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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설교

신앙의 중심이었던 **'쉐마(Shema)'**

작성자우승호|작성시간26.06.07|조회수52 목록 댓글 0

신앙의 중심이었던 **'쉐마(Shema)'**

 

1945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엘리저 실버라는 유대인 랍비가 나치를 피해 유럽 전역의 농장이나 수녀원, 수도원에 숨어든 유대인 아이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한 수도원에 유대인 아이들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갔지만, 수도사는 "여기 있는 아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인(기독교인)이며 기록도 없다"고 장담했습니다. 아이들의 이름이나 겉모습만으로는 유대인인지 가려내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랍비는 아이들 앞에서 히브리어로 **"쉐마 이스라엘, 아도나이 엘로헤누, 아도나이 에하드"**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몇몇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지며 나지막이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잠자리에서 늘 들려주었던 기도 소리가 아이들의 무의식 깊은 곳(초기 기억)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이 한 줄의 기도 덕분에 아이들은 자신의 진짜 신앙과 가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2. '쉐마(Shema)'란 무엇인가?

히브리어로 **"듣다"**라는 뜻이며, **"듣고 순종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암송하는 성경 구절(신명기, 민수기), 그 핵심 오프닝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이스라엘아 들으라(쉐마).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이 기도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수 세기 전부터 유대인 기도 생활의 중심축이었으며,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가 말을 배우자마자 이 단어들을 가장 먼저 가르쳤습니다.

 

성경(마가복음)을 보면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가르침(토라)을 단 하나의 핵심 원리로 요약해 달라는 깊이 있는 학문적 토론의 제안이었습니다. "나머지 모든 율법이 녹아들어 갈 수 있는 가장 핵심 구절에 빛을 비추어 주십시오"라는 요청이었던 셈입니다.

 

예수님은 망설임 없이 유대인 누구나 암송하던 '쉐마'의 첫 줄을 인용하며 답변을 시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레위기 1918절 인용)

 

4. 이 글이 주는 결론과 교훈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말씀은 잘 알지만, 그 말씀이 유대인의 오랜 초석이었던 '쉐마(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라는 선언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쉽게 간과하곤 합니다.

결국 예수님에게도, 그리고 오랜 고난을 버텨온 유대인들에게도 신앙의 가장 밑바탕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귀 기울여 듣고, 그분이 유일한 분임을 인정하며,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쉐마)"**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책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쉐마의 첫 구절을 히브리어 원어로 뜯어보면 다음과 같은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쉐마 (Shema) : 들으라

이스라엘 (Israel) : 이스라엘아

아도나이 (Adonai) : 주님

엘로헤누 (Elohenu) : 우리 하나님

아도나이 (Adonai) : 주님

에하드 (Echad) : 하나 / 혼자

 

, 이를 종합하면 **"들으라, 주의하라, 이스라엘이여. 주님은 너의 하나님이시라"**라는 선언이 됩니다.

 

2. "듣는 것이 곧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듣는 것''행동(순종)하는 것'을 별개의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문화권에서 '쉐마'는 단순히 소리를 귀로 듣는 것을 넘어, "들은 바에 따라 행동으로 반응하다"라는 뜻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입니다.

 

어떤 히브리어 수업에서 한 학생이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순종'을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수의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쉐마."

실제로 성경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순종'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그 히브리어 원어는 대부분 '쉐마'로 나옵니다.

 

성경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리이다"라고 고백할 때, 이 준행한다는 말의 진짜 뜻도 "행하고 듣는다" , **"행함과 듣는 것은 동의어"**라는 의미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친구의 집 뒷마당에서 겪은 일화를 통해 이 개념을 완벽하게 설명합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정원 호스와 대형 물총으로 온몸이 흠뻑 젖도록 물총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잠잘 시간이 되자, 친구는 큰 소리로 **"시간이 늦었어. 이제 들어갈 시간이다!"**라고 단호하게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들은 체도 안 하고 계속 놀았습니다.

친구가 한숨을 쉬며 *"우리 아이들이 청력에 문제가 있나 봐"*라고 하자, 히브리어를 아는 저자는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너희 아이들의 문제는 '쉐마'가 안 된다는 거야."

아이들의 귀는 부모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지만(물리적 들음), 몸을 움직여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행동의 부재) 성경적 의미에서의 **'진짜 들음(쉐마)'**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4. 사람이 하나님께,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쉐마'

'쉐마'의 비밀을 알면 성경의 여러 구절이 새롭게 보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다윗이 시편에서 *"오 주님,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라고 간청한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귀로 알아달라는 게 아니라 **"제 상황을 보시고 저를 위해 행동을 취해(도와) 주십시오"**라는 촉구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기도를 들으실 때: 천사가 사가랴에게 *"너의 기도가 들린 바 되었다"*라고 한 것도, 하나님이 듣고 패스하신 게 아니라 아이를 낳지 못하던 부부에게 아이(세례 요한)를 주시는 '행동'으로 응답하셨다는 뜻입니다.

