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기도를 알기 위해 먼저 기도의 형식을 알아보자.
기도의 형식에는 구송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구송기도는 마음속의 생각과 감정을
하느님에게 표현하기 위해 소리를 내어 하는 기도다.
'주님의 기도', '삼종기도', '시간 전례', '묵주기도' 등 정해진 기도문을
혼자 또는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가 이에 해당한다.
이 기도에서 바치는 '소리'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아니라
하느님에게 건네는 '말'이며 그 말은 인격의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성을 다해 온 마음으로 바쳐야 한다.
둘째, 묵상기도는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새기며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묵상기도는 사고력, 상상력, 감정, 의욕을 동원하는 탐색적인 기도다.
묵상의 목적은 삶의 션실에 비추어 고찰한 주제를 신앙을 통해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특히 이 기도는 하느님이 내 앞에 현존해 계신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영적인 상황을 관찰하고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반성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결심을 세우게 한다.
이때의 묵상 자료는 대자연, 성경 구절, 신심 서적, 성화상, 교회의 가르침 등이다.
셋째,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관상기도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자주 단둘이 지냄으로써 친밀한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
이라고 말했다.
즉 관상기도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침묵 가운데 주님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바라봄'이고 우리 내면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음'이며 자신을 완전히 비워
하느님과 일치하는 '비움'과 '일치'의 기도다.
즉 관상기도는 인간의 이성을 사용하여 하느님에게 간청하기보다는
'그분 안에서 쉼'을 거쳐 그분과의 일치에 이르러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에게
마음을 비우고 '수동적'인 자세로 기도하는 것이다.
관상기도는 일반적으로 봉쇄 수도회 수도자들만의 기도로 알려져 있거나 혹은
뉴에이지 운동과 혼동되어 개신교 일각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관상기도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기도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알게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관상기도를 다른 기도보다 좀 더 상세히 소개하려 한다.
'관상'은 말 그대로 '상을 바라보는것'이다.
이 말의 어원은 리틴어 '콘템플라시오'인데
'하느님의 뜻과 현존을 함깨하기 위해 내면을바라보는것'이라는의미가 있다.
콘템플라시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가 '테오리어'인데
그리스 철학자들은 테오리아를 진리를 탐구하는 최고의 활동으로 간주해 왔다.
그래서 하느님과 하나 되는 직접적인 체험을 '테오로기아'라고 했고 그것이
현대의 영이란 사고에 의한분석이라기보다하느님의함께하심에 대한 체험과 연관이 있다.
그래서 '관상기도'는 하느님과의 일치와 친교를 지향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고
'관상'은 기도를 통하여 그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런 관상의 상태가 되기 위한 방법이 한두 자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는 분이시기에 모든 기도가 다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을제대로 알아뵙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점점 비워져야 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전통적으로 기도의 성격을 세 부분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첫째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준비기도의 성격을 가졌으며
말하는 기도의 단계인 '능동기도' 둘째는 깨달음의 과정으로서 내면으로 듣는 능력이
커지는 단계인 '능동과 수동기도'
셋째는 영적인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보는 관상의 단계인 '수동기도'다.
여기서 '수동'이란 말은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활동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끌림에 자신을 비우고 맡긴다는 적극적인 의미다.
곧 어떤 처지나 상황도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에 이끌려 가는 단계가 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