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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니Rossini의 윌리엄 텔 서곡 플레시 몹Flash mob

작성자이우성|작성시간20.09.05|조회수437 목록 댓글 0



Overture to 'Wilhelm Tell' (GuillaumeTell Overture)

<윌리엄 텔 서곡> - 로시니 작곡 (1829)

 

게으름뱅이 작곡가의 마지막 작품 < 윌리엄 텔>


윌리엄 텔은 자기 어린 아들을 저 멀리 세워 놓고는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 그것을 과녁 삼아 활을 쏘아 명중시켰다는 스위스의 한 독립투사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이다.

 

작자는 베토벤의 <제9교향곡> 합창에 사용된 시 '환희에 부쳐'를 쓴 실러이다.
로시니는 <윌리엄 텔>을 쓰는데 그로서는 이례적으로 9개월이나 걸렸다.

집필은 프랑스 파리에서 했고 초연도 그 곳 오페라좌에서 했으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때 그의 나이 38세.

그것을 끝으로 그는 오페라 작곡의 붓을 꺾어버리고 말았다.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내가 오페라를 한참 쓸 때는 멜로디가 먼저 떠오르면 그것을 따라가면서 그저 적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 멜로디를 찾아다녀야할 때가 되었지요. 아시다시피 나는 형편없는 게으름뱅이입니다. 내 쪽에서 찾아나선다는 것은 영 귀찮은 일이죠. 그래서 오페라 작곡을 집어치운 겁니다. 알아들으시겠어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는 오페라 "이탈리아의 터키인", 유명한 "세빌리아의 이발사", "체네켄톨라(신데렐라)", "호상의 미인", "세미 라미데", "코린트의 포위"등을 작곡했다.


속설에 의하면 로시니는 매우 나태했기 때문에 일찍 악단으로부터 은퇴했다고도 전해진다.

어떤 영국 평론가는 일찌기 로시니에 대해서 "게으름뱅이 작곡가"라고 불렀다. 


1829년 로시니가 38세때 최후의 오페라 "윌리엄 텔"을 완성하여 파리에서 초연, 대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 국왕으로부터 훈장이 수여되고, 그 후 이탈리아의 볼로냐로 되돌아가 오페라 작곡의 구상을 했으나 결국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 후 오페라의 작곡은 하지 않았으나 20여년 만에 칸타타와 소품의 작곡을 했다. 61세경 정신착란 상태가 되고, 치료를 위해서 각지의 온천으로 갔다. 잠시 소강 상태를 얻어 72세 만년의 최대의 걸작 "작은 장엄 미사곡"의 작곡에 착수하여 이듬해 완성을 보고 다시 소품의 작곡을 시작했다.

 

1868년 77세 생일 축하가 끝난 후 잠시 병상에 눕게 되고 11월 13일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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