 

5. 결론: 듣지 않는 백성들의 비극 (시편 81)

하나님은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길을 따르고 순종하라"며 광의의 쉐마를 요구하십니다. 시편 81편의 안타까운 탄식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면 내가 속히 그들의 원수를 누르고..."

 

하나님의 소리를 귀로만 듣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쉐마의 실패)은 결국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거절하고 제멋대로 살다가 무너지는 결과를 낳는다는 경고입니다.

 

요약하자면, **"성경에서 말하는 '듣는다(쉐마)'는 것은 귀로 듣는 순간 발이 움직여 순종하는 것까지가 한 세트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용 중에 더 깊이 나누고 싶거나 궁금한 단어가 있다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숨겨진 진짜 의미와, 왜 히브리어 단어들이 이토록 행동 중심적인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흥미롭고 명쾌하게 정리해 드릴게요.

 

1.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의 진짜 의미

예수님은 설교하실 때 이 표현을 자주 쓰셨습니다. '쉐마'의 개념을 대입해 보면 예수님의 본심이 명확히 보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귀로 내 이야기를 잘 경청하라"는 뜻이 아니라, **"너희가 내 가르침을 들었으니 이제 마음에 새기고 '순종(행동)'하라!"**는 촉구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단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되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2. 씨 뿌리는 자의 비휴: 나는 어떤 땅인가?

예수님의 유명한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역시 **'참된 들음(순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길가나 바위틈, 잡초 밭: 말씀(씨앗)이 떨어졌지만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거나, 재물과 분주한 일상 때문에 정신이 산만하여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마음 상태를 뜻합니다.

옥토(좋은 땅): 말씀을 믿음과 순종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 옥토가 가진 강력한 약속

세상은 척박하고 완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지만, 하나님은 들은 대로 행하려는 소수의 '순종적인 제자'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 씨앗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어 100배라는 막대한 결실을 맺으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갑니다.

 

3. 히브리어가 '행동'을 강조하는 역설적인 이유: "어휘 부족"

왜 히브리어는 이토록 생각과 행동을 하나로 묶을까요? 흥미롭게도 그 이유는 **히브리어의 단어 수가 너무 적기 때문(어휘 부족)**입니다.

영어는 어휘가 40만 개 이상이지만, 성경 시대 히브리어는 총 8천여 단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단어가 부족하다 보니 단어 하나가 생각, 감정, 그리고 그에 따르는 '행동과 결과'까지 한꺼번에 짊어져야 했습니다.

'기억한다' \rightarrow 단순히 머리로 떠올리는 게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을 취하다'**를 내포합니다. (: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사 바람을 불게 해 물을 줄이심)

 

'안다' \rightarrow 지식적으로 아는 게 아니라, 깊은 관계를 맺고 친밀해지는 행동을 뜻합니다. (: 아담이 하와를 '알았을' 때 가인을 잉태함)

 

실제로 다른 소수 부족 언어(칸도쉬어 등)로 성경을 번역할 때도, '듣다'라는 단어가 '믿다''순종하다'라는 뜻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음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가?"라는 말이 곧 "왜 믿고 따르지 않는가?"와 완전히 같은 말이었습니다.

 

4. 헬라(서구) 문화의 함정과 인터넷 시대의 비극

반면, 플라톤을 비롯한 헬라(그리스) 문화권과 서구 사회는 **'정신세계(지성)는 고상한 것, 육체적인 행동은 부차적인 것'**으로 분리해 버렸습니다. 그 영향으로 오늘날 일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행동을 가볍게 여기거나 심지어 '죽은 행위'라며 무시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그 대표적인 비극이 바로 인터넷 공간에서 일어납니다. 머리로는 성경적 지식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는 타인에게 아주 무례하고 볼썽사나운 모욕을 서슴지 않고 쏟아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는 행동은 자신과 무관한 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생각 없이 뱉은 모든 말에 대해 심판 날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분명히 경고합니다.

 

5. 결론: 세상에서 가장 긴 거리, 30센티미터

히브리적 논리에 따르면, 진짜 신앙은 머릿속에만 머물 수 없습니다.

