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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위한 서시 - 류시화

작성자이우성|작성시간26.06.22|조회수54 목록 댓글 0

 

여행자를 위한 서시 

                                    - 류시화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같은 삶과

바람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 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은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 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사  진  /  이  우  성

- 홍천 환상의 은행나무숲

 

 

<게시자 追錄>  홍천 은행나무숲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은행나무숲 주인은 아내의 만성 소화불량을 고치기 위해 우리나라 3대 약수인 삼봉약수가 효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삼봉약수 인근 지역인 오대산 자락 4만㎡에 1985년부터 은행나무 2000그루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국도 56호선이 포장됐지만 당시는 비포장도로 뿐인 첩첩산중이었습니다.
은행나무숲 주인은 30년 동안 성장한 은행나무가 숲을 이루고 가을에 노란빛으로 물든 장관을 연출하자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2010년부터 매년 10월만 일반인에게 개방합니다.
또 인근 마을주민들이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매력을 100% 만끽하려면 날을 잘 골라야 합니다.

조바심에서 일찍 찾아가면 단풍이 덜 든 모습을 만날 것이고 늦게 가면 이미 그들은 떠나고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서리와 바람과 비에 유난히 약한 은행나무 단풍은 찾는 이들에게 웬만해서는 마음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단풍 피크에도 오로지 하느님의 도움만이 해결해 줍니다


이제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만발한 단풍숲보다 앙상한 모습이 훨씬 정겨운 것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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