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침묵기도에서 주의할 점은 침무을 위한 침묵은 의미가 없고
침묵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찾을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오래 또 자주 침묵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친한 관계일수록 장황한 말이나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므로 무언의 언어로 마음이 통하는 단계가 된다면 깊은 침묵에 도달한 것이다.
또한 침묵 자체는 지루한 일이기 때문에 침묵을 유지하려다가 잠이 드는 경우도 많다.
물론 기도하다가 잠이 드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느님 안에서 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성인은
"만일 기도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면 하느님에게 감사하라."라고 말했다.
육신이 피곤할 때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맑은 정신으로
침묵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하루 중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잠시 침묵을 유지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조용한 공원을 산채가거나 자연에 머물면서 침묵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침묵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방언기도
방언기도는 성령이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영적 언어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오와 찬사의 언어로 말한다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방언에는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라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여기서 인간의 언어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지역의 사투리로 말하거나
갑자기 외국어로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사도행전 2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사도들이 방언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이 자신이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들을 수 있었다.
반면 천사의 언어는
"신령한 언어로 말하는 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께 말씀드립니다.
사람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령으로 신비를 말하는 것입니다."에서근원을 찾을 수 있다.
방언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에
듣는 사람 중에 통역자가 있는 경우에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바꾸어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방언기도는 하느님과 깊이 사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방언은 성령의 은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방언이 영적 성숙을 의미하는 표시는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치유의 은사, 예언의 은사가 영적우월감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은사는 개인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선을 위해
주어진 도구이기 때문에 반드시 열매로 식별되어야 한다.
만약 방언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고
만약 방언기도를 모한다 해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이미 우리는 저마다 자기 나라와 지역의 말로 하느님에게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깊이 있는 기도 생활을 발전시킴으로써
하느님에게 봉사하는 성숙한 모급을 가질 수 있다면 공동체를 위한 좋은 모범이 될 것이다.
예수기도
예수기도는 동방 정교회에서 가장 보편화되어 있는 짧은 기도다.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이기에
'예수기도'라고 하는데 이 기도의 표준 형태는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 그리스도님 저를 용서하소서."
"주 예수님 저를 도와주소서." 등으로
상황에 맞게 변화를 주며 들숨과 날숨에 맞추어 긴 호흡으로 천천히 기도를 한다.
곧 예수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고 그분이 내 안에서 기도하시도록
예수님과 하나 되어 호흡하는 것이다.
이 기도의 목적은 바오로 사도의 권고처럼 "끊임없이 기도"하고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는 것이다.
이는 예리코 근처의 길가에 있던 어느 눈먼 이의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는 부르짖음과 죄 많은 세리의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는 호소와 나병 환자 열 사람의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는 외침에 근거한다.
화살기도
화살기도는 화살이 날아가는 순간처럼 짧은 순간에 간략하게 바치는 기도다.
예를 들어 "주님 감사합니다."
"저 아픈 사람을 도와쥡시오."
"주님 오늘 하루도 안전 운전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하느님께 영광!"
이라고 하며 기도 드리는 것이다.
"주님 .... 제 입의 말씀과 제 마음의 생각이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처럼 기도 중에 어떤 느낌이나 깨달은 또는 마음에 와 닿는 성경 구절이
온종일 마음속에 울려 퍼지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하는 것도 좋은 화살기도다.
화살기도는 꺼져 가는 장작더미에 다시 불을 일으키는 불쏘시개처럼
뜨거운 마음을 간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가톨릭 4대 교부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화살기도는 우리의 사랑을 하느님에게 신속히 전달하는 가장 충실한 전령이다."
라고 했다.
돈 보스코 성인도
"화살기도는 우리 영혼의 적, 유혹과 악습을 일거에 물리치는 불에 달군 화살이다."
라고 했다.
무엇보다 화살기도는 무슨 일이든 기도 속에서 할 수 있게 해 준다.
세수를 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차를 타고 가거나, 걸어가거나,
전화를 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어떤 상황에서라도 할 수 있는 것이
화살기도이기 대문이다.
하지만 화살기도만으로 기도 생활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규칮걱인 기도 시간을 가지는 사람이 화살기도를 함께 사용할 때
풍성한 기도의 열매를 맺는 것이지 화살기도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부족한 기도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살기도가 일상 안에서 주님과
늘 대화하는 좋은 습관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