"머리에서 마음(가슴)까지의 30센티미터가 세상에서 가장 긴 거리이다."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머리로 배운 지식이 이 긴 거리를 지나 가슴에 닿아 진짜 신앙이 된다면, 그 신앙은 반드시 손과 발을 통해 '행동(순종과 사랑)'으로 밖으로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장은 **"머리로만 아는 지식 신앙에서 벗어나, 손과 발이 움직이는 '히브리적 순종(쉐마)'으로 나아가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번 내용 중에서 가슴에 깊이 와닿았거나, 일상 속에서 더 깊이 묵상해보고 싶은 부분이 있으신가요?

**'에하드(Echad)'**에 담긴 수천 년간의 신학적 논쟁과 진짜 의미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이해하기 쉽게 조목조목 풀어서 설명해 드릴게요.

1. '에하드(Echad)'의 다채로운 의미와 번역의 난제

쉐마의 첫 줄("들으라 이스라엘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가 바로 **'에하드'**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숫자 '하나'라는 뜻도 있지만, 문맥에 따라 다음과 같이 풍성한 의미를 가집니다.

단일한, 홀로, 독특한, 통일된

 

재밌는 점은 구약성경 신명기 64절 원문에는 동사(이시다, 유일하다 등)가 아예 없다는 사실입니다. 문자 그대로만 읽으면 *"야훼... 우리의 하나님... 야훼... 하나"*가 됩니다. 동사가 없다 보니 학자들 사이에서 해석이 두 가지로 갈렸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주님 홀로"

"우리의 하나님 주님, 주님은 하나이시다"

보통 서구 기독교에서는 두 번째 해석을 바탕으로 "하나님은 독보적이시다(유일신)"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2. 유대교와 기독교의 첨예한 대립

'에하드(하나)'라는 단어 때문에 유대인과 그리스도인(기독교인) 사이에 오랜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유대교의 입장: 에하드가 숫자 '하나'를 뜻하므로, 기독교의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나 예수님의 신성을 믿을 수 없는 근거로 이 구절을 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한 분'이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기독교의 입장: 에하드는 단순한 하나가 아니라 **'복합적인 통일체'**를 가리킬 수 있다고 맞섭니다. 성경 창세기에서 아침과 저녁이 합쳐져 한 날을 이룰 때도 '욤 에하드'라 부르고, 아담과 하와가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룰 때도 '바사르 에하드'라고 하듯, 삼위일체의 신비를 담아낼 수 있는 단어라는 해석입니다.

 

3. 고대 학계의 새로운 발견: 하나가 아니라 '홀로'

최근 수십 년간 학계에서는 고대 히브리어 맥락에서 에하드가 '하나'보다는 **'홀로(Alone)'**라는 뜻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실제로 가장 널리 읽히는 유대 성경 역본들도 이 구절을 "주님은 하나이시다"가 아니라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주님 홀로(alone)"**라고 번역합니다.

스가랴 149절에서도 이 단어는 '홀로'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에하드]**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에하드]*이실 것이라."

이는 온 인류가 우상숭배를 그치고 오직(Only) 하나님만 경외하며 홀로(Alone) 그분의 이름만 부르게 될 메시아 시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4. 쉐마는 신조가 아니라 '절대 충성의 맹세'

유대인 학자 제프리 타이가이는 쉐마를 두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교리적으로 정의하는 신앙 선언문(신조)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보다는 **"야훼와 이스라엘의 합당한 관계 묘사"**라고 규정합니다.

 

서구 문화에 익숙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한 분이심(하나 됨)'을 머리로 믿는 지성적 활동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히브리어 맥락에서 쉐마는 **'단 한 분의 참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라는 절대 충성의 촉구이자 호소'**입니다.

 

우리가 섬길 분은 오직 그분밖에 없으므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 구절을 암송하는 것은 교리를 고백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상기하는 충성 맹세에 가깝습니다.

 

5. 결론: 왜 예수님은 이 구절로 답변을 시작하셨을까?

율법학자가 "가장 으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이 쉐마의 첫 줄을 인용하신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믿고 주님으로 모신 하나님이 **'오직 유일한 나의 하나님(주님 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다른 헛된 신들에게 한눈팔지 않고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해 그분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문장이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완벽한 계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뇌 속의 정신 활동(지식)을 넘어, 우리의 유일한 청종 대상인 하나님의 '한 분 되심'을 믿고, 그분을 삶의 중심에 놓은 채 온 마음과 뜻과 힘과 생각을 다해 삶으로 사랑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이번 장은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아는 지식에 머물지 말고, 그 유일하신 분에게 내 온 삶을 던져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혹시 '에하드'라는 단어의 의미나 유대교·기독교의 해석 차이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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